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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침착하면서도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
이순신 소설의 정수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책과는 다르다.
서정적이면서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고 벅차오른다.
전쟁 속 백성들의 참상이 마음을 울린다.
선조, 원균, 풍신수길과 이순신 장군의 갈등과 대립. 전쟁을 전승으로 이끈 흥미진진한 전략전술! 청소년부터 일반인까지 읽을 수 있는 교양도서.
역사는 현재의 내일이다.
그때 그 시절 이순신의 전쟁으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본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는 임진년(1592년) 음력 1월 1일, 이순신이 닭이 세 번 울 때 일어나 망궐례를 드리며 시작한다.
소설은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형식은 난중일기를 쫓아간다.
오전 중에 맏아들 회, 조카 봉, 아우 우신이 와서 절을 했다. 아우 우신에게 어머니 안부를 묻고 섭섭한 소회를 밝혔다. 79세가 된 어머니를 떠나 설을 쇠니 마음이 언짢았다. 아들 회와 조카들에게 할머니를 잘 모시라고 일러두었다.
(본문 중에서)
특히 이 소설에는 난중일기에서 빠진 부분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 지위를 박탈당한 채 도성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는 장면, 거북선 제조, 전쟁 준비와 바다에서의 전투 묘사는 당시의 상황과 이순신 장군의 심정을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한다. 그 외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뛰어난 활약상도 볼 수 있다. 예화와 이순신 장군의 감정, 장수와 군관들의 개인적 삶, 전쟁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울린다.
마을은 텅 비어 있고 노인들 몇몇이 산에서 내려왔다.
노인들을 불러 세워 마을이 빈 이유를 물었다.
“왜구가 올까 봐 모두 산속으로 피했습니다.”
노인들에게 안심하라 이르고 먹을 것을 내주었다.
(본문 중에서)
또 한 가지 특별한 것은, 74편의 한시(漢詩)와 병서인 육도삼략이다. 74편의 한시 중 36편은 저자가 지었다. 이 한시들은 이순신의 고독한 마음을 표현한 것도 있고, 장수들이 자신의 심회를 읊은 것도 있다. 이는 등장인물의 심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소설에 인용된 육도삼략 논장은 비단 옛 선조들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주된 덕목이므로 책을 읽는 내내 깊은 깨달음을 준다.
帥甲秋色夜漸漸 장수의 갑옷에 비치는 가을빛에 밤은 깊어만 가고
孤雁幕上哀鳴飛 고독한 기러기 막사 위를 슬피 울면서 난다.
满月满沙北風銳 보름달은 백사장에 가득한데 북쪽 바람 날카롭고
天如靑海星遠曜 하늘은 푸른 바다 같은데 별무리는 멀리서 반짝인다.
(본문 중에서 '최인 작가가 지은 한시')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각각의 대화들로 지루하지 않고, 쉽게 읽힌다.
대화, 전투장면, 교지, 통문, 공문, 통첩, 상소문이 상세하고 면밀하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성품, 치밀함, 과단성, 장군을 도와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끈 휘하 장수들의 성장과정, 그들의 전투와 전공과 벼슬, 등과과정과 성정(性情), 장렬한 죽음까지 몰입감 있는 템포로 마주하게 된다.
윤근수가 형틀에 묶여 있는 나를 향해 부르짖었다.
“이래도 할 말이 없느냐?”
나는 머리를 꼿꼿이 들고 말했다.
“죽인다 해도 거짓을 아뢸 순 없소.”
(본문 중에서)
중고생, 대학생, 일반인 등 모든 계층의 독자들이 역사를 되돌아보고, 배울 수 있다.
소설 속 이순신 장군은 전쟁터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과감하지만, 하급관리와 병졸, 노비 같은 약자들에게는 어버이 같은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장군은 그들에 대한 애정과 측은지심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본주의에 몰입된 채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인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 저자 소개
최 인
본명은 최인호(崔仁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비어 있는 방』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2년 장편소설 『문명 그 화려한 역설/ 원제, 에덴동산엔 사과나무가 없다』로 1억원고료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2003년간 부산 국제신문에 『에덴동산엔 사과나무가 없다』, 2006년∼2007년간 인천일보에 『누가 블루버드를 죽였나』를 연재했다.
