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힘의 국가들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 미국(1994년)
* 여행 팁
국기 :
위치 : 북아메리카 수도 : 워싱턴
시차 : 한국과 -14시간차 언어 : 영어
인구 : 307,212,123명 (2010), 전체순위 3위
면적 : 9,826,675㎢, 전체순위 3위 기후 : 온대성기후,냉대성기후
종교 : 개신교 52%, 로마가톨릭 24%, 모르몬교
종족 : 백인 80%, 흑인 12.8%, 아시아계
정체 : 연방공화제 의회형태 : 양원제
국가원수 ; 대통령 정부수반 : 대통령
화폐단위 : 미국달러(U.S.$)
공식 명칭은 미합중국이며, 약칭은 U.S. 또는 U.S.A.이다. 국민은 유럽계와 중동계의 후손들,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태평양 섬의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 알래스카 원주민으로 구성된다. 국민의 대부분이 영어를 사용하지만, 히스패닉계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대다수인데 개신교·로마가톨릭·동방정교회 및 다양한 그리스도교 종파가 포함된다. 또 유대교·이슬람교·불교·힌두교를 믿는 국민들도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주요 천연자원 생산국 가운데 하나이다. 생산되는 자원들로는 구리, 은, 아연, 금, 석탄, 원유, 천연 가스가 있다. 또한 세계의 주요 식량 수출국이기도 하다. 철강산업, 화학산업, 전기장비, 섬유산업 등의 제조업이 발달했다. 그 외 주요 산업은 관광업, 낙농업, 축산업, 어업, 임업 등이다.
영국인들이 1607년에 버지니아 주의 제임스타운, 1620년에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 1634년에 메릴랜드, 1681년에 펜실베니아에 정착했다. 영국의 귀족들이 캐롤라이나를 식민지화하고 1년 후인 1964년에, 영국은 네덜란드로부터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 지역을 빼앗았다. 1763년 영국은 프랑스를 물리침으로써 13개 식민지에 대한 대영제국의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했다.
1775~83년 독립전쟁, 1776년에 독립선언이 발표되었다. 그 후 스페인-미국 전쟁 승리로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획득, 19세기말까지 무역을 확장시켜 알래스카, 미드웨이섬, 하와이섬, 웨이크 섬, 미국령 사모아, 파나마운하 지역의 해외 영토들을 획득했다.
태평양을 건너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방향을 잡았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에 다가가 보고 싶었다. 일정을 서부와 동부로 나누고, 서부 여행은 단체 여행에 합류하고, 동부 여행은 자유 여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룻밤을 완전히 지새우며 태평양을 건너가서 미국의 서부 관문인 로스앤젤레스공항에 내렸다. 미국의 서부 관문답게 공항의 규모가 컸다. 우리는 곧바로 차를 몰아 전망대를 겸한 과학박물관으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로스앤젤레스의 시내를 조망한 후에 과학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지구과학에 관한 설명들이 많았다. 다음은 영화의 거리 할리우드로 갔다. 영화발전에 기여한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각인된 길을 걸으면서 미국의 영화발전을 생각해보았다.
미국 서부의 최대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는 여러 인종들이 어울려 사는 거대 도시였다. 광활한 도시의 규모, 치솟은 빌딩의 숲, 예술의 지역인 헐리우드의 영화거리, 여러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異)민족 타운, 바닷가의 아름다운 휴양지역 등 곳곳에서 이 도시의 특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음 날에는 미국의 서부를 여행하기 위해서 5일간의 버스 여행팀에 합류했다. 단체여행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 곳을 여행할 수는 있지만, 여행의 중요 목적인 문화와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이 단점이 된다.
그랜드캐년의 신비경 (神秘景)과 후버땜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황량한 대평원을 횡단해서 달릴 때, 눈앞에 전개되는 대부분의 땅들은 무척이나 척박해 보였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는 관개 시설에 의해서 잘 개발된 농장들이 있었고, 농작물도 풍성했다.
황량한 평원지대로 접어들었다. 넓게 펼쳐진 평원은 건조한 기후 때문에 척박해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 많은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어 자원의 보고(寶庫)라고 했다. 평원을 지나다 보면 개간된 포도밭 안에 석유를 뽑아 올리는 간이 채유(採油)시설이 간간이 눈에 뜨였고, 또 어떤 산 중턱에는 규모가 큰 채유 시설이 눈에 뜨였다.
대륙의 평원은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덧 서편 하늘에는 아름다운 석양이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다시 길을 떠났다. 평원을 또 달렸다. 한참 달려서 세계적인 신비경 중의 하나인 거대협곡 그랜드캐년에 도착했다.
