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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형산강 지구대 지질관광 원문보기 글쓴이: Thomas도마박물관
형산강 지구대 관광 해설 자료 (15 - 창 1)
제목 : 형산강 지구대 지질관광의 기초 상식
1. 인사
안녕하세요.
먼저 지질 관광을 할 수 있도록 지질을 연구해 주신 지질학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2010년 지구과학1 교과서의 33페이지에 '지구생물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을 조사해 보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를 참고 자료로 사용하여 지질을 설명 드립니다.
그리고 창조론도 사용합니다.
창조론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연구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영국의 BBC 방송이 죽기 전에 가서 보아야할 관광지 50 곳을 발표하였습니다.
1위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2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입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20위, 이탈리아의 로마는 35위입니다.
대한민국의 관광지는 50위 안에 한 곳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BBC 방송은 50 위까지 순위를 정하면서 실크로드의 관광지를 넣지 않았습니다.
만약 육상의 실크로드와 해상의 실크로드를 포함 했다면 실크로드의 관광이 1위와 2위가 되었을 것입니다.
BBC 방송이 실크로드의 관광지를 관광 순위 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크로드를 있게 한 지구대의 지질관광을 소개 합니다.
형산강 지구대의 지질관광은 세계 관광랭킹 2위입니다.
2. 지구 대부분의 지질은 석회암과 화산암 지질
지구에 있는 땅들은 처음 바다 속에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1:2)
지구의 대륙은 바다 속에서 석회암이 되었다가 육지로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9)
바다에서 나온 육지는 처음에 바다도 하나였고 땅도 하나였다는 내용이 고등학교 지구과학1 교과서의 84 - 85 페이지에 있습니다.
하나였던 대륙이 현재와 같은 5대양 6대주가 되었습니다.
석회암의 땅을 카르스트 지형이라 합니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중국의 장가계 등 카르스트 지형은 험하고 척박합니다.
일본, 미국 하와이 섬 등은 화산으로 생긴 지질입니다.
제주도, 울릉도, 백두산도 화산암 지질입니다.
화산 부근에 온천 관광지가 많습니다.
활화산의 분화구는 좋은 관광 자원이지만 관광하기 위험 합니다.
3. 퇴적암 지질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선물입니다.
나일강으로 내려온 퇴적층에 농사를 지어 문화를 이룬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대한민국에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상남도에는 금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김해가 있습니다.
김해평야를 포함한 김해시는 옛날에 바다였습니다.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김해 경전철을 타고 가면서 지질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김해시에 퇴적된 엄청난 흙은 경상분지 위에서 태어난 낙동강이 가져다 준 선물입니다.
3 세기에 김해 바다가 김해평야가 되었습니다.
가야국은 3 세기에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가야국 역사의 신비를 푸는 열쇠는 지질과 지형의 변화입니다.
대한민국에는 낙동강이 김해바다를 김해평야가 되게 한 것과 같은 퇴적지가 있습니다.
경상분지는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에 퇴적된 땅입니다.
경상분지는 육성층 퇴적암으로 깊이 10Km, 넓이는 경상남북도 넓이입니다.
이 엄청나게 퇴적된 흙은 어떤 강이 가져다 준 선물일까요?
경상분지의 육성층 퇴적암은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쌓여서 누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경상분지의 누층군에서는 지구 생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화석이 많이 발견됩니다.
화석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어서 추정만 가능 합니다.
추정 이론은 학자마다 학설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나와 다른 학설이 학문의 발전을 가져 오기도 하므로 상대방의 학설을 존중해야 합니다.
또한 확실한 연구 자료와 검증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
4. 경상분지의 뼈대인 영남 육괴는 화강암
사람에게 등뼈가 있다면 한반도에는 백두대간이라는 뼈대가 있습니다.
백두대간은 북으로는 러시아의 시호테알린 산맥과 연결 되어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으로 뻗어 나가서 중국 남쪽에 있는 우이산맥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
태백산과 지리산을 포함한 소백산맥에는 영남육괴라는 경상분지의 뼈대가 있습니다.
영남육괴는 고생대에 생겼습니다.
태평양판과 유라시아 판이 충돌하는 지진과 화산 폭발이 한반도 동쪽 해상에서 일어 났습니다.
쓰나미가 한반도를 강타하였습니다.
그 때는 소백산맥과 중국의 우이산맥 사이 즉 서해(황해)가 되어 있는 바다에도 산맥이 있었습니다.
5. 경상분지의 퇴적암 지질
대한민국의 경상분지는 중생대의 육성층 퇴적암입니다.
