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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건강의종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건종 최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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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 맨앞에서 경례하는 학생이 당시 2,400백 유은건아들의<중고남여4개교> 총학생회장 전성수회장인데 지금 우리12회 동창회장입니다 당시 상고 교문입구에 작은 민둥산이 보이는데 옛추억을 상기 시킵니다]
[위 옛사진속에 학창시절 우리 12회 동창생이 6반에 3백명내외로 3년간을 같이 배우며 다니고 졸업한뒤 50여년이 지나고나서 가까운 무등산을 산행하려는데 고작 12명의 동창이 동참 하다니.... 바뀐건 ㅇ에서ㅁ받침인데......어디서 다 무얼 하는지.............?세월과 세상무상함이로다 ~고금동서 다 같은거지만....오른쪽에서 두번째 하늘색 잠바가 옛사진의 멋진 폼의 전성수 회장]
2013년4월28일 그러니 전번주 일요일이었다
오랫만에 광주상고 고교동창생들이 무등산 산행을 하기로하고 오전10시에 증심사에서 만나기로했다
이번산행은 그야말로 62년 졸업후 50년만에 실질적으로 처음이면서도 많은 친구들이 모인편이다
지금은 실업고교생들의 수요감소로 학생수가 줄어 경영압박을 받는 재단측이 일반고교로 전환해 우리의 상고이름은 역사속으로 묻혀져 가고있어 안쓰런 마음 금 할길 없으나 사회환경과 시대의 흐름은 역류할 수 없음은 자연의 순리다
이번 등산은 동창회의 활성화를 적극 소망하는 일부회원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이뤄진것같다
고등학교 동창들이라고는 하나 8개월 부족한 내나이 70세를 최하로 많게는 5살차이가 나는 75세까지를 동창으로하고있다
이는 70년전 당시는 그러니 1940년대 당시는 의료시설 미비등으로 산모사망율 유아사망율 전염병사망율이 높았기 때문에
태어나면 바로 호적에 입적 시키지 않고 1~2년키워보다 살아있으면 그때서야 호적에 올리는 경우들이 허다해 의료후진국이었다
또한 역사적으로 농지소유제도 대가족제도 1차산업주종등 여러사회제도등에 따른 극소수 특수층만의 부자환경
그리고 인력이 요구되는 1차산업(농업.어업등)으로 소작등에 따른 가난과 생활고등을 겪은 가정이 대 다수일뿐 아니라
일제국치하와 해방과전쟁의 소용돌이 세대들이라 오직 먹고사는일이 우리 민족의 최대 당면 과제였든 세대들이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군3년장기복무 독재시대 권위시대 군정시대 재건운동등으로 40대사망율세계최고 시대를 살아남아
50대에 들어 겨우 제 자리잡아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안정권에 들어서려하니 1900년후반 경제망국의 IMF구제금융으로
경제발전 주역이라는 발전 공로의 공과는 뒤로하고 아무 죄없이 오직 나이 먹었다 라는 이유 하난만으로
국가나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억울하게 토사구팽당하고 쫒겨나 사회일원에서 후선으로 밀려 자연과 함께하는 세대다
따라서 당시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친구들도 상당수였으며 (농촌기준)그래도 괜챦했다면 늦게라도 다녔었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나는 아버님이 공무원이라 호적에도 정상으로 빨리 올렸고 초등학교도 7세때 바로 빨리 다니게됐다
그래서 내인생은 여기서 부터 내나이 상향시대를 살아오게 되는것이다 초등부터 동창이나 친구들 모두가 나이가 많은...
따라서 60년대는 3년의 전쟁으로 폐허가된 종전후 겨우 7년밖에 안됐든때라 사회질서가 아직 서 있지 않았음으로
어느층 어느학교등 나이 제한이 없어 고교동창들의 나이차가 지금같이 일률적이지 못하고 나이 차가 많았다 시대가 만든...
그러나 동(同)자가 붙은 동창인걸 어떡하냐 초등부터 계속적으로 5세차까지는 나이차없는 같은 나이의 동자의 친구인걸..
그렇게 파란만장 우여곡절의 세파를 겪으며 살아온 세대인 우리동창들이 산행으로 모(母)산 무등산을 찾게 된것이다
우리가 12회니 지금의 회수들은 엄청난 차이를 느끼며 이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12회에 12명이 모인것이다 그증 7명많이 등산을 했으니 우리세대 사회 평균 통계치다
나는 20여년전 동창회가 유명무실 할때 시내권에서 근무하면서 맘에 맞는 동창들과 처음 20여명이 모임을 만들어
지금은 13명이 일심동체가되어 아무 탈없이 재밋고 즐겁게 만나오고있어 동창회 참석의 필요성을 못느끼며 살아왔다
그런데 동창회는 계속 존속되어오고 있으면서도 활성화가 되지 않으니..12회졸업생이 거의 300백이 넘는데 다 어디로 가고....
