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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
〖초1일 경오〗맑음.
주국(柱國)형제(兄弟)가 먼저 가고,어버이에게 드릴 여러 물건들을 봉(封)하는 것을 살폈다.
〖초2일 신미〗맑음.
봉화(奉化)로 출발했다.약목(若木)에서 아침을 먹고,인동(仁同)서 점심을 먹는데,부사(府使)가 관대하게 영접한다.
저녁에 군위(軍威)에 투숙했는데 현감(縣監)이 학질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초3일 임신〗맑음.
안평(安平)서 아침을 먹고, 일직(一直)서 점심을 먹고,안동(安東)의 객사(客舍)에 투숙했다.
〖초4일 계유〗맑음.
예안(禮安)서 점심을 먹고,
온계(溫溪)의 빙군(聘君:숨은 현자(賢者)로 천거되어 관원이 된 사람,여기서는 장인 인듯함.)께 인사드리고,
드디어 봉화(奉化)에 도착하니 자부는 이미 도천(刀川:갈내)으로 돌아갔다.
〖초5일 갑술〗맑음.
아침을 먹고 도천(刀川)으로 갔다.이날 박원(朴瑗)이 왔다.
빙 둘러 싼 사람들은 몽양(蒙養) 이정(李正),무미(茂美) 이보(李甫),이선(李銑)이다.
〖초6일 을해〗맑음.
금충순(琴忠順)의 술을 마셨다. 나와 아이들은 먼저 봉화현(奉化縣)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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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5월 5일
음복연을 할 때 세자를 위하여 차일을 설치하도록 하다. 호조가 영돈녕 정창연이 녹봉을 돌려보냈다고 아뢰다.
금군을 자주 사역시키지 말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5월 6일
자리가 빈 동지중추부사에 월곳 첨사 이문빈을 제수하게 하다.
사간원에서 수감된 죄수들의 심리를 지체하지 말 것을 아뢰다.
양사가 3적을 국문할 것과 이운상에 대한 상형을 분명히 할 것을 아뢰다.
지평 변응원이 양현고가 거두는 어세의 폐단,수군과 정로위의 문제를 아뢰다.
심돈(沈惇)을 예조 참판으로,송일(宋馹)을 형조 참판으로,이안눌(李安訥)을 지제교로,
박자흥(朴自興)을 형조 참의 지제교로,유희량(柳希亮)을 승정원 우부승지로,최응허(崔應虛)를 분승정원 승지로,
임성지(任性之)를 홍문관 부교리로,이정(李涏)을 사간원 정언으로,이재영(李再榮)을 봉상시 주부로,
황덕부(黃德符)를 예문관 봉교 겸 세자 시강원 설서로,한정국(韓定國)을 예문관 검열로 삼았다.
光海君 8년 5월 7일
황해 감사 윤조원이 장계를 올렸는데, 해주 옥사가 비롯되다.
사간원이 경기 수군을 선혜청에 소속시킬 것과 최기를 국문할 것을 아뢰다.
사헌부가 형장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최기를 국문할 것을 아뢰다.
배천 현감 조박이 이미 부여로 부임해 갔기 때문에 잉임을 그만 두다.
병조가 벼슬아치의 자제 대신 내삼청의 숙위에 배정된 금군의 처우를 아뢰다.
한찬남이 최기의 일과 관련하여 형리와 형장들까지도 가둘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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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7일 병자〗맑음.
아버님이 오셔서 종일 같이 이야기하고 매우 즐겁게 파(罷)했다.
〖초8일 정축〗맑음.
회록(會錄)이 별책(別冊)에 있다.비가 오려고 했지만 비가 안 와서 매우 다행스럽고, 매우 다행이다.
〖초9일 무인〗비.
회록(會錄)이 별책(別冊)에 있다.
〖10일 기묘〗비가 오다가 간혹 그침.
국기일(國忌日)이라 모시고 즐기는 자리를 만들 수 가 없어서 우천(迂川)으로 돌아가
중립(中立)과 미보(美甫)와 같이 잤다.
〖11일 경진〗맑음.
영춘(永春)께 수연(壽宴)을 마련하고, 부인은 저녁에 온계(溫溪)로 돌아갔다.
〖12일 신사〗맑음.
빙모(聘母)님 수연(壽宴)회록(會錄)은 별지(別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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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5월 8일
최기의 일과 관련하여 외방에 있는 사람들을 추적해서 형틀을 씌워 압송하라고 명하다.
선수 도감에 권학의 일을 조사하라고 비망기로 이르다.
훈련 도감의 군졸들의 도태는 신중히 하라고 비망기로 이르다.
형방 승지 한찬남에게 죄인을 체포했을 때는 입직하도록 이르다.
光海君 8년 5월 9일
임취정이 해주 목사의 후임을 서둘러 차임할 것을 아뢰다.
재계하는 날이라도 중국에 관계된 일·변방의 보고·역옥에 대한 것들은 보고하게 하다.
비망기로 공사청·사알방·야대청 등의 조성을 명하다.
光海君 8년 5월 10일
비망기로 기름 부채 3백 자루를 급히 진상할 일을 경상·전라 감사에게 이르다.
光海君 8년 5월 11일
비망기로 인양전의 차지 낭청과 감역관, 도청 조유도의 출사를 명하다.
비망기로 낭청 감역관을 특별히 뽑아서 공사청의 일을 맡기라고 명하다.
비변사에서 예전대로 강화도에 유사 당상을 둘 것을 청하다.
훈련 도감에서 태묘 친제 때에 종묘 근처에 군인을 배치하겠다고 아뢰다.
민형남(閔馨男)을 판돈녕부사 여천군(驪川君)으로,허균(許筠)을 형조판서로,백대형(白大珩)을 황해도 관찰사로,
한찬남(韓纘男)을 도승지로,임취정(任就正)을 좌승지로,유대건(兪大健)을 우승지로,유희량(柳希亮)을 좌부승지로,
이명남(李命男)을 우부승지로,안응형(安應亨)을 동부승지로,허흔(許昕)을 분승정원 승지로,
이창후(李昌後)를 홍문관 수찬으로,황덕부(黃德符)를 예문관봉교 겸 세자시강원설서로,정영국(鄭榮國)을 해주목사로,
최관(崔瓘)을 동지중추부사로 삼았다.
光海君 8년 5월 12일
승정원에서 병판 박승종이 흉서에 이름이 거론된 것 때문에 대죄하고 있다고 아뢰다.
한찬남이 선전관에게 표신을 내줄 것과 좌부승지 유희량이 대명하고 있음을 아뢰다.
승정원에서 청재를 위해 좌부승지 유희량을 명초할 것을 청하다.
승정원에서 영의정 기자헌이 드디어 청재에 들어갔다고 아뢰다.
치재 중이므로 대명하고 있는 재신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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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임오〗맑음.
이요서(李堯瑞)를 만나보고 월천(月川=趙穆269)선생 능(陵)에 참배한 뒤에 두 조(趙:趙壽朋,趙錫朋60)씨와 얘기를 했다.