출간작품
문명, 그 화려한 역설 (초판)
도피와 회귀
돌고래의 신화 (단편소설집)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문명, 그 화려한 역설 (개정판)
늑대의 사과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상/하권)
● 책속으로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상권
“큰 돌 열일곱 덩이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이 돌들은 철쇠줄에 꿰어 바다 속에 늘여놓는 용도였다. 둥근 돌 200여 개면 좌수영 앞바다를 돌려 막을 수 있었다.
”기일을 좀 더 앞당기도록 하라.”
이봉수가 읍하고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나는 이봉수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서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p14
오늘로 5관 5포를 관할하는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지 1년이 되었다. 1년 동안 판옥선을 짓고 검과 창, 포를 만들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각 관포에서도 방책을 쌓고 성곽을 수리하고 병장기를 만드는 중이었다. 이를 독촉하려 해도 경비가 부족하고 인력이 모자랐다.
p20
잠시 후 아들 회, 울, 조카 봉, 분, 아우 우신이 들어왔다. 이들이 함께 절을 올리고 나서 고했다.
“생신을 차려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는 단호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전쟁준비가 생일상보다 우선이다.”
p30
쏟아지는 비로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율촌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풀을 먹였다. 비가 뜸한 틈을 타 순천 해농창평에 이르렀다. 해농창평 길바닥에 물이 석 자나 괴었다. 거부하는 말을 몰아 겨우겨우 순천부에 이르렀다. 온몸이 비에 젖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p31
예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맥을 짚었다. 맥이 약하고 구토와 설사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건관락(급성위장병)이 틀림없었다. 나는 강염탕을 한 사발 더 마시고 누웠다. 밤새도록 신음하며 뒤척였다. 몸이 아픈 것도 다 미흡한 전쟁준비 탓이리라.
p34
아침 일찍 아산 어머니께 보낼 물건을 쌌다. 물건은 인삼과 약재, 어포, 미역, 곡식, 말린 과일 등이었다. 그 외에 육포와 말린 생선 몇 마리도 챙겨 넣었다. 잠시 후 아산 종 효대가 들어와 안부를 전했다.
“어머니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내 몸이 아프니까 어머니의 건강이 더욱 걱정스럽다. 어머니께서도 어느덧 80살을 바라보았다. 그 연세라면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p38
“거북선에 철갑을 둘러 둔해 보이지만, 노 하나당 네 명을 배치해서 판옥선보다 빠릅니다.”
나는 나대용을 보며 치하했다.
“거북선을 만드느라고 수고가 많았네.”
이어 이기남에게는 훈련을 독려했다.
“격군들이 귀선을 자유자재로 몰 수 있도록 숙련시키도록 하게.”
이기남이 비긋이 웃었다.
“이제 거의 숙달이 돼 배와 한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p42
왜적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닥치는 대로 베고 불질렀다. 이때 부산성 안팎에 죽은 시체가 산처럼 높이 쌓였다.
p44
“왜적이 부산을 함락시킨 뒤 전열을 정비해 북상한다.”
김성일의 공문에 의하면, 4월 14일 동래성 앞에 이른 왜장이 글을 써서 보였다.