우리 광주시민들이 뜻한바를 소망했을때 어머니 품속같은 모(母)산 무등산을 찿드시 우리도 무등산을 찾게된것같다
그래서 단순이 무등산은 국어사전에 있는 단순 고유명사인 무등산 많이 아닌 우리의 산인것이다
확대해석하면 산은 산많이 아닌 우리의 산인것이다 더높이 올라 마음으로보면 산도 물도 바다도 인간도 다 하나인것이다
심신일여 신토불이(心身一如 身土不二)마음과 몸은 하나와같고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가 있는데 흙은 지구를 말한다
그러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며 일여와 불이를 배제한 성철스님과는 뜻을 다르게 하는 나의 지론이다
어찌 물은 물일뿐이며 산은 산일 뿐인가 그는 나무만보고 숲은 보지않은 협의의 논리다 라면서도 인정은 한다
위에서 말했지만 이지구촌은 오직 하나다 그속에 모든것을 담고 있다 그러나 또 자세히 보면 다 따로따로다
그러니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 다를 수가 있는것이 사실이며 그것이 자연의 이치고 순리다
문제는 제눈에 안경으로 보는것많이 올고 바르다 고집하는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주장은 하는것은 순리다
그것이 순리니 남의 주장도 인정해 주는것이 순리며 자기주장을 주장할 수 있어야 이치에 맞는것이다
나는 이글을 쓰면서 내가 쓰는글은 내안경으로 보는 오직 나의 주장일뿐 전부가 다 옳다라고 고집하지않으며 또한 어떻한
다른 논리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고 인정하며 또한 내글에 이론이 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함을 전제 하며 이글은쓴다
그런데 유명하시다는 성철스님의 어록이나 성향에 나는 의아를 금할 수가 없다 아니 많은 유명 스님들도 마찬가지다
불교의 창교자 삭가모니 부처님의 어록에 숨어있는 가장핵심적 문구를 본기억이난다
거기에 무유정법이 불법(無有定法 佛法)이라고 숨어진 굴귀가 있다
쉽게 말해 방법을 정하는 방법에는 일정하게 정하여진 법이 없는것이 부처님의 법이라했다 그것이 불교의 법이다는것이다
그런데도 불교계 월로나 유명 스님등께서에서는 그 어구 하나만 제대로 깨달고 설파를 하셨어도
지금껏 해결이 안되고 시시비비하며 매년 논쟁이 벌이고 있는것이있으니
바로 합천해인사측의 성철스님이 주장한 돈오돈수(頓悟頓修)와 순천송광사의 법정과보조스님이 주장한돈오점수(頓悟漸修)다
간단히 설명하면 돈오돈수는 단박에 깨달음으로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고
돈오점수는한번에 깨달았어도 꾸준히 계속 수행을 해야한다는 논리다 ㅋ ㅋ 얼마나 웃기는가 다 깨달았다면 다 맞게보인다
그런데도 성철 스님은 일여(一如)와 불이(不二)를 배제한 자가가 주장한것이 옿다고 만 하는것이 아니라 고집한 분이라 나는 의아해한다 그래서 이러한 자료가 20여년전 자료인데도 작년까지도 해결안되거 민간인까지 참여 세미나를 여는등이니..
몇년전에는 이러한 불교계의 미묘한 사안을 새로부임한 종중스님께물으니 돈오돈수도 돈오점수 다 맞다해 무유정법을
공부하신 스님이라고 느꼈는데 불교계최고스님이 그런 뜻인데 왜 아직까지 도 자기것만이 맞다며 불심을 모르는지....
만약 내가 말한다면 돈오돈수도일리(一理)가있고 돈오점수도 일리는 있다(맞다가아님) 그러나 이를 주장하는 방식이 틀렸다고..
종교계가 올바르게 변하지 않는한 이 사회는 절대로 올바로 갈 수가 없는것이니 급선무가 종교계의 정심이라고본다
<▣ㅋㅋ여기 이사진 이렇게 본래 찍은게 아니고 친구가 찍을 때 손을 가리고 잘못 찍어 아래가 뿌였게 나와 ,제가 짤라내고 올린것입니다 머리를 쓰면 어디나 길이 있습니다 ▣>
산을 주제로 하다보니 성철 스님 까지 왔는데 이는 산의 정의와 세상의 이치를 정의 하고자에 함에서이다
이전에는 나 없이 자기들이 만들어 논 동창회 감사이면서도 한번도 안 나갔다가 이번에느 산행이라해서 모처럼 나왔드니
모두들 네가나오니 이제 동창회 잘되겠다, 와주워 너무 고맙다, 네가 나온다해서 너보러 나왔다, 나오니 넘좋다,자주좀 보자..
