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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 者 略 歷
○ 수 필
- 야유회(野遊會) 가는 길
- 블랙박스
- 둠벙이 그립다
- 오월의 들판에서
○ 작가 프로필
․ 仁山 / 박 윤 수
․ 구례출생
․ 구례군청 행정공무원 27년 정퇴
․ 구례문화원 이사
․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 전남 문인협회 이사
․ 전남수필 문학회 이사
․ 한국문인협회 구례지부장역임
․ 2018 전남 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
․ 1997 세기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등단
※ 저서 : 외갓집 가는 길 (2016.5)
야유회(野遊會) 가는 길
초복(初伏)이 지난 들녘은 온통 짙은 초록색이다. 산이 그렇고 강이 그렇고 바다가 그렇다. 초록색은 눈을 맑게 한다고 하던데, 이제 시절은 본격적으로 삼복더위가 시작되는가 싶다. 오늘따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정경은 해마다 단 한치의 어김도 없이 대자연은 살아 숨 쉬며 우리 곁을 오간다.
2021.7.2 오늘은 마산 행정동우회 모임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다. 일찍이 계획된 모임이었다. 모임의 성격은 그전에 군청, 읍면에서 행정공무원으로 국가의 녹을 먹고 오랫동안 봉사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사람으로서 나이는 6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했다.
대부분 7-80대 우리나라가 격동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농촌은 녹색혁명이 시작되고, 벼농사는 통일계통의 다수확 쌀을 생산하면서 온 국민이 배고픔을 면하게 되었고 특히 일반 빈농들은 꽁보리밥에서 하얀 쌀밥을 먹는 계기가 되었던 그 시절 행정의 최일선에서 묵묵히 맡은바 열심히 일했던 은퇴공직자들이었다,
또 새마을사업의 기치 아래 온 나라가 초가집들이며 돌담들이 펄럭이는 깃발 아래 초가지붕은 스레트 지붕으로, 또 올망졸망 좁다란 마을안길은 넓은 신작로로 바뀌어 잘살아보자는 정부 시책에 최일선에서 불철주야 애쓰며 일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패기 넘치던 그 모습, 홍안의 모습 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흐르는 세월의 흔적 속에 저마다 눈가엔 잔주름으로 턱 아래는 팔자주름들만이 엿보여 맘이 씁쓸했다.
오랫동안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쓰다가 때가 되어 정년이란 날짜에 맞춰퇴직을 했던 사람들로서 재직 시에는 군청에서 실장으로 또는 과장으로 읍면에서는 읍, 면장으로 일해왔던 사람들이었다.
사실 지금은 그런대로 공무원들의 보수가 좋은 편에 속했지만 지난 4-50년 전 만 해도 공직은 별로 알아주질 않았던 때였다. 그저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일선에서 묵묵히 일했던 사람들이다.
얼굴엔 켜켜이 쌓인 연륜만큼이나 온 얼굴에는 주름살들로 늙어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처럼 맑고 초롱초롱한 눈이며 홍안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누군가 사람은 생로병사라고 했다지만, 그러나 가는세월을 어찌하랴? 누구에게나 다 오가는 것들인데, 다만 살아생전 숨 쉬면서 몸이나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 아닌가?
오늘의 모임은 작년 연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발발 장기화 되면서 우린 그동안 매월 연례모임을 2년 동안 한 번도 모이질 못했다. 이런 와중에 회원들은 고령으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또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도 거의 두 차례씩 다 맞은 회원들이 다수여서 부득이 오늘 야유회 행사를 하게 되었다.
목적지는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이라 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름에 나는 맛있는 하모 ”샤브샤브“로 점심을 하고 여수에서 고흥으로 잇는 바닷길 100리 길을 둘러보는 행사였다.
버스는 시원하게 확, 포장된 도로 위를 잘도 달렸다. 한 시간여 달린 끝에 여수 경도에 도착 우리 일행은 넓은 식당에 둘러앉아 미리 준비되어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특히 ”하모샤브“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여름철 보양식으로 제철답게 귀한 맛이었다.
여수시 화양면에서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바닷길은 여섯 개의 섬을 연결하는 바닷길로서 그 길이가 무려 백여리에 이른다. 칠월 초여름의 하늘빛은 높게 지나가는 구름이며 살랑살랑 불어대는 싱그러운 바람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난 차창밖에 대자연의 흐름을 감상하면서 지난날의 수많은 사연 들, 잡념들이 머릿속에 맴돌며 떠 오른다. 그 가운데서도 인생에 대하여 만감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최근 들어 계절이 바뀌면서 그 옛날 다정했던 사람들의 부음을 자주 듣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면 갈 때가 있다. 해도 달도 떴다가 꼭 같은 과정을 거쳐지고, 태풍도 일면 소멸할 때가 있다. 그 속에서 인간 역시 살다가 가는 것은 필연(必然)이다. 생명을 둘 가진 자 없고 누구나 일회성을 살다 간다.
