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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있는 남자
구자훈
“당신 이제 완전 외톨이 될 뻔했네요. 나 없었으면….”
어머니 삼우제 날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아내가 말했다. 자기 아니면 내가 사고무친이 됐다는 말이다. 아내가 되어준 생색내기인가. 그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씨 다른 동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제수가 나를 시숙으로 대우하지 않고 동생도 제 처 눈치를 봐서 그러는지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형으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제수가 앞장서서 나를 무시하고 동생이 따르는 셈이다. 생부가 어디엔가 있을 수 있기는 하나 찾을 생각이 전혀 없다. 어머니가 임종 며칠 전 절대로 찾지 말라고 여러 번 신신당부했지만,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씨를 받았을 뿐이니까 씨내리일 뿐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기 동생이 혼인한 지 딱 열 달 만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업고 친정 온 것을 보고 하도 부러워 나를 가졌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가졌을 때 중처럼 배코를 친 강신무였다. 그 모습으로 어떻게 남자를 유혹했을까? 남자가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 가능했을까? 몇 번이나 만나 임신에 성공했을까? 남자는 임신 사실을 알고 있을까.
어머니는 가히 종합병원이었다. 당뇨에 고혈압에 스텐트까지 세 개나 하고 있었다. 퇴행성 관절염에 신장 기능도 안 좋았다. 어머니는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해 점 보러 오는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을 때 미식을 즐겼는데 그것이 만병의 근원이 된 것일까? 용함이 떨어져 손님이 줄자 어머니는 작은 절을 소유한 대처승과 혼인했고, 중노릇했다. 회갑 때까지도 못 살 것 같아 쉰여덟 살에 회갑연을 했다. 신도들에게 부조를 받기 위해. 그랬는데 일흔다섯 살까지 살았으니 오래 버틴 셈이다. 회갑연을 한 다음 절은 일찍 승적을 취득한 둘째 아들에게 넘겼다. 절은 군소 종파로 동생은 대처승이다. 동생의 아버지는 객승으로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고 있었다.
아내란 크나큰 짐이나 벗어버릴 수 없는 멍에라는 생각으로 감히 가지겠다는 생각을 엄두도 못 냈다, 나는. 그런 나에게 아내가 얻어걸린 것은 그야말로 횡재한 것이다. 아내의 효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많다. 많지 않으면 어떤가. 하나만으로도 흡족하다. 섹스 말이다. 내가 원할 때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내의 심기를 잘 살펴 요구하면 들어주니 그 얼마나 다행한가. 아내가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아내가 한국인이라면 더욱더 자랑스러운 일이다. 내 또래 나의 지인 중에는 아내가 없는 녀석도 많고, 외국인인 경우도 있다. 그것도 큰돈으로 사 오다시피 데려온 경우도 많다. 중국에서 모셔온 조선족을 아내로 맞아 외국인 중에서는 최상급이라고 흡족해하는 지인도 있다. 나의 아내는 나보다 나이가 열 살 많다. 아이도 셋 있다. 아이를 더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됐다. 그러면 어떠냐. 아이를 제대로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아이 가지기를 일찌감치 포기한 나 아닌가. 그래서 일찍 불임 시술을 한 나다. 아내도 없으면서 그렇게 한 것이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지만 가당찮게도 혹시 어쩌다 여자를 건드려 임신시키면 여간 낭패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서였다. 나에게 아내는 넝쿨째 굴러온 복덩이다. 가진 거라곤 쥐뿔도 없는, 그야말로 적수공권, 몸뚱이 하나뿐인 나를 자기 남자로 받아준 게 얼마나 고마운가. 딸린 아이도 혹이 아니라 사은품이다. 아내에게는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도 있다.
내가 아내를 만난 것은 대리운전할 때였다. 술에 잔뜩 취한 그의 차를 운전해 그의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는데 그가 잠이 들어 있었다.
“다 왔습니다, 손님.”
“아, 그래요? 내가 깜빡 잠이 들었구나.”
그러나 그는 내리려 하지 않았다.
“몸을 가눌 수가 없네요. 집까지 좀 데려다주시면 안 될까요? 사례는 할게요.”
사례가 문제가 아니라 내릴 생각을 안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를 부축해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했는데 그가 현관문을 열지 못했다. 현관 자물쇠 뚜껑을 밀어 올리고 번호를 누르고 뚜껑을 내리고 현관문 손잡이를 비틀기를 여러 번 반복하더니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이었다.
