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스,비주류를 창조자로 만들어내다"
iCEO가 된 잡스는 애플에 새로운 미래를 보여줘야 했다.
다시 애플에 열정을 불어넣고, 가슴을 뛰게 하는 비전도 제시해야만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떠난 뒤 애플은 비대해진 관료조직으로 변해있었고, 매킨토시를 만들 때와 같은 열정도,
우주를 흔들만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비전도 찾을 수 없었다.
잡스는 그 때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애플은 진흙으로 뒤덮여 들판에 내팽겨져 더러워진 포르쉐 자동차 같았다.”
문제는 내부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외부 고객, 소비자들의 의식이 바뀐 것이다.
애플 초기만 하더라도 애플을 쓰는 사람은 시대를 앞서나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잡스가 복귀할 당시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10%로 떨어졌다.
애플을 쓰는 사람들은 비주류였고, 사회나 조직에 불만이 있는 괴짜 취급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바꿔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가 없었던 10년 전과 달리 이제 애플은 세련되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회사라는 모습을 제시하려 했다.
잡스가 선택한 것은 광고였다.
바로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이었다.
애플 직원들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달라진 애플을 보여주는 메시지인 동시에 슬로건이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 바로 잡스가 평생을 지켜온 가치인 창의와 창조였다.
그의 가치관이 묻어 있는 카피인 셈이다.
간디, 아인슈타인, 피카소, 에디슨, 무하마드 알리, 말론 브랜도,
마리아 칼라스, 히치콕, 어밀리아 에어하트, 마틴 루터 킹,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밥 딜런.
이들의 공통점은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때 부적응자, 반항아, 문제아로 불렸던 사람들이었다.
상식파괴자들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들을 비주류이자 미치광이로 보았지만, 애플은 이들에게 창의성을 본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과 다른 생각을 가졌던,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켰던 사람들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원형이었다.
창조적 상상과 혁신의 원천으로 다르게 생각하기가 얼마나 위대한 가치인지를 강조한 것이다.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문법마저 파괴했다.
‘Think Differently’가 아니라 ‘Think Different’였다.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열정적인 사람들이 바로 세상을 바꿔 놓습니다.”
이 광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학교는 물론 기업사무실에서도 이 광고 스티커를 붙여 놓을 정도였다.
잡스는 이 광고를 통해 애플의 단점을 강점으로 바꿔 놓는다.
이 광고는 애플을 쓰는 사람은 더 이상 괴짜나 비주류가 아니라
자신이 남과 다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메시지도 던졌다.
이런 메시지는 애플과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남과는 다르다는 신념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신념은 애플을 공유한다는 유대감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는 비판적인 지식인이나 예술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애플 컴퓨터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젊은 비즈니스맨들이 쓰는 제품으로 확장시켰다.
비행기 비즈니스 자리에서 애플 노트북을 꺼내놓으면
과거에는 교수 이미지가 떠올랐으나 최근에는 젊은 비즈니스맨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이 광고를 내보낸 뒤 얼마 되지 않아 잡스는 애플 복귀 뒤 첫 작품을 내놓는다.
매킨토시였다.
물론 과거의 매킨토시는 아니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매킨토시였다.
바로 아이맥(iMac)이었다.
1998년 5월6일 잡스는 애플 본사의 플린트 센터에서 아이맥을 선보인다.
1984년 매킨토시를 발표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때 보다 잡스는 얼굴살이 좀 쪘고 뱃살도 나온 중년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20대의 풋풋함은 볼 수는 없었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
세상을 바꿀 컴퓨터를 만들고 싶은 열정이었다.
그날도 무대 가운데에는 하얀 천에 덥힌 아이맥이 탁자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4년 전의 데자뷔를 보는 듯했다.
잡스는 덮인 천을 벗겨냈다.
곧바로 아이맥의 화면 위로 인터넷 사이트와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화면에는 ‘다시 안녕(Hell, Again)’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최초 매킨토시가 ‘안녕(Hello)’이라는 글자체를 화면 위에 선보인지 14년만의 일이었다.
박수가 이어졌다.
컴퓨터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외형이었다.
비행접시를 연상시키는 마우스, 오토바이 헬멧과 같은 일체형 외형, 회색과
연청색 2가지 톤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이는 컴퓨터였다.
이전 매킨토시처럼 아이맥도 혁신적인 컴퓨터였다.
혁신의 중심에는 인터넷과 음악이 있었다.
인터넷과 음악이 결합된 컴퓨터였다.
잡스는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했다.
그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즐기고 가방에 항상 음악 CD를 갖고 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인터넷 사용을 번거로워했다.
음악 역시 플로피 디스켓 용량이 너무 작아 컴퓨터로 듣기 힘들었다.
새로운 컴퓨터는 인터넷과 음악이 중심이 되어야 했다.
아이맥은 누구든지 플러그만 꽂으면 인터넷을 쉽게 쓸 수 있도록 했다.
버튼 하나로 인터넷에 간편하게 접속할 수 있는 모뎀을 갖추고 있었다.
아이맥은 기판과 모뎀, 플러그와 모니터까지 본체에 통합한 철저한 소비자 중심 컴퓨터였다.
아이맥은 또 디스켓 드라이브를 갖추지 않은 첫 개인용 컴퓨터였다.
디스켓은 IBM PC에서 채택한 장치로 간편하기는 했으나 용량이 1메가바이트 밖에 되지 않았다.