육성층 퇴적암이란 강에서 떠내려 온 흙이 퇴적된 것입니다.
경상분지의 엄청난 흙은 언제 어디서 어떤 강으로 왔을까요?
경상분지는 중생대에 생겨난 땅입니다.
소백산맥과 우이산맥이 연결되어 있을 때 중국의 황하강과 양자강물이 모두 경상분지로 내려 왔고 토사가 퇴적 되었습니다.
당시의 경상분지는 늪지대 같았으며 땅이 비옥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초식 동물이 살았습니다.
경상분지에 공룡 발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대한민국 경남 고성군에 공룡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상분지에는 기후로 인하여 공룡뼈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경상분지의 공룡발자국과 몽골의 공룡뼈 발견을 연계하여 공룡지질 관광을 활성화 할 수 있습니다.
경상분지는 약용식물을 기르기에 적합한 토질입니다.
6. 경상분지와 형산강 지구대의 지질관광
포항, 경주, 울산은 신생대의 지질입니다.
형상강 지구대는 동쪽으로 화산암 서쪽으로 퇴적암 사이에 있습니다.
7번 국도를 따라가면서 형산강 지구대의 지형을 볼 수 있습니다.
형산강 지구대는 연일분지, 안강분지, 경주분지, 울산분지 등을 만들었습니다.
형산강 지구대의 땅은 낮은 곳에 위치하여 항상 풍부한 물을 머금고 있어서 기원전부터 벼농사를 가능케 하였습니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의 종점인 경주도 형산강 지구대에 있습니다.
포항의 천곡사 층은 바다의 조개껍질 화석이 나옵니다.
포항의 퇴적암(떡돌)에는 나뭇잎 화석이 많이 있습니다.
포항의 달전리, 경주의 양남면 주상절리는 화산암입니다.
7. 쓰나미 위험이 없는 형산강 지구대
경상분지는 바다에 퇴적된 땅으로 바다의 매립지처럼 해발고도가 낮습니다.
형산강 지구대에 큰 쓰나미가 온다면 내륙 깊숙한 곳까지 피해를 입습니다.
일본의 땅은 쓰나미를 막아 줍니다.
2011년 일본 동북부에 일어난 9.0의 지진으로 40m 높이의 쓰나미가 있었습니다.
그 쓰나미는 엄청난 재난을 가져왔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고장 나게 하였습니다.
만약 일본 땅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동해안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 했을 것입니다.
일본은 신생대 제4기에 한반도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 때 동해가 넓은 분지 형태로 되었습니다.
지진대는 일본 열도에서 중국 쓰촨성 쪽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한반도는 지진의 안전지대입니다.
경산분지는 세계에서 가장 편안히 쉬고 질 좋은 음식을 먹고 오묘한 지질을 관광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형산강 지질 관광을 누구나 한번 이상은 꼭 하시도록 권합니다.
형산강 지구대의 지질관광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필수 지식도 제공해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조국현 드림 ( 지질관광 가이드, 스토리텔링작가, 역사발굴 관광자원화 연구소장, 박사, 교수, 영남 외국어대학 운영학술위원장, 이철우 국회의원에게 자료를 제공하여 2010년 지구과학1 교과서 대폭수정, 010-4391-4006 )
형산강 지구대 지질관광 해설 자료 ( 15 - 창 2 )
제목 :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1.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
AD 157년 사로국(신라)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 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포항에 연오라는 신랑과 세오라는 아내가 살았습니다.
연오라는 이름의 한자는 늘일 연, 까마귀 오입니다.
연오의 오는 검다는 뜻으로 철이 검기 때문에 붙인 이름입니다.
연오라는 이름은 포항 제철소에서 사용하는 직함 이었습니다.
연오는 포항에서 무쇠를 쳐서 늘이는 포항제철의 단야장 이었습니다.
세오라는 이름의 한자는 가늘 세, 까마귀 오입니다.
세오의 오는 연오의 아내이어서 오자를 사람들이 붙였습니다.
세오는 고운 비단을 짜는 기술자였습니다.
포항은 현재도 포항제철소로 유명하지만 사로국(신라) 때도 제철소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변성 광상인 울산 달천동에서 캐낸 철광석을 배로 운반하여 포항에서 제철 하였습니다.
사도 도마가 AD 42 - 48년까지 실크로드의 땅 끝 나라 한국(가야국)에서 활동 하였습니다.