“비번이 몇 번이에요? 제가 열어드리죠.”
그가 일러 주는 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었다. 그가 운전비 주기를 기다리는데.
“잠시 들어가 커피 한 잔 … 아니, 커피 한잔 타 주세요. 제가 너무 취해서.”
나는 그날 거기서 잤다. 그동안 자위로나 느꼈던 쾌감을 그와 함께 느꼈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처음 경험이라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뒤에 알았는데 그가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다. 그러나 나는 걸망하고 그는 앳되어 그런 차이를 느낄 수 없었고 남들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 뒤 그의 차 대리운전을 몇 차례 더 했고 그때마다 그의 성교 상대가 되었다. 성욕에 굶주린 나여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낚이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었다. 내 수완으로 여자를 취할 가망이 전혀 없었으니까. 일곱 번째 만났을 때였다. 성교가 끝난 후 그가 말했다.
“자기, 여자 없지요? 나랑 정규 동거하지 않을래요?”
정규 동거인이 되어달란 말인가. 임시에서 정규로 격상시켜주겠다는 것인가.
“정말요?”
내 귀를 의심해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언감생심 아닌가.
“조건이 하나 있어요. 먼저 헤어지기를 원하는 쪽에서 위자료 주기요.”
“좋아요.”
내가 먼저 헤어지기를 원하는 일은 지구가 두 동강이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만난, 가히 천운으로 만난 여자인데 떠날 생각을 한단 말인가.
아내는 전남편과 헤어진 까닭을 하나씩 이야기해 주었다.
첫 번째 남자와는 사별했다고 했는데 얼마 있어 자연사가 아니고 자기가 죽였다고 했다. 헤어지고 싶어 헤어지자고 했는데 헤어져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했다.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 했다. 돌연사로 위장했는데 눈치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 그는 직장의 상사였는데 자기를 강간한 남자라고 했다. 강간 이후에도 수시로 겁탈해 아이가 생겨 어쩔 수 없이 혼인했는데 행패가 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 실습하던 회사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고 했다.
“부서에서 회식한 날이었어요. 엄청나게 술에 취한 그를 내 집이 그와 같은 동네라 데려다주게 되었어요. 그의 방 안에까지 함께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취한 게 아니었어요. 늑대로 돌변하더니 덮쳤어요. 그 뒤로도 그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혼인하자고 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실수였어요. 혼사길 막혔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날 일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었어요. 협조자도 있었고요. 훌쩍거리며 우는 나에게 말했어요. 내가 너, 실습 때부터 찍었어. 내 여자 하기로. 넌 오늘부터 내 것이야. 그런데 그 인간,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 술과 도박으로 살았더라고요. 식도 못 올렸어요. 혼인 반지 하나도 없었고요. 자식 낳고 정신 좀 차리는가 싶더니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내 다시 술과 도박에 빠지더라고요. 도망도 몇 번 쳤는데 귀신같이 찾아내요. 죽어버리겠다고 해도 버릇 못 고치더라고요. 진짜 죽을까 생각도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억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인간을 없애기로 한 거지요. 이웃에서는 우리 부부가 금실 좋은 부부로 알고 있었어요. 창피해서 잉꼬부부로 위장했거든요”
세 번째 남자는 좋은 여자를 만났다며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고 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위자료를 요구하는 대로 다 주고 떠났다고 했다. 여자를 찾아가 싹싹 빌며 헤어져 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했으나 붙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당신 아이 낳을 수 없는데도 괜찮겠어요?”
“셋이나 있는데 뭘요.”
“그래도 자기 피붙이….”
나는 내가 불임 시술을 받았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밝혀서 좋을 게 있겠는가.
“아내 자식이면 곧 내 자식 아닌가요?”
“나중에라도 후회할지도 모르잖아요? 친생자 못 가진 것을.”
“절대 그런 생각 안 할 겁니다. 누님 아이가 곧 내 아이라니까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 낳을 수 있는 여자를 아내로 만난다는 것은. 불임 시술을 받아 젊은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가능하지 않지만.
“아이 낳을 수 있는 여자 만날 수도 있을 텐데 나하고 혼인하면 그런 기회….”
“아내의 자식이면 내 자식이라 했잖아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지만요.”
“당연한 일인데 고맙긴. 그건 그렇고 왜 셋째 아이 아버지만 만나요?”
