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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天風道人이 가는 길 원문보기 글쓴이: 天風道人
민중의술 명의(名醫) 열전 ①김명옥.
고통 끝에 병을 스스로 고쳐본 사람이라야 병의 원리와 치료의 원리를 제대로 안다. 절절한 경험만큼 살아있는 의술은 없다. 그래서 하늘은 올바른 의자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먼저 그를 병들게 하여 고통을 체험케 하는 것이다. 피라미드 왕쑥뜸으로 만병을 고친다. 대구에 사는 32세의 한아무개 간호사. ‘크론’으로 10년 이상 고생하다가 김명옥씨를 찾아왔다. 당시 하루에 혈변을 열 번 이상 보아 심각한 탈수현상이 왔고, 호흡이 안되어 집에서도 산소호흡기를 꽂아야 될 정도로 빈혈이 심각했다. 일반병원에서는 위험하다고 받아주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스테로이드제제를 사용하여 간(肝)과 신장,방광 계통이 치명적으로 손상되고 온 몸의 장기들이 엉망인 상태였다. 피라미드 왕쑥뜸을 한 달 정도 뜨고 나니까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혈변의 횟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헤모글로빈 수치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면서 산소호흡기를 떼었다. 2개월 후에는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서 한 공기씩 먹기 시작했다. 3개월째부터는 수혈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6개월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계속 왕쑥뜸을 떴고, 간호사로 다시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 ‘경피증’ 환자를 고친 사례. 54세의 여자 임아무개씨. 이 환자가 처음 왔을 때 김명옥씨는 깜짝 놀랐다. 온 몸이 미이라보다 더 끔찍하게 말라 비틀어져 딱딱하게 굳어 있고, 손가락과 팔꿈치가 굳어서 오그라들고, 무릎이 굳어서 잘 걷지도 못하였다. 내장도 굳기 시작하면서 변을 하루에 수없이 보고, 폐가 굳어서 숨쉬기가곤란하다고 했다. 머리에서부터 얼굴, 몸 전체가 굳어 있는데, 만져보니 나무토막보다 더 딱딱했다. 침을 찔러보니 휘어질뿐 들어가지도 않았다. 전국의 유명하다는 의사, 약사, 종합병원, 한의원을 다 헤매다가 소개받고 왔다고 했다. 겨우 침을 꽂고 그 위에 피라미드 왕쑥뜸을 뜨기를 1달 정도 하니까 굳어있던 부위에 침을 빼면 침구멍에서 맑은 물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3개월째부터는 까맣고 찐득한 피가 나오고, 5개월째는 피가 맑아지면서 손가락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8개월째는 대소변 횟수가 줄고, 소변의 거품도 현저하게 줄고, 굳었던 팔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손가락도 조금씩 풀어지면서 변을 볼 때 식구들 도움 없이 본인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간경화’를 고친 사례. 부산에 사는 56세의 박아무개씨. B형 간염을 오랫동안 앓았는데, 시숙이 의사라서 GOT,GPT 등의 여러 가지 검사를 지속적으로 하고 건강을 관리하는데도 결국 간경화로 발전하고 말았다. 시숙이 집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편히 쉬라고 하길래 결국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소개를 받고 김명옥씨를 찾아왔을 때는 얼굴색이 검고 몸이 퉁퉁 부어있었는데, 소화가 잘 안되고 걸레 하나 들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다고 했다. 피라미드 왕쑥뜸을 뜬지 1개월 정도 되니 질질 끌고 다니던 다리가 가뿐하게 걸어졌다. 2개월째에는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기운이 났다. 3개월째에는 부어 있던 몸이 차차 빠지기 시작했다. 4개월째에 GOT, GPT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고, 6개월째에는 간경화 수치도 정상으로 나오고 경화가 없어졌다고 하였다. 그녀의 딸이 영국 유학 갔다가 몸이 엉망진창이 되어 돌아왔다면서 딸을 데리고 와 상담을 하고는 뜸쑥을 사가서 집에서 딸에게 떠 주었는데, 생리통, 여드름, 수족냉증, 부기, 어깨결림이 다 없어지고 예뻐졌다고 고마워하였다. ‘류마치스 관절염’은 무릎에 물이 차는 증세까지, 환자의 나이에 관계없이, 한 번도 실패 없이 100% 왕쑥뜸으로 고쳤다. 염증성 질환은 쑥뜸만으로도 잘 낫는다. 당뇨와 퇴행성관절염을 한꺼번에 고친 사례. 