대통령이 어디 가면 이런 대접 못 받을 것같았다 뭔가 속내들이 숨어 있는 느낌을 받으면.....감사고마우며 무거워진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등산을 할 7명이 먼저 산을 올랐다 코스는 2시간코스 무등산의 최고 명소 새인봉을코스로 올랐다
한달전 이른봄 왔을때 앙상한 가지들사이로 기암 절벽의 절경들이 봄철 녹색옷을 입고서 또 다른 새인봉의 모습을 보여줘서
아름다운 무등산을 배경으로 몇폭을 담고 내려와 모임장소인 증심사 전북 식당으로 오니
늦게온 친구들과 산에 못오르는 친구들이 모여있어 합류하니 12명으로 12회숫자를 맞춰주는게 우연인지 인연인지....
하산하면 통상적이고 전형적으로 보리밥과 막걸리를 시켜먹는데 술잔을 다같이 돌리는데 동창회장이 나보고 건배 주창을
주문한다 그건 아닌데 하며 그냥 12회 산악회를 위하여 선창하니 모두 힘차게 따라하는양이 뭔가를 갈망 하는듯햇다
아닌가 햇드니 몇친구가 입을 맞추며 나를 산악회장으로 추대한다며 전원 박수를 치는것이다 전원 아무 이의가 없었다
이건 짜고 치는 고스톱이구나 이건 민주 방식도 아니고 상대 존중도 아니다 그저 어안 벙벙 묵비권 발동.....
잠시 분위기 가라 앉은뒤 정중히 사양의사를 강력히 제시하니 여러가지로 의견들이 나오면서 너도 나도 한마디씩
시끄러워 지는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거기서 합의점을 찾아 앞으로 가야지 짜고 치는 고스톱은 정의가 아니다
어디가나 피력하지만 나는 최고의 정상은 싫어한다 선택권이 없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구속과 잘함은 없고 잘못만 보이는
무한의 책임이 따르는 부질없는 자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현역때도 항상 최고의 자리는 고사하고 중간쯤의 자라를 원했다또그게 나의 카페나 블로그 건강의 종소리에도 제목에도 부합되며 닉네임 건종에도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에와서 산의 이치를 따라야지 이를 어기면 산에 오는 의미가 없는것이다 산(山)이란 한자를 보자
이건 고딕체이기 때문에 가운데 긴산에 양쪽에 똑같은 크기의 산이 있지만 아마 원문을 보거나 궁서체등 다른체를 보면
가운데 높은 산은 하나는 변함이 없겟지만 양변의 산 모양은 여러 형태로 글자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이는 만사에 최고는 하나여야 한다는게 산(山)자지만 실은 세상이치가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사공이 둘이면 배가 산으로....
그래서 한 동창회에 동창회장 산악회장은 동창회를 오히려 더 갈라 놓은 결과로 활성화가 아니라 퇴화란걸 강조했다
여러 의견들을 감안하며 그를 뒤로한체 산악회장은 별도로 두지 말고 동창회장이 겸임하기로하자며 권고하고 결정햇다
아울러 나늘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동창 친구들의 따뜻한 예우와 알아주는 댓가로 봉사차원에서 운영을 맞아주기로하자
한 친구가 거뒀든 돈과 명단을 나에게 주며 재무총무를 겸해서 이끌어주라 강제임명 (?)해버리면서 박수로 일단락됐다
이후 이런 저런 감회를 서로 풀고 아쉬워하면서 식당문을 나오면서 하는말들 왈 이제 다 해결됐다라니..무슨뜻..?
나는 오늘부터 나의 봉사는 시작되는데 식사대금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나왔다 이를 본 회장이 오늘은 자기가 계산했다
잘한 짖이다 식사대를 계산 안했으면 여기에 한줄도 할애를 안했을건데 명예만 얻고 베풀지 모른다면 그건 무지 무식의
하등동물로 장을 할 자격이 없는데 우리 전성수 회장은 회장 노릇을 제대로 한것이다 육군 영관 출신으로 남자답다
오늘 산이 좋와 산에 갔다 또 다른 짐을 하나 지고는 왔는데 이것도 적선이려니 봉사려니 희생이려니 보답이려니 하니
하며 좋게 생각하니 머리속은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바뀌며 기분은 가벼웠다 받기만해도 도리가 아니니...
허나 나는 오늘 확실하게 동창 친구들이 던진 산이라는 낙싯대에 친절 칭찬 알아줌의 기쁨의 낙시밥을 물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낚시밥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나를 잡은 친구들은 나를 맛있게 써 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동창 친구들이 대견 존경 사랑스러웠다 회장도 문자 할때마다 존경 칭찬이고 친구들도 칭찬에 관심이니.
부모형제들도 나한테 그리 안하고 나도 그렇게 할 수 없는데....나도 앞으로 그렇게 해야겠다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산은 우리의 모든것을 이루는 곳이었다
그런 산이 좋와 산에 가서..
감사합니다
건종 최환수
[1961년도 고2년때 경주 불국사 수학 여행 사진인데 두번째줄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얘가 바로 소인입니다 ,,,,ㅋ ㅋ]
<무등산 새인봉 돌아 오는길 설명없이 계속 이어집니다>
<찬구가 찍을 때 손이 가려 이렇게 나왔습니다...ㅋㅋ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