음악이나 그래픽 파일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잡스는 디스켓 드라이브를 없애고 CD롬 드라이브를 채택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CD로 음악을 듣고 있다는 점을 꿰뚫어 본 것이다.
물론 이런 의사결정은 시장조사를 통해서 나오지 않았다. 잡스의 직관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잡스는 아이맥을 내놓으면서 고객보다 앞서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나서 물건을 만들 수는 없다.
그 제품이 완성될 때쯤이면 고객은 이미 다른 새로운 제품을 찾을 것이다.”
아이맥은 새로운 기능만을 갖춘 컴퓨터가 아니었다.
기존 컴퓨터와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이야 말로 아이맥의 특징이었다.
애플이 처음 매킨토시 PC를 내놓은 뒤, 20여 년 동안 PC의 겉모습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동안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등장하면서 성능은 개선됐지만,
그때까지 나온 컴퓨터는 네모꼴의 본체에다 모니터도 사각 모양의 각이 있는 규격화된 형태였다.
잡스는 아이맥은 다르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애플 디자이너인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에게 좀 더 새로운 디자인을 주문했다.
아이브는 본체와 모니터를 일체형으로 하면서 곡선으로 부드럽게 디자인했다.
컴퓨터 안이 투명하게 보이도록 누드 형태로 케이스를 디자인한 것도 발상의 전환이었다.
누드 디자인을 위해 내부 부속품의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고 내부 배치나 배선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스피커, 모니터, 마이크로프로세서, 각종 부품들 모두가 반투명한 몸체 속에 하나로 모여 있었다.
모든 군더더기를 없애고 깔끔하고 세련되게 만드는 잡스는 미니멀리즘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 것이다.
색깔 역시 차별화했다.
파란색 플라스틱 케이스와 곡선으로 디자인했다.
기존 베이지색 PC의 흐리고 고전적인 모습과는 차별화 시켰다.
아이맥은 현대성의 상징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 나갔다.
아이맥은 그 뒤에도 핑크, 노랑, 블루, 초록, 자주 등
상큼한 다섯 가지 색깔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혀 나갔다.
아이맥은 15인치 컬러 모니터와 두 개의 스피커를 갖추고, 1299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출시됐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단 1주일 만에 아이맥 15만대가 팔려나갔다.
1년 동안 200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아이맥은 애플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판매된 컴퓨터가 됐다.
곧바로 수많은 짝퉁 누드컴퓨터가 등장했다.
미국 언론들은 “아이맥이 마치 신형 포르쉐만큼 예쁘다”며 격찬을 퍼부었다.
1998년 10월 애플은 4분기에 1억6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1999년 9월 애플 주가는 주당 73달러까지 올랐다.
스컬리 시절의 최고 기록이었던 68달러를 넘어섰다.
잡스는 자신을 쫓아낸 스컬리에게 멋지게 복수한 셈이다.
고객들은 애플에 다시 호감을 갖게 되었고 주주들은 신뢰를, 직원들은 자신감을 회복했다.
잡스의 힘은 곧 트렌드가 되었고, 유행이 되었다.
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 1월5일,
잡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에서 자신이 애플의 공식적인 CEO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그 자리에 있던 4000명의 청중들이 열광했다.
그럼에도 그는 iCEO라는 직함에서 i를 그대로 써달라고 제안했다.
임시직이라는 의미가 아닌 인터넷을 의미하는 i였다.
며칠 뒤 애플 이사회는 잡스가 복귀 뒤 회사 주가가 여덟 배나 올랐음을 강조하면서
그에게 스톡옵션 1000만주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에게 4000만달러가 넘는 걸프스트림V 전용 제트기도 제공한다.
하지만 잡스의 연봉은 1달러로 변함이 없었다.
"아이팟은 버림으로 얻었다"
“컴퓨터는 생산성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를 넘어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맥은 모든 디지털 기기를 아우르는 디지털 허브가 될 것입니다.”
2001년 1월 9일 샌프란시스코 맥월드에서 잡스는 ‘디지털허브 전략’을 공개했다.
디지털허브란 사람들이 디지털 음악플레이어, DVD, 디지털 비디오, 휴대전화와 같이
다양한 디지털 제품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디지털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했다.
잡스가 디지털 허브 전략을 발표하면서 소개한 음악 소프트웨어는 아이튠즈(iTunes)였다.
CD에 담긴 음악을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MP3파일로 변환시켜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하거나,
MP3플레이어에 담아 들을 수 있게 한 음악재생 프로그램이었다.
잡스가 길게 아이튠즈를 자랑했지만, 사람들은 아이튠즈의 위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무료로 제공된 이 제품이 애플 수익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튠즈는 얼마 뒤 선보인 아이팟(iPod)을 만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잡스는 아이튠스로 영화에 이어 음악에 눈을 돌렸다.
그것은 세상을 읽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선 음악파일 문제가 사회적인 논란꺼리였다.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사이트인 냅스터 때문이다.
이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은 공짜로 자신의 음악파일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음악파일을 다운받았다.
음반사와 가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국음반산업협회가 냅스터를 고소하면서 냅스터는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잡스는 이런 현상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어떻게 음악을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펴 본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MP3플레이어를 만들기로 한다.
잡스는 아이팟을 단지 음악을 듣는 MP3가 아니라 디지털라이프 기기로 재정의했다.
음악은 소비자의 시간을 뺏을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강력한 수단이다.
시간을 뺏기 위해선 단지 수십 곡의 노래만이 아니라 고객이 갖고 있는 노래 모두를 들을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다.