김명옥씨 딸의 한문선생님이 나이 60세였는데 400mg/dl이 넘는 당뇨와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위험하니 수박도 먹지 말라고 할 정도로 엄격하게 식이요법을 시켰으나 환자는 오히려 먹고 싶은 과일을 마음대로 못 먹어 식이요법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에 못 다니겠다고 하면서 쑥뜸을 뜨려고 찾아 왔다. 먹고 싶은 과일을 마음껏 먹게 하고 쑥뜸을 했는데, 1년 6개월만에 병원 검사 결과 몸 전체가 완전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오랜 투병생활 김명옥씨는 내과의사인 아버지와 국어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10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결핵에 감염되어 그 이후 내내 꼬랑꼬랑 앓았다. 어린 마음에 사람은 본래 아프게 사는가 보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주사로 치료를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입안이 헐기 시작했다. 밥을 못 먹었고, 잘 낫지 않았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감기를 자주 하였다. 항생제를 사용하니 몸이 무너지는 느낌이 왔다. 병명이 나오지 않으니 의사인 아버지도 답답해 했다. 시집을 보내면 나을까 싶어 빨리 결혼을 시켰다. 23세에 결혼하고 24세에 아이를 낳았다. 첫 애기 놓고 많이 아파 집안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둘째 아이를 낳고는 더 악화되었다. 29세때는 못 일어날 정도로 아팠다. 입안이 헐고 생식기에도 염증이 생겨 레이저수술을 하였다. 의사는 세균도 없고 바이러스도 없는데 염증이 잡히지 않고 병명이 나오지 않으니 이상하다고 하면서 신경성이라고 하였다(지금 뒤돌아보니 그것이 바로 베체트병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한다). 하도 낫지 않으니 시어머니가 어디 가서 물어보고는 집안에 총각귀신이 있어서 몸에 붙었다고 하더라면서 용한 스님을 불러 며칠간 집에서 재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밥도 못 먹고 계속 꼬랑꼬랑 하면서 병원 신세를 졌다. 전라도 어느 산 속 절에 들어가서 스님에게 8개월간 침을 맞았는데, 못 먹던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침을 맞다가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바람에 하산했다. 수련과 마음공부 31살 때 전기(轉機)가 왔다. 이웃에 사는 교장선생님 내외분이 기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기(氣)를 넣어야 한다면서 ‘단(丹)’이라는 책을 건네주었다. 그 책을 보고 집(부산 괴정동) 근처에 있는 포교원에 다니면서 참선(명상)과 단전호흡을 배우고 마음공부를 했다. 스님은 ‘억지로 하지 말고 의식을 단전에 두고 자연스럽게 호흡하라. 생각도 버리려 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고 가르쳤다. 그런 수련을 틈나는 대로 몇 년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힘이 조금 나면서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시장도 못 갔는데 걸어서 시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35세 때 바로 밑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즉사하는 아픔을 겪었다. 연락을 받고 병원 영안실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며 무조건 동생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믿어 본 적이 없어서 그 무엇인지도 모르는 대상에게 그냥 정신없이 빌었다. 한참 그렇게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노란색의 환한 빛이 비치며 몸 안으로 쫙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금이빨을 드러내고 너무도 편안하게 웃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 본인도 편안함을 느꼈다.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고 이후에도 경험하지 못한 최상의 편안함, 몸에 실오라기조차 걸치지 않은 듯한 지극한 편안함이었다. 그 후 명옥씨는 사랑하고 아끼던 동생의 죽음에 대한 허망감과 고통을 안고 스님, 목사 등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러나 누구의 가르침과 지도도 흡족하지 않아 스스로 책을 섭렵하면서 사후세계 등을 공부했다. 