그랜드캐년은 기기묘묘한 협곡의 봉우리들이 햇빛에 반사되는 특유한 색깔을 내고 있었다. 말을 타고도 하루 종일 내려가야 아래쪽에 있는 강에 다다를 수 있다는 깊은 계곡에는 어렴풋이 보이는 인디언보호마을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랜드캐년을 뒤로하고 서북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가로질러 가니, 건조한 미국 서부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거대한 후버댐에 이르렀다. 후버댐을 위쪽 언덕에서 바라보니 그 거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메마른 미국 서부지역을 개간한 역할에도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랜드캐년에서 ▲ 라스베가스 시저스패리스호텔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로
후버댐을 지나서 광활한 벌판을 달리니 이번에는 척박한 평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네바다 주의 중심 도시, 세계적인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에 다다랐다.
라스베가스는 낮 동안에는 슬롯머신을 조작하는 모습 외에 특별한 것이 없는 조용하고 평범한 도시였지만, 해가 지고 네온의 불빛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현란한 불빛 아래 가는 곳마다 슬롯머신을 조작하는 소리, 높이 치솟은 호텔들의 네온사인, 낮에는 잠자다가 밤에만 나온 듯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줄을 이은 자동차 행렬이 사막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다른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는 젊음의 거리, 환락의 거리, 인해(人海)의 거리였다. 특히 밤이 되면 도심에 있는 호텔 거리에서 15분 간격으로 분출하고 있는 인공화산은 이글거리는 불기둥을 뿜어내면서 라스베가스의 밤을 더욱 찬란하게 수놓고 있었다.
평원의 언덕을 뒤덮은 풍력 발전기
어디를 가나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 이번에는 네바다의 평원을 서북쪽으로 가로질러 가니 서부개척 당시 활기에 넘쳤던 은광촌(銀鑛村)이 나타났다. 이곳은 폐광이 되어 방치되어 있던 것을 어느 독지가가 옛날의 형태로 복원하여 관광지로 개발해 놓은 곳이었다. 서부 개척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다.
은광촌을 지나 다시 평원을 달리니 넓게 펼쳐지는 농장지대와 관목이 자라고 있는 평원의 언덕들이 교차되었다. 그런데 이 건조한 지역의 언덕에서 거대한 바람개비 모양의 풍력발전기 들이 산을 뒤덮고 있었다. 어떤 곳은 한 지역이 모두 풍력발전기의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냥 흘러가 버릴 바람을 동력자원으로 값지게 활용하면서, 또 관광산업에도 활용하고 있는 자원부국 미국의 또 다른 면을 감명 깊게 볼 수 있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4일째가 되던 날 우리는 네바다 주를 벗어나서 캘리포니아 주로 다시 들어섰다. 캘리포니아 주의 북쪽 지역은 남쪽 지역의 척박한 평원과는 대조적으로 기름진 농토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계속되는 포도농장지대를 지나니 울창한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유명한 요세미티국립공원이었다.
숲 속에 숨은 듯이 흩어져 있는 그림 같은 집들,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는 야생의 사슴 떼들, 하늘로 치솟는 높은 나무숲 등 새로운 풍경들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산길을 계속달리니 나무들이 점점 거대한 수목으로 바뀌더니 드디어 요세미티국립공원이 나타났다. 위를 쳐다보니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나무들이 높이를 경쟁하듯 줄지어 서 있었고, 나무 아래에는 사람 머리 크기의 솔방울들이 뒹굴고 있었다. 또 사방으로는 웅장한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어서 장엄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험준한 계곡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고 있는 거대한 폭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높이가 900m나 된다는 3단 폭포를 바라볼 때에는 신비스러웠고,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 요세미티 솔방울 크기 ▲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평화로운 샌프란시스코
공원을 내려와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푸르게 펼쳐 있는 농원 사이를 한동안 달리니 길게 이어진 2층 다리가 시야에 들어왔고, 넓은 항만이 나타나면서 아늑하게 자리 잡은 항구 도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했다. 아담한 도시에 사계절 포근한 날씨가 많다고 한다. 시가지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매연을 방지하기 위해서 전차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하고 있었으며, 버스도 전기로 운행하고 있었다. 아담한 도시, 규모 있게 설계된 정연한 도시, 도심의 곳곳에는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항을 돌아 볼 때의 석양에 비춰진 금문교의 모습, 바람을 타고 뒤집힐 듯 파도를 가르던 요트들, 배를 뒤쫓아 오면서 먹이를 받아먹는 갈매기들과 어울렸던 일들은 잊을 수 없는 샌프란시스코의 추억이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를 끝으로 미국의 서부 여행을 끝내고, 미국의 동부를 여행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다.
