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은 무엇인가?
지난 8월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연재기사를 지역신문에 실으면서 겪었던 헤프닝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기획연재기사를 실으며 지인들에게 신문을 나눠드렸습니다. 그 중 아는 후배들에게도 신문을 건냈는데, 대뜸 이런 말을 하더군요. "형, 신문이 잘 못 나왔어요. 형 이름이 이도건인데, 이동권이라고 나와 있네요?" "ㅋㅋㅋ"
기획기사 부제가 "더불어 사는 용인을 위한 이동권 이야기" 였는데, '이동권'에 개념이 없던 후배가 제 이름이 잘 못 기재된 줄 알고 그렇게 말한 것이지요.
사실 이동권은 다소 생소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90년대 초반 이후 아파트 밀집지역의 소송등으로 "조망권""일조권" 등의 권리에 눈을 떴던 것처럼 침해 받지 아니할 때는 아무리 기본권적 권리라도 인지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리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의 권리침해와 권리배제가 현실로 존재하기에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권리보장에 대한 실질적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동권은 말 그대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옛날 모 방송 카피에서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가 생각나는 군요. 저는 이 순간 "사람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움직여야 합니다. 생명은 움직여야 합니다. 인간군집이 그 생존과 번영을 위해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냈다면 사회와 국가는 그 구성원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이동권은 바로 그 인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이동권(rights of mobility) 은 흔히 접근권(rights of accesibility) 함께 쓰이기도 하는데, 접근권의 하위개념으로써 쓰이기도 합니다. 접근권은 이동권 보다 좀 더 광의적인 개념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활동할 수 있는 정보접근권, 건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인 시설접근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인 이동권을 그 권리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접근권에서 말하는 이동권이란 대중교통 등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이동권이란 단순히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이기 보다는 인격체로써 사회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기본적 수단이 되는 이동에 대한 포괄적인 권리를 의미해야 할 것입니다. 고로 광의로 보았을 때 접근권의 개념과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동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얼마전 이동권과 관련된 세미나를 하는데,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할 때 문제점을 말해 봅시다.'란 말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연애를 못합니다." 모두들 박장대소 하였는데, 그분은 꽤 진지하게 그 사례들을 말씀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웃고 넘어갈 문제만은 아닌 것이, 이렇듯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인간관계' 전반에 걸쳐 많은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여 쇼핑과 정보검색은 물론이고 교육, 직업활동까지 부분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삶의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인간과 인간의 접촉, 대응의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교육, 노동, 운동, 친교... 모든 삶의 영역에서 배제되고 분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장애인의 60%이상은 중학교 이하의 교육을 받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용인시에서 성인 남성 중 중학교 이하 학력 인구가 2만5천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3%에 해당되는 것을 비교하였을 때 그 수치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통계는 물론 등록 장애인에 의한 것일 뿐 아니라, 2만 5천여명의 인구 중 장애인 포함 인구까지 생각한다면 비장애인과 장애인과의 교육차이에 대한 산술적 평가가 얼마나 안타까운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교육차이는 감히 '이동권'에서 부터 그 시작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그 기본이 되겠지만 일단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학교' 그 자체를 갈 수 없다는 현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동권이 확보되지 못하면 노동에 있어서도 장애인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실업인구가 전체인구의 4%내외인 점을 고려하고 정부의 2%의무고용정책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장애인 실업률 22%의 통계는 사실 엄청난 숫자도 아닙니다. 어쩄든 실업에 의한 경제적 자립실패와 사회에서의 배제는 사회적 장애의 연속으로 이어져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고착되게 하는 모순고리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이 이뤄지지 못하는 부분의 근본은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여서라고 생각됩니다. 저의 경우 2007년 부터 2008년 초까지 영양사일을 하였었는데, 사실 제게 자가용이 없었더라면 직업활동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가용으로 불과 20분 거리인 학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는 것이라고는 콜택시를 부르는 방법 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동휠체어는 옥내에서의 활동이 어렵고 밧데리 한계가 있어 장기이용이 불가합니다.) 출퇴근과 업무에 필요한 이동에 있어 매번 콜택시를 이용했더라면 아마 저는 버는 돈의 1/3이상을 콜택시 비용으로 지불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사회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교육과 노동이 안됩니다. 생산과 창조의 주체로써 제역할을 해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2005년 통계에 의하면 등록 장애인 중 50%이상이 매월 5회 이하의 외출을 한다고 합니다. 경증 장애인을 제외하고 중증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수치는 또 얼마나 안타까운 결과를 보여줄까요? 실제 제게 당장 자가용이 없다면... 아마 저는 전동휠체어가 허락하는 그 행동반경 외에는 전혀 외출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당장 자가용이 없는 분들의 이동에 권리배제가 얼마나 처참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멀리 보기 이전에 우리 수지구의 1700명 중증장애인들이 아마 그러할 것입니다.
장애인 사회참여의 시작은 이동권 확보에서 부터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장애인 정책을 보면 예전에 비해 상당히 나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참여와 많은 대안제시를 통해 지속적인 담론화 과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여전히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벗어던지지 못한 면이 많습니다.
얼마전 어떤 분께서 지역의 한 단체에서 '불우이웃돕기'행사를 한다고 하여 우리센터를 소개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불우이웃"=장애인 으로 이어지는 우리사회 인식의 저변에 실소를 금할 수 없기도 했지만, 결국 장애인의 사회배제와 이로 인한 '장애'의 고착은 바로 이동권의 부재에서 부터 시작된 교육, 노동의 권리 배제에서 기인한 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 장애인 복지관과 시의 각종 정책은 장애인을 위한 여러 복지 사업들을 진행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근본적으로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한 피상적이고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우선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동권 보장이 필수적입니다.
한국의 장애인운동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추락사고를 촉발된 이동권 투쟁에서 부터 보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성장하여왔습니다. 교약자 이동편의증진법 제겅과 특수교육법 개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이어지는 장애인 권리 보장의 여정은 장애인 인권을 우리 사회의 의무로 규정해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장애인운동계에서는 장애인 주거권, 장애인연금 등 장애인들의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들이 일고 있습니다. 정말 꼭 필요한 과정들이고 성취해야할 권리들입니다. 하지만 서울 등 몇 몇 광역단위 도시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체 지역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이동수단이 거의 전무한 상황과 법의 미비로 인한 이동권 보장정책의 허점이 노출되는 상황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혹은 운동)은 반드시 함께 가져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수지IL센터는 '통합사회를 만들어 가는 여정으로 그 시작을 장애인의 사회 참여'로 설정하였습니다. 우리센터의 본디 목적은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인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이 분리*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접촉하고 소통하여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 장애인의 사회참여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필수 중에 필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장애인의 사회참여, 자립생활, 나아가 통합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센터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지난 8월 부터 진행해온 용인시 및 경기도 이동권조례 제정운동이 계속 진행중에 있습니다. 아직 지자체 집행부와 의회의 인식전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당사자들의 노력 또한 더욱 강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12월 눈이 와서 휠체어 타기 가 조금 난감한 날
- 수지IL센터 소장 이도건 -
첫댓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장애인복지에 대한 정책과 실천방안들이 몇십년 동안 개발, 실행되고 장애인들을 위한 단체들도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가장 기본적인 '이동권'에 대한 보장이 되지 않고 있으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함께 어울려 생산하고 배우면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소장님의 말씀처럼 '이동권'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