사도 도마는 울산과 포항 등에 우수한 강철 기술을 가르쳐 주고 울산에는 굴아화교회, 포항에는 퇴화교회를 세웠습니다.
2. 일본으로 간 연오랑
연오랑이 휴일날 바다에 가서 해조류를 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바위를 실은 일본 배가 다가왔습니다.
그 배에는 검은색 철광석 바위가 있었습니다.
연오랑을 데려가서 일본에서도 제철소를 세우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제철 기술은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연오랑이 일본에 가서 제철의 기술을 가르쳐 주면 큰돈을 벌게 해주고 높은 벼슬도 준다고 일본인이 말하였습니다.
연오랑은 철광석 바위와 함께 일본으로 갔습니다.
연오랑은 일본에 가서 제철 기술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연오랑에게 비상한 기술을 가져온 사람이라며 소왕국 왕의 벼슬을 주었습니다.
그 왕위는 군수쯤 되는 벼슬 이었습니다.
3. 일본으로 간 세오녀
남편 연오랑이 실종되어서 세오녀는 애간장이 탔습니다.
마을마다 찾아 다녔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세오녀는 포항에 있는 퇴화교회에 가서 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발 제 남편 연오랑을 찾게하여 주세요.
만약 제 남편을 찾는다면 고운 비단을 바치겠습니다'
퇴화교회에서 세오녀의 친구도 같이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세오녀는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여 해맞이 바닷가에 갔습니다.
해맞이 바닷가의 바위에서 남편이 신던 신발을 발견 하였습니다.
세오녀는 그 날부터 신발이 발견된 그 바위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남편을 데려 갔던 그 일본배가 세오녀에게도 왔습니다.
일본인은 세오녀 남편의 모습과 그가 일본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세오녀는 남편이 있는 일본으로 갔습니다.
세오녀는 일본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왕비가 되었습니다.
4. 사로국(신라)의 위기
경주에 있는 사로국(신라)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포항에서 제철하여 형산강으로 들어오던 철기가 중단 되었습니다.
왜 그런가 알아보니 연오랑이 제철의 특급 비밀을 가지고 일본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가야국이 철의 왕국으로 가야인들은 철기 만드는 천재들로 알려졌습니다.
울산, 포항, 경주도 철기문화는 가야국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비밀이 일본으로 넘어 갔으니 큰 충격이었습니다.
왕이 신년 해맞이 행사와 기상을 담당하는 신하인 일관에게 말하였습니다.
'일관, 요즈음 우리나라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있소'
일관이 대답 하였습니다.
'해와 달과 같은 우리나라의 제철 기술이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포항제철소의 불이 꺼져 있습니다
별과 같던 일본이 이제 자기들이 해의 본고장이라며 일본이라 하고 있습니다'
왕은 한탄하며 말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특급 제철 기술이 일본으로 넘어 갔으니 어찌한단 말이오
우리나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소
일본이 해의 본국이라 하는데 이제 어찌 포항에서 신년 해맞이 행사를 할 수 있겠소
연오랑이 제철의 특급 기술을 가지고 일본으로 간 장소가 하필이면 해맞이 장소이니 어찌 국민과 함께 그 곳에서 해맞이 행사를 한단 말이오
사도 도마가 지구의 동쪽 땅 끝이라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던 포항의 호미 곶에서 해맞이 행사를 할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5. 연오랑이 말하는 하늘의 뜻
사로국(신라)의 왕이 일본에 있는 연오랑에게 신하를 사절단으로 보내었습니다.
연오랑은 사절단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일본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오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일본 사람에게 제철 기술을 알려 주고 교회도 세워 주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나는 생각 하였소
사도 도마가 한국에 제철 기술과 교회를 세워 준 것처럼 나도 일본에 그렇게 해주는 것이오'
사절단은 연오랑에게 말하였습니다.
'연오랑님의 하늘 뜻을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하오나 지금 포항제철소의 불이 꺼져 있습니다
사로국(신라)의 해가 빛을 잃고 일본의 해가 빛나기를 원하십니까'
연오랑은 사절단에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왕비가 되어 있는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을 가져가서 하나님께 바치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 문제가 풀릴 것이오'
사절단은 연오랑과 세오녀가 주는 비단을 받아 왔습니다.
6. 비단 속의 비밀
사절단이 돌아왔습니다.
왕에게 비단을 드렸습니다.
왕은 포항의 퇴화교회에서도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일본에 갔던 사절단이 연오랑과 세오녀가 주는 비단을 받아 왔다는 소식을 퇴화교회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오녀의 친구가 그 비단에는 비밀이 적혀 있을 것이니 비단을 펼쳐 보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비단을 펼치자 다음과 같은 비밀이 적혀 있었습니다.