제일을 추구하는 뉴욕
뉴욕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도시였다. 세계의 금융을 좌우하는 월 스트리트의 화려한 거리와 유령의 집처럼 폐허된 집들이 밀집해 있는 할렘가는 뉴욕의 대표적인 양면이었다.
맨해튼섬의 배터리 공원 앞에 있는 선착장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으로 향하는 연락선들이 쉴 사이 없이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에 가보니 여신상의 거대함과 그 위용에 나 자신이 위축되어 옴을 느꼈다. 그곳에서 바라본 뉴욕항의 조화로운 전경은 뉴욕이 세계적인 항구도시임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맨해튼의 중심부에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전망대에서 항구도시 뉴욕의 사방의 전경을 내려다보니, 적절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맨해튼섬, 천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뉴욕항, 나란히 서서 그 위용을 자랑하는 쌍둥이 빌딩(9.11테러 때 사라짐), 멀리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자유의 여신상, 곳곳으로 연결된 아치형의 다리 등 뉴욕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 왔다.
그러나 뉴욕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터미널 매표소 옆에서 잔돈을 바라면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부랑아들, 할렘가를 지날 때에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 자유여신상섬에서 ▲ 프린스턴대학 구내
가든 스테이트 뉴저지
뉴욕과 이웃하고 있는 뉴저지주는 가든 스테이트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조용한 전원풍의 지역이다. 울타리와 대문이 없는 전형적인 서구풍의 주택들이 조용한 주택가를 이루고 있었다. 숲이 우거진 주택가 골목길에는 새벽부터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뉴저지 주는 미국의 명문대학 중의 하나인 프린스턴대학이 있는 곳이다. 대학도시 프린스턴은 조용한 교육도시로서 뉴욕에서 버스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미국에서도 유수한 명문 대학을 방문한다는 기대감 속에 아침 일찍 뉴욕을 출발해서 프린스턴으로 향했다. 프린스턴에 도착하니 아침 시간이어서 조용한 거리에는 발랄한 모습의 학생들만 간간이 오가고 있었다.
대학의 구내로 들어가니 대부분의 건물들은 고색이 창연한 옛날의 건물들이고, 캠퍼스를 뒤덮은 아름드리 나무들은 이 학교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말해 주는 듯 했다. 조용하면서도 운치 있는 교정에는 방학 중이어서 많은 학생들은 볼 수 없었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하며 오가는 학생들과 이 나무 저 나무로 자리를 옮기며 노닐고 있는 새들과 다람쥐들이 교정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교정의 잔디밭에는 학생들이 모여서 조용한 교정의 분위기를 대화의 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도서관과 체육관에는 방학 중이지만 학생들이 나와서 운동과 독서에 여념이 없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하모니
뉴욕에서 펜실바니아주의 평원을 횡단해서 서북쪽으로 7-8시간 정도를 달리니 오대호에 접해 있는 버팔로시 부근의 폭포의 도시 나이아가라에 도달했다. 나이아가라에는 특이하게도 미국 국기와 캐나다 국기가 동시에 게양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이를 보고 미국과 캐나다의 이웃관계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쏴!! 하는 폭포소리가 도시 전체를 사로잡았다. 그 소리는 소음이 아닌 신비스러운 조화의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시내로 접어드는 순간 특별한 세계로 접어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장엄한 자연의 걸작이었다. 호수의 한 쪽 끝의 수면이 갑자기 끊어지면서 내리 쏟는 거대한 물줄기,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 주위를 뒤흔드는 장엄한 물소리 등 모든 것들이 대자연의 신비스러움 그대로였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야경은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오색찬란한 조명불빛을 받으며 쏟아지는 장엄한 폭포의 모습과 밤공기를 뒤흔드는 우람한 폭포소리는 복잡한 속세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다음날에는 아침 일찍이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호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고스트 아일랜드라는 조그마한 섬으로 산책을 나갔다. 바로 이 섬의 끝 부분 양쪽이 절벽을 이루어서 거대한 폭포를 형성하고 있었다. 폭포에 가까이 다다르니 바로 눈앞에서 아름다운 광경이 전개되었다. 폭포의 부서지는 물줄기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가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아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무지개는 물보라 속에서 아름다운 반원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순간 아름답고 찬란하다는 말 외에는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낮에는 폭포의 아래쪽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에서 호수 유람선을 타고 폭포 아래를 돌아보았다. 비옷을 껴입기는 했지만 흩날리는 물방울 때문에 얼굴은 흠뻑 젖어 버렸고, 카메라 렌즈에는 물이 튀어서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유람선에서 내려 폭포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물신발로 바꿔 신고, 비옷을 껴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동굴로 내려갔다. 폭포 속으로 들어가서 세차게 떨어지는 물을 맞으니 정말신비경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싱그럽게 맑은 공기, 조화된 폭포의 소리, 황홀한 폭포의 야경, 아담하게 꾸며 놓은 평화스러운 도시 분위기 등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 나이아가라 폭포 ▲ 백악관
하얀 색이 조화된 도시 워싱턴
뉴욕에서 기차를 타고 펜실바니아주를 지나 수도 워싱턴에 도착하니, 맨 먼저 육중한 석조 건물로 된 워싱턴 역이 방문객을 맞이해 주었다. 역시 대국의 수도 관문답게 규모가 크고 다양하게 꾸며져 있었다.
