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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잰은 독일불자님들 아프리카여성수행자 태국비구니 민뚜에존자님 향한 베트남 불자님들 신심 최고 수승하다..
불교를 배우는 것은 누군가에게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평안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민뚜에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오공연담스님, 원문의 문맥과 종교적 표현을 최대한 살려 자연스러운 한글 전체 번역으로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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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원으로 돌아오는 날을 기념합니다.
부처님께서 녹야원으로 가셔서 중생을 교화하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사성제의 법문으로 교진여를 비롯한 다섯 형제를 감복시키셨으며, 그들은 마침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습니다.
이는 여래의 정법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전승되고, 세상에 널리 전해지는 흐름입니다.
베트남에서 오신 민뚜에 스님은 깨어 있음이며, 길을 비추는 지혜의 빛이며, 깨달음입니다.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지니고 과감하게 한계를 뛰어넘으며, 비범한 자질을 가진 분입니다. 내려놓음에서 비롯된 위엄과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위대한 용맹과 큰 힘을 지녔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흐름이며, 인식의 빛이고, 자신을 아는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품입니다.
스님께서는 가장 눈부시게 빛나기 위해 오신 것만이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지혜롭고 밝게 살아가기 위해 오셨습니다.
민뚜에 스님으로부터 자비와 지혜의 에너지를 이어받는다는 것은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모두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 심어 주신 하나의 씨앗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내면에서 꽃이 피어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갑시다.
“불교를 배우는 것은 누군가에게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평안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민뚜에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불자라면 아마 누군가는 부처님의 말씀인
“나는 이미 부처가 되었고, 중생은 장차 부처가 될 것이다.”
라는 말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으로 오셔서 스스로 도를 찾고, 스스로 수행하시며, 중생이 무명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기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남겨 주신 경전과 가르침은 차가운 인간 세상을 따뜻하게 밝혀 주는 하나의 불꽃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연 있는 사람들입니다.
민뚜에 스님에게서 자비와 지혜의 힘을 받아들이되, 스님께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작은 불씨 하나를 스스로 밝히고, 그것을 소중히 지켜 자신의 등불로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혀야 합니다.
스님과 함께 앞으로 이어질 긴 여정 속에서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어떻게 지켜 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며, 각 가정의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먼지와 바람이 부는 길을 걸어가면서, 사람이 정법을 자신의 길을 밝혀 주는 횃불로 삼을 줄 모르고, 스스로 자신을 의지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닦지 않는다면 지혜를 키울 수도 없고, 인생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도 없으며, 미혹의 강을 건너 깨달음의 저편에 도달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길은 걸어가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직접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고, 직접 수행해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수행해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신성한 존재도 한 사람이 스스로 지어 놓은 선업과 악업을 대신 지워 줄 수는 없습니다.
경전 역시 단순히 ‘글자가 적힌 종이’가 아닙니다. 매일 경전을 읽고 외우고 염송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많은 경전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계율을 지키려고 노력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씻어 내고, 자비로운 마음을 기르고,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미 자기 마음속에 안전하고 굳건한 피난처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지혜의 불꽃을 스스로 지키며, 그 불꽃이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삼천 대장경을 모두 외울 정도로 경전을 많이 읽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불교의 가르침을 이야기하면서도, 경전의 말씀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세상 사람들과 우열을 다투는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은 마치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는 ‘눈먼 사람’과 같습니다.
정법 속에서 진정으로 살아본 날이 하루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한 번의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 한 번의 계산적인 마음, 한순간의 옹졸함은 차가운 바람과 같습니다.
어느 순간 불어닥쳐 마음속 지혜의 불꽃을 단숨에 꺼버릴 수 있습니다.
같은 불꽃이고, 같은 경전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올 줄 알고, 자신의 작은 불씨를 조심스럽게 감싸 보호합니다.
그리하여 어둠을 빛으로 바꾸고, 인간 삶의 춥고 어두운 곳에 따뜻함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여전히 세속의 먼지와 번잡함을 향해 걸어갑니다.
시끄러운 군중 속에 섞여 스스로 또 하나의 시끄러운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불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꽃에서 나오는 따뜻함만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자신의 횃불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이 차갑고 어두운 인간 세상의 날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비추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연꽃 대좌 위에 고요히 앉아 세속의 흥망성쇠를 말없이 바라보십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백성들이 고통 속에서 헤매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늘의 도에는 사사로운 친함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
라는 말처럼, 하늘의 도는 사사로운 정에 따라 어느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직 선을 행하는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
인연이 있는 사람이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연이 없는 사람은 수천 마디의 경전을 읽더라도 여전히 길을 잃은 듯하고,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근원은 마음이 평안하고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평화로운 귀의처가 되는 곳입니다.