아내는 가끔 셋째 아이의 아버지와 만난다고 했다. 첫째 아이 아버지는 죽였다고 했으니 그렇다 치고 둘째 아이 아버지는 왜 안 만나는 것일까.
“둘째 아이 아버지도 없어요. 첫째 남자는 내가 죽였다고 했지요?”
“그랬지요. 긴가민가했지만. 둘째 남자는 왜 ….”
“자살했어요. 내가 홧김에 나가 죽어버리라고 했더니 정말 죽어버리더라고요. 마치 그 말 해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이가 없어서 참.”
아내는 그를 죽게 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을까. 그 말이 아니었어도 자살했을 것이란 말인가. 자살한 남편은 증권사 직원이 권하는, 오르는 주식을 샀는데 며칠 더 오르더니 계속 떨어져 3분의 2까지 주저앉았다고 했다. 거기서 또 반토막 나더니 상장폐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1억을 홀랑 날렸다는 것이다.
이모가 가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호적에 의한 이모일 뿐 핏줄로는 이모도 아니다. 할아버지의 사별한 아내가 내 어머니의 어머니이고, 할아버지가 재혼한 아내가 혹으로 달고 들어온 것이 이모다. 어머니와 이모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아니했지만, 서로 위장하고 지내는지는 몰라도 사이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함께 지지고 볶으면서 자라서 그런지.
“남편이 네 머슴이냐? 새경이나 제대로 주는?”
이모가 아내에게 한 말이었다. 내가 불쌍해 보여서였는지 내가 좋아하는 물김치를 담가 가지고 왔는데 그때 마침 설거지하는 나를 보고.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저 이가 저보다 더 잘해요. 제가 시킨 것 아니고요. 밥이고 반찬 만들기고 주방 일 뭐든지…. 유명 요리사 다 남자잖아요? 요리 명장도 남자가 더 많고요.”
아내는 내가 부엌일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듯 말했다. 동거하기 전 그가 말했다.
“여태 혼자 살았으니 요리 잘하겠네요?”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리가 아주 익숙한 건 맞습니다.”
그렇게 동거 시작부터 가사는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그는 설거지 한 번 하는 일 없었다. 내가 아플 때도 그는 부엌일은 무슨 금기처럼 손대지 않았다. 혼자 살 때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아내가 나를 고용한 것인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러면 어떠냐 했다.
“그래도 그렇지. 넌 뭘 하는데?”
“돈 있잖아요?”
“유세냐?”
“사실이 그렇잖아요?”
이모가 나를 향해 말했다. 아내에게는 당할 수 없어 만만한 나를 공격한 것일까?
“네가 머슴이지 남편이냐?”
“머슴이라뇨? 저, 새경 안 받아요.”
“그럼 놉이냐?”
“저도 남자니까 노비(奴婢)는 아니고요. 비록 노복(奴僕)이면 어때요? 제가 저 사람 남자고 저 사람이 저의 여자면 그걸로 그만이지요.”
놉이냐와 노비냐가 발음이 같아 짐짓 한 말이었다. 놉도 품삯은 받으니까 머슴은 계약직인 셈이고 놉은 일용직인 셈인가. 이모가 내가 언제 아내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모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나를 모르는 것이다. 내가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그의 주방장, 그의 세탁부, 청소부, 성교 상대에 불과하면 어떤가. 누구에게, 더욱이 아내에게 유용하다면 다행한 일 아니겠는가. 그에게 더욱 충실해야 할 일이다.
아내는 가끔 외박했다. 나는 알 수가 없다. 왜 외박까지 하는지. 밤을 보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외박하고 들어와도 그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물은 적이 있었는데 아내가
“뭘 물어요? 나, 당신 기분 더럽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했다. 이 말이야말로 나를 얼마나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일부러 기분 나쁘게 하려고 그러는지. 이왕에 기분은 나빠진 것이다. 더 나빠질 것이 없다. 그러나 물을 수 없다. 그런데 아내가 말했다.
“말해 줘요? 기분 나빠져도 괜찮아요?”
‘이미 기분 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빠졌어.’하고 싶었으나 입을 다물었다.
“전남편 만났어요. 자식 보고 싶다는데 어째요? 아이도 제 아비 보고 싶다 하고. 둘이서만 만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아이에게 무슨 소릴 할지 모르니까. 아이가 자기 아버지와 하룻밤 자고 싶다는데 둘이서만 밤을 지내게 할 수는 없잖아요?”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나, 오늘 늦을 거예요.”