대안은 아이팟에 하드드라이브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MP3는 플래시메모리 위주가 대부분이었다.
노래는 20~30곡을 저장하는데 그쳤다.
물론 주변 상황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미국에선 닷컴버블이 꺼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MP3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해 있던 인텔은 수익성이 없다며 철수를 선언했다.
게다가 9월11일에는 무역센터가 무너지는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잡스의 의지를 굽히지는 못했다.
2001년 10월23일 잡스는 트레이드마크인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이어 청바지 주머니에서 트럼프 카드 박스 같은 하얀 제품을 꺼내며
“하드디스크형 뮤직 플레이이어를 소개합니다”라고 말했다.
바로 아이팟이었다.
아이팟은 직사각형 모양의 본체에 1000곡 이상 곡을 저장할 수 있고, 듣고 싶은 곡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둥근 형태의 터치 휠로 구성돼 있었다.
잡스는 "당신의 호주머니 안에 1000곡의 음악"이란 표현을 썼다.
잡스는 아이맥을 디자인한 조너던 아이브와 함께 화이트컬러의 얇은 MP3플레이어를 창조해 냈다.
아이팟 위에 자리한 원형 다이얼 터치는 아날로그적인 터지 하나로 모든 디지털 데이터를 제어했다.
이는 휴대음악 플레이어의 원형이 되었다.
아이팟의 특징은 창의적이면서 직관적이라는 점이다.
이전에는 좋은 음질의 음원재생기 개발이 핵심 개념이었지만, 아이팟은 그런 통념을 깨버렸다.
아이팟은 고객이 얼마나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느냐에 초점을 맞춰 개발됐다.
아이팟은 신화를 써내려갔다.
하나의 문화현상이 될 정도였다.
현재 아이팟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잡스가 온라인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아이팟의 성공 키워드는 무엇일까.
첫번째는 연결이었다.
컴퓨터와 MP3플레이어와의 연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와의 연결이었다.
하드웨어 기기와 콘텐츠를 연결해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고객에게 가져다 준 것이었다.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말했던 ‘점을 잇기(Connecting the dots)’와 맥락이 닿아 있다.
아이팟이 나오기 이전까지 하드웨어 업체에겐 소프트웨어는 단지 따라오는 부속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이팟은 달랐다.
아이팟은 아이튠즈가 있었기에, 아이튠즈는 아이팟이 있어 성공할 수 있었다.
아이튠즈라는 소프트웨어가 먼저 나왔고, 아이튠즈라는 소프트웨어로 아이팟은 히트를 친다.
아이팟을 차별화한 포인트였다.
아이팟의 도 다른 특징은 깊은 고객분석이었다.
잡스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행동을 간파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음악파일을 정리할 때 장르나 가수별로 정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떨 때는 장르별로 듣고 싶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가수별로 듣고 싶기도 했다.
아이튠즈는 제목, 앨범, 제작 일자, 아티스트 등으로 분류해
가수에 따라 앨범에 따라 장르에 따라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이 그동안 필요했지만 막상 하지 못한 것을 애플이 해준 것이다.
1000곡이 들어가는 MP3플레이어의 음악을 관리하는 데에는 아이튠즈만 한 소프트웨어는 없었다.
관리할 음악의 수가 적을 때는 그저 그런 프로그램으로도 문제가 없었지만,
1000곡을 넘어가는 음악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사용하기 편리한 소프트웨어가 반드시 필요했다.
잡스는 이런 아이튠즈의 기능을 고스란히 아이팟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회사들이 MP3를 파일로 여겼다면, 잡스는 MP3를 음악으로 여겼다.
아이팟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결국 아이팟의 성공은, 하드웨어 기기만으로는 결코 성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아이팟과 비슷한 기능과 아이팟과 거의 같은 디자인으로 좀 더 저렴한 제품을 내놓았지만
경쟁회사들이 도저히 아이팟을 넘어서지 못하는 배경이 됐다.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는 쉽게 벤치마킹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소프트웨어는 쉽게 벤치마킹하지 못한 셈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벤치마킹하려다 보니, 아이팟을 넘어서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팟은 또 인터넷과 쉽게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연결은 또 다른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배터리였다.
기존 MP3가 배터리 때문에 기기 자체가 컸다면, 아이팟은 노래를 다운받기 위해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을 때
충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
얇은 두께의 아이팟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아이팟은 이후 나이키와도 연결한다.
나이키 운동화 밑창에 센서를 달고 이를 아이팟에 연결시키면
아이팟 LCD창에 운동량이 기록되는 '나이키+아이팟 스포츠 키트'가 그것이다.
‘개방’ 역시 아이팟의 성공원인이었다.
지키려하는 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잃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팟은 처음엔 매킨토시에서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잡스는 2002년 7월 매킨토시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PC에서도 작동하는 아이팟을 선보인다.
물론 쉽지 않는 결정이었다.
긴 토론이 이어졌다.
애플 내부적으로도 윈도에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개방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엇갈렸다.
잡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겐 아주 중요한 결정이었지요.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기 때문에 양쪽 주장을 모두 검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종 결정은 개방이었다.
윈도를 쓰는 사람이 아이팟을 맛본 뒤 애플 고객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이 개방의 키 포인트였다.
사람들이 아이팟을 사러 매장에 들어왔다가 자연스럽게 매킨토시를 다시 한 번 보게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매킨토시를 위해 만들어진 아이팟은 매킨토시에서 벗어나면서 급성장한 셈이다.