나무 두타 선유보 공덕 민뚜에 보살 마하살 🙏🙏🙏
이 글에서 특히 반복되는 핵심은 **“남의 불빛에 의지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불꽃을 밝혀라”**는 메시지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오신 무상·고·무아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과 연결해서 읽으면 상당히 흥미로운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공연담스님. 올려주신 글만 보아도 민뚜에 존자님을 향한 베트남 불자님의 신심과 존경심이 매우 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단순히 한 수행자를 찬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녹야원의 초전법륜과 연결하고
민뚜에 스님을 자비와 지혜의 상징으로 바라보며
“남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고 하고
결국 계율·수행·탐진치의 감소·아집의 내려놓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 글의 신심은 “스님을 숭배한다”는 표현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고, 그 수행자의 모습에서 불교 수행의 방향을 찾으려는 신심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의
“남의 불꽃에서 나오는 따뜻함만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횃불을 밝혀라.”
라는 취지가 인상적입니다.
스님께서 자주 말씀하신 **“남의 깨달음을 구경하는 것보다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방향과도 통하는 부분이지요.
베트남 불자들의 글에서 민뚜에 존자님에 대한 신심 → 부처님 가르침 → 자기 수행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보이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
민뚜에존자님 향한 베트남 불자님들 신심 최고 수승하다..
오공연담스님, 이 선시는 앞의 베트남 불자님의 글을 읽고 나니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 **참으로 사는 게 뭔가
이뭣꼬
무라무무무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미륵존불
나무삼세여래불
무상·고·무아**
남의 수행자를 찬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군요.
무상 — 붙잡을 것이 없고
고 — 붙잡으려 할수록 괴로움이 생기며
무아 — 붙잡을 ‘나’마저 찾아보면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러니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참으로 사는 게 뭔가?”
그리고 그 물음 자체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이 선시의 마지막 **“무상고무아”**는 결론이라기보다, 다시 **“이뭣꼬”**로 돌아가게 하는 문처럼 느껴집니다. 🙏
오공연담스님, 이제 이 선시는 앞의 이야기와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참으로 사는 게 뭔가
이뭣꼬
무라무무무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미륵존불
나무삼세여래불
무상고무아 선시
여기서 “무라무무무”를 무상·고·무아로 새겨 읽으면, 짧은 구절 안에 수행의 방향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사는 게 뭔가 — 삶을 있는 그대로 묻고,
이뭣꼬 — 지금 이것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 보고,
무상·고·무아 —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변하고, 집착하면 괴로움이 따르며, 고정된 ‘나’라고 붙잡을 실체가 없음을 살피고,
나무석가모니불·나무미륵존불·나무삼세여래불 —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께 귀의하며,
마침내 자기 마음에서 직접 확인하는 수행으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선시는 화려한 교리 설명보다 오히려 한마디 질문으로 끝납니다.
참으로 사는 게 뭔가?
그리고 그 질문을 붙잡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수행이 되는 것이겠습니다. 🙏
무상·고·무아 선시.
짧지만 오랜 세월 수행해 온 스님의 삶과 묘하게 겹쳐지는 문구입니다.
Kỷ niệm ngày Trở về với vườn Lộc uyển nơi Đức Phật đi đến đó để hóa độ cho Bài Pháp về Tứ diệu đế mà Đức Thế Tôn thuyết giảng đã chiết phục được năm anh em Kiều Trần Như và họ đã chứng đắc quả A-la-hán.
Dòng chảy liên tục, truyền thừa, lưu truyền chánh pháp của Như Lai. Ngài Minh Tuệ đến từ Việt Nam là sự tỉnh thức, là ánh sáng trí tuệ soi đường, là giác ngộ.sự vượt trội, là tài năng, dám bức phá và có tố chất phi thường, có khí uy nghiêm uy lực của sự buông bỏ. Đại Hùng Đai lực nhưng không ngạo mạn. là dòng chảy của 3 đời chư Phật được tiếp nối là ánh sáng của nhận thức, là khí chất của người biết mình! Ngài đến không những để rực rỡ nhất, mà để sáng suốt nhất có thể.
Kết nối năng lượng từ bi và trí tuệ từ thầy Minh Tuệ không đến để hơn người, mà để hiểu mình ạh!
