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분쟁의 원인(고전 1:10-17)
오늘 본문을 설명하기에 앞서, 이야기 하나를 하겠습니다.
제가 어떤 형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형제님,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운동을 하시고, 물을 많이 챙겨 드시고, 혼자 집에만 있지 마시고 가끔 나가셔서 친구들도 만나고 그러십시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 편지에 “형제님을 사랑하고 아낍니다”라는 표현이 없다고 해서, 이 편지를 단순히 “운동하고 물을 마시고 친구를 만나십시오”라는 내용으로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편지를 쓴 제 마음에는 그 형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비록 편지에 “사랑한다”, “아낀다”는 표현이 직접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편지에 “한여름입니다”라는 표현이 없다고 해서 여름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하십시오.”
“물을 많이 챙겨 드십시오.”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더운 날씨를 피해서 운동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이기 때문에 물을 충분히 마시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즉, 글에 직접 기록된 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나온 상황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살펴보면 우리도 이와 같은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쓴 말씀을 보면, 어떤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상황과 바울의 마음을 함께 살펴볼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말씀을 더 깊고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없는 것을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 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흐름과 앞뒤 문맥, 당시의 상황을 함께 살펴보면 본문이 직접 기록하지 않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성경 전체가 보여 주는 사실을 통해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왜 그렇게 설명합니까?”
그러나 성경은 한 구절만 떼어 놓고 보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어떤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면, 우리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말씀의 의미와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소중히 붙들면서, 동시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을 깊이 살피고 바르게 이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고린도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하자 늘 그랬듯이 다른 곳을 찾지 않고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고린도교회는 회당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매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도 있었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교회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세워진 고린도교회에서 1년 6개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가르침을 받으며 복음 가운데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아볼로가 고린도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성도들 사이에 서로 다른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결국 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1. 사람을 중심으로 신앙이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에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안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나는 바울의 가르침대로 신앙생활을 하겠다.”
“나는 베드로의 가르침대로 신앙생활을 하겠다.”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겠다.”
“나는 아볼로의 가르침대로 신앙생활을 하겠다.”
이 부분을 바울은 본문에서 직접 언급합니다.
고린도전서 1:12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이렇게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사람을 중심으로 나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분쟁은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감정적인 다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무엇이 더 바른 신앙인가를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고, 자신들이 더 바른 신앙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지도자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분열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요구한 것은 사람을 따라 나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하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2.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원인 중에 하나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의 외모가 보잘 것 없었고, 다른 사람들 같이 권위적인 모습이 없었기에 사도로 인정하지 앓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의 분쟁 속에는 단순히 지도자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가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과 바울의 사도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자신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사람을 따라 나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묻습니다.
고린도전서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여기서 바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교회의 중심은 바울도 아니고, 아볼로도 아니고, 게바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바울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14–16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3. 바울은 분열된 교회를 버리지 않고 다시 복음 앞에 세웁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잘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교회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린도교회의 잘못된 신앙의 원인과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하면서 그들이 다시 복음 앞에 서도록 가르쳤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여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복음에서 벗어나 사람을 중심으로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에 대한 멸시와 조롱까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품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은혜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서 행한 사역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고린도전서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전한 복음을 그들에게 다시 회복 되도록 만들기 위해 쓴 서신이 고린도전, 후서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교회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 가르치고, 사랑으로 품으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 이러한 바울의 삶이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