티벳트 「사자(死者)의 서」등이 이 때 읽은 책들이다. 그러는 동안에 죽음에 대한 인식이 넓어졌다. 처음에는 동생의 죽음에 매달려 있었으나 모든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생각이 확대되었다. 마침내 그 동생이 자신을 가르치려고 스승으로 이 세상에 왔다간 존재임을 깨닫고, 동생의 죽음 후 4년 반 동안 해 온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책을 덮었다. 의술 공부 자연의학을 배우면서 자신의 몸을 돌봐야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 과정에서의 일이다. 37,8세쯤 되었을 때 큰딸이 다니던 유치원의 자모가 권유해서 가장간단하다는 수지침에 입문했다. 가족들이 제주도에 놀러 갔는데 옥돔 굽은 것을 먹고 큰 딸이 식중독에 걸려 밤중에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119를 부르려는 어머니를 만류하고 수지침을 놓고 압봉을 붙여 주었는데 다음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 귀로에는 집안 제사 때문에 급히 오느라 배를 타게 되었는데, 강풍 속에서 모든 승객이 심하게 멀미를 했으나 명옥씨가 압봉을 붙여준 사람들은 아무도 멀미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술이 이렇게 신기한 효험을 발휘하는 체험을 처음으로 하면서 의술에 매료되어 갔다. 수지침 공부 중 음양맥진법은 유태우 씨에게 사사받고 나머지는 고려수지침학회 지회에서 배웠다.그러는 중에 기공의 대가 김영조 교수에게서 수(手)기공도 배웠다. 김교수는 중국 화국봉 주석의 주치의를 지낼 정도로 대가였는데, 정부 고위층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 있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1년 정도 배웠다. 처음에는 소나무의 기, 풀잎의 기, 땅의 기, 손의 기감각 등을 느끼면서 그것이 마음먹는 순간순간마다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한 달이 되도록 의념으로 기를 돌리라는 말을 들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느끼지 못하여 소주천, 대주천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척추로 물이 흐르는 느낌이 왔고, 임독맥이 통하면서 소주천, 대주천이 되었다. 1년을 수련하고 나서 환자의 통증 부위에 손을 얹으면 통증이 없어지는 여러 체험을 하였고, 미국에 있는 암환자 가족으로부터 통증을 없애달라는 전화를 받고 바로 염파를 보냈더니 5분 뒤에 통증이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2-3년의 수지침 교육을 마치고 바로 수지침 강사를 하였다. 학원과 사회복지단체 등에서 하루에 6-8시간씩 강의를 했다(1996년까지 수지침학회 소속으로 강의를 했다). 그렇게 하면서 6-7년간 중국 북경중의대를 왔다갔다하며 공부했다. 그 계기는 김영조 교수가 마련해 주었다. 김교수는 명옥씨의 기감이 대단히 발달되어 있다고 하면서 제자로 삼고는, 수지침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본격적으로 체침을 배우라고 권유하여 중국행 길을 열어주었다. 중국에서 침구와 방제학(한약처방학)을 주로 배웠다. 침구는 모혈침(12장부의 모혈에 놓는 침), 독맥침(척추에 놓는 침)을 특별히 배웠다. 말을 못하는 환자에게 혀 밑에 침을 놓아 말문을 열어주는 비법도 배웠다. 69개국의 의사들이 모여서 같이 침술 공부를 하는데, 교수들이 1:1로 철저하게 가르쳐 주었다. 방제학도 과목별로 너무 잘 되어 있었다. 인삼, 감초, 녹용 등 약재 1개를 가지고 교수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다만, 중국의 쑥뜸은 체계가 없고 어설펐다. 의술의 원천과 방법 김명옥씨 의술의 원천은 필자가 보기에 명상과 기도이다. 명상 중에 몸 안 좋은 곳을 스스로 치유하는 현상이 생긴다. 소위 자발공 비슷한 것이다. 기도는 대단히 영험하다. 마음먹고 기도하면 원하는 것이 글자로 찍혀 눈앞에 나타나거나 귀에서 소리로 바로 들린다. 기도한대로 정확하게 반응이 온다. 기도는 동생이 죽었을 때 처음 해본 이후로 수시로 해왔는데, 처음에는 그냥 천지신명에게 하다가 나중에 2년간 교회를 다닐 때는 하느님에게 했고 1998년부터는 약사여래 할아버지에게 한다. 철학관이나 무당에게 가 본 적이 있는데, 괘가 안 나온다거나 머리가 아프다면서 명옥씨를 피한다. 이는 명옥씨의 영력(靈力) 대단히 강하여 상대방의 배후령을 압도한다는 말이다. 