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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1982년의 추억 그리고 2010년 - 니콜 그리고 레나 -
내가 독일 가요를 처음 들어 본 것은 아마도 1982년 즘 되는 것 같다. 독문과에 적을 두고는 있었지만 전공 의식이 그리 강하지 못하던 때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처음 들어 본 독일 가요란 다름 아닌 <약간의 평화 Ein bisschen Freiden>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던 노래다. 전영이 <작은 평화>로 번역하여 불렀는데, 역시 적지 않은 인기를 얻은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아침에 전 세계의 전파를 타게 된 이 노래의 주인공은 방연 17세의 여고생이었다. 니콜(Nicole)이라는 이 여학생이 하루아침에 독일의 영웅이 된 것은 유럽 최고의 노래대회인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부른 <약간의 평화>는 당시 동서로 나뉘어 통일은커녕 냉전의 절정으로 치닫던 독일에는 평화에 대한 갈망의 상징 그 자체였다. 1982년 초여름 영국 해러게이트(Harrogate)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 결승전 무대에서 니콜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검은 색 롱 치마를 입고 등장했다.
Wie eine Blume am Winterbeginn, so wie ein Feuer im eisigen Wind, wie eine Puppe, die keiner mehr mag, fühl ich mich an manchem Tag.
니콜이 기타를 치며 저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부를 때, 전 독일은 TV와 라디오 앞에서 숨을 죽였다. 지금 동영상으로 보면 좀 시골스럽긴 하지만 들국화처럼 청신한 게 당시에는 남자들의 고전적인 여인상이었다. 노래 내용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코드가 80년대를 추억하게 한다.
1982년 당시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독일에서 즐겨 쓰는 말은 아님)으로 세계에서 부러울 게 없는 초강국이 되었지만 나치 원죄로 인해 국제사회에 여전히 고개 숙인 나라로 지내야만 했다. 조국에 대한 모든 자부심과 긍지를 꾹꾹 누르고 지내고 있는데 밖에서 대박이 터진 것이다. 독일로서는 가뭄에 소나기가 쏟아진 것이다.
니콜의 기적은 1956년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가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실로 26년 만에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것이다. 전통적으로 클래식이나 가곡에서야 남부러울 게 없는 독일이었지만 그건 어차피 옛날부터 그랬던 것이고 대중음악계에서는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82년 이후 니콜은 오랫동안 독일 대중음악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 후 제 2의 니콜이 탄생하는 데는 무려 28년이 걸렸고 그것이 올 5월 말에 일어난 것이다.
und Lena Meyer-Landrut
http://www.youtube.com/watch?v=8QSgNM9yNjo
그러니까 2010년 5월 30일 18세의 여고생 레나(Lena)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55회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의 그랑프리를 거머쥐고 독일로 돌아왔을 때, 독일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정신병원을 탈출한 (aus dem Häuschen)' 사람들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공항에는 수 만 명의 환영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상 메르켈이 즉각 축전을 보냈고 모든 신문과 TV가 레나 사건을 연일 최고의 뉴스로 띠웠다. 레나가 다니는 학교에는 교장선생은 물론 레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선생이나 학생들은 밀려드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으로 수업을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일부 정치가들은 독일 최고의 국가훈장인 연방공로십자훈장(Bundesverdienstkreuz)을 수여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 훈장은 가령, 축구로 독일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축구황제 베켄바우어 정도가 받은 것이다.
통독 이후 독일인들이 범국민적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렇게 열광한 것은 2006년 월드컵 때 외에는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독일로 하여 평범한 여고생 한 명에게 이토록 열광하게 하는가? 사실 전문가들이 말하듯이 레나의 노래나 춤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내가 봐도 촌스러움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도 38개 나라에서 온 심사 위원들이 레나에게 기꺼이 압도적인 점수를 선사했다.
실제로 TV를 보면 2위나 3위 한 사람들의 경우 노래는 물론, 의상, 무대 매너, 댄스팀 등에 있어서 그 화려함과 세련됨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여기에 비하면 레나는 거의 시골 처녀에 다름 아니고 혈혈단신으로 등장했다. 백만 대군 앞에 선 단기필마의 전사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서 비평가들은 마치 19세기로 돌아간듯, 자연스러움을 말하고 순수를 말한다. 그런데 이게 여느 자연스러움이나 순수와 구별되어야 하기에 심지어 레나주의 (Lenaism)라는 말까지 만들어 냈다. 이것은 고전주의의 쉴러 식 어법으로 말하면 청순소박(Naivitaet)의 미학이라 하겠다.
세련과 도발과 에로스가 풍미하는 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시대의 순수와 자연스러움이 어필한다는 건 놀라운 아이러니다. 달리 보면 독일의 촌스러움과 투박함이 오히려 신뢰를 얻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 그리스나 헝가리 같은 나라들의 경제 위기로 유럽에서 독일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어떤 이들은 만일 유로권이 대책 없이 무너진다면 살아남을 나라는 독일이 유일할 것이라고 한다. 많은 유럽 나라들이 독일을 쳐다보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면 독일 사람들은 허파에 바람 든 것처럼 들떠있다. 많은 사람들은 레나의 영광을 남아공의 월드컵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 모토는 이렇다. "레나를 업고 월드컵으로 Mit Lena zur WM 2010". 아마도 올 여름은 레나와 월드컵이란 두 개의 코드가 게르만 땅을 휘몰아 칠 것이다. 저쪽에서는 이것을 2010년의 여름동화(Sommermaerchen)라고 부른다. 대체로 하이네의 <독일. 겨울동화 Deutschland. Wintermaerchen>에 기대고 있는 수사법이다.
이렇게 독일인들이 자국의 국기를 휘날리며 국제 사회를 향해 대놓고 독일을 떠들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나치의 원죄의식이 공식적으로 떠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시에 오랫동안 안고 온 육중하고 난해한 형이상학적 감성에서 역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대는 바뀌었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28년 전에 니콜이 독일어로 평화를 노래했다면 레나는 영어로 '인공위성(Satellite)'을 노래했다. 물론 이것은 은유어지만 글로벌 시대에 잘 맞는 은유다.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처럼 늘 당신 주변에 있겠습니다 Like a satellite I’m in an orbit all the way around you
21세기 우주시대에 이보다 더 적절한 사랑의 은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여전히 문제는 사랑이다. 사랑이 뭐길래.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감히 인공위성처럼 주변을 떠나지 않고 언제까지고 맴돌겠다는 자,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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