역광장에는 방문객들의 관광 편의를 위해서 관광코스를 순환하는 셔틀버스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셔틀버스는 관광의 주요 지점인 관청의 거리, 백악관, 대성당, 대사관거리, 케네디센터, 링컨기념관, 워싱턴기념탑, 스미스 소니언박물관, 국회의사당 등을 지나 다시 역 광장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 국회의사당 ▲ 링컨기념관
워싱턴 시내는 적절한 크기의 건물들로 여유 있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특히 건물의 색상이 대부분 하얗기 때문에 도시의 안정적 분위기를 한층 더 돋우어 주었다. 도시의 구성은 기능에 따라 나누어져 있어서, 능률적인 도시기능 수행이 짐작되었다. 특히 외국의 대사관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사관 거리는 세계를 한 곳에다 모아 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링컨기념관과 워싱턴기념탑 사이에는 호수가 길게 펼쳐져 있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 보는 사람들의 기분을 시원스럽게 해주고 있었다. 또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항공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을 둘러보니 박물관의 규모와 소장품의 내용이 세계적임을 실감할 수 있었고, 또 항공박물관에서는 비행기의 원리와 항공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미국의 거대한 힘, 그 원천은 광활한 국토, 풍요한 자원 그리고 청교도정신을 기반으로 한 국민성임을 알 수 있었다.
사회주의 종주국 러시아(1996년)
* 여행 팁
국기 :
위치 : 동부유럽 시차 : -5시간차
수도 : 모스크바 언어 : 러시아어
인구 : 140,041,247명 (2010), 9위 전체 순위
면적 : 17,098,242㎢, 1위 전체 순위 기후 : 대륙성기후
종교 : 러시아정교 15%, 이슬람교 10%, 그리스도교
종족 : 러시아인 80%, 타타르인 4%, 우크라이나인
정체 : 연방공화제 의회형태 : 다당제&양원제
국가원수 : 대통령 정부수반 : 총리
화폐단위 : 루블(ruble/Rub)
러시아는 소련을 구성했던 공화국의 하나로 현재 독립국가연합(CIS)을 주도하는 연방공화국이다.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국가가 되었다. 소련의 체제하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으로 불렸던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로 면적이 미국이나 중국의 2배이다. 인구는 중국·인도·미국·브라질·인도네시아의 뒤를 이어 세계 6위이며, 국민의 대부분이 러시아인이지만 소수민족 집단도 약 70개에 달한다. 인구의 대부분이 러시아의 서부 지역 유럽의 거대한 삼각지대에 집중되어 있지만 지난 3세기에 걸쳐서, 특히 20세기 동안 인구가 동쪽의 아시아권(시베리아)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다. 북쪽은 북극해, 동쪽은 태평양에 접해 있으며, 서쪽은 노르웨이·핀란드·폴란드를 비롯해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벨라루스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은 중국·몽골·북한을 비롯해 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 등과 경계를 이룬다.
모스크바로
사회주의의 종주국 러시아, 아직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친숙하지 못한 그곳으로 여름의 무더위를 뒤로하고 발길을 옮겼다. 옛날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지역을 방문하기 때문에 약간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그곳에 가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는 지 시작부터 진행이 순조롭지 못했다. 오전 11시 출발 예정이던 모스크바행 비행기가 오후 4시 반으로 연기된 것이었다. 좀 언짢은 생각은 들었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지루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에 부푼 마음이어서 출발시간은 이내 다가왔다. 러시아 항공인 에어로푸로트에 몸을 맞기고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러시아 여행의 일정을 조용히 점검했다. 비행기가 고도를 안정시킨 후 좌석벨트를 풀고 러시아어 회화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옆 좌석에 앉아있는 스라브계 인상의 젊은 여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영어로 '러시아어를 배우세요?'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서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불가리아에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취업했다가 돌아간다고 하면서 자기가 러시아말을 가르쳐준다면서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창공의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나누던 대화의 시간은 생소한 사이를 훈훈하게 만들었고, 둘이서 같이 연습한 러시아어의 기본 회화는 러시아를 여행하는 동안에 러시아에 산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원어민의 발음을 닮도록 해주었다. '이거 노굿(no good)이야' 하면서 애교 섞인 표정으로 발음을 교정해주던 그녀의 음성이 지금도 귓전을 맴돌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샀다면서 휴대용 라디오의 이어폰(ear phone)의 한쪽을 자랑스럽게 나의 귀에다 꽂아주었다.