제자들이 아플 때 명옥씨가 손을 얹어주면 사람의 손이 아니라고 한다. ‘느낌이 다르다’‘약사여래 손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긴가민가하였으나 1998년경에 너무 과로하여 급성신우신염이 왔을 때 쑥뜸 뜨면서 간절하게 기도한 후 그 다음날 자고 나서 거짓말처럼 완치된 체험을 하고는 그 동안의 교만을 반성하고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치유방법으로 주로 쓰는 것은 피라미드형으로 만든 왕쑥뜸이다. 왕쑥뜸은 명옥씨가 처음 개발한 것이다. 수지뜸, 서암뜸, 중국뜸 등을 해보다가 1992년에 제자가 가져온 심주섭 뜸을 처음 접하고 딸에게 시험 시술을 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는 개선책을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가 원추형 왕쑥뜸으로 나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 우여곡절은 말로 다 못한다. 기구의 크기, 모양, 소재, 불씨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장치, 쑥이 타는 시간, 인체가 느끼는 반응, 뜸쑥의 모양과 만드는 방법 등 관계되는 모든 것을 온갖 실험을 통해서 검토했다. 예컨대, 뜸쑥을 담는 기구의 소재를 세라믹, 옥, 황토 등으로 바꾸어 가며 사용해 본 결과 기분 좋은 온도가 나오지 않아 결국 현재와 같이 ‘콩으로 만든 링’이 가장 좋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적인 소재로 자연적인 방법으로 떴을 때 몸이 가장 잘 반응하고 에너지를 최대화한다는 이치를 깨달은 결과이다. 콩과 쑥이 만났을 때 기운의 조화가 최고로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조상들이 왜 쑥떡을 콩고물에 찍어 먹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쑥뜸을 하는 시간도 쑥이 타는 시간 25분과 타고 난 후의 열기와 원적외선을 몸에 흡수하는 시간 25분을 합하여 50분이 가장 쾌적함을 확인했다. 뜸쑥봉의 모양도 계속 사용해 본 결과 원추형보다 피라미드형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라미드 모양이 기가 훨씬 잘 들어오고 효과가 배가 되었다. 피라미드 형태 자체가 우주 기운을 흡수하고 극초단파를 방사한다. 쑥이 다 타고 재만 남아 있어도 기운이 계속 들어온다. 자신이 개발한 원추형 왕뜸쑥을 다른 사람이 도용해서 전국에 팔아먹고 수출까지 하는 꼴을 당한 경험이 있어서, 피라미드 왕뜸쑥은 개발하자마자 2002년 의장등록을 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피라미드 왕쑥뜸이 잘 듣는 이유 김명옥씨가 중병 환자를 고치는 방법은 모두 피라미드 왕쑥뜸이다. 이것이 왜 병을 잘 낫게 할까. 피라미드 모양 자체가 지닌 효능은 위에서 본 바와 같고, 나머지 근거는 무엇일까? 명옥씨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상화되고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 될 것은 당연하다. 위로 올라가는 기를 단전으로 내려주므로 심장, 신장의 기능이 정상화될 것도 당연한 이치다. 쑥뜸을 하면 더위도 추위도 모르고, 더운 여름에 쑥뜸을 해도 더위를 못 느끼고 오히려 시원한 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열이 펄펄 끓는 환자에게 쑥뜸을 하면 바로 열이 내리고, 몸살 감기가 바로 낫는다. 수족냉증이 오래되어 어떤 방법으로도 안 되는 것도 이 쑥뜸을 한번만 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물론 명옥씨가 하는 쑥뜸은 인체의 혈자리와 운기의 이치에 통달하여 뜸쑥 놓는 자리를 잘 선택하기 때문에 효과가 더 잘 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피라미드 왕쑥뜸의 임상 효과가 너무 좋아, 명옥씨는 그 매력에 빠져 산다. 단전호흡의 위대한 힘을 아는 사람들은 다 놀랄 것이다. 인위적인 호흡수련으로는 어렵고 위험하기조차 한 단전호흡이 쑥뜸을 하면 저절로 된다니!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있나. 그렇다면 이 쑥뜸은 수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편하면서 최상의 건강법이자 수행의 보조수단이 될 것이다.