김(金)영월군수,금봉사(琴奉事),손여길(孫汝吉)등 모두 왔다. 예안(禮安)에서 잤다.
〖14일 계미〗맑음.
지삼(知三)숙모(叔母)께 인사드리고,광목[木疋]과 고기와 생선[肉魚]을 드리고,
제천(堤川)군수를 문병(問病)을 하려고 자준(子埈)에게 부채를 주어 보내고,
장락수(張樂壽)와 권사간(權司諫=晦谷 權春蘭224)앞에서 술을 마시고 안동(安東)에 투숙했다.
〖15일 갑신〗흐리다가 갬.
유경(有景)은 향교(鄕校)에서 자고,김시강(金是杠)과 같이 와서 만났다.
식후에 술과 이야기 자리를 펼쳤다가 부사(府使)와 통판(通判)은 정오경에 돌아가고,일직(一直)서 잤다.
이참의(李參議)숙질(叔姪)이 술을 가지고 왔다.권첨(權詹)도 왔다.
〖16일 을유〗맑음.
안평(安平)서 밥을 먹고,군위(軍威)서 점심을 먹고,장천(壯川)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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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5월 13일
병판 박승종과 참판 이병을 다시 명초하라고 이르다.
승정원에서 문창 부원군 유희분의 상소를 들이다. 승정원에서 좌우 포도 대장의 표신을 청하다.
승정원에서 전 황해 감사 윤조원의 체포와 관련 유문할 것을 청하다.
비망기로 강화 군병·훈련 도감을 시켜 종묘를 호위·순찰하라고 이르다.
태묘 친제 때에 종묘의 순찰을 엄격히 할 것을 비망기로 이르다. 밤 2경에 유성이 나타나다.
光海君 8년 5월 14일
비망기로 대신들에게 어가를 수행하라고 이르고 환궁하는 날 정재 때에 시끄러운 일을 방지할 것을
고훤 부장에게 이르다. 환궁한 뒤 하례하기 전까지 소장을 들이지 말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5월 15일
신시에 인정전에서 백관들의 하례를 받고 사면령을 반포하다.백관들을 가자하고 잡법 사죄 이하를 석방하라고 전교하다.
묘시부터 여러 번 햇무리가 지다. 밤 1경과 3경에 달무리가 지다.
光海君 8년 5월 16일
사시에 인정전에 나아가 신료들에게 잔치를 베풀다.
종실과 삼사와 영의정 기자헌과 2품 이상과 시위 제장 민몽룡,행 사과 목대흠, 도승지 한찬남,사인 이대엽,
순령군 이경검이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대사헌 유간 등이 밤이 늦었으니 연례를 정지시킬 것을 청하다.
진헌하는 염석의 용그림을 화사에게 그리게 하다.
光海君 8년 5월 17일
궐정 추국에 참여할 영상·영돈녕·판의금(박승종)을 명초하다.
백관들은 대례에 제복을 착용할 것과 제사에 배행할 것을 비망기로 이르다.
종실 정원군,행 대사간 남근,홍문관과 백관이 종계의 악명을 깨끗이 없앤 공을 들어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이 차자로등이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 대간이 삼적과 이운상에 대한 일을 아뢰다.
황해 감사 윤조원이 해주에서 조사한 것을 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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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병술〗개다가 가끔 비.
인동(仁洞)서 아침을 먹고 매우 취해서 강을 건넜다.
약목(若木)서 점심을 먹는데,이로(李簬),이수언(李秀彦),이성춘(李成春),신우덕(申佑德),장경우(張景遇),
이수준(李秀俊)등이 술자리를 펼쳐서 마신다.장중순(張仲順)이도 왔다.저녁에 관아(官衙)로 돌아왔다.
〖18일 정해〗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해 집무했다.
〖19일 무자〗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해 공무를 보다.
〖20일 기축〗맑음.
치재(致齋)하느라 잠시 동헌(東軒)을 나왔다.
〖21일 경인〗맑음.
치재(致齋)하느라 동헌(東軒)에 나가지 않다.
〖22일 신묘〗맑음.
어머님 기제사(忌祭祀)를 지냈다.종일 아무런 흥(興)이 나지 않았다.
〖23일 임진〗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해 집무했다.
〖24일 계사〗맑음.
국기일(國忌日)이라 정무를 보지 않았다.(정청에 나가 앉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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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5월 18일
실도사를 시켜 해주 죄인을 압송하라고 전교하다.
직명대신 죄지은 신하라고만 쓴 판의금의 상소가 온당치 못하다고 전교하다.
대신이 참여하지 않은 계사는 들이지 말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5월 19일
영의정 기자헌,정원군,사간원 관원등이 존호 올리는 일을 계청하다.
헌부와 간원이 삼적과 이운상에 대한 일을 아뢰다.
사헌부가 심눌을 직부 전시케 한 명을 거둘 것을 청하다.
사간원이 옥사를 속결시킬 것과 심눌에 대한 명을 거둘 것을 청하다.
홍문관 응교 이유록,부응교 이정원,교리 유활,부교리 이짐,
수찬 이창정·유여항 등의 관원들이 휘호에 대해 윤허해 주기를 청하다
光海君 8년 5월 20일
호조가 윤근수를 우대하는 일은 예조에서 의논해야 한다고 아뢰다.양사가 합계로 삼적과 이운상에 대한 일을 아뢰다.
사헌부가 심눌의 일을 아뢰다. 사간원이 완산 옥사와 심눌의 일을 아뢰다.
승정원,영의정 기자헌,정원군,흥안군 이제,홍문관 부제학 이하 관원들과 양사가 합사하여 백관을 거느리고
휘호 올리기를 청하다.
光海君 8년 5월 21일
박대근을 보내서 일본 사신을 기다리게 하다.
光海君 8년 5월 22일
비망기로 선수 도감 도청 조유도와 박홍도를 추고하고 이충을 사진할 것을 이르다.
정원군과 양사가 합사로 영의정 기자헌이 백관을 거느리고 휘호 올리기를 청하다.
사헌부가 심눌과 도감의 당상·낭청의 일을 아뢰다. 사간원이 완산 옥사와 심눌의 일을 아뢰다.
光海君 8년 5월 23일
비망기로 집춘문의 수리와 작헌례 의주를 써서 들일 것을 이르다. 새벽에 안개가 끼고 유시에 햇무리가 지다.
光海君 8년 5월 24일
승정원에 병을 이유로 나오지 않는 박승종을 다시 명초하라고 이르다. 친국하다. 전 감사 윤조원의 공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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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갑오〗맑음.
대구부사(大丘府使:金允安)가 같이 추국(推鞫)하는 일로 왔다.
〖26일 을미〗맑음.
언문(彦文)이와 계문(戒文)이에게 형(刑)벌을 가했다고 보고한다.대구부사(大丘府使)가 돌아갔다.
〖27일 병신〗맑음.
도사(都事284)가 왔다.
〖28일 정유〗비.