8시간의 만남, 그녀는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불가리아로 갔다. 아쉬운 작별이었다. 기회가 되면 또 한국에 오겠다면서 떠났다.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무용교실을 차리고 싶다고 했는데........
모스크바의 야경
서울을 떠날 때는 비행기가 무려 5시간를 지연 출발해서 마음이 개운치 못했는데, 모스크바에 도착해보니 생각지 못한 행운을 잡게 되었다. 현지 시간으로 10시가 지나야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모스크바의 저녁시간에 비행기가 도착했기 때문에, 시내로 들어가면서 모스크바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아름다운 모습, 돔(dom)형식의 러시아식 건축물, 길 양쪽 가로등 기둥에 특이하게 장식된 조명 간판들 등, 특징 있는 모습들이 아름다운 네온의 불빛을 발하면서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해 주었다.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야경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모스크바, 처음에는 긴장되었지만 아름다운 야경에 접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국 러시아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지면서 내일의 시내 탐방이 기다려졌다. 야경에 빠져들면서 시내를 둘러본 후 숙소에 도착하니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해가진지 얼마 되지 않은 초저녁에 해당되는 시간이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창밖에 펼쳐져있는 시가지의 밤늦은 야경을 비디오에 담은 후 내일의 강행군 일정을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무표정 속의 평화스러움
새벽 4시를 넘어서면서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충분치 못한 수면이었지만 조용히 눈을 뜨고 TV채널을 맞추었다. 낯선 곳에 왔으니 이곳의 말에 접해보려고 TV를 켰지만 답답하기만 했다. 러시아 말이라고는 겨우 몇 마디 '즈드라-스뜨뿌이쩨?(안녕하세요?)', '다 스비다니어(안영히 가세요)', '스빠시-버 볼쇼-에(대단히 감사합니다)' 등등인데, TV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러시아에 왔으니 이곳 말을 들어봐야지.......'
창밖을 내려다보니 희미하게 밝아오는 거리에는 차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울긋불긋 원색을 칠한 전차가 인상적이었다. 이곳의 대중교통 수단은 궤도로 달리는 전차, 전기로 가는 버스, 가솔린으로 가는 버스 그리고 택시 등이었다.
이곳은 출근 시간이 빨랐다. 6시 쯤 출근이 시작되었다.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에는 벌써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어떤 곳에서는 젊은이들이 새벽인데도 알콜에 취한 모습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러시아 사회상의 일면을 보는 순간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구석구석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무언가 소곤거리면서 웃고 있어서 나도 그들을 보고 웃어주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분위기에서 서방세계와의 차이점이 느껴졌다. 그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고, 시선은 정면만을 바라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 옆으로 다가가서 '헬로'하고 인사를 했더니 놀란 듯이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그냥 가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어색한 듯이 말을 받아주면서 지나갔다.
거리풍경의 또 하나의 특징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큼직한 보자기에 물건을 담아서 다니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전통적인 관습이라고 했다. 옛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길거리를 가다가 값이 싼 물건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가지고 집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어 외출 시에는 쇼핑백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에서는 악의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정형화된 표정만 엿볼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에는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띠였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할머니의 사랑스런 손길을 보면서 틀 속에서의 평화로움을 느꼈다.
▲ 공원의 여유로움 ▲ 크레므린성
크레므린성
크레므린이란 말은 원래 성벽을 뜻하는 러시아 말이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크레므린성은 러시아라는 대국의 정치의 중심지이고 문화의 현장이었다. 모스크바 강변의 높은 지대를 둘러싸고 있는 크레므린성은 세 차례에 걸친 확장 공사에 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크레므린성에는 20개의 망루가 세워져 있고, 성벽의 높이는 5-19m, 폭은 3.5-5m이며 가장 높은 탑은 트로이츠카야탑으로 높이가 80m나 된다.