“전즉전의 부전즉가도(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이는 싸울 테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비키라는 뜻이었다. 이때 동래부사(종3품) 송상현이 목패에 글을 써서 성 위에 세웠다.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는 뜻이었다.
p45
우복룡의 군사들이 하양 군사들을 습격해 모두 죽였다. 이때 하양 군사들 500명이 흘린 피가 개울을 이루었다. 우복룡이 토적(지방도둑떼)을 잡아 목을 베었다고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 정말로 한탄스럽다. 아군을 죽이고 공을 요구했으니. 이런 못된 꼴이 있을 수가 있는가?
p58
“형세가 유리한데도 시행하지 않으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조정은 멀리 있어서 지휘를 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은 주장의 판단에 맡길 따름이다. 주장은 경상도에 공문을 보내 의논하고, 기회를 보아 엄정히 조치하도록 하라.”
p61
“그대는 각 포구의 병선들을 거느리고 급히 출전해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하라. 다만 조정이 천 리 밖에 있으므로 뜻밖의 일이 있을 것 같으면 그대의 판단대로 하고, 너무 명령에 거리끼지 말라.”
p62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 준다.”
문길원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왜구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범의 먹이가 되겠다.”
왜적이 할 수 없이 신길원을 잡아 사지를 절단해 죽였다. 신길원은 죽는 순간까지도 꾸짖는 소리가 입에서 끊이지 않았다.
p66
이들과 같이 ‘나라를 위해 함께 죽는다’는 혈서를 쓰고 술을 나눠 마셨다.
p70
임금님이 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난민들이 장례원과 형조에 불을 질렀다. 난민과 노비들에 의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불탔다. 이와 함께 형조와 장례원에 있던 공사 노비의 문적(文籍)이 소각되었다. 왜적이 들어온 지 열흘 만에 백성들은 너나없이 폭도로 바뀌었다.
p72
도성의 불량한 무리들이 작당해 고운 여인과 재물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여인과 재물을 보기만 하면 겁탈하고 빼앗았다. 이들은 상대가 고관이라 해도 가리지 않았다. 분하고 원통하도다. 어찌해 인심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하늘과 땅과 흉악한 왜적의 무리에게도 부끄럽다. 나는 우후 이몽구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출정을 준비하라.”
p73
마을은 텅 비어 있고 노인들 몇몇이 산에서 내려왔다. 노인들을 불러 세워 마을이 빈 이유를 물었다.
“왜구가 올까 봐 모두 산속으로 피했습니다.”
노인들에게 안심하라 이르고 먹을 것을 내주었다.
p76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침착하면서도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
p77
공격신호를 올리고 전 함대가 일제히 포탄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적 안택선 수십여 척이 부서지고 불탔다. 적들은 조총으로 응사했으나, 거리가 멀어 소용이 없었다. 싸움을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적함대는 궤멸되었다.
p78
점심을 먹은 뒤 도지를 불러 초잡은 장계를 보여주었다. 장계를 읽은 도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장군의 공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젓고 관인을 찍었다.
“수하장수의 공이 모두 내 공이다.”
p81
“신이 일찍이 난리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귀선을 만들었습니다. 귀선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아가리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습니다. 귀선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습니다. 귀선은 적선이 수백 척이라도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 대포를 쏠 수 있는 전함입니다.”
p101
당포전투에서 처음으로 귀선을 투입해 싸움을 시켰습니다. 왜적이 귀선의 생김새를 보고 놀라 허둥댔습니다. 이때 귀선이 적진 속으로 깊이 들어가 천, 지, 현, 황포를 쏘았습니다. 귀선의 용맹한 활약을 보고 왜적이 혼비백산해 흩어졌습니다. 이로 적선 수십 척을 괴멸시키는 결과를 얻게 되었음을 아뢰옵니다.
p102
“장군께서 많이 다치셨다는데 상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니다.”
예화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심약에게 들었습니다. 상처를 덧나게 해서는 안 되니 어서 관사로 드십시오.”