'포항제철의 불을 다시 붙이십시오.
포항제철에서 사용하는 울산의 달천동 철광석에는 비소가 들어 있습니다.
비소가 있는 철광석을 청동과 합금 하십시오.
그리고 철은 무거우니 배로 운반 하십시오.
경주와 울산은 형산강과 태화강이 끊어져 있어서 등짐으로 철광석을 운반해야 하므로 너무나 힘듭니다.
그래서 사도 도마는 울산에서 포항으로 철광석을 운반할 때 배를 사용 하였습니다.
포항에서 생산된 강철과 철기 제품을 경주로 쉽게 운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형산강의 하구는 밀물 때에 병목현상이 일어납니다.
시간 맞춰서 배를 띄우면 경주까지 철제품을 운반 할 수 있습니다'.
비단에 쓴 위의 글은 당시의 비밀사항이어서 전설 기록에는 없습니다.
7. 지명으로 남은 연오랑과 세오녀의 영일현과 도기야
포항제철은 이전처럼 불이 붙었습니다.
사로국(신라)의 해와 달도 이전처럼 되었습니다.
비밀이 적혀 있는 비단을 국보로 정하여 귀비고에 보관 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려서 국력을 되찾은 것을 잊지 않도록 포항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영일현은 해와 낮을 의미하며 연오랑을 기념한 지명입니다.
도기야는 달과 밤을 의미하며 세오녀를 기념한 지명입니다.
영일현의 영일은 해를 맞이한다는 해맞이 장소의 뜻이 있습니다.
호미곶에는 '영일만 친구'라는 근래에 세운 노래비도 있습니다.
연일읍은 연오랑과 해맞이 장소의 뜻이 있는 지명입니다.
도기야는 야외에서 기도하는 도읍지라는 뜻으로 도구동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도기야에서 기도한 결과로 일월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일월동 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AD 157년 사로국(신라)에 있었던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지명으로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2000여 년 전 포항에 제철소가 세워졌었는데 다시 현재에도 포항제철소가 세워져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형산강 지구대가 만들어 준 천혜의 입지 조건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입니다.
형산강 지구대의 형산강 하구에 포항이 있습니다.
포항의 이름에는 강의 포구와 바다의 항구가 있습니다.
포항은 바다처럼 넓은 강과 강처럼 좁은 바다가 겹쳐진 곳입니다.
포항의 수심은 20m로 예나 지금이나 제철소가 세워지기 가장 좋은 조건입니다.
사도 도마는 형산강 지구대를 퇴화라고 하였습니다.
퇴는 한자로 물러날 퇴이며 땅이 물러났다는 것은 단층으로 내려앉은 지구대의 지형적 특징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화는 한자로 불화이며 제철의 불을 의미 합니다.
퇴화라는 한자는 AD 757년 신라 경덕왕 때 고유어를 한자화한 것입니다.
퇴화를 AD 757년 이전의 고유어로 추정하면 '물러난 땅의 불' 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안선이 단조롭고 산이 많은 동해안에 어떻게 이렇게도 색다른 지질이 있나요?
형산강 지구대는 동해안에 강과 평야를 만들었습니다.
형산강 지구대는 지구의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의 동쪽 땅 끝을 만들었습니다.
형산강 지구대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오묘한 지형입니다.
형산강 지구대의 지질 관광은 관광 랭킹 세계 2위가 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 참고 사항 : 연오랑과 세오녀의 조형물은 대한민국 포항시 호미 곶 해맞이 광장에 있습니다. 앞에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동상이 있습니다. 뒤에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삼국유사에 기록된 한자와 한글 번역이 있습니다.
글쓴이 : 조국현 ( 스토리텔링 작가, 역사발굴 관광자원화 연구소장, 박사, 교수, 영남 외국어대학 운영학술위원장, 이철우 국회의원에게 자료를 제공하여 2010년 지구과학1 교과서 대폭수정, 지질관광 가이드, 010-4391-4006 )
형산강 지구대 관광 해설 자료 (15 - 창 3)
제목 : 노아 홍수와 해수면의 112m 상승
1. 노아 홍수 때 바다에 잠겼던 해저 도시를 찾았습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었고 도시와 농경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는 방주에 들어갔던 8명만 살아남았습니다.
