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패기넘치는 사진가들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 차세대 사진가로 자리매김할 수있도록 한 달에 한 명의 작가를 초대하여 갤러리 브레송에서 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최현주의 감칠맛나는 글과 더불어 <사진 바깥에서 사진읽기>라는 제명으로 월간 사진예술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방에서 마주한 낯선 거울 속 낯익은 얼굴-노정하
글. 최 현주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15년 동안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및 제작팀장을 거쳐 현재 Freelance copywriter로 활동 중. 공저 <워딩의 법칙>(2005년) 및 <두 장의 사진> 출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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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아를르에서 빈센트 반고흐는 행복했다. 그 행복은 고작 1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끝장이 났지만 불우한 천재화가는 ‘아를르의 노란 집’에서 또 한 명의 위대한 화가를 기다리며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다. 반 고흐의 유명한 해바라기 연작들은 이곳에서 그려졌다. 1888년에 머물렀던 아를르의 아틀리에는 반고흐의 짧은 행복과 영원한 불행을 함께 담은 방이다. 불과 2개월 만에 고갱과 심한 다툼 끝에 여름밤처럼 짧고 서툰 꿈에 종지부를 찍은 광기어린 천재화가의 방은 한 점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노란색 나무침대와 두 개의 나무의자와 작은 테이블, 푸른 문짝,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과 수건.....반고흐는 이 방에서 그토록 특별한 친구였던 고갱이 도착하기를 조급하게 기다렸으리라. 창문을 열어젖히고 아를르의 태양과 바람을 들이마시며 기력을 회복하고 테이블 앞에 앉아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고 또 새로운 구상을 했으리라. 마침내 자신의 귀를 자른 곳도 이곳이었을 텐데. 창가에 걸린 작은 거울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의 머릿속도 간혹 비쳤을까?
십 수 년 전, 인터뷰를 위해 도예가 김기철 선생님 댁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대학 강단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그가 도예가가 된 것은 많은 유명인들의 운명 속에 종종 나타나곤 하는 일종의 ‘필연적 우연’이었다. 허리를 다쳐 일을 중단하고 집에서 요양을 하던 중 도자를 배우던 아내 친구가 가져다준 흙 한 덩어리가 삶을 바꿔놓았다. 심심파적으로 조물조물 꽃병이나 단지 등을 만들었는데 타고난 감각과 예술혼이 있었던지 보는 사람마다 칭찬일색이었고, 결국 서울집을 정리하고 아예 경기도 이천으로 내려가 농사짓는 도예가의 길을 시작했다. 지금도 그의 작업실이 예전의 그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선생이 직접 가꾸던 집 뒤의 넓은 텃밭이나 마당을 생각하면 여전히 그곳에서 도자를 굽고 봄이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를 꽃피우고 계실 것 같다. 처음엔 꽤 호젓한 곳이라 이곳 산자락 아래 집을 짓고 사는데 개발바람이 불어 점점 눈앞까지 밀어닥치니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한창 물이 올라 어여쁜 꽃나무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선생은 내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나는 그때 인터뷰는 뒷전이고, 텃밭에서 손수 가꾼 푸성귀들을 맑은 물에 헹궈 투박하게 구워낸 도자접시에 수북이 담아낸 상큼하기 짝이 없는 점심상에 연신 감탄하며 그의 방을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난다. 특히 창이 널찍한 이층 방은 별다른 가구도 없이 보송하게 피어난 버들개지가 꽂힌 커다랗고 둥그런 달항아리와 몇 개의 도자작품들이 놓여있어서 그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런 작업실을 동경했던 나는 인터뷰를 대충 끝내놓고도 한나절을 어물쩍 그 작업실에서 떠나지 못했었다. 지금은 칠십을 훌쩍 넘기신 모양인데 ‘전통을 바탕으로 자연과 조화된 현대성을 구현’하는 도예가로 평가되며 대영박물관, 버밍엄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니 예전 선생의 작업실에도 그동안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제법 두툼한 세월의 두께가 얹혔을 것이다. 커다랗고 둥그런 달항아리처럼 텅 비어있으면서도 또 가득 차있을 그의 작업실이 오늘 다시 궁금해진다.