산음(山陰)으로 갔다.경여(景汝)는 대구(大丘)에 갔다.
〖29일 무술〗 .
청숙(淸叔)정숙(鄭潚)을 사면(赦免)한다는 공문을 지닌
차사원(差使員:임시로 중요한 업무를 지워 파견하는 관원)이 지나갔다.도사(都事284)가 돌아갔다.
〖30일 기해〗비가 오다가 간혹 그침.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해 집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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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5월 25일
인정전에 나아가 친국하다. 비망기로 박승종의 아비 박안세를 중추부사에 제수하라고 이르다.
비망기로 알성할 때 배위에 헌관하는 대신의 자격을 묻다. 백관이 두 번째로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
정광경(鄭廣敬)을 상의원 정으로,이창후(李昌後)를 사간원 헌납으로,유여각(柳汝恪)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황유(黃紐)를 승정원 주서로,이지화(李之華)를 예문관 대교로,신응구(申應榘)를 고양군수(高陽郡守)영천군(靈川君)으로,
박진장(朴晉章)을 함흥 판관으로 삼았다.
光海君 8년 5월 26일
비망기로 모든 재계일과 국기일에는 논계나 차자를 들이지 말라고 이르다.
光海君 8년 5월 27일
황해 감사 백대형이 성문협 등을 무고함으로써 해주 옥사가 확대되다.
비망기로 성릉 기신제에 물이 불어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이르다.
光海君 8년 5월 28일
인정문에 나아가 죄인(최기,윤조원,최유영,박명운 등)을 친국하다.
光海君 8년 5월 29일
비망기로 쓰고 남은 재목은 저장하라고 선수 도감에 이르다.
민형남과 허균을 인견하고 녹비를 하사하다. 백관들이 재차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초저녁에 안개 기운이 있었다.
光海君 8년 5월 30일
인정문에 나아가 취유석·유찬·박제 등을 국문하다. 미시에 막차로 돌아와 유찬의 봉초를 들이게 하다.
박제를 옥에 내리고,유찬을 나오게 하다. 유찬에게 허균과의 관계를 묻고 편지를 들이게 하다.
유찬을 옥에 내리고,윤정직을 나오게 하다. 3경 3점에 친국을 파하다. 밤 1경에 유성이 나타나다.
光海君 8년 6월 1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光海君 8년 6월 2일
형조 판서 허균의 상소문 안성. 옥사에 관계된 죄인들의 공초를 받게 하다.
죄인 김영립·유시영·정충남 등을 친국하고 원정을 받다.곡산 군수 이서, 경기 감사 안응형 등의 자급을 더해 주다.
光海君 8년 6월 3일
금부가 감옥이 모자라니 공초를 받은 죄인은 함께 수감할 것을 청하다.
예판 이이첨이 ‘구월산에 역적이 있다’는 말과 관련하여 차자를 올리다.허균이 두 번째 상소를 올렸는데 입계하다.
백관들이 두 번째로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 알성 무과 초시에 합격한 사람 모두를 서용하라고 전교하다.
병조참판 이병이 사직 상소를 올리다. 우의정 정인홍의 차자에 답하고 의관을 내려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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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
〖초1일 경자〗맑음.
망궐례(望闕禮)를 행하고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다.
〖초2일 신축〗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초3일 임인〗비가 오다가 가끔 갬.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초4일 계묘〗비.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감사[方伯]가 이건정(李健精)의 군사(軍事)일로 병리(兵吏)를 재촉하여 간다.
〖초5일 갑진〗비가 간혹 그침.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감사[方伯]가 또 공형(公兄:각 고을의 세 구실아치. 호장,이방,수형리)과 천파총(千把摠288)을 재촉한다.
〖초6일 을사〗비가 간혹 그침.
사직서[辭狀]를 올림.
〖초7일 병오〗비.
정청(正廳)에 나가 앉지 않음. (즉 집무를 안 함)
〖초8일 정미〗비 오다가 간혹 갬.
정무(政務)를 보러 가지 않음.또 병리(兵吏)를 재촉하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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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6월 4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전성남 등 7명이 진술하다.
황해 감사에게 해주를 진정시킬 것과 신효업의 체포를 전교하다.
양사가 비어 있는 정승을 새로 임명할 것을 청하다. 예조 낭관을 보내 우의정 정인홍을 효유하다.
光海君 8년 6월 5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유학 김기경·김기문, 생원 봉식등 6명이 진술하다.
光海君 8년 6월 6일
추관들에게 일찍 모여 역옥을 지체 없이 처리하라고 전교하다.
유이증·최응빈·이관이 진술하다.
이안눌(李安訥)을 동부승지로,목대흠(睦大欽)을 분승지(分承旨)로,박종윤(朴宗胤)을 겸설서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이상항(李尙恒)을 충원 현감(忠原縣監)에 제수하라.” 하였다.〈복상(卜相)봉입하였는데, 불윤하다.〉
光海君 8년 6월 7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허전·최유함·이승춘이 진술하다. 직인 김기·이원·박계운을 다시 국문하다.
백관·종실·양사·옥당이 존호 올리기를 청하자 드디어 따르겠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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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9일 무신〗흐리고 비.
〖10일 기유〗비.
들으니 병리(兵吏) 춘상(裴春祥)이가 도주(逃走)했단다.
〖11일 경술〗흐리고 비.
감사[方伯]가 또 형리(刑吏)를 재촉하고 간다.
〖12일 신해〗흐리고 비.
도철권(都鐵拳)을 보내고,도문개(都文凱)로 이방(吏房)을 삼았다.
〖13일 임자〗흐리다가 잠시 갬.
승지(承旨), 예조정랑(禮曹正郞),주서(注書)의 선문(先文:관리가 출장 갈 때 도착 기일을 미리 그곳에 통지하는
공문 즉 노문(路文))이 일시에 겹쳐 도착한다.
주서(注書: 승정원의 정7품직)라고 온 사람은 박종윤(朴宗胤289)이었다.
〖14일 계축〗맑음.
주서(注書)가 떠나가고 병사(兵使:병마절도사)가 관아(官衙)안에서 수연(壽宴)을 벌였다.
병상(兵相:절도사)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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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6월 8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박이문 등 6명이 진술하다. 해주 죄인 허증 등 14명을 잡아오다.
光海君 8년 6월 9일
궐정 추국을 하다. 죄인 고대관 등 6명이 공초하다.
光海君 8년 6월 10일
죄인 향리 오성로·오언학, 영나장 봉족 나경춘 등이 진술하다.
光海君 8년 6월 11일
경상감사가 금산에 사는 전 교수 정인서가 임금에 대해 망언한 사실을 치계하다.
“개령 겸관(開寧兼官) 금산 군수(金山郡守)의 정장(呈狀)에,
‘본현에 사는 전 교수(敎授) 정인서(鄭麟瑞)는 이미 성상을 범하는 말을 하였으니,
내버려 두고 추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두 아들 및 함께 들은 이경희(李景熙)등 3명, 관아에 고발하지 않은 김곤(金袞) 등 4명,
말을 낸 정업(鄭嶪)을 모두 잡아가두고 조정의 처치를 기다립니다.’ 하였습니다.” 가도사 1명을 내보내다.