우리는 흔히 외부와 접촉이 철저히 차단되었을 때에 사용하는 말로 크레므린이란 말을 써왔기 때문에, 크레므린성을 방문할 때에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데 막상 크레므린성에 들어서니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은 말끔히 사라졌다. 관광객들의 입구로 사용하는 트로이츠카탑 아래의 문을 통해서 붐비는 인파와 어울리면서 당 대회가 열리는 대규모의 대회의장과 옛날의 병기 창고를 지나 크레므린궁 안쪽으로 들어갔다. 러시아의 건축양식의 특징을 살린 지붕에 뾰쪽한 돔(dom)을 올려놓은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궁 내부의 한곳에는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가 전시되어 있고, 그 옆에는 또 세계에서 가장 큰 종(鐘)이 자리 잡고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러시아의 고전적 양식을 갖춘 여러 개의 사원 건물들이 황금 빛 돔 지붕을 뽐내면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궁의 내부는 인도 표시를 해 놓고 안내요원들이 곳곳에서 질서유지를 하고 있었다. 말쑥한 유니폼을 입은 경비원들은 친절하게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구소련 시절에는 살벌했던 사회주의 맹주국가의 행정부의 최고 심장부인 이곳이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에게 개방되고 있는 오늘의 러시아 현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붉은 광장과 바실리카 사원
크레므린궁을 나와서 주변에 있는 공산주의 혁명기념횃불탑, 동물상의 분수정원 등을 돌아보고 매스컴에서만 들어보던 그 유명한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공산주의 혁명가 레린의 시신이 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는 곳이어서 입구에서부터 통제가 조금 심했다. 카메라는 모두 보관시켰다.
안으로 들어가니 붉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옛날에는 관공서 건물이었던 것이 지금은 백화점으로 바뀐 굼백화점과 레린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묘지건물이 있었다. 시신이 안치된 건물 앞에는 제정 러시아 지도자들의 묘비가 줄지어 서 있었다. 붉은 광장은 공산주의 혁명의 진원지였고 오늘날에도 중요 행사가 자주 열리고 있는 대회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건물 지하층에 안치되어 있는 레린의 시신은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시신을 보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최근에는 자주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공산주의 혁명 완성자로서의 사후에도 추종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도록 생존 상태로 보존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관광코스가 되어 재정상태가 어려운 러시아의 외화벌이 수단이되고 있다.
▲ 바시리카사원 ▲ 볼쇼이 공연장
붉은 광장 한쪽 끝에는 오후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러시아 전통 건축양식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바시리카사원이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자태를 뽐내면서 자리 잡고 있었다. 돔(dom)으로 된 지붕 위에 뾰쪽탑이 솟아 있고, 건물의 표면은 아름다운 색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레닌 언덕과 모스크바대학
모스크바 시내를 벗어나서 레닌언덕으로 갔다. 이곳은 신혼부부들의 사진촬영 장소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여기 저기 신혼부부들과 친구들, 가족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언덕의 안쪽에는 모스크바대학이 위용을 뽐내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이 건물은 사방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그 위용을 볼 수가 있었다.
레린언덕에서는 러시아 문화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언덕의 광장 옆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러시아 토산품 가게들, 특히 러시아의 전통 인형인 마트리오시카는 생김새에서부터 이색적이었고 5개나 10개의 똑같은 생김새의 인형이 한 몸통 안에서 있었다. 이 인형은 풍요와 다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우아한 신혼예복 차림의 신혼부부들, 사랑이 가득한 표정의 사진촬영 포즈, 친구들의 즉석 연출의 축하 전통춤, 복고풍의 마차가 손님들을 싣고 언덕 주변을 맴도는 풍경, 광장 한쪽에 마련된 가설무대에서는 익살스러운 차림새의 연주자와 노래하며 춤추는 사람들... 이곳은 러시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들려야할 곳이라 생각되었다.
▲ 레린언덕의 신혼 부부 ▲ 모스크바대학
변해가는 사회체제에 따라 자유주의 물결이 언덕을 온통 뒤덮고 있었고, 안쪽에 육중하게 자태를 안정시키고 있는 모스크바대학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그 깊이를 더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의 진정한 러시아의 모습인가 생각하면서 모스크바 시내의 전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예술의 공간 지하철역
러시아의 지하철은 다목적 공간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50m를 내려가니 색다른 세계가 전개되었다. 천정과 벽을 예술작품으로 단장한 내부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전시에는 방공호 역할을 한다고 했다. 지하철 객차는 산뜻하지는 않지만 고색이 느껴지면서 친밀감이 갔다. 역의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고전적인 무늬들은 마치 이곳이 박물관으로 착각할 정도로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무뚝뚝한 표정에 무딜 것만 같은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훌륭한 예술성을 느껴보았다.
지하철에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말이 잘 통하지가 않아서 안타까웠는데, 마침 한쪽에 학생들이 있어서 영어로 말을 걸어보았다. 학생들은 어른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명랑하고 붙임성이 있었고 잘하지는 못하지만 영어에도 무척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 사회의 변화의 일면을 실감하면서 그들과 헤어졌다.
사상과 체제 변화의 과도기를 맞은 이 나라가 지금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차분한 사회 분위기, 발랄한 젊은이들의 생활, 돋보이는 예술적 감각 등은 이 나라의 밝은 앞날을 예고해 주고 있었다.