※ 자료 : 노아 방주와 8식구의 뜻인 한자 배 '선'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 3 : 20)
노아 홍수 때 바다에 잠겼던 해저 도시와 농경지를 스쿠버 다이버가 바다 속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고고학과 역사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 자료 사진 : 바다에서 해저 도시 측량
2. 노아 홍수로 높아진 해수면과 노아 홍수의 때
노아 홍수 이전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12m 아래에 있었습니다.
해수면 변화는 스쿠버 다이버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파식대를 측정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일본인 스쿠버 다이버가 해수면의 112m 아래에서 파식대를 확인하는 그레이트 네이처 방송을 보았습니다.
현재의 해수면 파식대와 112m 아래의 파식대 사이에는 파식 흔적이 없습니다.
이는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서서히 상승한 것이 아니라 노아 홍수로 일순간에 상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경 기록의 노아 홍수 때와 고등학교 지구과학의 해수면 변화의 때(8천 년 전) 추정 자료는 마지막 빙하기로 시기가 비슷합니다.
3. 노아 홍수 이전에 있었던 한반도 서해의 마 문명
해수면이 높아지기 전 한반도의 서해(현재 평균 깊이 44m)는 모두 육지였고 마 문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합니다.
마 문명은 서해가 탁한 물(황해)이어서 지금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 자료 : 서해의 마 문명을 그린 지도
일본 오끼나와 섬의 앞 바다는 맑기 때문에 스쿠버 다이버가 바다 속에서 노아 홍수 이전의 도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자료 : 해저 고성이 발견된 곳의 지도
1만 년 전의 피라미드, 직각계단, 사람 머리 모양의 석상이 바다 속에 있습니다.
※ 자료 사진 : 스쿠버 다이버가 해저 고성 확인
특히 해저 도시에서 상형문자와 농경지를 발견하여 역사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 자료 사진 : 해저 도시에서 발견된 상형문자
역사학계는 인류가 문자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지금부터 5천 년 전이라고 보고 있으며 문자 이전 시대를 선사시대라고 합니다.
이제 노아 홍수 이전의 역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4. 노아 홍수 때 일순간에 많은 비가 내린 이유
지구의 모든 물중의 97 퍼센트가 바다물(짠물)이고 3 퍼센트가 담수(민물)입니다.
담수의 대부분은 빙하와 지하수입니다.
호수, 강, 토양, 대기의 물은 0.03 퍼센트 인데 이 물이 비가 되어 내려서 과연 해수면을 112m 높일 수 있었을까요?
노아 홍수 때 일순간에 엄청난 량의 비가 내린 이유는 빙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노아 홍수 때는 마지막 빙하기였습니다.
빙하기의 빙하가 가진 물(담수)의 량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면서 빙하가 녹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화산 폭발로 빙하가 녹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빙하가 녹을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노아 홍수 때에 해안선이 112m 높아지는 것이 가능 합니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쏱아 졌더라' (창 7:11-12)
노아 홍수 때 빙하 아래에서 땅 속에 있던 불덩어리 같은 마그마가 올라오면 빙하 녹은 물이 샘처럼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화산들이 터져서 그 열로 많은 수증기가 계속 올라가 비되어 내린다면 하늘에서 창문들이 열린 것 같은 폭우가 40일을 밤낮으로 내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시와 농경지가 일순간에 바다 물에 잠겼을 것입니다.
모든 산이 물에 잠기고 물이 빠지는 기간이 150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바다 해수면이 112m 높아 졌을 것입니다.
5. 해저 도시 탐사 프로그램
현재 해수면의 112m 아래에 있는 파식대를 확인 하려면 석회암 섬들 중에 3m 깊이로 깎인 파식대가 있고 해수면 아래 수직 절벽으로 되어 있는 섬으로 가야 합니다.
노아 홍수로 인한 해수면의 변화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기 원합니다.
노아 홍수 이전의 도시와 농경지를 탐사하는 프로그램도 가지기를 원합니다.
바다 속에 잠겨 있는 해저 도시들과 농경지에 대하여 성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 : 37 - 39)
※ 참고 사항 : 위의 자료와 사진들은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조국현 ( 가이드, 역사발굴 관광자원화 연구소장, 스토리텔링 작가, 박사, 교수, 영남 외국어대학 운영학술위원장, 이철우 국회의원에게 자료를 제공하여 2010년 지구과학 교과서1의 대폭수정, 010-4391-4006 )
※위에 실린 글의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스토리텔링 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낭독하여 주십시오. 만약 글의 일부를 사용하고자 하여도 동의(임원주 스토리텔링 작가, 010 4223 1595)를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