光海君 8년 6월 12일
국청죄인 전 경력 허증·향리 최명종·민정 이소군이 진술하다.존호를 올릴 때에 사용할 방물 물선에 대해 전교하다.
光海君 8년 6월 13일
전최(殿最)에 참여하지 않은 대신들에게 15일까지 입계하라고 전교하다. 양사가 합사하여 전계를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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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갑인〗맑음.
승지(承旨) 최응허(崔應虛35)가 왔다.병마절도사[兵相]는 절애당(節愛堂)으로 옮겨 앉아 군사를 위로하여 음식을
내리[犒饋]고,감사(方伯)는 (병리)배춘상(裴春祥)의 온 집안을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徙邊]
이성백(李成伯)은 삼천리(三千里)밖으로 유배(流配)시켰다. 가소롭다.
저녁에 절애당(節愛堂)에 가서 승지(承旨=崔應虛35)와 이야기 했다.
이야기가 록훈(錄勳)하는 일에 이르자 그가 말하기를,
“주인[나]은 (실록편수에)참여했으니 제4등(等)으로 당연히 가선(嘉善大夫:종2품계)에 이를 것이요.”한다.
〖16일 을묘〗맑음.
승지(承旨)가 고령(高靈)으로 가고,병마절도사[兵相]도 갔다.저녁에 지례(知禮)군수 심원(沈綩)이 와서 잤다.
〖17일 병진〗맑음. 아침에 잠깐 비.
〖18일 정사〗맑음.
감사(방백)의 선문(先文:路文)이 왔는데,내일 화원(花園)에서 점심을 먹고 통영(統營)으로 간다고 했다.
부득이하게 늦게 역참(驛站)을 출발했다.
설서(說書:세자시강원의 7품직) 박종윤(朴宗胤289)이 자러 오다가 안언(安彦)에서 서로 만났다.
나는 대동점(大洞店)에서 자는데,감관(監官290) 김발(金潑)이 와서 아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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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6월 14일
포폄을 일찍 마치고 추국에 참여하라고 전교하다.궐정 추국을 실시하라고 전교하다.
좌상에게 사관을 보내 복상(卜相)하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6월 15일
궐정 추국을 하다. 병조가 선전관 유세증에 대한 전최가 곤란함을 아뢰다.
이창후(李昌後)를 사간으로,남궁경(南宮㯳)을 지평으로,한급(韓昅)을 검열로,한옥(韓玉)을 헌납으로 삼았다.
전교하기를,“판윤 이충(李沖)을 우참찬 이지완(李志完)과 서로 바꾸라.”.
光海君 8년 6월 16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오응빙 유학 최식을 다시 국문하다, 박이빈의 모친 현금을 형신했는데 승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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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무오〗맑다가 저녁에 비.
새벽에 화원(花園)으로 가서 때를 보내고 있다니까 감사[方伯]가 왔다.성현(省峴)이도 따라왔다.
방백(方伯)이 떠나고 나면 나는 사수(泗水)로 가서 (정한강 선생을) 뵙고 싶었는데,
달성(達城)군수가 같이 추국(推鞫)하자고 이미 신안(新安)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나는 무계(茂溪)에서 배를 내려
어둠을 무릅쓰고 달려서 돌아왔다.
〖20일 기미〗맑다가 가끔 비.
달성군수와 심(沈) 지례(知禮)군수와 편안하게 이야기하며 술잔을 나눴다.경기(京奇)네가 왔다.
심(沈知禮)은 무주(茂朱)로 돌아간단다.지례(知禮)는 청안(淸安)과 맞바꿨다고 했다.
〖21일 경신〗맑음.
지례(知禮)군수는 돌아가고,달성(達城)군수와 같이 추국(推鞫)을 한 뒤에 돌아와서 객사(客舍)에 앉아서 공무를 보았다.
〖22일 신유〗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23일 임술〗맑음.
증조모(曾祖母:寧海敎授 世殷의 妻, 安東權氏)기일(忌日)이라 정무를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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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6월 17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이용언·김몽담·오극일 등을 형신했는데 승복하지 않다.
光海君 8년 6월 18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박계운·이열·김몽담 등을 압슬하라고 전교하다.
박이문이 신천 군수 홍준의 이름을 잘못 썼다고 진술하다.
정인서 등 11명을 잡아오다光海君 8년 6월 19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한찬남이 김기의 동생 김현을 체포했다는 포도청의 말을 아뢰다. 최기를 형추할 것인지를 의논하게 하다.
존호 올리는 날을 9월 15일로 부표하다. 윤근수에게 매년 쌀·콩·술 등을 하사하다.
한찬남의 건의에 따라 추관들로 하여금 궐문이 열리는 대로 회의하게 하다.
光海君 8년 6월 20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전 권관 김흠이 진술하다.
박계운에게 형을 가하고 이열,최기,김기를 압슬하다. 이원이 끌어댄 내금위 죄인 김응성 등이 진술하다.
영상 기자헌이 최기의 진술서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며 체직을 청하다.
光海君 8년 6월 21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윤정직의 삼촌인 윤전을 시위하는 일에서 제외시키다.
죄인 최식과 김흠에게 압슬을 가하다. 죄인 김응성·조득례·오인남·이원을 면질시키다.
김응성·최유영·유이증에게 형신을 가하다. 최기와 김기를 압슬하고 박계운에게 낙형을 가하다.
죄인 금부도사 유각민이 진술하다.
光海君 8년 6월 22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최식·최기·김기 등에게 형을 가했으나 승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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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계해〗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이봉교(李奉敎=李茳53)의 선문(先文)이 왔다.
형보(馨甫=李茳53)가 전지(傳旨)를 받들어 복상(卜相:정승 될 사람을 뽑음)하는 일로
좌상(左相=鄭仁弘240)댁에 가기 위해 내일 이리로 오겠다고 했다.
〖25일 갑자〗맑음.
국기일(國忌日:
임금이나 왕후의 제사 날)이라 정청(正廳)에 나가지 않았다. 저녁에 형보(馨甫=李茳53)가 왔다.
〖26일 을축〗맑음.
형보(馨甫=李茳53)가 관아로 방문해서 술로 자못 온편하게 이야기하다가 사시(巳時:오전 9~11시)에야 출발하고.
나는 정청(正廳)에 앉아 집무를 했다.
〖27일 병인〗맑음.
국기일(國忌日: 임금이나 왕후의 제사 날)이라 나도 기(忌)하느라 정청(正廳)에 나가서 정무(政務)를 보지 않았다.
〖28일 정묘〗맑음.
국기일(國忌日: 임금이나 왕후의 제사 날)이라 정청(正廳)에 나가지 않았다.
〖29일 무진〗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주서(注書)의 선문(先文)이 도착했다.