Hãy sống xứng đáng với chính mình..mà cha mẹ đã gửi gắm như một hạt giống được gieo vào đời, chờ ngày nở rộ từ nội tâm."Học Phật không phải để tìm một ai đó cứu giúp, mà để tự mình tìm thấy bình an trong tâm hồn." Cảm ơn thầy Minh Tuệ Là một phật tử chắc ai đó biết câu nói của Đức Phật "Ta là Phật đã thành, chúng sinh là Phật sẽ thành” vì vậy chúng ta “Đức Phật, đến với thế giới này như một người bình thường, tự tìm đạo, tự hành đạo và chỉ ra con đường giúp chúng sinh thoát khỏi vô minh trở về với chính mình. Những Kinh Điển, Giáo lý mà Người để lại như một ngọn lửa, giúp sưởi ấm chốn nhân gian giá lạnh. Chúng ta đều là những kẻ hữu duyên, xin được nương theo năng lượng từ bi và trí tuệ từ thâỳ Minh Tuệ người như một đốm lửa nhỏ, tự thắp lên ngọn đuốc của mình, cẩn thận mang theo, soi sáng cho con đường phía trước cùng thầy chúng ta làm thế nào để giữ được ngọn lửa “không tắt” trong suốt một cuộc hành trình dài phía trước là câu chuyện của mỗi người và mỗi gia đình phải không ạh!
Bước đi giữa đường trần gió bụi, một người nếu không biết dùng Chánh Pháp để làm ngọn đuốc dẫn đường, tự nương tựa vào chính mình, nỗ lực tu dưỡng bản thân thì không thể phát triển trí tuệ, thấu rõ kiếp nhân sinh, thoát khỏi bến Mê, về được Bờ Giác cả nhà ạh! ..Đức Phật chỉ cho chúng ta một con đường. Nhưng con đường là để đi, phải đi mới đến đích, phải “tu” thì mới “ngộ”. Không một đấng linh thiêng nào có đủ khả năng xoá bỏ những nghiệp thiện ác mà một người đã tự gieo.Kinh Điển cũng không phải là những “trang giấy có chữ” chỉ để con người tụng niệm hàng ngày. Một người dù không đọc nhiều Kinh sách, nhưng nếu hiểu và thực hành theo, cố gắng giữ giới để thanh lọc tham sân si, nuôi dưỡng từ tâm, phá bỏ chấp ngã, thì người đó đã tạo nên một nơi trú ẩn an toàn vững chãi trong tâm để tự bảo vệ ngọn lửa của mình cháy mãi, không bao giờ tắt.Còn với người đã đọc thuộc hết ba ngàn Kinh Điển, miệng không ngừng nói về giáo lý nhà Phật, nhưng lại biến câu Kinh trở thành phương tiện để thể hiện bản thân, hơn thua với đời, người ấy giống như kẻ “mù” chưa bao giờ nhìn thấy ánh sáng, chưa từng một ngày thật sự sống trong Chánh Pháp cả nhà ạh! Một niệm sân si, một lần toan tính, một phút hẹp hòi...như những cơn gió lạnh, trong phút chốc ùa tới thổi tắt ngọn lửa trí tuệ trong tâm. Cũng là một ngọn lửa, cũng là một câu Kinh, nhưng khác nhau ở chỗ: Một người đã biết quay lại, cẩn thận che chắn đốm lửa của mình, để ánh sáng thay thế bóng tối, để hơi ấm thay thế cho những giá lạnh âm u của kiếp người. Còn một người vẫn bước về phía hồng trần bụi bặm, hoà mình vào đám đông ồn ã và trở thành một kẻ ồn ã.Ai cũng có ngọn lửa của riêng mình, đừng chỉ ngưỡng mộ hơi ấm từ ngọn lửa của người khác, hãy tự thắp ngọn đuốc của mình lên để sưởi ấm bản thân trong những ngày lạnh lẽo u tối của nhân gian này nhé! Đức Phật tĩnh toạ đài sen, lặng ngắm phàm trần suy thịnh. Thế gian loạn lạc, bách tính trầm luân, Người đều biết...Nhưng “Thiên đạo vô thân, thường dữ thiện nhân”, hàm ý đạo trời không vì tình riêng mà thiên vị bất kỳ ai, chỉ có thể độ người hành thiện. Người hữu duyên, hiểu giáo lý nhà Phật, nương theo đó tu hành, ắt cải biến được vận mệnh. Người vô duyên, đọc ngàn câu Kinh, vẫn thấy còn lạc lối, mãi chưa tìm được chốn về với côi nguồn trong ta là nơi bình yên nhất khi tâm ta an yên hòa nhịp! Nam Mô Đầu Đà Thiện Du Bộ Công Đức Minh Tuệ Bồ Tát Ma Ha Tá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