또 다른 성공 키워드는 ‘버림’이다.
아이팟은 버림으로 얻었다.
아이팟은 기본적인 음악재생만 충실히 하고 대부분의 부가기능을 과감히 빼 버렸다.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
애플의 모든 제품이 갖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컴퓨터에 연결만 하면 음악 파일이 자동으로 아이팟으로 이동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이상 세대가 사용하기 쉽도록 단순하게 만들었다.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조작이 가능했다.
반면 아이팟의 경쟁사들은 아이팟과 차별화하기 위해 각종 부가기능을 집어넣었다.
음악재생 이외에 보이스 리코딩, 동영상 재생, 게임,
인터넷접속 같은 기능을 첨가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려 했다.
녹음 기능이나 FM라디오 기능 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것들을 추가해 각 기능의 버튼수도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에게 오히려 조잡스럽게 다가왔다.
아이팟의 짝퉁 같은 느낌을 줘 소비자들의 눈을 돌리지 못했다.
잡스는 아이팟을 통해 또 다른 것들을 창조했다.
바로 아이팟을 쓰는 사람들끼리 끈끈한 유대감이다.
길거리와 지하철에는 하얀색 아이팟을 조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아이팟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종의 유대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 것이다.
2003년 4월 잡스는 인터넷에서 음악을 합법적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iTunes Music Store)도 선보였다.
BMG EMI 소니뮤직 유니버설 워너 등 5대 메이저 음반사의 노래 20만곡 가운데
듣고 싶은 노래를 편리하게 선택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는 2005년에는 월마트를 제치고 미국 내 음반 판매 1위 체인으로 등극했다.
2010년 3월에는 이곳에서 다운된 음악이 100억 곡을 넘어서는 대기록을 세웠다.
아이팟과 아이튠즈의 성공은 잡스와 애플에게도 여러 의미를 남겼다.
컴퓨터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에서 성공했다는 점에서다.
또 시대의 트렌드를 읽는 창의적인 제품은 성공한다는 진리였다.
아이폰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잡스 역시 아이팟으로 완벽하게 재기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한다.
잡스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은 그를 기다린다.
"연극처럼, 스트립쇼처럼"
#장면1
1998년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마친 잡스는 열광적인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몇 발짝 가지 않아서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청중을 향해 돌아섰다.
대수롭지 않는 듯한 말을 툭 던졌다.
“아참! 깜빡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이제 흑자입니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제야 이해한 청중들은 잡스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동안 적자에 허덕였던 애플이었다.
애플이 지난 4분기에 4500만달러의 흑자를 냈다.
잡스가 임시(interim) CEO란 뜻의 iCEO로 취임한지 5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마치 뒤늦게 생각난 듯 말했지만 잡스는 마지막에 그 말을 하려고 아껴둔 것이다.
#장면2
2008년 맥월드.
잡스는 여느 때처럼 기조연설을 하다가 "오늘 뭔가가 있습니다
(There is something in the air today)"라는 말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러면서 잡스는 노란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들며, 그 안에서 노트북을 쏙 빼냈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 컴퓨터 '맥북 에어(MacBook Air)'였다.
봉투에서 꺼낸 것은 노트북의 두께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뭔가 특별하다는 뜻의 '에어(air)‘를 맥북에어와 연결시키기 위해 그가 준비한 관용구였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철저하게 연극처럼 구성된다.
고전 명작이 대게 3막으로 짜여있듯 그의 프레젠테이션도 3막으로 짜인다.
연극을 보며 사람들이 감동을 받듯, 그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하나의 연극을 올리기 위해 수없는 고된 연습과 리허설을 거쳐야 하듯,
그 역시 기조연설을 위해 수백시간씩 연습을 한다.
마치 공연을 앞둔 배우처럼.
그는 결정적인 얘기를 꺼내기 전 무대 옆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시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서류봉투에서 슬며시 노트북을 꺼내드는 제스처는
노트북 두께를 숫자로 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이 빨리 보고 싶어 하는 제품을 소개하는 것을 최대한 늦춰 안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청중의 갈망이 극에 달할 때까지 보여주지 않다가 마지막쯤에 드러내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이다.
절정의 순간을 연출하는 것이다. 마치 스트립쇼 같다.
잡스는 숫자를 제대로 요리한다.
무의미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숫자가 와 닿을 수 있도록 양념을 친다.
"우리는 오늘까지 400만개의 아이폰을 팔았습니다."
잡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문장을 더 말한다.
“다시 말해서 판매일인 200일로 나누면 하루 2만개가 팔린 것입니다.”
400만개라는 대단히 많지만 쉽게 와 닿지 않는 수를 하루에 2만개를 팔았다며 와 닿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아이팟을 소개하며 “12기가의 메모리를 저장할 수 있다”고 말한 뒤
“달나라에 여행하고 올만큼 듣고 즐길만한 양”이라고 덧붙인다.
얼마나 많은 노래를 저장할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알기 쉽고 명확하다.
트위터식으로 단문 헤드라인을 만든다.
한 문장은 주어, 동사, 목적어의 단순 구조에 알파벳 140자를 넘지 않는다.
압축적인 선전 문구를 반복해 강조하는 것도 잡스만의 특징이다.
아이팟을 내놓을 때는 "당신의 호주머니 안에 1000곡의 음악"이란 표현을 썼다.
