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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비행
발제일: 2024년 3월 15일
발제자: 강향혜
1. 작가소개 : 박현민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건국대학교에서 구조공학을 학사, 석사로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지며 계속 그려왔고, 그림책 워크샵을 참여한 계기로 본격적으로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다. 그는 2020년 브루노 무나리와 레미 찰립의 책에서 흰 종이를 흰 눈으로 치환하는 아이디어에 영감을 받아 만든 책 《엄청난 눈》으로 데뷔하였다. 그가 가장 관심있는 대상은 틀과 물리적인 책 그 자체이며 책의 물성을 강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작품에서 네거티브 공간(배경)을 메인으로 보여주며 그 빈 공간을 독자가 각자의 틀로 채워 넣게 하고 그 틀을 부수면서 생기는 유희와 통찰을 좋아한다.
독창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여백을 잘 활용한다. 그는 빈 공간인 여백을 통해 독자 스스로가 각자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엄청난 눈》에서는 흰 여백을 통해 흰 눈을 상상하게 하고 《얘들아 놀자》에서는 검은 여백을 통해 어둠 속 독자가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그는 빈 공간을 각자의 틀로 바라보는 요인 중 하나가 시선의 방향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줌인, 줌아웃, 롱샷, 로우샷 등 시선의 방향을 이동하며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빛을 찾아서》에서는 도시 공간의 다양한 구도를 은색, 금색, 군청색을 통해 시선을 다각화하고 있다. 《도시비행》에서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1인칭 시점의 그림을 사용해 민들레의 시선을 독자가 함께 따라가게 한다. 그는 책을 넘기는 방향을 바꾸어서 프레임을 다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엄청난 눈》과 《얘들아 놀자》의 읽기의 방향을 책장을 위로 넘기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내려가며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래로 흐르며 공간의 깊이감을 더 느끼게 한다.
[출처: 위키백과]
# 수상
첫 그림책 《엄청난 눈》은 2020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우수출판콘텐츠상을 받았다. 2021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예술성과 창의성이 우수한 책) 오페라 프리마(신인 작가의 첫 책) 부문 스페셜 멘션(우수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2023
IBBY Silent Books 한국후보작(람페두사섬의 난민 어린이들을 비롯해 전 세계 많은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리 없는 책' (그림책 10권)에 선정되었다. 첫 작품에 이어 《도시비행》으로 2022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어 또 한 번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이듬해 정식 출간되었다. 2022년 출간된 《빛을 찾아서》로 2023
Biennial of Illustrations Bratislava Korea's representative picture book(브라티슬라바 국제그림책비엔날레 최종심사 한국대표)로 노미네이트되었다. 또한 2023 Nami Concours Shortlisted illustrator(남이섬 세계책나라축제위원회가 주최하는 2023 남이섬 국제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 최종 후보)로 뽑혔다. 2022년 출간된 《얘들아 놀자》는 2023년 Bologna Ragazzi The BRAW Amazing Bookshelf에 선정되어 전시되었다. 라가치상에 출품한 책들 중에서 라가치상은 받지 못했지만 훌륭한 책 100권을 선정하여 따로이 전시한 것이다.
또한 그는 2023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Italina Excellence Contest에서 30명의 위너 중 1명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그림책 작업 외에도 의류브랜드 Benetton Kids와 협업하여 옷의 일러스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 출간된 작품(노란돼지n달그림에서 4권, ㈜창비에서 2권)
『엄청난 눈』 (2020, 달그림), 『얘들아 놀자!』(2022, 달그림), 『빛읓 찾아서』(2022, 노란돼지), 『도시비행』(2023,
㈜창비), 『하얀 개』(2023, 달그림) ,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2024, ㈜창비)
2. 이야기 나누기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먼저 돌아가며 이야기 했어요.
▪현은주: 『엄청난 눈』에서는 절제된 색을 사용했다면, 이 책에서는 모든 색을 다 칠한 듯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민들레가 밟힐 듯 하는 두려움이 채색에 섬뜩할 만큼 잘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신발 밑창의 채색을 보면 혈관이 비치는 듯하다. 책과의 거리를 두고 보면 시각적 효과가 더 두드러진다는 게 역설적이다. 시야(시각)을 넓히자 라는 변화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민들레의 속성은 잠재력이 아닐까. 암울하고 고꾸라지는 시기도 견뎌내다 보면 그러는 사이에 발견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자기 안에 있는 잠재력을 믿어야 한다.