나는 공무를 마저 처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p102
“인생이란 반드시 죽음이 있고, 삶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나니, 사람으로 한 번 죽는 것은 아까울 게 없건만, 오직 그대 죽음에 마음 아픈 까닭은 나라가 불행에 빠졌기 때문이다.”
p138
“슬프도다. 그 재주 다 못 펴고 덕은 높되 지위 낮고, 나라는 불행, 군사 백성 복이 없다. 그대 같은 충의야말로 고금에 드물거니, 나라 위해 던진 그 몸 죽어도 살았도다. 슬프다. 이 세상에 누가 속 알아 주리. 극진한 정성으로 한 잔 술을 바치노라. 슬프도다, 슬프도다!”
p138
“지금 이 잔악한 왜적의 소행은 짐승보다 더 심하다. 백성들을 살육함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연물을 모질게 해침에 가옥과 식량을 모두 불살랐다. 길에서 아낙네 한 명을 만나면, 사내 열 명이 다투어 음행을 하니, 이는 하늘 아래 수많은 오랑캐들도 하지 않고, 지각이 없는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이다.태평한 세월이 오래되어 감히 막는 자가 없지만, 천지 산천의 귀신이 모두 은밀히 주벌할 것을 의논하고, 중국과 오랑캐들이 모두 드러내 처형할 것을 생각하니, 비록 죽음을 앞두고 잠시 목숨이 붙어 있는 사이, 우리 백성들을 죽일 수는 있어도, 천정인승(天定人勝)의 날에 그 죄를 자복할 것이다.”
p142
“고기가 잘 잡힙니까?”
늙은 어부가 대답했다.
“고기는 잘 잡히지만, 왜구가 나타날까 봐 먼바다로 나가지 못합니다.”
나는 백성들의 근심이 전쟁 때문에 크다고 생각하고 돌아섰다.
p155
“백성들 참상이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배흥립도 인상을 찌푸렸다.
“백성들이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p165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임금님도 없소.”
p167
“전쟁이 일어난 지 일 년 만에 국가재정이 파탄났고, 시중 돈은 모두 탐관 손에 들어갔고, 벼슬을 사고 파는 것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외사촌 변존서가 술잔을 든 채 말했다.
“일백 석을 내면 종삼품이 되고, 삼십 석을 내면 종오품이 되는 나라가 바로 조선입니다.”
p169
“왜군 수뇌부에서 장군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나를 제거하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왜적은 장군을 눈엣가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서 나를 죽이러 자객이라도 보낸단 말인가?”
송희립이 옆에 시립한 도지를 쳐다볼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헛웃음을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희립이 진지하게 덧붙인 뒤 물러갔다.
“주변 경계를 늘여야 합니다.”
도지가 허리를 숙였다.
“간과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p186
더 나아가 명군들은 민가를 습격해 재물을 빼앗고, 닥치는대로 부녀자를 겁탈했다. 조선 백성들은 왜적보다 더 흉악한 명군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이 모두가 패전국이 짊어지는 비극이다. 임금님도 수모를 당하는데 백성들은 말하면 무엇하랴.
p188
“백성들이 토적에게 현혹된 것은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충청도 지방에 구호곡식을 내리니 안정을 취하라.”
밤에 몸이 몹시 불편해 땀을 흘렸다. 예화가 달여 준 강염탕을 먹고 잤다.
p288
밤새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며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까지 몸이 불편하고 열이 났다. 꼼짝하기조차 어려워 아침을 굶고 선실에 누워 있었다.
p300
여자와 아이는 아예 출입을 못하고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깔렸다. 또 굶주린 백성들이 다투어 그 고기를 먹고 죽은 사람의 뼈를 발라서 즙을 내 먹는다고 한다.
p305
밤에 먹을 갈아 민즉본(民卽本, 백성은 곧 근본이다)이라고 썼다.
p305
지붕이 새 빗방울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조금씩 떨어지더니 이내 줄줄 새기 시작했다. 각 배에 있는 군사와 격군들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즉시 각 군영 격군장들을 불러 역질을 방비하라고 지시했다.
p315
“통제사께서는 듣는 걸 좋아하신다는데, 말씀 드릴 게 없어서 송구스럽습니다.”
나는 비긋이 웃으며 위대기를 쳐다보았다.