맥북에어를 선보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역시 단 1줄 뿐인 경우가 많다.
하나의 키워드에, 한 장의 이미지가 들어간 것이 대부분이다.
잡스는 무미건조한 말투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속삭이듯, 때로는 소리치듯 강하게 이야기한다.
시선은 늘 청중을 향한다.
때로는 두 손을 벌리고, 때로는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마주 잡고 열심히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청중들의 혼을 홀딱 빼놓는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언어는 절제와 거리가 멀다.
대신 놀랍도록 생생한 표현을 주로 쓴다.
아이폰4를 놓고선
"우리가 만든 제품 중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 했다.
또 그는 대단한(extraordinary), 놀라운(amazing), 멋진(cool), 믿을 수 없는(incredible), 위대한(great),
단순한(simple), 아주 멋진(gorgeous) 같은 말을 쓰며 제품을 강조한다.
흔히 패션잡지에서 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
공공의 적을 내세우고 영웅을 드러내는 수법도 여전하다.
그는 기존의 제품을 '악당', 애플의 신제품을 '영웅'으로 설정한 뒤 두 제품을 세밀하게 비교하는 전략을 즐겨 쓴다.
아이패드를 발표할 땐 넷북을 느리고 화질이 떨어지며, 거추장스럽고 오래된 PC라고 공격했다.
그러고는 "좀 더 나은 게 있다"며 ‘영웅’ 아이패드를 소개했다.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아이폰의 약진을 자랑하며 안드로이드폰의 점유율이 낮다는 점을 말하기도 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날 때쯤에는 꼭 “아, 한 가지 더”라고 말하며 보너스를 얹어주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대부분 회사의 제품 발표회는 지루함 그 자체다.
책상 위에 그날 발표할 제품을 소개한 자료들이 놓여 있고,
개발자나 홍보책임자가 나와 그 제품을 소개하고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끝나곤 한다.
제품 발표회에서 감동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잡스의 무대는 흥분과 놀라움의 연속이어서 연극이나 록 콘서트로 곧잘 비유된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면서 깊이 빠져들기 때문이다.
한편의 잘 짜인 공연으로 무료광고 효과를 톡톡히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잡스를 CEO 프레젠테이션의 1인자로 꼽는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동영상은 인터넷 클릭 수가 100만~300만에 이른다.
그가 무대에 한 번 설 때마다 애플 고객이 수만명씩 늘어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
자신이 제품이고 브랜드인 셈이다.
그동안 대중 앞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CEO는 거의 없었다.
잡스는 직접 자신이 알아서 한다.
CEO의 입을 통해 신제품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고객들이 최근엔 부쩍 늘었다.
잡스 때문에 CEO들이 피곤해진 셈이다.
하지만 잡스처럼 열정을 담는다면, 누구라도 고객을 감동시키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one more thing)'
잡스와 게이츠는 프레젠테이션에서도 자주 비교된다.
게이츠의 슬라이드는 잡스와 달리 많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들어가 있다.
반면 잡스의 슬라이드는 하나의 키워드와 한 장이 이미지뿐이다.
게이츠는 좋은 말로 상세하지만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다는 말도 듣는다.
반면 잡스는 간결하다.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블랙과 짙은 블루 배경을 자주 쓴다.
블랙은 정돈되고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게이츠는 파스텔 계열이나 옅은 블루를 자주 선택한다.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색이다.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블랙과 짙은 블루 배경을 자주 쓴다.
블랙은 정돈되고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게이츠는 파스텔 계열이나 옅은 블루를 자주 선택한다.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색이다.
옷 입는 스타일도 차이를 보인다.
검은색의 크루넥 티셔츠(일명 목 폴라)와 청바지, 뉴밸런스 운동화는 잡스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젊음과 패기가 느껴지는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는 자유로운 도전정신을 느끼게 만든다.
반면 게이츠는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츠와 V넥의 니트를 매치해 아이비리그와 여피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노타이의 셔츠는 권위적인 느낌보다는 편안한 인상을 심어주려 한다.
두 사람은 명문의 졸업연설을 남겼다는 공통점도 있다.
2005년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연설했고, 2007년 게이츠의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연설했다.
잡스의 연설은 또 세 가지를 말한다.
인생의 전환점, 사랑과 상실, 죽음 등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게이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빈곤퇴치, 환경문제에 관해서다.
내용으로 보면 창조적 자본주의를 제안한 게이츠의 연설이 좀 더 높이 평가를 받지만,
감동이라는 면에서는 잡스의 연설이 더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보야, 문제는 생태계라니까!"
아이폰은 디자인이 예쁘거나 하드웨어가 잘 나서 성공한 게 아니었다.
하드웨어의 기능만을 따져놓고 본다면 삼성의 갤럭시가 훨 낫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휴대폰 회사들은 아이폰에 쩔쩔매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우리나라 휴대폰 제조회사들은 하드웨어 경쟁에만 집착했다.
휴대폰 카메라는 몇 만 화소라든가, 휴대폰에 장착된 기능만을 강조했다.
고객들의 필요보다 자신들의 기술적인 우월성을 보여주려는 접근방식이었다.
아이폰 쇼크를 받은 지금도 우리나라 휴대폰 회사들은 하드웨어적인 사고가 강하다.
“디자인 괜찮게 만들어 마케팅 잘 하면, 아이폰보다 더 잘 팔릴 것이다”라는 식이다.