▪최민욱: 누운 채로 아이와 책을 읽어보니 둘을 짓누르는 듯 압박감이 느껴졌고, 마지막 장면에서 민들레 씨앗이 도시 위를 날아다니는 장면은 반대로 선 채로 책을 내려다보니 함께 비행하는 듯 느껴지는 연출이 재밌었다. 민들레 한 송이가 사실은 여러 송이 꽃이 뭉쳐서 핀 것이라니...‘혼자가 아니야 같이 있잖아. 같이 있으니까 무섭지 않아.’하며 두려움을 이겨내는데 의지가 될 듯하다.
▪고보경: 강아지가 민들레 위에서 똥을 누는 장면이나, 자전거 바퀴나 지나가며 따르릉 소리 내는 글, 애벌레가 나비로 변했다는 것, 아이를 잡은 어른의 손 또한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비와 바람을 견디고 나오는 노란 장면은 희망을 뜻하는 듯 했다. 아래서 올려다보고도 속도감 있게 전개할 수 있구나. 재밌다. 나도 힘들었던 처지에 놓였을 때 학교를 다녀보라는 말을 들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몰두하면 힘든 상황도 잊을 수 있었고 그러는 사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김희열: 표지에 나온 민들레는 우리가 흔히 아는 노란색이 아니고 다채롭다. 첫 면지에는 한 송이 민들레만 피어있는데, 끝 면지에는 흩뿌려져 민들레 싹이 여러 군데 나있다. 희망이 퍼진 것 같다.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책이 떠올랐는데, 이 책의 첫 면지에는 다 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끝 면지에는 민들레지만 다 다르게 그려져 있다. 민들레는 모두 같거나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민들레의 모습을 다르게 그린 것을 보면서 둘 다 다채로운 주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황유주: 민들레라는 소재는 동화책에서 잘 다뤄지는 것 같다.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함께 떠오른 책은 『친구의 전설』이다. 표지나 아이가 민들레 홀씨를 부는 장면은 마치 매직아이(트릭아이)처럼 3D안경이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듯 했다. 작가의 실험정신에 놀라웠는데 장면들을 그릴 때 유리 위에 그림이나 모형을 세워놓고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그린 것 같다. 정진호의 『위를 봐요!』 책이 떠올랐다.
▪박우진: 아이가 홀씨를 부는 장면은 고무판화나 스크레치 보드를 긁어 그린 듯 해 공포감이 들었다. 그 외에도 애벌레 등 “겁내지 않고 똑바로 볼 거야”라는 장면을 명장면으로 작가가 뽑았다고 하는데, 바로 공포(두려움)를 견뎌냈기에 씨를 품고 날아오를 수 있었다고 본다. 시선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한다. 너는 늦게 피는 꽃이야. 다 타이밍이 있어. 날아오를 수 있어 조금만 버티면 돼.
▪홍현스님: 남성 작가가 쓰고 남성미가 살아있는 그림책이라 반가웠다. 낙엽이 내려 소란한 날에도, 눈이 내려 고요한 날에도 표현도 좋았다. 담장이 어릴 적에는 머리 위로 높았는데 어른이 되어 지날 때는 낮아 보이듯이, 성장 성숙하여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보이는 게 달라져 있을 때 드라마틱한 것 같다. 민들레가 처지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을 단정 짓지 말고 업그레이드 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남의 시선에 빗대서 자신을 판단하고, 인풋이 많은데 아웃풋이 적을 때 남에 비해 억울하고 진이 빠진다. 고착과 프레임을 깨고 나를 내던지고 틀을 부수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강향혜: 민들레는 여기 저기 피어 있어요. 흙이 있는 곳이면 쭉쭉 뻗어 나가는 힘센 뿌리를 가졌어요. 민들레 꽃대에는 잎이 없어요. 민들레는 바로 뿌리에서 잎이 나오고, 바닥에 붙어서 잎이 겹치지 않게 자라니까 햇볕도 잘 받고 추위와 바람에도 견딜 수 있어요. 그리고 꽃이 필 때 즈음 꽃대가 올라오는데 한 송이가 아니고 수많은(180~200개) 작은 꽃(혀꽃)들이 모여 뭉치로 피어요(두상화). 잎의 숫자만큼 피워 올리니까, 한 해 봄에 수천 송이의 꽃을 피우는 셈이에요. 꽃은 딱 (사흘만 피는데) 바깥쪽 꽃이 먼저 피어 점점 안쪽으로 피어 한가운데 꽃까지 피어요. 꽃이 다 지고 나자 꽃대가 쓰러져요. 씨를 만들 준비를 하는 거에요. (2주정도 씨가 여물자) 끄트머리가 하얀 봉오리처럼 부풀면서 다시 꼿꼿이 꽃대가 일어서요. 갓털을 만들어 날아갈 준비를 해요. 그렇게 많은 씨앗이 날아가면 민들레로 가득해야 할 테지만 습기, 더위, 추위, 건조함, 서리 등 잘 견뎌야만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울 수 있어요.