왜 늦는지 물으면 안 된다. 아내는 무엇이거나 묻는 것을 싫어한다. 따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모양이었다. 따지기 위한 전주로 여기는 듯.
“알았어요.”
“한 잔 빨고 있어요.”
이렇게 늦는 이유를 말해 주는 것은 기분이 좋을 때다. 내가 늦는 이유를 묻지 않으니 그것이 또 가상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늦으면 저녁밥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늦는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도 저녁 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을 알려줌일 것이다. 나는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기로 한다. 그날 열두 시가 넘어서 차를 몰고 가서 그를 데려왔다. 부축해온 그를 침대에 앉혔을 때 아내가 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린, 나를 안을 자세로 말했다.
“오, 귀여운 내 새끼!”
아내가 술이 기분 좋게 거나해지면 하는 버릇이다. 처음에 나는 아내의 그런 호칭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내가 아무리 술에 취하고 내 나이가 자기 나이보다 열 살이나 적다고 어떻게 나를 자기 자식처럼 취급한단 말인가 싶어서였다. 나는 한참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놀람과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에 한참이 걸렸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내가 당신 자식이라니 아무리 내 나이가 당신 나이보다 적다고 해도 ….”
“아이고, 말귀 어둡네요. 오해예요. ‘내 것’을 더 친근하게 부른다고 새끼라고 한 건데. 동물적 본능이죠.”
내 것? 내 것을 내 새끼라고 한 것이라고? 그러면 그렇지. 나는 황급히 말했다.
“아, 그런 뜻이었어요? 미안, 곡해해서.”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보다 더 친근한 인식이 있을까. ‘내 것’, 펫이면 어떠냐? 누구의 소유가 된다는 것, 소외되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니 뼈저리게 실감할 것이다. 그게 얼마나 기분 좋은 것인지. 비유라고 치자. 그러면 또 이보다 더 뜨겁고 더 끈적끈적하고 더 달콤하고 더 향기로운 말이 또 어디 있으랴. 그야말로 정이 뚝뚝 듣는 말 아닌가. 물고 빨며 애지중지하는 개에게나 하던 호칭을 나에게도 사용해주니 얼마나 흥감한 일인가. 개는 요즘 나에게는 개느님이다. 깍듯이 모셔야 하는. 주식 및 간식 챙겨주기, 목욕시키기, 용변 처리하기 등등. 아내와의 동거 기간도 나보다 길다. 당연히 나보다 윗전이다.
나는 가끔 개느님이 드실 것을 슬쩍했다. 한 번은 친구가 보고 깜짝 놀랐다.
“그거 개 사료 아이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친구가 내가 개의 간식으로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사료라니 개느님의 간식을.”
“먹어, 그걸?”
“먹지 그럼. 개느님이 잡수시는 건데 반려인인 내가 왜 못 먹어?”
내가 보기에 개가 아내의 반려견이 아니라 아내가 개의 반려인이었다. 아내가 개의 반려인이니 나도 개의 반려인인 셈이다.
“하긴 뭐. 탈이야 나겠어?”
하고 친구가 말해 준 것은 내 체면을 생각해서일까.
“나, 상용해. 처음엔 모르고 먹었지만.”
처음 먹은 것은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육포가 있길래 맥주 안주로 먹었는데 그것이 개느님이 드시는 것이었다. 그것도 몰랐을 텐데 아내가 찾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그때는 개느님의 간식 챙겨주기를 내가 아내에게 이양받기 전이었다.
“내가 먹었어.”
“뭐요? 그걸 먹었어요?”
나는 없앴다고 그러는 줄 알고, 사다 놓겠다고 황급히 말했다. 아내는 혀를 한 번 차고는 말을 잇지 않았다.
아내는 기분을 가끔 돈으로 나타낸다. 기분이 좋으면 나에게 듬뿍 준다.
“역시, 내 새끼가 최고야.”
최고는 비교하는 말이라 좀 듣기에 그렇기는 하다. 어느 놈과 비교하는 거지, 싶어서. 그러나 최고라지 않는가. 만족해야지. 또 어느 딴 놈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전 남편과의 비교일 테지, 생각하려 하지만, 최고라는 말은 둘 중의 하나를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떨쳐버려지지 않는 건 사실이다.
“성현아.”