대 문호 톨스토이 생가
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도 러시아를 생각하면 대문호 톨스토이를 떠올린다. 도심을 벗어나서 얼마동안을 가니 톨스토이의 생가에 도착했다. 한적한 거리였는데 제법 큼직한 건물이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색창연한 건물은 지난날의 정취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 여러 명의 부인들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여러 명의 자녀들이 뛰어놀던 넓은 뒤뜰이 톨스토이의 생활 일면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 공원에서 ▲ 톨스토이 생가 앞에서
생가의 내부는 톨스토이가 생활하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서 역사적인 유물로 전시해두고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던 거실, 고급스런 식기들이 진열되어 있는 식당, 체취가 느껴지는 서재,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는 아이들의 방 등등 ...
사람의 발길이 스치지 않아서 한적하고 스산한 뒤뜰에는 잡초들이 정원의 손질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다투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뒤뜰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니 뜰 저편의 숲속에서 아이들이 뛰어 나올 것만 같았다. 잡초가 무성한 뒤뜰을 보니 왠지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 티 없이 맑은 표정 ▲ 모스크바 전쟁기념관 앞에서
생가를 나와서 차를 타는데 길옆 언덕에 걸터 앉아있던 학생이 가방을 걸머진 채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너무나 순수한 모습이어서 차에서 내려 같이 사진도 찍었다.
동토(凍土)의 나라에 이념의 얼음이 풀리면서 사회 분위기도 부드러워져가고 있었다. 길옆의 스낵 코너 앞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젊은 남녀들, 한적한 공원에서 다정하게 거니는 젊은 남녀들, 관광지의 벤치에서 수줍게 포즈를 취해주던 예쁜 여학생들, 자기 나라를 찾아준 고마움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주던 티 없이 맑은 표정의 학생들 .... 대국 러시아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아름다운 도시 상트 뻬쩨르부르그(St. Petersburg)
울창한 삼림 위로 북쪽을 향해 약 1시간 정도 가니 북구의 나폴리 상트 뻬제르부르그에 도착했다. 모스크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선 유럽풍의 분위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는 듯 했고, 여름철이라 백야 현상으로 밤 12시가 되어야 어두운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18-19세기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고풍을 간직한 채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뾰뜨르대제가 로마노프 왕조를 이 지역으로 옮기면서 러시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또한 러시아의 역사를 바꾼 혁명의 발상지였다.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 상트뻬쩨르부르그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안은 채 북구의 베니스답게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뻬쩨르궁전과 발틱해
뻬쩨르궁전을 러시아어로는 페트로드보레츠라고 하는데, 이 궁전은 뻬쩨르대제가 이곳에다 여름궁전을 지었을 때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714년에 뻬쩨르대제에 의해 많은 건축가들과 조각가들이 동원되어 여름궁전을 지었는데, 발틱해에 접해 있는 테라스 모양의 지형을 이용해서 궁전을 짓고 공원을 조성하고 많은 분수와 조각상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궁전과 공원에서 발틱해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해안에 이르기까지 공원을 조성하여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는 140개의 크고 작은 분수가 갖가지 형상으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여름궁전 분수 ▲ 여름궁전 분수의 조각상
황금빛을 가미해서 외관을 단장한 건물들은 그렇게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고전적인 기풍을 풍기면서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건물들은 언덕 위에 위치해있어서 언덕 아래의 경관과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또 비스듬한 언덕에는 조각들과 물 흐름으로 위아래를 연결시켜주고 있었다. 특히 주 궁전 앞의 분수대 연못은 갖가지의 조각상과 이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뿜어대는 수십 개의 분수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언덕 아래에서 쳐다본 금빛으로 빛나는 수많은 조각들, 하늘을 향해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들 그리고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대궁전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분수대 연못과 길게 바다로 연결되어 있는 수로 양변에 가로수와 더불어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걸을 때에는 발틱해에서 불어오는 바다바람이 가슴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산책로 옆 나무 밑에서 앞을 못 보는 예쁜 소녀가 따뜻한 사랑의 도움을 구하면서 켜던 맑은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아코디온 멜로디가 지금도 귓전을 스치는 것 같다.
막강한 권한 상징 이사크 성당
거대한 금빛의 둥근 지붕을 장대한 원통형 대리석 기둥들이 받히고 있는 웅장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이사크 성당이다. 건물의 길이가 111.2m, 폭이 97.6m, 높이가 101.5m로 30층 빌딩과 같은 높이이며 수용 인원은 1만 4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제정 러시아시대의 강대한 권한과 막강한 교회의 힘을 느껴보았다.
