身 哱 藏 (신발장)
“자기야 오늘 퇴근하면 집에서 신발장 좀 정리해줘.”
조리원에서 근무지로 문을 열고나올 때 아내가 등 뒤에서 말한다.
그래 이제 이틀 후면 아내와 갓 세상을 나온 내 아들이 조리원을 나와 우리가 살 집(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지만)으로 찾아온다. 순간의 고통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순간의 고통과 2년(예전에는 3년이 넘었던) 남짓 되는 대한민국의 사내라면 치를 떨기 마련인 그 군대시절의 기억과 비견되는 출산의 고통과 해산 후 조리의 기간을 마치고 이제 집이라는 그 곳으로 온다는 말이다.
‘부부 생에 전례 없던 啊를 맞이해야 하니 그에 합당한 예를 갖추어야지.’는 생각을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간다. 조리원에서 아내와 함께 기거하느라 보름여를 비워서 그런지 집안 구석구석 먼지가 있어 청소기로 대충 먼지를 제거 후 밀대 질까지 한 시간여 땀을 흘린 후
“이제 본격적으로 신발장을 정리하자.”는 혼잣말과 함께 현관 내 신발장문을 연다. 맨 위열에서부터 아래로 4열이 내가 사용하던 신발들로 되어있다. 높이가 조금 높은 위열에는 목이 있는 구두랑, 등산화, 케쥬얼화, 그리고 아래 두 칸에는 로퍼랑 스니커즈가 위치해 있다.
한열에 신발 6켤레씩 총 24켤레가 있다. 문득 ‘언제 이렇게 많이 사두었담.’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생각보다 신발이 많다.
‘어디보자 이놈은 언제 사둔거지.’하며 제일 낯선 운동화 한 켤레를 집어 들어 본다. 매쉬로 된 것이 여름용 스니커즈다. 한 4년 전이었나? 첫 근무지에 발령을 받고 보니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편물 접수 후 파렛트에 적재를 위해 이래저리 움직일 상황이 많아 사둔 신발이다. 앞코에 커다란 징이 박힌 채로 연구동이나 생산현장을 누비라고 있던 안전화,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아 책상위에서 구르느라 슬리퍼 한번 못 신어보고 주구장창 신어 내발이 짓무르게 하던 그 작업화를 벗어나 이제 슬리퍼 신고 사무실에 있어보나 했더니 이번에도 앞뒤 옆이 막힌 그런 신발을 신게 하는구나 하고 투덜대며 샀던 그 신발이다. 오전시간에는 찾아오는 손도 지나가는 길손도 적어 혼자 사무실 밖에서 담배피고 서성댈 때, 우편물을 잔뜩 싫은 파렛트를 밀 때, 퇴근 후 자전거 타고 관사 북쪽부터 시작해서 서쪽 남쪽 동쪽 순으로 동네 한바퀴를 돌 때 그 패달위를 함께 했던 그 녀석이다. 너 참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뭐한다고 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듯 없는 듯 있었누? 아직 팔팔한 놈이 이렇게 있으면 안 돼지. 내일 같이 고향 길을 걸을 테니 준비하고 있어.
이번에는 회색 스니커즈를 뽑아든다. 참 낯선 운동화다 밑창을 보니 몇 번 신은 것 같지도 않다. 넌 언제 나랑 처음 인사한 거야? 낯이 설어도 너무 설어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 그래 자네는 신혼여행을 위해 찾아온 거지. 반갑다 반가워. HTT라는 한글 타자프로그램에 있던 한글연습 게임으로나 알고 있던 베네치아의 거리를 함께 했지. “베네치아에는 비둘기나 개들이 많이 있어서 그 분비물을 밟지 않도록 발밑을 주의하세요. 혹 밟게 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마시고요. 그래도 이탈리아 명품일 테니까요
.”
반복되는 신혼여행들의 가이드를 하느라 추운 날에도 나와 있던, 몇 번이고 반복했을지 모를 가이드가 지겨움에 지쳐 습관적으로 나온 농담을 듣고 혹시라도 너를 더럽히게 될까봐 조심했던 게 생각나는군, 노랑, 하늘색등의 파스텔 빛이 가득하던 아말피 해변도, 아내가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신혼 여행지를 정하는 결정타가 된 ‘냉정과 열정사이’의 무대 ‘두오모 성당’꼭대기를 향하는 나선계단을 걸을 때도, 명품가방하나 살려고 어설픈 영어회화 실력을 믿고 사방을 헤집고 다니던 로마의 다운타운에서도 네가 함께 했었지. 후후후. 근데 그거 알고 있니? 자네의 그릇에 담기에는 내 발이 너무 작아 우리가 함께 하던 그 순간 몇 번이나 내가 넘어질 뻔한 거? 특히 계단을 내려올 때 적잖은 고통이 함께 했다구.
맨 윗 열 최 좌측에는 세무 재질의 신발이 보인다. ‘러거’다. 이것저것 다 때려치우고 공무원이나 되자고 공부할 때 운동화를 신으니 발에 땀이 차인다. 그렇다고 슬리퍼 신고 다니자니 학원까지 돌아다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도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갈수 없어 습기 덜 차고 편한 놈을 신고 다니자 싶어 사둔 거다. 밑창이 생고무로 되어 있어 발이 무척 편하기는 하나 접지력이 약해서 눈 오는 날에는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에 힘을 두고 조심조심 걸었더랬다. 얼마나 신고 다녔던지 가죽이 다 늘어나 처음 신을 때보다 많이 헐렁해져있다. 참 편한 신발이었어. 길이 잘 든 것이 동네 마실 다니기에 적격이지.
단돈 천원에 산 건데 아직 신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둬야지.
가죽이 질긴 게 작업화로 안성맞춤이야.
겨울 방한화로 이보다 좋은 게 없지. 등등의 이유가 제각기 붙어간다. 그게 본래의 제 자리인양 곁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고만 있다.
‘아직 재우가 신발을 사용하기에는 한참이 걸리니 그 때가서 정리해도 늦지 않아.’ 모두 때가 되면 스스로 물러날 테니 아직은 현역으로 두는 것이 나을 듯싶다. 그렇게 신발들은 오랫동안 머물던 그 장에서 잠시 문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원대복귀를 한다. 제 주인의 팔자걸음으로 인해 발꿈치 바깥모서리 부위가 닳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