그러나 위와 같은 설명이 쑥뜸의 신비를 다 말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신비는 훨씬 더 깊고 오묘한 곳에 무진장으로 숨어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쑥뜸을 올린 자리에는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는다는 것도 명옥씨가 임상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옛부터 신령스런 풀이라 하여 영초(靈草)로 불린 쑥, 그래서 우리 민족의 건국역사에서부터 마늘과 함께 등장하여 보통의 인간 웅녀를 신인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기여한 쑥, 그 쑥과 우주의 양기를 대표하는 불(火)의 만남이 빚어내는 오묘한 생명의 조화를 많은 사람들이 더 깊이 연구하여 그 신비를 밝혀내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피라미드 왕쑥뜸은 그 신비를 빨리 밝혀서 우주 대전환기에 생명을 구하는데 활용하라고 우리에게 독촉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고통 끝에 병을 스스로 고쳐본 사람이라야 병의 원리와 치료의 원리를 제대로 안다. 절절한 경험만큼 살아있는 의술은 없다. 그래서 하늘은 올바른 의자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먼저 그를 병들게 하여 고통을 체험케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의사라는 직업이 보수가 높고 사회적 지위가 있고 근사해 보여서 의사가 되겠다고 의과대학을 간 사람은 지식으로 의술을 배울 뿐, 진정한 의술에 도달하기 어렵다. 지식이 어찌 생명에 비견할 것인가? 지식으로 어찌 생명을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생명은 오로지 생명으로 부딪쳤을 때 비로소 그 내밀함을 얻을 수 있을 뿐인 것을. 그래서 의과대학을 나와도 병을 못 고치고, 의과대학을 안 가도 병을 잘 고치는 것을. 그러므로 본질은 의과대학의 교육이 아닌 것을. 김명옥씨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의자(醫子)로 예정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원인도 모르게 계속 앓아 온 것도, 내과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것도, 다 하늘의 배려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명상과 참선, 호흡법과 기공수련으로 들어갈 계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동생을 교통사고로 잃고 비로소 존재에 대한 의문에 빠져 삶과 죽음의 문제, 영혼과 사후세계까지 공부한 것도 예정된 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역시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생사를 모두 아우르는 지혜와 하늘의 기운을 얻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며 생명의 본질에 바로 접근하는 종합적인 의술을 터득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뒤돌아보면 고통스러웠지만 예정된 길을 잘 밟아왔고, 그래서 하늘의 감응이 있어 천기가 그녀를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병을 신통하게 잘 고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하늘이 인간을 통하여 펴는 의술이다. 진정한 의술은 이런 것이다. 우리 민족의술은 이렇게 생기고 형성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잡초처럼 끈질긴 야성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신통하고 생명의 본질에 즉응한 효능 때문에, 수십년의 탄압에도 없어지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글:황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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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天風道人이 가는 길 원문보기 글쓴이: 天風道人
첫댓글 생명의 원리, 천지자연의 조화를 먼저 깨닫는 것이 의술을 하는 사람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런 공부는 지식으로 접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부단한 노력으로 체득하여야 얻을 수 있다. 고통끝에 병을 스스로 고쳐 본 사람이라야 병의 원리와 치료의 원리를 제대로 안다. 절절한 경험만큼 살아있는 의술은 없다. 명의는 하늘이 길러내는 것이다.
의과대학에서 지식으로 배우는 의술이 어떻게 이런 민중의술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지식으로 유창하게 설명하지는 못해도 생명의 본질에 본능적으로 충실한 것이 민중의술이다. 어설픈 의학지식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하여 생명의 의술을 짓밟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