이 성당을 건축하는 데는 1818년부터 40년이 걸렸고, 특히 이 지역이 습한 지대이기 때문에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성당의 밑바닥에 1만 1천개의 말뚝을 세우고 그 위에다 화강암과 석회암을 깔았다고 한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43m의 높이에 있는 큐폴라(둥근 지붕)둘레에 있는 24개의 무거운 기둥들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큐폴라에는 100kg이상의 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내부 장식은 22명의 예술가에 의해 꾸며졌는데 성서의 내용과 성인을 묘사한 150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 중에는 모자이크 그림도 많이 있었다. 또 이곳에는 성당을 장식하는 300점 이상의 부조(浮彫)와 동상들이 있었고, 특히 남쪽 입구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지붕의 돔(dom)둘레에 만들어져 있는 전망대에서는 아름다운 물의 도시 상트뻬쩨르부르그의 전경을 조망해 볼 수 있었다.
가슴에 안겨오는 네바강
상트뻬쩨르브르그를 물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은 이 네바강이 도시를 감싸며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바다처럼 넓은 강의 수면 위를 유람선들이 깃발을 나부끼며 한가롭게 나르는 물새들과 어울리며 떠가고, 강변의 곳곳에는 낙싯대를 드리우고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다가올 매서운 겨울철을 대비하기 위해서 핑크빛 살결의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일광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강변의 경치에 매료되어 눈을 떼지 못하는 관광객들 ... 그러나 겨울이 되면 네바강의 모습은 다른 세계를 연출한다고 한다. 출렁이는 파도는 간데 없고 강 전체가 은빛 발하는 얼음의 천지가 되어 물의 도시를 또 다른 세계로 바꾸어 놓는다고 한다.
네바강변에 서서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철의 장막으로 가려져 있다고 생각했던 나라가 상상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처음 찾은 이곳이 너무나도 정겹게 가슴에 안겨왔다.
네바강은 상트 뻬쩨르브르그의 중심부를 흐르면서 도시를 꾸며주고 있었다. 강 한쪽 편에는 넓고 화려한 네프스키대로가 구(舊)해군성을 기점으로 시원스럽게 뻗어 있다. 구 해군성은 강 한쪽에 방사선 모양으로 뻗은 거리의 기점으로 시내 어디에서나 금빛 첨탑을 볼 수 있다.
따스한 여름 햇살아래 잔잔한 파도 일으키며
지난날의 영화(榮華) 안고 유유히 흐르는 네바강,
낙싯대 드리우고 한가로이 환담하는 사람들
어느 누가 이곳을 철의 장막 속이라 하겠는가?
▲ 에르미타쥬 박믈관 ▲ 도심의 일광욕
도심 속의 일광욕
시내를 달리다 보면 잔디밭 공터에는 어김없이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망중한으로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건강 증진의 일환으로 필수적인 생활의 일부라고 했다.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지나려면 반드시 필요한 만큼 일광욕을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우리의 눈에는 대단히 무례한 일로 느껴지던 도심의 벌거벗은 일광욕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핑크빛 투명한 살결을 내놓고 멋진 포즈로 누어있는 북구(北歐)의 미녀에게 동양의 이방인이 무례하게 카메라를 댔을 때 이들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면서 더욱 멋진 포즈를 취해주어서 오히려 사진을 찍는 것이 멋쩍기 까지 했다. 문화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안내인의 이야기로는 이곳의 유치원에서는 남녀 구별 없이 전 나체로 일광욕 시간을 갖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일광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밝은 표정의 젊은이들
선입견 때문에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의 젊은이들의 표정이 밝게 다가왔다. 지하철 속에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해보려고 애쓰던 학생들을 보면서 이제는 러시아를 더 이상 동토의 폐쇄사회라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산책 나온 젊은 어머니들, 아이들의 재롱이 귀여워서 아이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주었을 때 고마움을 표하려고 애쓰던 그들이 생각난다. 모스크바의 어느 공원에서 만난 두 젊은이들, 한사람은 중등학교 교사였고 한사람은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들에게서도 러시아의 젊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진지하게 러시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새롭게 다가오는 러시아의 내일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 티 없이 맑은 표정의 젊은이들,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켜고 있는 사회 분위기, 현실의 어려움에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모습 등이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엄청난 큰 힘의 원천임이 느껴졌다.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인공위성 발사 기념탑은 우주를 향한 이 나라의 기상을 보여주었고, 엑스포가 열렸던 장소의 정문위에 장식된 곡식 묶음을 들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은 이 나라의 농업에 대한 염원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차분함과 저력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 나라의 면모를 살펴보는 동안 대국의 기운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여유가 있어 보이고, 자연의 풍요함은 대지를 살찌우는 무한한 힘의 보고로 느껴져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