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시집으로 읽기와 말듣쓰를 같이 해보기
* 읽기의 셋째마당의 처음 부분은 시 4편을 들어 놓고 ‘감각적표현의 특징을 찾고 감각적 표현에 주의하며 시를 읽자’고 되어 있다. 시는 큰 재미가 없고, 그야말로 감각적표현을 찾을 수 있는 시들을 예로 들어 놓았다.
교과서에 실린 시는 임길택의 <비오는 날> 이원수의 <달> 이화주의 <혼자 있어 봐> 전원범의 <푸른 하늘 속으로> 4편인데,
첫 시간에 시 한편당 2-3회 낭독을 한 뒤에 맘에 드는 시를 고르라고 하면 아이들은 전원범의 시를 가장 많이 고른다. 가장 감각적인 시이니, 교과서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듯이 보인다. 임길택과 이원수의 시는 고르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적은데, 어떤 면에선 이 두분 시인은 이 시가 교과서에 실림으로써 아이들에게 두 분의 시세계가 오히려 오해되는 부분이 잇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어떤 시인의 시를 실을 때 가능하면 그 시인의 대표작을 실어주는 예의 정도는 갖추면 어떨가 싶다.
어쨌던 교과서대로 감각적인 표현을 찾는 수업을 진행하면 재미가 적다. 그래서 손바닥시집을 만들기로 하였다. 손바닥시집에 넣은 시는
권정생의 <밭한뙈기> <인간성에대한 반성문2> 김용택의 <이 바쁜데 웬 설사> 성명진의 <빗길> 민요 <엿타령> 정세기의 <대결> 안도현의 <감자꽃>으로 7편이다.
읽기 둘째 시간에 이 손바닥 시집의 시들의 주었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 했다. 권정생의 도모꼬이야기 덕분이다. 김용택의 시도 즐거워했다. 빗길은 여전히 많은 아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역시 교과서의 시를 읽을 때보다는 많은 아이들이 시를 즐거워하며 눈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집의 표지를 만들 때에도 능동적이었는데,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는 아이-문제집에 코를 박고 사는 아이(희주)-도 꽤나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즐거운 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은 시 읽기이고, 말듣쓰에서 시를 쓰기 전에는 ‘아이들 시’ 만으로 손바닥 시집을 만들어 읽은 다음에 쓰면 좋을 것이다.
다음 말듣쓰를 하게 되었는데, 말듣쓰의 셋째마당 역시 [느낌과 표현] 단원인데, 주로 ‘글 바꾸어 쓰기’를 하도록 되어 있다. 시를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로, 극본을 이야기로, 이야기를 극본으로 바꾸어 써보자고 되어 있다. 시를 이야기로 바꾸어 쓰면, 시의 내용을 길게 잡아 늘여놓을 뿐 바꾸어 쓴 사람의 글이 결코 될 수 없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어떤 장르의 글을 어떤 장르로 바꾸어 보는 연습의 실익은 무엇일까? 글쓰는 기술을 익히자는 것일까?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이 이렇게 공부하고 이것을 또 일제고사로 시험을 봐야 하니, 장르 바꾸어쓰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내재될 때 그 영향은 과연 어떻게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작가들은 자신이 본을 받고 싶어하는 작가를 가슴에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작가의 작품을 배껴 써 보는 일도 한다. 자기가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을 당연히 많이 읽지만, 작품을 직접 한 자 한 자 써 볼 때에 느낌은 많이 다르다. 글자 하나 하나에서 존경하는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서 배껴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때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존경하는 작가가 시인일 때 그 시를 이야기로 바꾸어 쓴다거나, 내가 존경하는 작가가 소설가일 때 그 소설을 시로 바꾸어 쓴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내가 길게 이야기 했으므로 아이들은 좀 지루해 했다. 그래서 요약하기를
-말하자면, 글의 종류를 바꾸어 썼을 때 이야기는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해놓고, 자기 이야기를 쓰자고 했다.
말듣쓰의 셋째마당 두 번째 단락은 <동전한닢>이란 시를 읽고 이 시를 이야기로 바꾸어 쓰자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1) 대화로 표현하고 싶은 부분은 어디인가?
2) 내가 경험한 일과 관련지어 좀 더 자세하게 쓰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
3) 이야기는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꾸미고 싶나요?
를 물어서 쓸 내용을 정리하게 한 다음 글을 쓰도록 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읽기에서 사용했던 손바닥 시집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상황을 조금 바꾸었다. 바꾸어 쓸 대상으로 주어진 ‘시’는 이야기를 쓰고 싶도록 만드는 ‘동기유발용’으로만 활용하자는 것. 그러자면 교과서에 주어진 시 한편 만으로 역부족이었으므로, 손바닥 시집의 시 7편을 모두 동기유발용으로 주었다. 이렇게 했을 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시는 무엇일까? 예상한 대로 빗길이다. 교과서의 동전 한 닢도 많이 선택한다. 아이들이 유사한 경험이 비교적 많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쓴 이야기가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다. 바꾸어 쓰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아이들이 많았다. 특별히 상상의 세계를 이야기로 내 놓은 아이도 있기는 했다.(정세기의 대결)
그런데 뜻밖에도 바꾸어쓰기가 재미있다는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골치 아프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건 아닐까? 자기 이야기를 쓰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할 테니까.
과연 장르 바꾸어 쓰기가 아이들의 글쓰기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부정적인 부분이라면 무엇일까? 수업에선 어떻게 할 것인가?
손바닥시집으로 읽기와 말듣쓰를 같이.hwp
첫댓글 올해는 아직 이 부분 수업을 못 했구요. 작년에는 시를 시극으로 꾸미는 활동을 아이들과 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던져 놓으신 문제는 오늘 함께 이야기하기에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