들으니 한강(寒岡=鄭逑184)선생이 초 2일 날 출발해서 초수(椒水)에 가서 목욕을 하러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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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6월 23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김기의 졸기,죄인 봉식을 형추하고 그 정상을 수시로 캐묻도록 이르다.
죄인 생원 박정민의 진술을 받아내고 1차 형신을 가하는 등 추국을 하다.
光海君 8년 6월 24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이열의 졸기, 죄인 김흠·최식·봉식 등에게 형을 가했는데도 승복하지 않다.
해주의 사령 죄인 이연학이 진술하다. 죄인 박정민을 압슬하니 진술하다.
죄인 전 충원 현감 정문익이 진술하고 하옥되다. 죄인 신천 군수 홍준과 별무사 정직이 진술하다.
양사의 건의에 따라 홍준과 한여직을 삭직하다.
光海君 8년 6월 25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죄인 전 군수 한여직·생원 박상질 등이 진술하다.
光海君 8년 6월 26일
국청에 최인 최식·유이증 등에게 형을 가하라고 전교하다. 죄인 김현·훈도 정기남 등이 진술하다.
죄인 최식·유이증·김흠에게 3차 형신을 했는데 승복하지 않다. 죄인 박정민의 졸기,
光海君 8년 6월 28일
전 해주 목사 최기의 졸기,
光海君 8년 6월 29일
죄인 전 감찰 유회·허통·이경림 등이 진술하다.
光海君 8년 7월 2일
친국하다. 사실대로 승복하도록 최유석을 타이르게 하다. 최유석을 형추하라고 전교하다.
죄인 유학 민성종,죄인 박이문이 진술하다. 죄인 윤정직에게 형신을 가하다.
승정원에서 존호 올리는 절차를 경인년의 전례에 따를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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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
〖초1일 기사〗맑음.
상노(祥奴)가 죽었다.[化去] 몹시 슬프고 매우 슬프다.
국기일(國忌日:임금이나 왕후의 제사 날)이라 정청(正廳)에 나가지 않았다.
주서(注書) 김시주(金是柱196)가 돈독히 효유하는[敦諭] 일로 좌상(左相=鄭仁弘240)의 집에 들어가서 잔다.
〖초2일 경오〗맑음.
주서(注書:金是柱)가 가고,선전관(宣傳官) 두 사람이 사시(巳時:오전 9~11시)에 지나갔다.송우(孫祐)가 왔다.
〖초3일 신미〗맑음.
유형길(兪亨吉)이 왔다.
밥을 먹고 곧바로 영산(靈山)으로 향해 가다가 손(孫)이 합천(陜川)의 실내(室內)에서 돌아온다기에
성밖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초4일 임신〗맑음.
낮에 잠시 비. 밤에 또 비 오다.
합천(陜川)에 도착하여 종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 조카인 이전(李㙉)과 얼자(孽子=庶子)인
이첩평(李堞坪)이도 와있었다.
오융보(吳隆甫=吳汝穩61)의 편지가 왔다.
이르기를 만약 감훈도감(戡勳都監)이 설치되면 그대는 당연히 상락(上洛=上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초5일 계유〗맑음.
합천(陜川)을 떠나서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초6일 갑술〗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초7일 을해〗맑다가 잠시 비.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저녁에 이야기했다.
보리(牟麥)을 환상(還上=還穀:각 고을에서 봄에 사창(社倉)의 곡식을 백성들에게 꾸어주었다가 가을에 받아들이던 일)
하는 것을 봉상(捧上=捧納:물건을 바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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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7월 3일
색승지(色承旨)에게 추국청의 일이 민간에까지 전파되는 것을 막으라고 이르다.
광해군 8년 7월 4일
국청이 국문할 죄인과 귀양보낼 죄인을 가려 보고하다.
光海君 8년 7월 5일
박홍빈의 일에 대해 의논하여 아뢰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7월 8일
김기를 추형하라고 전교하다. 국청의 의논을 봉입하다. 이수의 상소를 국청에 내리다.
光海君 8년 7월 9일
국청이 김기를 추형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여 아뢰다.
光海君 8년 7월 10일
병이 위중한 홍준을 보방하다. 승복한 죄인 박명운의 구료를 명하다.
선전관과 가도사 두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내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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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8일 병자〗맑음.
사창(司倉:양곡 저장 창고)에 앉아서 환상(還上=還子)를 봉납(捧納)받고, 저녁에 얘기했다.
오늘이 4남 주한(柱漢)의 생일이다. 정수온(鄭粹溫)이 어제 왔다.
〖초9일 정축〗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꿈에 각궁(角弓)이 갑자기 부러지는 걸 꾸었다.
〖10일 무인〗맑음.
국기일(國忌日)이라 정청(正廳)에 앉아 정무를 보지 않았다.
〖11일 기묘〗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12일 경진〗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했다.권오(權晤:鳶魚亭,삼태사 위판을 쓰신 분)가 왔다.
〖13일 신사〗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권혁(權赫)이 왔다.
〖14일 임오〗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했다.금제천(琴堤川)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면진재(勉進齋) 금응훈(琴應壎291)이다.
〖15일 계미〗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16일 갑신〗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보았다.
객사(客舍)에서 자며,주우(柱宇)와 유경(有景)의 무리를 전별했다.읍내 사람인 김대진(金大進)이 또 서울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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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7월 11일
해주 옥사의 죄인들을 다방면으로 구료하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7월 12일
색관과 의관들에게 죄인이 형신을 받다가 죽는 일이 없게 하라고 전교하다.
정문익과 한여직의 형틀을 풀고 구료하라고 전교하다. 비망기로 선왕께 조호(祖號) 올리는 일을 의논할 것을 전교하다.
사헌부가 이귀를 강원도에 정배할 것과 시종을 실직에 체차할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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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을유〗맑음.
남정(南亭)터에 가서 모친(母氏)과 함께 진(陣)연습하는 것을 구경했다.주우(柱宇)등이 돌아갔다.
〖18일 병술〗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19일 정해〗맑음.
감사[方伯]이 왔다.신공직(辛公直)이 가도사(假都事)로 왔고,정청경(鄭淸慶)도 배행했다.
이 두 사람과 사시헌(四時軒)에서 같이 잤다.
〖20일 무자〗맑은 뒤 흐려짐.
방백(方伯)이 선산(善山)으로 가고,권오(權晤)와 문노(文奴)도 같이 돌아갔다.
노(奴)는 서당(書堂)에서 나무하던 아이다.
〖21일 기축〗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22일 경인〗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했다.
〖23일 신묘〗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24일 임진〗맑음.
국기일(國忌日)이라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지 않았다.
〖25일 계사〗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했다.대구부사(大丘府使)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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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7월 14일
의금부가 구료가 필요한 죄인들을 별단으로 보고하다.
홍매(洪邁)를 고양 군수로 삼았다.【홍매는 홍숙의(洪淑儀)의 아버지이다.】 최관(崔瓘)을 호조 참판으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전 제주 목사 현즙(玄楫)은 군대를 훈련시키고 방비를 하는 등의 일을 직무를 다하여 잘 수행하였다.