어머니 재우 마치고 음복이 끝나고 무슨 긴히 할 말이 있는지 제수가 제 남편을 찝쩍여 법당으로 가고 없을 때 이모가 나를 불렀다. 목소리가 축축했다. 나는 이모를 바라보지 못했다. 눈물을 보여줄 수 없어서. 그냥 대답만 했다.
“예.”
“힘 잃지 말아라.”
“예.”
어떻게 하는 것이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질부야.”
“예, 이모님.”
“유산 같은 거 기대하지 말아라. 내가 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있다고 해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동생이나 제수의 생각을 아내도 잘 안다.
“잘한 생각이다.”
아내가, 자기와 나의 지인들이 한 부조는 챙겨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일부러 이모가 듣는 데서 말했지만, 이모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장례비 치르고 남은 게 있겠어요?”
“우리가 갚아야 하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말은 해 보죠.”
잠시 후 동생과 제수가 돌아와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 장례비 치르고 남은 돈이 땡전 한 푼 없다고 했고, 49재 비용의 반인 100만 원을 내라고 했다. 다른 절에서 바라춤 출 스님 포함해 몇 분 모셔야 해서 총 200만 원쯤 든다고 했다. 아내를 보니 고개를 끄덕여서 그러겠다고 했다. 동생과 제수가 법당으로 자리를 옮겨 한 말이 49재에 관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부조가 얼마 들어왔는지 장례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무슨 기대를 하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서지.
아내는 나에게 꼬박꼬박 높임말로 말했다. 나이가 많아서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러지 말라고 하면 그래야 말이 거칠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높임말로도 가시로 찌르는 듯한 말을 가끔 했다. 찬바람을 쌩쌩 일으키는. 가끔 나에게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 하는데 욕이 전혀 섞여 있지 않았어도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 아닌가. 개새끼라고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 않은가.
아내의 세 아이의 아버지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경악했다. 그러나 결국 나를 달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지 않고 어쩌겠는가. 아내가 세 아이의 아버지와 어떻게 헤어졌나를 안 다음에는 나도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할 때도 있었다. 아내도 나이가 있는데 더 이상 남자를 버리겠느냐, 나를 버리고 또 남자를 만날 수 있겠느냐며 나를 달랬다.
아내가 평소보다 아주 늦게 들어온 날 왜 늦었느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오늘 웅이 아버지 만났어요.”
웅이는 아내의 막내아들이다. 나는 무슨 일로 만났느냐고 묻지 않았다. 왜 궁금하냐고 하면 민망하다.
“돈 좀 빌려달라고 했어요.”
누가? 전 남편이 그랬는지 아내가 그랬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그 사람 왜 만나요?”
나는 짐짓 그 사람이라고 했다. 전 남편이지만 남편이라는 말이 싫었다.
“당신, 자격지심 있어요? 당신, 그렇게 못난 사람이에요?”
못난 사람, 내가 나를 못났다고 믿고 있는 까닭일까, 나를 몹시 아프게 하는 말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당신, 화났어요? 못난 사람 아니라는 말인데. 말귀 어두워요?”
“화는 무슨. 나, 화 안 났어요.”
나는 할머니, 수자 이모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둘째 아내한테서 자랐다. 할머니는 내가 불쌍해서였는지 잘 건사해 주었다. 혈육이 아닌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나는 응석도 부릴 수 있었다.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안 뒤에는 내가 일부러 응석을 더 부리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아내가 귀가할 때 내가 없으면 난리 난다. 그래서 아내가 귀가가 늦는다고 연락을 해도, 한 잔 생각이 나도 친구를 불러내 한잔을 하는 것도 절대 안 된다. 아내가 귀가 시간을 알려주지 않으면, 언제 귀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내에게 언제쯤 귀할 거냐고 물을 수는 없다. 그것은 아내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고 아내는 그런 제약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나는 집 지키는 존재였다. 개가 따로 있기는 해도 그 개는 집 지킴이가 아니라 개느님이다.
아내는 잘 안다. 내가 어느 정도 취했을 때가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지 귀신같이. 발기 상태는 가장 좋으면서 사정은 지연되는지, 얼마나 마시면 발기도 안 되는지를. 알코올 도수에 따라 소주는 몇 잔, 맥주는 몇 잔, 위스키는 몇 잔, 브랜디는 몇 잔, 포도주는 몇 잔인지 죄 꿰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니고 경험을 통해 터득했을 것이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더 마시고 싶은데도 아내가 잔을 치우면 나는 입맛만 다시고 멈추어야 한다.
