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아름다운 사람들
「누리영상단」하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실버영상제작단이다. 구성원 평균연령이 70대를 넘고 고령층은 80대를 상회해 있다. 80대가 대여섯 명 정도로 결코 적지 않다고 한다. 최고령자는 86세로 전해 들었다. 사실 이런 늙수구레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대한민국에서 그리 많지 않다. 아니 현장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만 해도 영광이라 할 만하다. 이런 퇴물(?)들이 해마다 큰 사고(?)를 치고 있다. 올해 역시도 그랬다. 영상제작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제작한 작품들을 두고 전국에서 경쟁을 하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려 기염을 토하고 있다. 최우수작이면 어떻고, 입선작이면 어떠랴 싶은데 그래도 최우수작의 영예를 걸머졌다면 그 공과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성과물을 가지고 공개 시사회를 한다기에 만사 젖혀 놓고 관람을 갔었다. 큰 기대를 갖고 간 것도 아니고, 영화라기에 그 수준이 뭐 별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장소에 동참한다는 의의가 더 크기에 기꺼이 걸음을 했었다.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려면,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고, 극중 인물을 연기할 배우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극 내용을 영상으로 구현해 낼 장비가 있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모두를 영상단 회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마무리 할 수 있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보여 진다. 글 쓰는 사람이 있어야 시나리오를 작성할 테고, 시나리오대로 극중 인물을 연기해 내는 배우가 있어야 극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텐데 그 모든 조건들을 자체 내에서 구현하고 완성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지 아닐 수 없다. 하긴 시나리오는 전문작가이면서 회원이기도 한 분의 힘을 빌렸다 하더라도 연기야 어디 그렇던가. 황혼을 살아온 인생 역정의 경험이 어수룩하게나마 연기의 옷을 입고 시현되는 것이 기특하고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요소가 된다. 얼마 전의 경험이기도 하다. 해운대 문화회관에서 공연된 “해운대 엘리지” 연극 관람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연기경력이 전무한 순수 살림꾼들이 모여 제작한 연극 한 편에서도 나는 그런 느낌을 가졌더랬다. 전업주부들이 작당(?)을 하여 시간을 쪼개고 경험을 나눠 가지면서 젊어서 누려보지 못했던 꿈들을 뒤늦게나마 연극이라는 작업에 올인하여 하나의 작품을 이룩해 냈다는 것은 그들에겐 경천동지할 감동이요 세상을 뒤집을 만한 대사건이 됨을 알 수 있었다. 꿈이 살아있다는 건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삶의 맥박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나이 먹은 것이 훈장이 될 수 없을 바에야 주름꽃이 만발한 얼굴을 하고서라도 삶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다. 이미 그들은 그런 삶의 오의를 스스로 실천하고 만끽하고 있는 분들임을 그 결과로써 증명해 내고 있다. 어차피 청춘이 안 될 바에야 시니어로서 품격 있는 생활과 활동을 찾아 삶을 구축해 가는 것이 보다 더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일 터이다. 누리영상단이 이루어낸 쾌거도 상찬할 일이기는 하지만 보다는 늙음을 의식하지 않고 창조적인 일을 만들어 내는 그 노력과 열정이 가상하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열정이 있어야 삶이 충만해진다. 열정이 있어야 에너지가 샘솟고 피부가 탱탱해진다. 예컨대 젊어진다는 얘기다. 전업주부단의 연극에의 열정도 어떻게 보면 젊어지기 위한 수단이자 방편일지도 모른다. 그런 삶들이 아름답다. 열정 있는 사람들이 정녕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열정의 집단에 동참하고 응원하는 것은 스스로가 젊어지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굳이 기피하고 거리를 두려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고 늙은이가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 대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꽃은 제자리에 피어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향기 나는 법이다. 누리영상단 공개 시사회에 시니어의 참석이 많지 않았다는 데 조금은 아쉬운 감이 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