지중추부사에 빈자리가 나거든 제수하라.
박응서(朴應犀)의 상소를 가지고 와서 입계한 옥관(獄官)조굉중(趙宏中)은 이미 자급을 더해 주었으니 실직에 제수하라.
변응지(邊應祉),현천상(玄天祥),이능운(李凌雲),이양백(李揚白),이호백(李好白)등은 역적을 체포할 때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높은 품계의 녹을 주도록 하라.조종조의 공주의 아들 가운데 단지 한순(韓淳) 한 사람만 남아 있다.
동지중추부사에 제수하라.부장(部將),수문장(守門將)등의 무신 가운데 임기가 찬 자들을 모두 속히 승진시키라.
그리고 부장 성여권(成汝權)은 바로 내가 세자일 때의 스승 성호(成浩)의 아들이다.
이 사람은 본직에 제수된 지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아직 승진하지 못하였다.
6품의 직책에 제수하라. 박엽(朴燁)을 성천 부사(成川府使)에 제수하라.” 하였다.
光海君 8년 7월 15일
금부가 이귀(李貴)를 이천(伊川)에 중도 부처하였다.
【이귀는 최기를 잡아올 때에 중도에 마중을 나갔기 때문에 처벌을 받은 것이다.】
光海君 8년 7월 17일
영상이 출사한 뒤에 추국하라고 명하다. 민성휘와 한여직을 보방시키고,윤정직의 형틀을 풀어 주다.
光海君 8년 7월 20일
한찬남이 정문익의 보방을 반대하다.
光海君 8년 7월 23일
죄인 유시영이 병이 위중하여 보방되다. 백관들이 역적을 토벌한 공로로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
삼사가 성천 부사 박엽과 윤영현의 삭직을 청하다.
光海君 8년 7월 24일
국청이 신효업·정충남과 면질시킬 자들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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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갑오〗비.
잠시 정청(正廳)에 나갔다가 대구부사(大丘府使)와 함께 해인사(海印寺)로 갔다.
밤이 깊어서야 들어갔다.비바람[風雨]이 크게 일다.
〖27일 을미〗맑다가 가끔 가랑비.
정승(政丞=鄭仁弘240)댁에 명함을 넣고 면회를 신청했으나 병으로 나와 보지 않는다.
하혼(河渾)등이 정인홍의 집[鄭山]에 있었다.
음릉(陰陵)군수도 돌아가고,나도 돌아와 청천(晴川)에서 자고 대구부사는 신당(神塘)서 잤다.
〖28일 병신〗맑음.
아침에 관아(官衙)로 돌아와 대구(大丘)부사와 같이 추국(推鞫)했다.
〖29일 정유〗맑음.
대구(大丘)부사는 돌아가고,나는 절애당(節愛堂)에 앉아서 집무를 했다.
가주서(假注書)인 권성오(權省吾122)가 왔다.황공직(黃公直)도 왔다.
권좌수(權座首)의 부음(訃音)이 들린다.그는 장(丈)의 삼촌이다.
〖30일 무술〗맑음.
주서(注書: 權省吾122)는 각사(各仕)로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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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7월 25일
승정원이 존호 올리는 일과 김제남을 추형하는 일의 순서를 알지 못했다며 대죄하다.
궐정(闕庭) 추국을 시행하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7월 26일
양사가 합사하여 김제남의 추형을 청하다. 이조 판서 한효순이 세 번째 사직하는 글을 올리자 체차하다.
光海君 8년 7월 27일
이조 참판 유몽인이 판서를 천망하는 일에 대한 기자헌의 의견을 전하다.
백관·종실·양사가 김제남의 추형과 존호 올리는 일을 아뢰다.
光海君 8년 7월 28일
정충남의 초사에 거론된 죄인을 모두 잡아오게 하다. 한찬남이 허국의 보방을 반대함.
光海君 8년 7월 29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함 정충남,오의훈,이유경이 진술,이조 판서 한효순을 체차하다.
光海君 8년 7월 30일
친척끼리는 한곳에 정배하지 말라고 전교하다.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허전과 허증을 정충남과 면질,정충남과 박이문을 면질시키다. 김제남의 추형을 허락하다.
光海君 8년 8월 1일
사헌부가 윤영현·박엽의 일을 아뢰다. 시강원 보덕 배대유 등이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
백관이 존호 올리기를 세 번째 청하니 따르다. 영의정 기자헌이 사직 상소를 올리다.
光海君 8년 8월 2일
양사가 합사하여 이운상의 일을 아뢰다. 사헌부가 윤영현·박엽의 일을 아뢰다.
존호 올리는 의식을 세조조의 전례를 따라 거행하라고 예관에게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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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
〖초1일 기해〗맑음.
성오(權省吾122)가 돌아왔다.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밤이 되도록 이야기했다.
셋째 아들인 주우(金柱宇33)의 편지가 왔다.종남(從男)이 돌아갔다.
〖초2일 경자〗맑음.
성오(權省吾122)와 정청(正廳)에 나와 앉아서 밤이 되도록 이야기했다.
늙으신 어머님의 생신이 어제인데 물려서 행하는 걸[退行] 꺼려했다.
〖초3일 신축〗맑음.
성오(權省吾122)가 영천(榮川=榮州)으로 돌아가고,배경량(裴敬良)이 돌아왔다.
〖초4일 임인〗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가야(伽倻)의 여인인 생이(生伊)란 자가 도진(桃津)에서 와서 현신(現身)한다.
〖초5일 계묘〗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했다.
동각(東閣)의 둔전(屯田292) 6두락(斗落293)에서 19섬(石)3말(斗)을 추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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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8월 3일
내습의를 상세히 익힐 것과 궁궐 수리에 드는 종이와 돗자리를 준비하라고 이르다.
호조가 평안도의 세미와 미태의 상납 상황을 아뢰다.
光海君 8년 8월 4일
이조 판서를 천망하는 일로 거듭 영의정 기자헌에게 묻게 하다.
선수 도감에서 각전을 수리하고 남은 목제의 처리를 여쭈다.
김제남과 최기를 추형하는 절차를 살피라고 해조에 전교하다.
대제학에게 동궁의 문호,창경궁 별당의 당호문호를 지어 올리라고 하다.
서적 교인 도감이 요동 도사가 청한 《통감》·《사략》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아뢰다.
빈청이 의논하여 선조와 두 비의 추숭 존호 단자를 입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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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6일 갑진〗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초7일 을사〗맑음.
객사(客舍)에서 치재(致齋:제관(祭官)들이 3일간 재계(齋戒)하는 일)하고 있었다.
이삼성(李三省)이 진주(晉州)에서 왔다.
〖초8일 병오〗맑다가 가끔 비.
제물(祭物)을 향교(鄕校)로 진봉(進封)토록 했다.
〖초9일 정미〗맑음.