죽음은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도시나 변두리 산속에 있어도 찾아낸다. 태어난 삶에 모두 적용된다는 점에서 죽음은 만물에 공평하다. ”라고 일찍이 수필가 박숭구(朴崇求) 님은 말하고 있다.
남도의 바다, 오늘 내가 지나가는 섬들은 옛날에는 듬성듬성 섬으로만 있었던 게 섬을 잇는 다리가 놓이면서 육지가 되어 교통 또한 참 편하리라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건설기술은 세계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으리라 자부심을 가져 본다. 최근 들어 이순신 대교가 그렇고 저 신안의 천사대교가 그렇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 앞으로 훌륭한 대통령이 나와서 정치만 좀 잘했으면 참 좋겠다.
고흥 점암면에 있는 팔영산이 저 멀리 바라보인다. 10여 년 전 교회에서 교우들이 험하다고 하는 팔영산 등반 오를 때가 문득 그리움으로 내 안에 스며든다. 지금은 그저 모든 것이 젊은 시절에 애틋한 그리움이며 한 가닥 추억으로 남는다.
고흥으로 가는 길에 고흥 분청문화박물관에 잠시 들렸다. 분청문화 박물관은 고흥 두원면에 소재하고 있는데 안내판을 보니 국가 지정 문화재 제519호로 1980년대 운대리 가마터 발굴을 시작으로 37년의 장기 프로젝트 끝에 2017년 10월 31일 부지 99,885㎡ 이르는 분청 문화공원으로 조성이 되었다고 한다.
분청 문화공원을 관람하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다. 고흥에서 구례까지는 차량으로 약 한 시간여 길이다. 오늘도 반갑고 정겨운 사람끼리 하루를 보내며 또 한 가닥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2021. 7. 15.
블랙박스
창가에 유월 끝자락의 햇살이 따사롭다.
유월의 들녘은 바쁜 농번기철이다. 제철 만난 트렉타 이앙기 농기계 소리가 물 댄 논에서 분주하게 움직일 적마다 반반한 논배미에 푸른 잎은 빠르게 색칠해 나간다
마을 앞 황사평으로 가는 언덕배기에선 곱게 핀 찔레꽃이며 꽃대에서 풍겨 나온 짙은 꽃내음이 코를 찌른다. 봄이 저만치 물러가고 여름이 살며시 다가온 하지 무렵의 산야는 산빛이며 물빛이 오늘따라 더없이 곱기만 하다.
2021.6.29일 오후 4시경이다. 모처럼 수영장이나 갔다가 올까 하고 읍내에 있는 수영장으로 갔다. 우선 차를 주차장에다 주차 시켜놓고 안으로 들어가서 수영장을 막 나와 차를 보니 자동차 앞부분이 크게 파손되어 너무나 황당했다.
누군가 차를 후진하면서 내 차를 박아버린 것이다. 우인도 위에 간단한 쪽지라도 남겨놓고 갔으면 내가 덜 서운할 터인데 소행이 너무나 괘씸했다. 내 차엔 다행히도 블랙박스가 있어 한편 마음은 놓였지만 난 범인을 찾아 합당한 보상을 받고 사과를 받아내고 싶어 우선 경찰서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차량 파손의 사고 건은 3일 뒤 내 블랙박스에 영상에 의해 가해 차량이 밝혀졌고 가해자는 나이가 많은 고령의 남자 운전자였다. 그날 함께 수영장에 왔던 사람이며 정녕 나이가 많은 사람일 것이라는 직감은 했지만, 사고 당시엔 화가 많이 났던 게 사실이었다.
며칠 뒤에 사과와 함께 파손된 부분은 보험처리 하기로 해서 일단락되었지만 생각하니 맘이 씁쓸했다. 그때 만약에 내 차에 블랙박스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즉시 경찰이 조사하겠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내가 차에 블랙박스를 처음 장착했던 것은 2013년 봄의 일로 기억이 된다. 그날따라 순천 성가롤로병원에 아는 동생이 입원해 있어 문병차 다녀오다 정문 앞을 지나 막 큰 도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광양 방향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접촉사고가 났다. 상대방 차는 BMW 외제 차에 내 차가 끼어들기로 판명되어 약 300여 만원의 거금으로 보험처리하고 나서부터이다.
난 그때 블랙박스가 없었는데 양 보험회사 직원들이 8대2로 상호 간 잘잘못을 인정하여 보험처리를 합의 종용 처리 했다. 난 그 후로 보험료가 올라 상당한 물질적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가에 쓴 미소가 든다.
