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곳을 여행하면서 어떤 사람은 산을 보고
어떤 사람은 강을 본다
사람에게 있어서 첫인상이 중요하듯
사찰에 있어서도 초입의 전경이 오랫동안 그절의 이미지로 남는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천년고찰 청도 운문사
유홍준 교수가 말한 운문사 다섯가지 아름다움중에
서산 안면도의 해송밭 /경주 남산의 삼릉계의 송림/풍기 소수서원의 진입로 솔밭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길이다
그다음
아름다움중에 하나가 바로 250명의 학승들이 기러기떼처럼 줄지어 드리는 운문사 새벽에불이다
250명의 낭랑한 목소리가 무반주 여성합창으로 금당안에 가득찰때 그 자체가 장엄한 예술이다
운문사 입구 가기전 세속오계비
<청도 운문사 경내 벽화>
운문사는 원광법사가 신라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내려준곳이기도 하고
원광법사가 운문사의 제1 중창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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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의 곳곳에 이 소나무 상처자국을 보신적 있으신지요?
일제는 이땅 이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산봉우리에 쇠말뚝만 박은게 아니다
일제말기 대동아전쟁때 자동차 연료로 쓰기 위해 이땅의 소나무에 송진을 받아낸 상처의 자국이다
이곳까지 오는동안 무언가 빠트린것 같이 허전함을 못 느껴셨는지요??
운문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일주문 천왕문이 없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운문사는 고려 왕건이 후삼국 통일후 은혜의 사찰인 이곳에 "운문사"라는 이름을 내려 준곳이기도 하고
일연선사가 운문사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했던 곳이며
고려 제일의 명필로 손꼽히는 탄연스님의 왕희지체 비문이 남아 있는 곳이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무신정권하에서 일어난 김사미의 난 이 일어난 현장이기도 하다
어떤이는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절집 다섯 곳을
서산 개심사, 강진 무위사 부안 내소사, 영풍 부석사 . 청도 운문사로 꼽은 이가 있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봄날 운문사 벚나무 돌담길을 걸어 보셨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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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드 前 주한미국대사 부인이 미국으로 돌아간뒤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것 하나를 꼽으라고 하자 운문사에서 보낸 하룻밤이었다고 한다
중국 광저우 인근에 호거산 운문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청도 운문사가 있다
청도 운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동화사 말사이다
청도 운문사에서 우리가 꼭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할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운문사의 부엌이다
불교가 이땅에 들어 오기전 우리에게는 하늘에 별을 점치던 칠성신앙과
바다와 강물을 믿던 용왕신앙 숲이나 산을 숭배하던 산신신앙
그리고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저 조왕신이 어떻게 사찰의 부엌에 의젓하게 자리잡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으신지요....이야기는 계속되고<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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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뭘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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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강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하면
지난해의 소금단지에서 소금을 꺼내서 새로 소금을 묻습니다.
화마(火魔)를 물리치기 위한 오랜 벽사의 풍습입니다.
작갑전을 비롯해 주요 전각 앞에도 산중기도 회향날에 맞추어 소금을 하얗게 뿌립니다.
소금을 뿌림으로 해서 비로소 운문사는 화마가 범접할 수 없는 해인(海印)의 절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은 바닷물로 만들고, 바다를 상징하는 벽사물입니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저게 뭘까요 ???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
1400년을 이어져 오고 있는 운문사의 내력이 " 작압 " 이라는 두 단어에
들어가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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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 아래에서 살았다는 서해바다 용왕의 아들 이야기인
이목소 전설을 들어 보셨는지요 ???
한해에 막걸리 열두말을 받아 먹는다는 운문사의 500년된 처진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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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邪離)암은 말 그대로 ‘삿됨을 멀리 하는 곳’입니다
사리암은 북대암과 함께 운문사에서 가장 효험있는 기도도량.
기도를 하기 위해 40~50분씩 벼랑길을 걸어 오르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조선 고종황제가 심열로 고생하던 중에 청우스님이 사리암에서 백일기도를 주관하였는데
, 꿈에 선인이 나타나 임금님의 머리에 침을 꽂아주니 깨끗이 나았다는 효험담도 전해져 온다
운문사 사적에는 사리암은 고려초 보양국사(寶壤國師)가 930년에 초창하였고
조선 헌종 11년(1845)에 정암당(靜庵堂) 효원대사가 중창하였으며 1924년 증축, 1935년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워낙 급경사라 축 벽을 쌓아 불사한 전각들은 지붕을 평탄하게 했고 그 지붕을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천태각과 관음전이 있고 산신각도 있다.
전각 전체가 벼랑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천태각과 산신각은 마치 제비집처럼 벼랑에 매달려 있다
사리굴(邪離窟)은 운문산에 있는 네 곳의 굴 중 하나이다.
즉 동쪽은 사리굴(邪離窟), 남쪽은 호암굴(虎巖窟), 서쪽은 화방굴(火防窟), 북쪽은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틈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는 공양주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어 구멍을 넓히고 부터
쌀이 나오지 아니하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굴 안쪽에 샘이 있어 물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그 옛날 쌀이 나오던 곳이라 한다.
1851년(철종 2) 현재의 나반존자상을 봉안한 후 사리암은
영험있는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나반존자는 일명 빈두로존자라 한다.
16아라한 중의 한 분으로 흰머리칼과 길다란 눈썹을 하고 계시며,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 있으면서
부처님 열반 후에 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말세 중생을 제도하려는 대원력을 세우신 존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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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암에 처음 가면 신기한 것을 볼 수가 있다
. 사리암 맨 아래층에 다달으면 먼저 온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손바닥에 땅콩을 올려놓고 깐돌아 깐돌아를 부른다. 깐돌이가 뭘까 조금 있으면 답이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산새가 와서 손바닥 위에 있는 땅콩을 의심없이 물고 간다.
언제부터인지 이곳에 살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이 길을 들여놓아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 |
첫댓글 정성껏올려주신 사진글 넘 자알보았습니다~~^^
복잡한 머리를 씻기려고 혼자 5시간을 운전해서 가봤던 곳....기억 나네요...어느 맑은 사미니스님의 모습을 보고 눈물 나도록 신심이 났었는데....-ㅅ-
오호..청도 운문사에도 찾아가봐야겠네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산넘고 물건너 다니다 사리암에서 지친 육신 잠시 맡기며
짭쪼름한 됀장과 나물 반찬 두어가지로 쓱싹쓱싹 비벼먹던 저녁공양 생각이 절로 나네요.. 감사히 봅니다.^^
우와 한바퀴 다 돌아본것 같애요 ~~^^ 감사해요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