나는 할머니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어머니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울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나를 키워줘 정이 많이 든 까닭이다. 어머니는 사실 정이 가지 않았다. 배코 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철들고부터는 무녀라는 것이 섬찟했다.
아내는 동거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혼인신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혼례를 올린 것도 아니고 그냥 동거하는 것이라 나도 시험 동거라 생각하고 언급하지 않다가 어느 날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혼례 이야기는 둘 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아내는 네 번째 혼인이라 굳이 예를 갖추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첫 혼인이지만 굳이 그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내를 가지게 된 것만도 어딘데 혼례까지 올려 아내를 번거롭게 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물었다.
“식도 안 올리고 그냥 살 거야?”
“아내가 아무 말도 안 해. 잘 됐지 뭐.”
“그래도?”
“비용도 만만찮게 들 텐데 뭘.”
“격식은 갖춰야.”
“괜찮아. 차라리 잘 됐다니까.”
어머니도 더 말하지 않았다. 비용도 대어주지 못할 형편이니 속으로는 다행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날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가 부부 맞느냐고.
“아니야, 그럼?”
“나야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나도야.”
“혼인신고 안 했잖아?”
“사실혼으로도 부부 돼.”
나는 말을 멈추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의외로 아내가 말을 이었다.
“혼인신고 할까? 그래도 되겠어?”
헤어지자는 소리 먼저 하지 않을 자신 있느냐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자신 있어.”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를 미룬 것이 나를 위한 배려였다고 생각하니 고마웠다. 아내가 나를 향해 속으로
‘인물이 좋나, 힘이 세나, 배 튀어나오고, 코 골고, 많이 처먹고, 냄새나고, 말 많고, 방귀 달고 다니고 어느 여자가 같이 살겠어요? 게다가 멍청해도 말이라도 잘 들으니까 내가 데리고 살지.’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떠냐, 함께 살아주면 그만이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니 고맙지. 자나 깨나 입에 달고 지청구 대면 어쩌겠나. 인물 안 좋고, 힘도 세지 않고, 배 튀어나오고, 코 골고, 많이 먹고, 멍청한 것 모두 사실인데 반박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말 잘 듣는다 해 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가. 내가 말 잘 들으려고 애쓰는 것이야 내가 더 잘 아는 사실이고. 눈물겹도록 고맙지 뭔가. 그러나 아내는 내가 고맙다고 하면 그러지 말라고 눈을 흘긴다. 그 말 듣는 것이 좀은 미안한지. 아내가 가끔 독백으로 그러나 나한테 들리게
“병신.”
하기는 하는데
“내가?”
하고 내가 물으면
“아니, 내가. 독백인데 들렸나? 괘념치 말아.”
한다. 왜 자기가 병신으로 여겨졌단 말인가. 무슨 실수라도 했단 말인가. 혹시 나를 만나 동거까지 하게 된 것이 병신 짓이었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자기를 향해 한 독백이라고 해도 기분이 언짢았다.
내가 깊이 잠 들었는 줄 아는지 밤늦게 귀가한 맏이가 제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 사람 몇 살이야?”
“누구 말이냐?”
아내가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딸이 못마땅해서 한 말이었을까.
“누군 누구야? 엄마의 남자 말이지?”
“엄마의 남자? … 나이가 왜 궁금해?”
“사실은 궁금하지도 않아.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고. 말하기 싫으면 관둬.”
“마흔 살.”
“나보다 아홉 살 많네. 엄마보다 열 살 적고. 여자가 열 살 연상인 것보다 남자가 아홉 살 많은 게 더 자연스럽잖아?”
“얘가 무슨 소리 하고 있냐, 지금?”
“무슨 말인지 알아듣네. 사이에 자식도 없이 오래 살 수 있겠어?”
“빨리 헤어지라고 축수하냐? 헤어질 때 헤어져도 당장은 남자가 필요하니까.”
“셋째 남자와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급하게 남자가 왜 필요해?”
“몰라서 물어?”
“난 혼자 살 거야.”
“그렇게 될까?”
“내 나이 서른하나야. 지금까지 남자 없이 잘 살았어.”
모녀의 대화를 들으면서 내가 언제 버려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내가 잘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아내가 말한 적이 있다.
“애들이 아무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아 섭섭하지 않아요?”
“전혀. 불러주면 미안할 것 같아요.”