석전제(釋奠祭275)를 지내고 관아(官衙)로 돌아와서 사직단(社稷壇280)에 가서 치재(致齋)한다.
아우 득청(金得淸282)이 자고 어제 아침에 돌아갔다.
〖10일 무신〗맑음.
사직(社稷280)단에 제사를 지내고 관아(官衙)로 돌아왔다.설서(說書:시강원 정7품직)박종주(朴宗冑294)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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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8월 5일
햇무리가 지다. 영남의 주홍 안료가 올라온 뒤에 연을 개조하라고 이르다.
추숭하는 일을 예정대로 시행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다. 추숭도감이 책보 호갑의 준비 상황을 아뢰다.
호조가 원주에서 구입한 재목을 목면과 바꾼 까닭을 아뢰다.
존숭도감이 기예가 있는 학관 양만세와 종실 금계군을 추천하다.
光海君 8년 8월 6일
예조가 존호 올리는 의식의 절목을 회계하는 일이 늦어지는 이유를 아뢰다.
光海君 8년 8월 7일
성천 부사 박안현을 독살한 비자를 형신하라고 전교하다.
알성할 때 구경하는 사람을 지나치게 단속하지 말라고 전교하다.
승문원이 동지에 진하할 표문의 평칙이 잘못되었다며 수정한 것을 아뢰다.
승문원이 아뢰기를,“근래에는 표전(表箋)을 모두 평칙(平則)을 써서 짓습니다.
이번 동지(冬至)에 진하할 표문(表文) 두 번째 단구(短句)에‘범거유절 송균무강(凡居有截頌均無疆)’이라고 써서
계하를 받았는데,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송균(頌均)의 균(均) 자는 평성(平聲)을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함송무강(咸頌無彊)이라고 고쳐 부표하여 즉시 정본(正本)을 고쳐 쓰게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知道)고 전교하였다.
[이이첨은 변려문에 능한 것을 자랑으로 삼는 자였다.
표전에 평칙을 사용하는 것은 본래 관각(館閣)의 고례가 아니었는데,
이이첨이 일부러 이 논계를 하여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였다.]
두 차례 존호 올리는 일은 날을 달리할 것을 의논하게 하다. 승정원에 작헌례를 잘 살피라고 전교하다.
저축되어 있는 은자를 보고하게 하다. 대제학에게 누호의 ‘용’ 자 아랫자를 다시 올리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8월 8일
선왕과 선후의 옥책문을 독촉하다. 세조조에 존호 올린 의식에 대해 실록을 자세히 상고하여 보고하라고 전교하다.
홍양산을 정밀하게 만들라고 존숭 도감에 전교하다.
승정원이 나례 준비를 게을리 한 나례청 낭청의 추고를 청하다.알성 때 백관들은 빠짐없이 참여하라고 전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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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기유〗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황공직(黃公直85)이 어제 돌아왔고,박설서(說書=朴宗冑294)는 각리(角里)로 향해 갔는데,
아침에 전별주(餞別酒)를 먹여 보냈더니 길 가다가[中路] 취해서 넘어졌다고 한다.
〖12일 경술〗맑음.
〖13일 신해〗맑음.
한강(寒岡=鄭逑184)선생을 배알하고 조용히 이야기했다.돌아오는 길에 날이 어두워졌다.
내한(內翰:한림학사)인 이지화(李之華174)와 지영(李之英),지제(李之弟)네 집에서 잤다.
〖14일 임자〗맑음.
아침에 돌아왔다.
호조(戶曹)의 가낭청(假郎廳)인 정계숙(丁溪淑)과 훈련도감(訓練都監)의 낭청(郎廳285)인 양극(梁克)이 왔다.
〖15일 계축〗맑음.
추석 차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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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8월 9일
전례를 따라 영숭전을 봉안할 때 과거를 거행하라고 전교하다. 교제(郊祭)를 추숭의 전례를 따라 시행하라고 전교하다.
비변사에 세 변방의 방비를 힘쓸 것을 비밀히 전교하다.
光海君 8년 8월 10일
알성하다. 출제를 재촉하고, 하련대 막차에서 무사들을 몸소 시험보이다.
육승지가 존호 올리는 의식을 속히 거행할 것을 아뢰다.
병조가 부묘 축하시와 중시를 겸한 시험에 응시한 자들을 모두 급제시킬 것을 아뢰다.
오시에 막차로 돌아가서 술잔치를 내리다.
명관(命官)영의정 기자헌 이하가 문과에서 기준격(奇俊格)등 10명을 뽑았다.
왕이 몸소 시험보여 무과에서 심계(沈溪) 등 24명을 뽑았다.모두 급제와 출신을 하사하였다.
왕이 친림하여 방방하였다.
예를 마치고,각각 청포(靑袍)와 홀(笏)과 안구마(鞍具馬)를 하사하여 유가(遊街)하게 하였다.
[당시에 흉악한 무리들로서 과거에 급제한 자들의 글은 그 전날 밤에 지어간 것이 아니면 시험장 밖에서 지어서
바친 것이었는데, 이번 시험에서는 더욱 심하였다.
준격(俊格) 및 그 조카 기수발(奇秀發)의 글은 모두 허균(許筠)과 재영(再榮)이 지은 것이었다.
당시에 인구에 회자되었다.]
光海君 8년 8월 11일
김제남 등에 추형을 17일 뒤에 시행하라고 전교하다.
옥사가 밀려 있는 까닭으로 변무의 증광 별시 초시의 시행을 봄으로 미루다.
존숭 도감에 의장을 정밀하게 만들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8월 12일
소수서원에 하사한《강목》의 자판으로 다시 찍어낼 수 있는지를 묻다.
공성 왕후의 관복을 주청할 일을 비밀히 전교하다.
光海君 8년 8월 13일
송희업을 삭녕 군수에 제수하라고 전교하다.
세견선에 대해 경상 감사에게 비밀히 전교하다.
以秘密傳曰:“歲遣舡連續出來,此時釜山僉使被論,只以代將察任,極爲虛踈。凡潛商雜人及逃躱逆賊,
이비밀전왈:“세견강련속출래,차시부산첨사피론,지이대장찰임,극위허소。범잠상잡인급도타역적,
十分嚴禁譏察事,急急下諭于慶尙監司處
십분엄금기찰사,급급하유우경상감사처
(비밀로 전교하였다.“세견선이 잇달아 나오는데, 이러한 때에 부산 첨사가 논핵을 당하여,
단지 대장(代將)이 임무를 살피고 있으니, 매우 허술하다.
무릇 몰래 장사를 하는 잡인들 및 도망중인 역적을 십분 엄금하여 기찰할 일을 경상 감사에게 서둘러 하유하라.”)
윤인(尹訒)을 홍문관 수찬으로,유여항(柳汝恒)을 홍문관 부수찬으로,한영(韓泳)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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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갑인〗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했다.장남 주민(柱旻)이 돌아갔다.
〖17일 을묘〗맑음.
객사(客舍)에서 치재(致齋:제관(祭官)들이 3일간 재계(齋戒)하는 일)했다.
