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골 개구락지
김 형 식
골짜구니가 울고 있다
장꼬방에 개구락지* 한 마리 울기 시작 하더니 뒤란이 받아 울고 앞산이 받아 울더니 이제는 정금산 골짜구니가 울기 시작 한다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고 또 백이 천이 되는 개구락지 울음소리
어둠이 내리자 두 눈에 불을 켜고 다시 떼로 울음 울어 하나가 되고 봇물 터지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 횡성 섬강으로 흘러 들어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다시 만나 한강이 되고 한강은 이 땅에 굶주린 이들의 밥 짓는 소리로 빈 솥뚜껑을 여닫으며 수틀리면 때로는 하늘을 찢어 천둥소리 냈다는 것을 산속에 들어와서 십년하고도 또 수년을 지나고 서야 겨우 이제 알아냈다
天地가 개구락지 우는 소리다
경첩이 지나고 또 이레가 되는 어제 밤 정금산 개구락지 두눈에 불을 켜고 울음 울어 떼로 울다 스러져 열아홉 번째
광화문 촛불로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태극기 눈물도 그곳에 있었다
이 땅에 봄은
이렇게 해서 오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청와대 뒷문이 열리는 날이었다.
*개구락지:개구리의 강원도 방언
반야선般若船
깊은 밤 *포행布行 중에
보리수에 눈이 간다
그믐달 바랑 메고, 산을 넘어 바쁘다
하안거 스님들께 시주 하려 가시겠지
저희들 세속 인연
업장이 지중하여
이렇게 대중공양 보리수로 대신 하니
스님들 이 시주물 받으시고
하루속히 확철대오
모든 이 제도 하여 주시옵소서
발원합니다
이생에 공부 끝내고
반야선 타고 가겠습니다
그믐달 바랑 메고 산을 넘어 바쁘다.
* 포행布行:스님들 참선 하다 잠시 방선 중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그리움에 기대어
-백석 시 <흰 바람벽이 있어>와 윤동주 시 <별 헤는 밤>의 화답 시
우리들의 인연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졌습니다
그때도 별은 빛나고 달빛은 적요하고 나뭇잎은 떨어졌습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
가을이 지나가는
뜨락에는 낙엽이 분분합니다
낙엽을 줍고 있습니다
뜨락에 흰 바람벽이 있어
낙엽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낙엽 하나에 詩와
낙엽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저는 오늘 저녁
정문골 토굴에서
내 무릎 위에 당신을 누이고
낙엽 하나에 소중한 이름 하나씩 불러봅니다
먼 곳에 있는 친척들의 이름과 은사님의 이름과 선후배 친구들의 이름과 진즉 할머니가 된 들꽃 계집애들의 이름과
나의 사랑 딱새의 이름과 가난한 농어촌 이웃들 이름과 강아지, 송아지, 게, 고동, 초승달,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
아 릴케와 이들을 흠모했던 백석과 백석을 좋아했던 윤동주∽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임들은 오늘따라 더욱 가까이 있습니다
동산에 보름달 솟아오르듯이
찔레꽃과 초승달 딱새와 흰당나귀가 스쳐 지나갑니다
어머니 어머님은 항상 저와 함께 하십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
임들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임들의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일
까요
무엇인지 그립고 허전합니다
나를 깨우는 저 귀뚜리 울음소리는
부끄러운 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낙엽이 썩어 봄이 오면
내 뜨락에 소중한 님들의 흔적
파랗게 다시 돋아날 것이외다.
김형식
시인, 문학평론가, 전남 고흥, 필명 인묵印默, 전남대농경제학과(졸), 무불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재가불자(성철스님 몽중상좌) 현대문학 창작입문강좌이수(1969). 《불교문학》(2015) 시부문 등단(〈그림자 둥지〉 외 4편), 《한강문학》(2020) 평론부문 등단(시성詩聖 한하운의 시詩 〈어머니〉에 대한 소고), 대표작:〈그림자의 둥지〉, 〈무엇을 쓸고 있는가〉, 〈봄비〉, 〈반갑다, 초승달〉, 〈애호박〉 외, 시집:《그림자 하늘을 품다》, 《오계의 대화》, 《광화문 솟대》, 《글, 그 씨앗의 노래》, 《인두금의 소리》, 《성탄절에 108배》, 《침묵이 입을 열다》 외, 수상:한국청소년문학대상, 한국창작문학대상, 시가흐르는 서울 제2회 문학대상 등, 고흥문학회 초대회장, 詩聖한하운문학회 자문위원장, 《보리피리》 편집주간, 한국문인협회 개선위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매헌 윤봉길사업회 지도위원, 불교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강문학 편집위원, 시가흐르는 서울 문학상선정위원장, 창작문학 문학상심사위원, 사)대한민국문학메카본부 회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