“내가 부르지 말라고 시킨 건 아니에요. 부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상관없다니까요. 언제 남남이 될지도 모르는데 뭘.”
뒷말은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해 본 말이었는데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나 일요일이나 휴일에 친구가 온다면서 외출을 하라고 하기도 했다. 반주 곁들인 두 사람분 식사 준비를 해 놓고 외출하라고 하기도 했다. 한 번은 아내가 귀가해도 좋다는 때에 귀가했는데 아내를 찾아온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그 사람이 가고 난 뒤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 사람 누구야?”
“채권자요.”
“둘이서 뭘 한 거야?”
물으면 안 되는데 물어버렸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데 아내가 화내지 않고 대답했다.
“빚 조금 갚았어.”
“조금?”
“이런 식으로 갚아달라고 했어, 그가. 신경 쓰지 마. 대실비, 식대, 몸값 모두 쳐서 1회에 50만 원을 까는 걸로 해. 그나마 이것도 갚고 싶다고 갚을 수도 없어. 그가 받겠다 해야 갚을 수 있어. 대신 안 갚아도 이자는 안 붙어. 모두 천만 원이었는데 이제 3백 남았어.”
나 만나기 전에 한 일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 아내이면서 그럴 수 있느냐고 항의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랬다간 아내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였다. 만약 헤어지자고 하면 어쩔 것이냐. 감수해야지. 이렇게라도 아내는 있어야 했다. 아내는 나의 자존심의 방패였다.
세 아이 중 맏이인 그의 딸이 아내가 일 나가고 없는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엄마한테 몇 번째 남잔지 알아요?”
“알아.”
“그런데도 우리 엄마가 좋아요? 어디가 …?”
“안 좋으면 같이 살겠니?”
따져보면 아내는 추녀는 아니어도 박색인 편이다. 몸매도 거의 절구통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혐오감을 줄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내가 이밥 조밥 가릴 처지인가.
“아저씨는 우리 엄마 마지막 남자이고 싶겠죠? 그게 가능할까요?”
“내가 많이 노력해야지.”
내가 그의 마지막 남자, 가당찮은 꿈이다. 아직은 버림받지 않았다고 하루하루 조마조마하게 사는 거지.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재은이 아빠 말이야.”
재은이 아빠는 아내의 두 번째 남자다. 자살했다는 남자다. 왜 또 전 남편 이야기를 꺼내는지. 나는, 전 남편 이야기 좀 안 할 수 없느냐고 할 수가 없다. 그것도 하필 장모 삼우제 날에. 그랬다간 무슨 곤욕을 치를지도 모른다. 열등감 있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참고하라는데 듣기 싫어, 할 수도 있다. 꼭 대답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고 다음 말 꺼내기 위한 말이라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도 힘 하나는 좋았어.”
힘이라면 무슨 힘? 지금 나한테서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힘을 더 써보라는 말인가. 없는 힘을 어떻게 내나? 힘을 기르란 말인가.
“미안해.”
“내가 원하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 듣는 게 아니야.”
어쩌란 말인가. 없는 힘을 어떻게 낼 수 있는가. 나는 아내와 성교할 때는 정말 최선의 정성을 쏟는다. 전 남편과 비교될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있는 힘을 다 쏟고 갖은 기교를 다 부린다. 아내가 발하는 절정의 쾌락으로 신음하는 소리는 나를 더욱 흥분시키고 열이 오르게 했다. 젖 먹은 힘까지 다 내려 한다.
“내가 있어 다행 맞지요?”
“당연하지.”
“잠이 안 와요.”
재워 달라는 이야기다. 성교 후면 아내는 늦잠까지 잘 정도로 숙면한다. 아내가 이러면 나는 그지없이 고맙다. 감히 청할 수 없으나 진실로 바라던 바다. 간이 좀 부푼 것일까. 생색을 좀 내고 싶었다.
“시동 걸어 주면?”
“시동, 남이 걸어 주면 더 좋은가 봐요?”
“그걸 말이라고.”
아내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내일 아침밥은 특식이다. 최선을 다하자. 아내를 지키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인데 최선을 다해야지. 코피가 터져도 좋다.
첫댓글 1922년 가을에 '부산소설'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아주 복잡하지도 않지만 간단하지 않은 일인칭으로 쓴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야기가 독자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셨군요. 소설은 쓴 사람의 의도대로 독자에게 받아 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쓴 사람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말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