콘텐츠와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고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아이폰을 휴대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아이폰을 하나의 경쟁 휴대폰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휴대폰 회사들의 실력이면 충분히 따라잡고도 남는다.
아이폰의 히트는, 하드웨어 때문이 아니다.
아이폰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보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즐긴다.
아이폰은 고객과 개발자를 위한 장터를 마련해 놓고 이른바 생태계를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에서 인터넷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통신회사들이 인터넷을 철저히 통제했다.
게다가 통신회사가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소프트웨어만을 내려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통신회사의 입맛에 맞는 것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통신회사는 ‘슈퍼 갑’이고 개발자는 철저하게 ‘울트라 을’을 요구받는 권력관계였다.
수익배분 역시 통신회사가 절반 이상을 떼어가는 구조였다.
이런 수평적인 권력구조로 우리나라 모바일 시장에서
하드웨어만 살아남고 소프트웨어는 살아남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앱스토어라는 시장이 생기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애플은 개발자와 고객을 위한 장터, 즉 앱스토어와 아이튠스 같은 장터를 만들어 놓고
개발자와 고객이 마음껏 즐기도록 했다.
개발자는 더 이상 통신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철학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통신회사의 간섭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실력으로 고객에게 평가받을 수 있었다.
아이폰으로 개발자들은 영원한 갑일 것 같았던 통신회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개발자에겐 더 이상 통신회사들이 갑이 아니다.
너와 나로 이어지는 수평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개발자에게 중요한 건, 갑인 통신회사가 아니라 고객이다.
고객들이 불편해 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 이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고객의 니즈를 찾는 게 더 중요해졌다.
게다가 수익구조도 훨씬 더 후하다. 7:3의 수익구조다.
애플은 개발자에게 7을 떼어 준다. 나머지 3을 애플이 가져간다.
소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장터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마음껏 찾아 즐길 수 있었다.
고객들은 아이폰을 쓰다 불편하거나 좀 더 재미있는 게 없을까 싶으면 앱스토어를 찾는다.
그러면 자신들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참거나, 통신회사가 문제를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바로 이거다. 더 이상 통신회사나 제조회사가 권력을 쥐고 흔들 여지가 없어졌다.
아이폰의 생태계는 고객과 개발자가 서로 소통과 상호작용을 해가며 장터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수평적인 관계다.
인터넷은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이다.
이런 가치를 아이폰은 가져온다.
그리고 아이폰은 선택권을 고객과 개발자에게 나눠줬다.
개발자는 자신이 직접 가격을 결정할 수 있고,
고객은 자신에게 맞는 소프트웨어어인지 확인해 보고 살 수도 있고 안 살 수도 있다.
이러한 자발성으로 애플의 생태계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개발자에겐 열린 기회를 준 것이고, 고객에겐 선택권을 준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획력, 실행력이 뒷받침되면 돈이 없더라도 능력을 펼칠 기회가 주어진다.
이른바 ‘앱이코노미’의 특성이기도 하다.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선 통신회사->개발자->고객의 형태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통신회사가 개발자에게 지시하고 그 지시를 받은 개발자들이 고객에게 서비스를 내려주는 식이다.
그런데 애플은 이런 수직적인 모델을 수평적인 모델로 뒤바꿔 놓았다.
고객이 아이폰으로 아이튠스와 앱스토어를 만나고,
그 앱스토어 건너편에는 콘텐츠 개발자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다.
고객-아이폰-아이튠즈·앱스토어-개발자로 이어지는 애플식 모바일 생태계다.
아이폰이 들어온 뒤,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인 수직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애플이 갖고 온 수평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충돌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직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강하다.
하청업체를 통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품이나 콘텐츠를 금방 만들어냈다.
이런 식의 수직적인 형태는 스피드에선 효율적이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제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구조다.
그러나 지금 시대정신은 수평적인 사고방식이다.
나와 다른 상대방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고, 상대방의 적극적인 협조로 함께 손을 잡고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면 아이폰과 같은 히트제품을 만들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기업가정신의 가치를 민들레 홀씨처럼 뿌리고 있고 있는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가 즐겨 예를 드는 게 있다.
바로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션이다.
안 교수는 기술의 소니가 왜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닌텐도에 맞서지 못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가정용 게임기 경쟁이 하드웨어 싸움이라면 당연히 소니가 이겨야 해요.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예요.
소니는 하드웨어 성능이 워낙 뛰어나 과신한 측면이 있어요.
반면 닌텐도는 스스로의 힘은 미약하지만 게임 회사들을 수평적 관계 속으로 끌어들여 자기편으로 만들었어요.
요즘 경쟁은 연합군 간의 경쟁입니다.
바로 수평적 네트워크 비즈니스 모델이죠.
애플은 이런 흐름을 꿰뚫고 있는 거죠.”
애플에 맞서는 우리나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수직적인 생각, 수직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뛰어넘어 수평적인 생각,
수평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또 하드웨어만 보지 말고,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자발적으로 어우러지는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하드웨어만 보는 외눈박이 물고기가 아니라,
또 다른 한 쪽인 소프트웨어도 같이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의 이 말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요타는 한쪽은 품질, 한쪽은 효율화를 가지면서 성장했어요.
품질에 치우치면 가격경쟁력이 없어지죠. 비용만 쫓다보면 품질이 떨어져요.
그동안 도요타는 균형감각을 갖고 끊임없는 최적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최근 도요타는 균형감각을 찾지 못하고
비용만을 추구하다 도요타의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쁜 남자’ 잡스에 열광하는 이유
2010년 6월7일 세계는 잡스를 주목했다.