〖18일 병진〗맑음.
천곡서원(川谷書院295)에 향사(享祀)지내러 갔다.
〖19일 정사〗맑음.
향사(享祀)를 거행하고 밥을 먹은 뒤에 관아(官衙)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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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8월 14일
문무과 전시와 중시를 차례차례 물려 거행하게 하다. 동지사의 행차 때 당마를 무역해 오게 하다.
의금부가 정충민이 살던 음성의 읍호를 강등시키는 문제를 아뢰다.
光海君 8년 8월 15일
동지 상사 권경우 일행이 북경으로 떠나다. 도승지가 도망 중인 역적의 화상을 지급해 줄 것을 청하다.
승지가 예부의 복제를 주선하는 일 등에 대해 동지사에게 전할 것을 아뢰다 ○ 대례 때에 사용할 보계 준비를 독촉하다 ○ 춘추관이 방대한 세조조의 의주를 우선 대강만을 적어 올리다.
光海君 8년 8월 16일
양사가 이운상의 일을 아뢰다.
光海君 8년 8월 17일
해평 부원군 윤근수의 졸기, 무과 별시 초시에 합격한 자를 모두 직부시킬 일을 의논하게 하다.
정월 보름에 교사를 친행하는 일을 의논하게 하다. 원구에 전 짓는 일은 전례를 따르라고 전교하다.
사헌부 사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다. 흠경각 야루의 막힌 곳을 고치게 하다.
제주를 고칠 때의 의식을 살펴서 아뢰게 하다. 교제의 절목을 서둘러 보고하게 하다.
光海君 8년 8월 18일
내사(內司)의 북도(北道) 노비 신공(身貢)을 쌀로 바꿔 창고에 놓을 것 등을 전교하다.
존호를 올린 뒤의 내연에 공신의 어머니와 아내들을 참여케 하다.
승정원이 무과 별시 초시의 합격자를 모두 직부시키는 일을 의논해 아뢰다.
김제남 등에 대한 추형을 20일 이후에 시행하라고 이르다
光海君 8년 8월 19일
선왕과 공성 왕후의 책문을 의인 왕후의 것과 같은 형식으로 하라고 이르다.
추숭 때 참여하지 않는 자는 모두 파직시키겠다고 하다.
예조가 명숙·공성 왕후의 존호가 상충되어 다시 올리다. 두 존호의 보통을 은으로 할 것인지를 의논하게 하다.
이창후(李昌後)를 사헌부 집의로,윤인(尹訒)을 사간원 사간으로,김질간(金質幹)을 시강원 보덕으로,
황익중(黃益中)을 사헌부 장령으로,오여발(吳汝橃)을 시강원 문학으로,홍요검(洪堯儉)을 사간원 정언으로,
김세렴(金世濂)을 시강원사서로 삼았다. 황해병사 정항이 사조하니 인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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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무오〗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대구(大丘)부사가 왔다.
〖21일 기미〗맑음.
언문(彦文)이와 계문(戒文)이 에게 4번째 형(刑)벌을 가하고 대구(大丘)부사는 돌아갔다.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정무를 보았다.
자(字)를 신지(新之)라고 하는 이탁(李濯)과 장내범(張乃範296)이 와서 밤에 이야기했다.
〖22일 경신〗맑음.
국기일(國忌日)이라 정무를 보지 않고,유생(儒生)들의 강(講)하는 것을 시험했다.박흔(朴昕)의 노비가 왔다.
〖23일 신유〗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공무를 보았다.
〖24일 임술〗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집무를 했다.
〖25일 계해〗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공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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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8월 20일
대신의 의논에 따라 무과 별시 초시 합격자에게 전시를 보이게 하다.
光海君 8년 8월 21일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김제남의 일에 대해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것을 허락하다.
죄인 법륜·신예붕·순경 등이 진술하다.
영상·양사·추관들이 윤정직, 허국 등을 대궐로 불러 빙문하는 것이 옳다고 아뢰다.
의인·공성 왕후의 책문을 다시 쓰게 하다. 서적 교인 도감이 교인 도감에서 주자를 만들게 하자고 아뢰다.
훈련 도감이 분부대로 기병대를 구성한 일을 아뢰고 마필의 공급을 청하다 ○ 박승종이 별시 초시 합격생들을 모두 취하자고 한 것에 대해 자책하다.
光海君 8년 8월 23일
25일에 반포할 교서를 지어 올리게 하다. 사시에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다.
光海君 8년 8월 24일
명정전이 대례를 치르기에는 협소하니 보충하라고 명하다.
光海君 8년 8월 25일
기축년의 전례에 따라 잡범 사죄 이하를 사면하다. 진하하는 날이므로 추국을 정지하다.
한찬남에게 사면을 반포하고 백관들에게 가자하는 일을 행하라고 전교하다.
光海君 8년 8월 26일
양사가 남교에 친제한다는 명을 거둘 것을 합계하다. 관학 유생 심지청 등이 조식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청하다.
光海君 8년 8월 27일
한찬남이 김제남의 아내를 처치하는 문제를 아뢰다. 주청 방물을 준비하게 하다.
선수 도감에서 명정전을 보충하라는 것에 대해 어렵다고 아뢰다.
光海君 8년 8월 28일
추숭을 마치고 환궁할 때 병관과 근신은 보행하며 시위하라고 전교하다.
호조가 반사(頒賜)할 이엄(耳掩)을 만들 모물(毛物)을 마련할 것에 대해 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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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갑자〗맑음.
경차관(敬差官297) 행차를 맞으려고 금산(金山)의 경계에서 10리(里) 밖까지 나갔다.
경차관은 조정립(曺挺立25)이고,그의 동생인 무과(武科) 알성시(謁聖試)에서 뽑힌 조정영(曺挺英)이 같이 왔다.
그 폐해(弊害)는 재물이 아니다.
빙군(聘君:은거(隱居)하는 현자(賢者)로서 초빙되어 관리가 된 사람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장인(聘丈)을 이른 듯 함)이
오셨다. 밤이 깊어서야 상면(相面)을 하게 되었다.
〖27일 을축〗맑음.
겸임(兼任)을 한 관계로 또 고령(高靈)으로 갔었다.
〖28일 병인〗비.
경차관(敬差官=曺挺立25)이 돌아오기를 바라므로 비를 무릅쓰고 성현(省峴)으로 돌아가니
신공원(辛公遠)이도 아문(衙門)에 와 있었다.
〖29일 정묘〗맑음.
〖30일 무진〗맑음.
정청(正廳)에 좌정(坐定)하여 공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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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光海君 8년 8월 29일
흠경각 교정청이 야루의 교정 상황을 보고하다. 교사 친제를 물리게 된 것을 전교하다.
금부에 재계하는 날이더라도 병든 죄인을 일일이 입계하여 처리하게 하다.
김제남의 처를 처치하기 전까지는 그 집을 수직하라고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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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공13세손 김 태동 옮겨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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