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은 이념으로 굳어 있고, 내용은 계몽적이고, 주제는 교육적이었다. 또한 단어는 구식이고, 문장은 북한식이고, 구성과 전개는 고리타분했다. 단 하나 있다면 빗발치는 총알세례를 받으며 JSA를 뚫고 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본문 중에서)
블로거들은 <N>이 희생된 사람의 숫자 9라고 해석했다. 한 검사는 <N>이 수사기관을 현혹시키는 술책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검사는 <N>이 'nothing, 즉 아무것도 아니다'를 뜻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어떤 유저는 <N>이 neck(목)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네티즌은 nail(손톱), need(필요), needle(바늘), neighbor(이웃), nest(둥지), 심지어 전쟁과 수호의 여신인 네이트(Neith)라고 풀이했다. (본문 중에서)
“네 피를 맛보고 싶을 뿐이야.”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행복, 자유인데 사랑과 행복은 오염되었고 자유는 죽었다.
여기 사랑, 행복, 죽은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 표기(35세)는 북한 김일성대 문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이다. 북한에서 소설을 쓰던 표기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느끼고 남한으로 탈주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면 할수록 자신이 이상해져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차츰 소외되고 낯설어지고, 기형화되어 간다는 사실에 몸부림친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혐오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끼게 된다.
표기는 자신이 목적하는 대로 소설을 쓰고는 있지만, 남쪽 출판사들은 하나같이 그의 글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고루하다며 출판을 거절한다. 결국 파격적인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표기는 신작 집필에 들어간다. 그가 집필을 시작한 소설은 <블러드 서킹>을 하는 내용이다. 즉 평범한 샐러리맨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피를 먹는다는 줄거리다. <블러드 서킹>을 중간쯤 썼을 때 표기는 난관에 부딪친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상황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표기는 사람의 피를 직접맛보기로 하고 대상을 찾아 나선다.
● 차례
제1부 피의 부조리한 향기
제2부 자유의 로맨틱한 죽음
● 출판사 서평
초판은 2023년 8월 20일, 2쇄는 그로부터 45일 후 10월 4일에 발행했다. 2쇄본은 초판에는 없던 작가의 말을 첨가했고, 후반부 중요한 내용이 수정되었다. 표지도 화려한 색감으로 탈바꿈했다. 초판본 보다 본문의 종이를 모조 100g으로 업그레이드해 한층 견고해졌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유로운 삶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의 끝까지 치달아 간다. 그것이 이성을 상실하고 감정을 잃고 지성과 오성을 벗어 던지는 일이라도 상관이 없다. 주인공의 이같은 행위는 소설의 시작과 함께 이행되며,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극단적이 된다. 인간은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위해 일하고 움직이고 경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바친다. 그것이 짐승이 되고 악마가 되고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두 가지 부분에서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 하나는 인간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가와, 또 하나는 인간의 내면에, 우리의 내면에 주인공과 같은 악마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자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본래 최인 작가의 소설은 인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을 보면 그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첫 번째 장편인 <문명, 그 화려한 역설>은 인문학적이고 종교적이고 문명적인 요소를 갖춘 소설이다. 두 번째 장편 <도피와 회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학적 문체로 쓰여지고, 철학적 이해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세 번째 장편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선과 악, 신과 천사, 악마의 이야기이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이성과 오성과 명성이 무엇인지 묻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품는 동시에 신선하고 유쾌한 발상으로 이어지는 대화체, 세분화된 챕터 형식의 구성은 쉴 틈 없이 책장을 넘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제 의식이 뛰어나면서 재밌는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은 단언컨대 흔치 않다.
이에 반해 <늑대의 사과>는 성격이 다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날카로운 묘사와 섬뜩한 장면, 자극적인 요소는 극도의 몰입감을 준다. 최인 특유의 줄거리를 끌어가는 스피디한 문체는 이 소설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소설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소설 속에 소설이 있다는 점이다. 즉 <늑대의 사과>라는 작품 속에 다른 소설이 동시에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소설은 결국 끝부분에서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