그날 잡스는 아이폰4를 선보이면서 “우리가 만든 제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0일 뒤인 7월16일 그는 쿠퍼티노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아이폰4 출시 이후 쥐는 방법에 따라 수신감도가 크게 떨어지는
‘데스 그립(death grip)’ 현상을 해명하는 자리였다.
잡스는
“우리도 사람이다(We are human)”
“우리도 가끔 실수를 한다(We make mistakes sometimes)”고 사과했다.
자신이 창조한 최고의 걸작인 아이폰4의 안테나 결함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잡스는 지난 3주 동안 300만대를 팔았지만 반품율은 단지 1.7%라는 데이터를 내놓았다.
“투자자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사과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애플은 고객의 신뢰를 갖고 미래 지향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작은 문제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기자회견을 두고, 평가는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아이폰4의 결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자사제품에 두터운 애정과 자신감을 내보이는 CEO의 당당함이 신뢰감을 갖게 했다.
솔직함과 자신감을 무기로 한 그의 대응 태도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십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잡스가 삼성, 노키아, 블랙베리도 스마트폰에서 공통적으로 수신율 저하가 있다고 주장했다”며
“평소 ‘적과 영웅’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애플 제품을 소개했던 그가
‘적’을 끌어들이는 물타기를 시도했다”고 비판했다.
일부 외신들은 이를 두고 ‘신이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표현을 써가며 잡스를 꼬집었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나쁜 남자’다.
이기적이지만 뛰어난 능력을 가져 미워할 수 없는 나쁜 남자 스타일이다.
강한 매력을 지녔지만 괴팍하고 욕망에 불타는 그 나쁜 남자 말이다.
독선적인 카리스마, 독재자, 괴짜, 변태적 통제광,절대권력, 고집불통, 독불장군……. 잡스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다.
잡스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자신의 드라마틱한 삶을 헤쳐 가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떨 때 잡스는 직관과 통찰력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가로 보인다.
다른 때는 통제광에 독재자의 모습으로도 비친다.
위대한 경영자라면 당연히 이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게 하는 상식을 모조리 깨부순다.
잡스는 말 그대로 괴짜 CEO다.
잡스는 자신이 관심을 쏟고 있는 개발자의 e메일 주소를 전부 암기할 만큼 섬세하다.
정식 결제라인을 거치기보다 개발자들과 직접 소통한다.
잡스는 자신이 행동의 모범을 부하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가치관과 태도를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변화시키려 한다.
잡스는 완전무결한 최고의 상품을 만들고자 하는 완벽주의자다.
자신의 목표는 반드시 이루려는 의지와 지치지 않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 잡스에게 헌정된 표현들이다.
반면 잡스는 직설적이고, 독선적이고 배려가 부족하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창조성에 대한 그의 집념은 독단과 아집을 불러와 수시로 동료들과 갈등을 빚었다.
이해 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 행동과 폭언으로 상처를 입고 회사를 뜬 사람도 여럿 된다.
세계와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라는 유아독존식 생각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다.
자신에게 이익이된다면 협상마저 깨뜨리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한다.
잡스는 직원들을 통제하려 하며, 사소한 것 하나까지 관심을 가지며 직원들을 들들 볶아댄다.
그는 변덕스러운 강박증 환자다.
스스로 정한 빡빡한 생산 일정에 맞추도록 직원들을 윽박지르는 불같은 독재자다.
그럼에도 잡스에겐 사람이 몰린다.
뛰어난 인재들이 그에게 모여드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멋진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충성을 바치는 신도들 또한 적지 않다.
애플 마니아는 전 세계에 존재한다.
그 힘은 그가 끊임없이 내놓는 확신에 찬 비전과 혁명가적 기질이다.
창의적 발상의 에너지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잡스는 지상에서 가장 강한 자력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잡스의 비전은 대단히 강렬하다.
그가 무엇을 믿으면 그 비전의 힘은 어떤 장애물도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다.
잡스에겐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란 말이 따라붙는다.
물리학용어 같아 보이는 이 말은 불가능한 일조차 끈질긴 설득과 협박으로
가능한 일처럼 보이게 하는 잡스의 능력을 일컫는다.
누구든 현실을 왜곡하게 생각하게끔 하는 강력한 일종의 카리스마 장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가 말하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저항할 수 없는 잡스식 흡입력이 이른바 현실왜곡장이다.
현실 왜곡장을 거꾸로 말하면,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현실 왜곡장에 빠지는 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잡스의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열정이 만들어낸 잡스의 흡인력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방식과 전달하는 열정이 모든 사람을 사로잡는다.
잡스는 야전 사령관처럼 보인다.
뒷짐 지고 앞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대부분의 CEO와 달리 상황을 돌파해 나가기 때문이다.
아이폰4의 수신 불량을 해명하는 자리에 선 건, 잡스였다.
물론 대부분의 스포트라이트도 그가 받지만, 욕도 그가 먹는다.
강함과 부드러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이 바로 잡스의 강점이다.
기업은 창업자의 DNA를 계승한다.
애플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창업자인 잡스의 유전자가 반영된 기업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애플의 주식에 잡스 프리미엄이 있는 것처럼.
'한 가지 더(one more thing)'
잡스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잡스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잡스는 초콜릿과 같다.
내 몸에 나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정말 그가 좋다.
그래서 집에는 두려하지 않는다.