“얘기 듣는 걸 좋아하지만, 아무 말이나 다 듣지는 않소.”
p317
류성룡이 죽었다는 부고가 순변사로부터 내려왔다고 한다. 이는 류 정승을 미워하는 자들이 만들어 비방하는 말이다. 평소 몸 관리를 잘하는 류 정승이 죽을 리가 없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어두울 무렵에 마음이 몹시도 어지러웠다. 홀로 빈 집에 앉았으니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 밤이 깊어 가도 잠들지 못했다. 류 정승이 어찌 되었다면 나랏일을 어찌하랴. 어찌하랴.
p324
“공께서 젊을 때 이조판서가 불렀으나, 같은 성씨라서 거절하고 안 갔다는데 사실입니까?”
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조판서(정2품) 이이(율곡)와 같은 덕수 이씨라서 남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거절한 것뿐입니다.”
파총이 감동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남들은 줄을 대서라도 고관을 만나는데 공의 절의가 대답합니다.”
나는 파총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줄을 대서 벼슬을 얻으면 백성이 도탄에 빠지게 됩니다.”
p328
원균의 짓거리가 매우 해괴하다. 나더러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는다고 장계했다고 한다. 천년을 두고서 한탄할 일이다.
p342
특히 김덕령은 임금님이 내린 충용익호장군기를 뱃머리에 꽂고 북을 치며 돌진해 들어갔다. 아군과 적선이 서로 가까워지자 철환과 화살이 비오듯 오갔다. 김덕령이 어찌할 도리가 없어 퇴각해 본영으로 돌아왔다. 이 행동으로 인해 김덕령은 여러 사람의 기대를 한 순간에 잃었다. 이때 좌의정 윤두수가 김덕령의 퇴각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윤두수가 김덕령의 패전을 알았으니 목숨이 위태롭다. 그 윤두수가 초열흘쯤에 한산도에 온다고 한다. 심히 불행한 일이다.
p346
오후에 들면서 가랑비가 흩뿌렸다. 빗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권부사와 신군수, 배현감이 파직되어 더 쓸쓸한 감정이 일었다. 이들은 개전 초부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맹장들이었다. 이들은 파직한다는 건 곧 내 발을 잡아 묶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p357
토적이 싸우다가 크게 패해 옛 소굴인 순창 회문산으로 돌아갔다. 세 고을 군사가 적의 소굴까지 추격해 몰아붙였다. 토적들이 궁지에 몰려 3일 동안을 굶은 채 동굴에 숨었다. 관군이 밤에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100명을 베어 죽였다. 이때부터 끊어졌던 회문산 길에 사람이 다니기 시작했다. 토적이 일어난 건 조정이 백성들을 제대로 구휼하지 못한 탓이다. 다 한 백성인데 죽이고 죽으니 안타깝다. 밤에 먹을 갈아 민즉도(民卽道, 백성은 곧 이치이다)이라고 썼다.
p368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삼경에 꿈을 꾸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오셨다. 아버지께서 분부하시기를 ‘다음 달 십삼 일에 회를 초례해 장가보내는데 날이 맞지 않는 것 같구나. 비록 사일 뒤에 보내도 무방하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를 생각하니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
p369
● 책속으로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하권
닭이 세 번 울 때 일어나 의관을 갖춰 입었다. 경상 앞에 좌정했는데, 예화가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오늘이 장군 생신입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오늘이 정녕 내 생일이란 말이냐?”
예화가 미소를 지으며 삽주차를 내려놓았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찻잔을 집어 들며 말했다.
“생일을 챙길 정도로 한가롭지는 않다.”
예화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래서 미역국만 끓였습니다.”
나는 경서에 눈길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굶어 죽는 백성들을 보면 그것도 호화스러운 것이다.”
p16
이곤변이 내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일찍이 명나라는 관리를 뽑는 데 학문을 우선시했고, 왜국은 무사를 뽑는 데 그 재능을 높이 꼽았습니다. 다만 조선만이 신분과 가문을 보고 관리를 뽑습니다. 이는 곧 망국의 길입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듣고 보니 그렇다.”
