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나 그라나다 여행에 있어 핵심 중 하나는 플라멩코를 감상하는 일이다.
플라멩코를 감상하다보면 눈빛과 동작, 의상에서 그들이 품어내는 강렬한 열정과
울부짓는듯 흐느끼는 듯 노래하는 칸테를 통해 비극적 정서를 강하게 느낀다.
오케스트라처럼 화려하지 않은 기타나 드럼의 연주는
오히려 춤이나 소리에 방해되지 않는 딘조로움과 담백함이 어울린다.
플라멩코의 열정과 비극적 정서는 동전의 앞뒷면 같아서 서로를 이끌어주는 이원적 일체이다.
비극적 정서는 슬픔을 동반하지만 그 슬픔이 깊어질 때 그것을 극복하려는 열정이 품어나오기 마련이다.
한국의 민요나 판소리에 가까워 한국인의 정서에 가까게 느꺄진다.
플라멩코는 그런 춤이고 노래이다.
플라맹코는 무용수의 강렬한 눈빛과 손끝 동작, 절제되고 박력있는 몸동작과
빠르게 땅을 두드리는 탭댄스 (발구름 사파테아도 Zapateado)가 독특하다.
탭댄스와 박수로 박자를 맞추는 것은 집시들이 변변한 악기를 가지지 못했던 상황에서 발전되었을 것이다.
기타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악기인데 이 악기는 원래 아랍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슬람이 스페인을 800년동안 지배하는 동안 더욱 발전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파네가, 세고비야 등 최고의 가타리스트가 만들어낸 스페인 기타의 전통은 세계최고의 음악이다.
그라나다, 말라가, 코르도바, 세비야를 중심으로한 안달루시아는 플라멩코의 고향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언제나 어디서든 수준 높은 플라멩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용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전문 무용수들의 공연뿐만 아니라
광장이나 심지어 길거리에서 수시로 펼쳐지는 버스킹 공연조차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단체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몇몇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플라멩코는
그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때로 실망스럽다.
무엇보다도 플라멩코의 생명인 열정과 비극의 정서가 깊이 있게 드러나지 않는다.
무용수들의 동작도 춤의 기교만 드러나고, 칸테는 슬픔과 한의 정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