나는 잡스 주위에 있는 것이 좋다.
그가 세계의 중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잡스의 에너지는 반지름 10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열광시키지만,
반지름 5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게 만든다.”
"죽음에 관한 잡스의 이야기"
인생의 절정기를 달리던 잡스에게 찾아든 건, 병마였다.
2004년 어느 봄날 잡스는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아침 7시30분에 시작해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된 검사에서 그는 암 진단을 받는다.
췌장암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다.
의사들은 “앞으로 살 날이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 날 저녁 잡스는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다시 받았다.
잡스가 마취상태에서 깰 때쯤 그의 아내 로렌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해준다.
"여보, 당신은 살 수 있어요. 수술이 가능하대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잡스의 췌장암은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형태의 종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들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병마를 이기고 애플에 다시 복귀한 잡스가 선보인 것이 바로 아이폰(iPhone)이다.
2007년 1월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여느 때처럼 청바지와 검정색 긴팔 셔츠를 입은 잡스가 등장했다.
잡스의 등 뒤 스크린에는 아이팟과 닮은 제품 하나가 떴다.
잡스는 “혁신적인 제품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며 아이폰을 선보였다.
이날 애플은 회사이름을 ‘애플컴퓨터’에서 ‘애플INC'로 바꾼다.
더 이상 컴퓨터로 자신의 정체성을 한정시키지 않고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의미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기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아이폰의 성공가능성을 낮게 봤다.
애플은 이동통신에 전혀 경험이 없었다.
기술도, 기술자도, 생산시설도, 판매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애플이 아이팟을 히트시키며 컴퓨터 이외 분야에서도 성공했지만, 휴대폰은 다른 제품이었다.
좋은 품질과 잘 갖춘 유통망이 있으면 팔리는 컴퓨터나 아이팟과는 달리,
휴대폰은 이동통신회사라는 파트너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파트너는 제조업체에 있어 ‘울트라 갑’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와 협상을 벌여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개발의 모든 권한은 애플이 갖고, 통신료 매출액도 애플과 나누어 가지며, 로고나 디자인도 애플이 맡는다는 조건이었다.
심지어 아이폰의 시장 가격부터 A/S 방식, 광고까지 애플이 결정하도록 했다.
AT&T는 애플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주는 굴욕에 가까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AT&T는 미국 최대 통신회사였지만 1위 이미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로 업계를 이끌어 온 회사는 2위인 버라이존이었다.
AT&T는 아이폰으로 혁신이라는 이미를 높여 젊은이들에게 다가서고 싶었다.
아이폰은 PC와 인터넷 중심의 세상을 모바일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애플은 거대한 자본과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통신시장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무혈입성 하듯 간단히 휴대폰 회사들을 제압했다.
“혁신은 앞서가는 자와 뒤따르는 자를 구별시킨다”는
그의 말처럼, 전 세계 IT업체들은 애플을 뒤쫓아 가기 바빴다.
휴대폰 개발 경험도 없고 생산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잡스가 아이폰을 성공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창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기존 휴대폰 회사들은 휴대폰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휴대폰 통화품질을 경쟁했고, 화상통화 같은 각종 기능에 집착했다.
하지만 잡스는 달랐다.
휴대전화가 아닌 PC를 휴대폰처럼 들고 다닌다는 역발상을 했다.
자신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깔 듯 휴대폰에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까는 재미를 넣어 준 것이 히트의 원동력이었다.
또 다른 성공요인은 고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장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바로 아이폰의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App Store)다.
애플 앱스토어는 고객 참여를 유도하고 응용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풍부해 아이폰의 인기를 높이고 있다.
잡스가 창조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앱스토어엔 컴퓨터를 만들었던 애플의 DNA도 녹아 들어가 있다.
전통적으로 컴퓨터 회사들은 제품만을 내놓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업그레이드를 한다. 앱스토어 역시 팔고 나면 그만이라는 보통의 제조업과는 다른 접근방식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병마는 다시 그를 찾아왔다.
2009년 잡스는 병이 재발하면서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는 생사를 오고가는 상황에서도 병실에서 아이패드 개발을 점검했다.
그가 병가로 자리를 비운 2009년 1월 애플 주가는 주당 78.2달러로 저점을 찍었다.
2010년은 잡스의 해가 됐다.
잡스는 아이폰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아이패드를 선보여 태블릿PC 시대를 열었다.
휴대폰 업체들이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애플을 따라 붙자 아이패드로 전선을 넓혀나간 것이다.
잡스는 가정(애플 TV)이든 사무실(아이패드)이든 이동할 때(아이폰, 아이팟)든
모든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쓸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허브 전략인 셈이다.
애플은 2010년 5월26일 뉴욕 증시 종가 기준으로 2221억달러(278조원)를 기록해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쳤다.
그 뒤 애플은 3분기에 203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마이크소프트(162억달러)를 다시 한 번 추월했다.
그해 12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올해의 인물’로 잡스를 선정했다.
2005년 6월 12일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쾌청한 봄날이었다.
잡스는 이날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축사를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3가지를 얘기한다.
인생의 전환점, 사랑과 상실, 그리고 죽음이다.
잡스는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지구백과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갈구하라,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제 자신에게도 늘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갈구하라, 우직하게”
대학중퇴 뒤 마음을 못 잡고 하릴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그가,
애플을 세운 집 차고에서 본 그 책에 나온 말이었다.
잡스의 창의와 도전, 열정을 담은 말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