바늘구멍으로 들여다본 노정하 작가의 <예술가의 방> 시리즈는 핀홀카메라의 속성 그대로 나를 자꾸 추억으로 이끈다. 원근감도 사실성도 사라지고 부드럽고 몽롱한 기억의 의식만 남겨두는 핀홀카메라가 이끄는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나는 다시 오래전 시인의 방에 와있다. 지금은 물론 결혼도 하고 시집도 여러 권 내서 좋아하는 독자들을 꽤 거느린 P시인은 대학시절 홀로 정릉에 살았다. 술을 마신 어느 날 밤, 대학선배이기도 한 그의 방에 후배 몇몇이 놀러간 적이 있었다. 사실 놀러간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몰려간’셈인데, 그가 함께 술을 마셨던 건지 후배들끼리 따로 마시고 의기투합해서‘쳐들어간’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학교에서는 멀지 않지만 그 당시 서울의 또 다른 끝 쪽에 살았던 내게는 꽤나 낯선 동네였던 정릉의 어느 비탈진 언덕 골목에 있던 그의 하숙방은 내겐 왠지 안개처럼 어둡고 습기어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창문도 아니요 침대도 아니요 유독 그의 책장과 책상이 기억나는 건 후배들이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수려한 시구(詩句)들 때문이었으리라. 그 책상 위에서 나는 우연히 영어사전을 집어 들게 되었고 하필 사전의 비닐커버 안쪽에서 시인의 옛애인 사진을 발견했다. 입대 전 사귀었던 같은 과 여자친구와의 연애담이 짜하게 퍼져있고 이미 졸업하여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 그녀를 잊지 못하는 절절한 사랑노래를 줄창 불러대던 그 선배의 시들은 친구들로 하여금 이제는 그만 좀 잊으라는 충고를 수도 없이 하게 만들었던 터였다. 나는 그때 아주 절친한 후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옛애인의 사진을 품고 있는 영어사전을 발견하고 그를 놀려댔으며, 그 때 시인은 결심한 듯(혹은 술기운에?) 사진을 꺼내 그토록 소중히 갖고 있던 사진을 찢어버렸던 것이다. 이후 시인도 결혼을 하고 나는 또다시 짓궂은 후배들 속에 섞여 시인의 신혼집까지 몰려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쯤 이미 유명한 시인이 된 그의 새 작업실은 사당동 예술인 마을 어디쯤이었던 것밖에는 달리 기억나지 않는다.
핀홀카메라는 ‘시간을 관류하고 축적하는 시간의 통로’여서 ‘현실과 다른 색다른 공간감 때문’에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감정을 훨씬 쉽게 일치시키는 매력이 있다'(진동선, <한 장의 사진미학> 중). ’보낸 사람의 정성과 감성이 받는 사람의 감정에 되살아나는 것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과거에 공유했던 경험 때문‘이며 ’핀홀은 그 시간의 통로로 과거를 불러내 아득하기만 했던 기억을 되살려낸다‘
노정하 작가의 말을 빌면 ‘보이는 것들에 대한 욕망을 자제시켜주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상자를 들고 예술가의 운명적 에너지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하는데, 과연 바늘구멍이라는 시간의 통로를 통해 독자들은 작품으로만 알고 있는 예술가들의 방을 방문하고 그 방 이곳저곳을 슬며시 기웃거리는 동안 저마다의 기억 속에 있는 또 다른 시간 속으로 안내되기도 하는 것이다. 노정하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예술가의 방이 실제 어떤 창문이 있는 곳인지 어떤 책들이 쌓여있는 것인지 혹은 어떤 차가 어떤 향기로 끓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이미지의 방이요, 자동차나 두 발로 다녀올 수 있는 실제의 공간이 아니라 봄바람 같은 꿈의 나래를 타고서야 다녀올 수 있는 공유된 추억의 방이어야 했던 이유가, 심지어는 어느 예술가의 방인지조차 알 필요가 없던 이유가 하필 수많은 고급카메라들을 제치고 작가가 직접 만든 바늘구멍 카메라여야 했던 이유일 것이다.
노정하 작가의 예술가의 방을 바라보는 일은 니스에서 기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 르느와르의 아틀리에를 방문하거나 제주도 서귀포 두모악에서 김영갑 선생의 바람부는 아틀리에와 마주섰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나는 육명심 선생의 <문인의 초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문인의 초상 뒤에 언뜻 언뜻 보이는 그들의 작업실 풍경 때문이라기보다는 문인의 얼굴이 이루는 풍경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70여 명 예술가들의 포트레이트 속에는 그들의 기와 혼이 고스란히 살아있는데 대상 문인에 따라 때로는 호방함으로 때로는 소탈함으로 또 때로는 고뇌에 찬 표정이나 푸근한 미소로써 각자의 삶을 관통하는 예술혼의 세계를 드러내고 것이다. 그 얼굴 얼굴들은 우리가 예술가의 방을 방문했을 때 느끼는 어떤 기운을 전면적으로 집약한 것이기도 하며, 그것이 노정하 작가와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마지 않는 예술가의 신비한 에너지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노정하 작가는 실재하는 서사적 공간으로서의 예술가의 방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니라, 육명심 선생이 담은 문인들의 얼굴에도 생생하게 드러나는 생동하는 아우라를 담고자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노정하 작가의 예술가의 방이란 하나의 공간이 구현하는 표정이 아니라 예술가 그 자체의 포트레이트이자 그의 내면에서 발산되는 에네르기의 표정인 셈이고, 그것은 이미 전작들인 포트레이트 사진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겠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지상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고단하고도 한편 굳건한 삶의 초상이자 다양한 욕망과 꿈의 초상, 이 땅에서 자신이 구축한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로 살아가는 자들의 기운차고도 고뇌스러운 예술혼의 초상. 노정하 작가는 본인의 얼굴에서 이미 그 흔적을 읽어낸 것이었을까? 아니면 앞서거나 뒤서며 예술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방에서 그들의 낯선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먼저 보아버린 것이었을까? 지금 둘러보아라. 당신의 방, 당신의 거울 속에는 어떤 신비한 에네르기로 가득 찬 포트레이트가 당신을 향해 새로운 이야기를 던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