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면도기로 머리를 싹 밀었다
오늘 아침, 도를 닦는 스님처럼 한 시간 여 공을 들여 일회용 면도기로 머리를 빡빡 밀었다. 다시 말해 백호를 쳤다는 것이다.
중앙동 백산기념관에서 용두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는 경로이발관이 있어 경로 요금으로 컷트가 4,000원이고, 염색은 3,000원이다. 인근의 남성전용 이발관과 비교하면 엄청 싼 가격인 것이다. 한국인 법인설립하고 중앙동 3가에 사무실을 차린 뒤부터 2년여 그 이발관을 줄곧 이용하여 컷트와 염색을 동시에 하면서 7,000원씩 지불해왔다. 머리가 허연 영감탱이들만 드나드는 그 이발관에서 내가 아직 경로로 우대 받을 나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이발관 사장은 내게 봉사를 해주고는 자진하여 7,000원씩만 받았다.
벌써 몇 달동안 머리를 깎지 못했다. 한달 전쯤 그 경로이발관을 찾았는데, 이발관이 입주해있던 건물이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어 어수선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같은 건물 2층으로 장소를 옮긴 이발관은 평일인데도 문이 잠겨있어 되돌아 온 적이 있다. 그 뒤론 머리를 깎을 돈도 여의치 않아 하얀 새치가 성성한 제멋대로 뻗친 머리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
날씨가 무더워진 데다 깎지 않은 머리가 몹씨 거슬려 '비엔씨에서 월급 타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발부터 하리라' 마음 먹었던 것인데, 오늘 아침 면도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가 '이참에 중놈들처럼 머리를 싹 밀어야 쓰것다'란 생각이 번득 들었던 것이다.
요즘 일회용 면도기가 말이 일회용이지, 조금 비싼 걸 사면 내 경우엔 몇 달도 불편없이 사용해왔다. 처음엔 머리칼이 잘 베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씩 머리를 밀면서 요령이 생겼다. 머리칼이 한꺼번에 밀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아마 베어진 머리칼을 일일이 셀 수만 있다면 100올에서 200올 남짓이리라. 그렇게 조금씩 쓱쓱 밀다보니 둥그런 머리 형상이 드러나면서 수북한 머리칼로 세면대며 욕실 바닥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드디어 머리칼이 모두 베어져나가고 허연 머리통이 드러났다. 깜빵에서 두 번인가 이발을 하고 세번째 이발할 때는 '아주 시원하게스리 백호로 쳐달라' 했더니 '백호 깎는 기계가 없다'하여 2부로 깎을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다. 그러니 중고등학교 시절 말고는 오늘 백호란 것을 처음 쳐본 셈인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