▪정진영: 위해준 글 야엘 프랑켈 그림의 『한 사람』(2023, 시공주니어)를 같이 읽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우리는 누구나 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모두가 나를 떠나가서 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그럴 때 다가와 주는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어. “너는 어떤 사람이니?” --->짧은 질문 안에 많은 생각에 잠기고 여운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오금이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말을 아끼셨는데요.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반가웠습니다.
아래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을 받아 적지 못하고 이야기만 나눴네요.
(1) 이 책 제목을 왜 도시비행이라고 지었을까? 왜 표지에 저렇게 쓴 걸까?
(2)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나 가장 입체적으로 느껴진 장면을 펼쳐서 그 이유를 이야기 해보자.
(3) 이전 작품인 『엄청난 눈』, 『얘들아 놀자!』, 『빛읓 찾아서』는 “빛과 어둠의 3부작”이라 불린다. 도시비행은 이전 작품들과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가? 작품 간의 연관성이 있는가?
(4) 민들레가 되고 바라본 세상은 어떤 것 같은가? 민들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야기 해보자.
(5) 박현민은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고 놀라운 시선을 그림책에 담아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이다.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그 작품이나 이 작가에게 해시태그를 달아본다면 떠오르는 주제어가 있는가?
: 올해의 목록집에 『도시비행』의 주제어로 민들레, 구도, 시선, 계절, 씨앗이네요. --->구글 문서를 만들어 주제어를 3개정도 달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정진영회원님의 아이디어입니다.)
3. 책을 읽고
『도시비행』의 표지를 보자. 하드커버는 묵직한게 정말 보도블록 같다. 앞표지에도 까만 궁서체의 제목이 보도블록같이 쓰였는데, 그 틈에 색의 3원색으로 칠해진 민들레 한 송이가 씩씩하게 피어있다. 뒷표지 상단중앙에는 3장의 셀로판지 위에 작가 이수지의 추천사를 어렴풋이 얹었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저자와 판권에 대한 정보가 표지에 실린 것도, 면지가 여러 장 있는 것도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표지에서 그토록 눈부신 민들레는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와 개와 개똥을 책을 들고 이래저래 돌려보다가 표제지가 나와서야 바로 들어 읽기 시작했다.
첫 장을 펼치면 이전 작품 『빛을 찾아서』에서 언뜻 보았던 시선이 쾅하고 등장한다. 첫 장부터 독자의 시선을 큼지막하게 밟을 듯 스쳐가니 조마조마하다. 또 넘기니 옴짝달싹도 못한 채로 밟히고 말았다. 다시 커다란 나무가 보이니 다행히 살아 있나보다. 매일 밤낮으로 쏘아보는 빛도 내리붓는 비도 떨어지는 낙엽도 쌓이는 눈도 다 견뎌 냈나보다. 새순을 죄다 먹고 내게도 다가온 애벌레나 그걸 바라보며 그물을 치는 거미를 보며 내가 할 일은 겁내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새순이 다시 나오는 사이 애벌레는 번데기로 변하고 거미도 그물을 치고 나무에도 이파리가 늘었다. 노란 나비가 날아왔다가 날아가고 노란 옷을 입은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가 내민 손이 민들레를 움켜쥐고 꺾었다. 꽃잎이 떨어져도 『민들레는 민들레』, 하얘진 민들레는 후~후~부는 대로 날아간다. 콕 박혀 꼼짝달싹 못하던 날 새장 밖으로 풀어준 듯하다. 위태위태하던 나는 하나였는데 훨훨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씨앗은 많다. 비행기 못지않게 도시 위를 고공비행하는 민들레를 보니 축제가 열린 듯 짜릿하고 흐뭇하다.
도시 안에 또 내려져 보도블록 사이에 끼여도 또 비상하는 날을 꿈꾸겠지? 끊임없이 날리고 흩뿌려져야 살 수 있는 민들레에 보내는 작가의 찬란한 응원이 고맙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가 되어 보라. 우리에겐 익숙한 환경이 그들에겐 낯설고 위태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 몇 마디 보태지 않고도 이를 역동적인 전개와 박력 있는 화면(시공간) 안에서 긴장감을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잘 살려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씨앗이 되어 날아오를 때 이 모든 것을 초월한 것처럼 경이롭다.
또 민들레는 애벌레도 나비도 아이의 손도 모두 피하지 않았다. 간혹 피하지 않았거나 못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거나 큰 도움을 받는 일도 생긴다. 서로 차이가 큰 것 같지만 별반 크지 않고, 어떤 때는 입장이 뒤바뀌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섞이지 않을 것 같지만 섞이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의 양극의 경계나 치우침을 허물어내는 이야기가 간곡한 메아리로 퍼져나갈 세상을 꿈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