삼천진권관 이곤변. 고성현령 조응도와 밤이 깊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충신 중에 충신이다. 어디서 이들과 같은 장수를 또 얻을 수 있겠는가? 밤에 먹을 갈아 능(能)자를 썼다.
p123
내가 형좌에 앉자 머리에 씌운 봉두(얼굴 가리개)를 벗겼다. 국문관 윤근수가 상좌에 앉아 평문(말로 하는 심문)을 시작했다. 윤근수가 포박되어 있는 내게 큰소리로 물었다.
“죄인은 그동안 임금의 은혜를 한껏 입었는데, 어찌해 적들을 치라는 어명을 받고도 나가 치지 않았는가? 듣자하니 죄인은 왜군 장수인 가등청정의 뇌물을 받았다는데, 그 죄를 인정하는가?”
나는 고개를 곧추세우고 대답했다.
“소인은 왜적들을 칠 시기와 장소가 합당치 않아 나가지 못한 것뿐이지, 결코 뇌물을 받고 나가지 않은 일은 없소이다.”
윤근수가 재차 다그쳤다.
“어명을 받고 시행하지 않으면 대역죄로 다스려지는 건 알고 있는가?”
나는 윤근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명을 받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쟁의 승패가 달린 싸움을 함부로 할 수 없었소.”
p168
곧 말을 타고 아산 해암리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탄 배는 벌써 해암리 포구에 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종복들도 눈물을 뿌렸다. 나는 슬픔을 가눌 수 없어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충성을 다 하렸더니 죄가 이미 이르렀고, 효성을 바치렸건만 어버이마저 가버렸네! 인제야 어서 죽기만 기다려야 하련가? 마음을 돌아보니 가슴은 찢어지고, 비조차 내리는데 금부도사는 길 재촉하네! 천하에 나 같은 사람 또 어드매 있을꼬.”
p183
해가 질 때 영암에 사는 사삿집 종 세남이 알몸으로 뛰어들어왔다. 알몸으로 온 까닭을 물으니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종 세남에 의하면, 이달 5일 좌수영 격군으로 선발되어 거제에 이르렀다. 6일날 거제 옥포에 들어갔다가 말곶을 거쳐 부산 다대포로 진출했다. 다대포에서 왜선 8척을 발견하고 조선수군이 포를 쏘았다. 잠시 후 왜놈들이 몽땅 뭍으로 올라가고 빈 배만 남았다. 조선수군이 그것들을 모조리 끌어내어 불질렀다. 그 길로 기세 좋게 부산 절영도 바깥 바다로 들어갔다.
이때 대마도 쪽에서 온 1000여 척의 왜선을 만났다. 적선 1000여 척과 싸우다가 패해 모두 동해로 떠내려갔다. 판옥선이 동해로 밀려 죽기 살기로 노를 저었다. 간신히 칠천량으로 돌아와 상륙하다가 복병에 걸려 도륙당했다. 이때 거북선 3척, 판옥선 100척, 협선 70척이 불탔다. 요행히 세남만은 간신히 목숨을 보존해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p216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추니 심회가 편치 않았다. 이제 진영에 남은 함선은 겨우 12척이었다. 왜적은 점점 더 전력을 보충하고 세력을 확장하는데, 대처할 방법은 막막했다. 근심에 쌓여 수루에 앉았는데,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달을 올려다보며 시 한 수를 읊었다.
閑山島 月明夜 上戊樓 한산섬 달 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撫大刀 深愁時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何處 一聲羌笛 更添愁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끓나니.
p234
“신 이순신 삼가 장계를 올립니다. 임진년부터 지금까지 적이 감히 전라도를 지나 충청도로 올라가지 못한 것은 수군이 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수군을 버린다면 적은 충청도를 거쳐 곧바로 한강에 이를 것입니다. 그것이 신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빌건대,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이들을 이끌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전선의 숫자는 적지만, 신이 살아 있는 이상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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