내 차를 지켜주는 블랙박스 유래를 보면 처음에는 항공기 사고기록을 음성으로 남기는 장치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점점 진화하면서 자동차에도 장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고급 차량 위주로 블랙박스가 드물게 장착되곤 했는데 2010년 들어 다양한 블랙박스가 개발되면서 일반화 되어 널리 사용하고 있다.
이 블랙박스는 처음엔 차량사고 위주의 사용할 목적으로 장착되었으나 언젠가부터 차량의 사고뿐만 아니라 각종 범죄예방과 검거에도 블랙박스가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에는 차량간 접촉사고는 큰소리 잘 치는 사람이 이길 때도 있었으니, 도로 위를 다니다가 종종 보면 사고 차량을 목격할 때가 있는데 운전자 상호 간에 서로 잘했다고 고함을 지르고 야단법석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젠가부터 그 광경은 쑥 들어가 버리고 오직 차량에는 저마다 마치 눈썹만큼이나 작은 칩 한 개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 칩이야말로 사고 당시의 상황이 고화질 영상으로 고스란히 나오기 때문에 꼼작할 수가 없다.
참으로 요즘 최첨단 디지털 영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모내기가 이제 막 끝난 유월 하순의 들녘은 모두가 짙은 초록의 물결이다. 논, 밭이 그렇고 산이 그리고 강이 모두가 짙은 초록 색깔로 덧칠을 했다. 나무는 가지가 단단해지면서 잎새가 무성하게 어우러진다.
작년 겨우내 눈바람에 나목으로 혹독한 겨울이란 계절을 보낸 나무가 어느새 봄이 되어 훈훈한 봄기운에 새 가지며 잎새며 나무 모양을 갖추어 가더니만 무슨 기운을 받아서 그토록 우거진 나무로 변해 새들의 보금자리로 잡아가는가? 참으로 자연의 조화는 신비스럽고 또 보면 볼수록 풍성함이 더한다.
내가 매일같이 마시는 공기이며 매일 먹는 맛있는 음식들, 이 모두가 우리 인간들에게만 조물주께서 특별히 주신 귀한 선물이며 덤으로 주신 복이 아닌가?
사람과 동물과의 차이는 먹고 마시며 움직이는 것은 다 똑같다. 다만, 짐승은 말을 못 하고 생각을 못 한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며 말을 하도록 만들었다. 생각이 있기에 마음을 표출하고 생각이 있기에 서로를 동정하고 더불어 살아간다. 그렇고 보면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며 여름이지만 올해는 웬지 살아가기에 무거움이 더 앞선다. 작년 초에 불어닥친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핍절 되었고 위축되었다. 서민들의 삶은 좀체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질 않고 있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국가재정이 투입 되었지만 한강에 물 붓는 꼴이 되었고 갈수록 사람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렇고 보면 사람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인가 보다 그까짓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바이러스가 작년에 이어 지금까지 온 지구상을 초토화,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 코로나바이러스는 차가운 겨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봄, 여름이 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리니 이제 걱정이 앞선다.
다행히 백신이 개발되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이 진행되면서 이제 그토록 인간을 괴롭혔던 코로나도 점점 물러가리라 더 나은 세상으로 보상되어 내 앞에 다가오리라 기도 해 본다.
2021. 6. 30
둠벙이 그립다
신록의 계절인 오월도 주야의 반복 사시의 변화 속에 어느새 서서히 사라져 버리고 이제 시절은 유월로 접어든다. 참 그놈의 세월 한번 빠르다. 오늘따라 저 멀리 산등성이에서 들려오는 쑥국새 울음소리가 내 젊은 시절, 그 시절의 소리와 똑같다. 그날도 오늘처럼 쑥국새가 울었으니까 말이다.
쑥국새는 산비둘기로 봄에 쑥이 새순이 날 무렵 “지-지 – 쑥국”하고 구슬피 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들어도 그 구슬프게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못내 그리움으로 들려온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주식인 쌀을 생산해내는 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논과 물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 논이 경지정리가 잘 되어있고 급수시설 또한 잘 되어 있어 나의 젊은 시절 논배미 가에 있던 둠벙은 대부분이 경지정리로 다 묻혀져 버려서 이젠 볼 수도 없는 둠벙 이었지만 사십 년 전에 둠벙이 있는 논이면 상답으로 가격도 비쌌다.
우리 마을에는 마을 앞들에 긴 둠벙, 한 둠벙, 발동기 둠벙, 황사둠벙, 참샘둠벙등 논배미 여기저기에 갖가지 이름으로 붐벙 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집 논에 보물과도 같은 “쏘둠벙”에 얽힌 사연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영 잊을 수가 없다.
“쏘둠벙”은 둠벙 주위 30여 마지기 논에 물을 대주는 참 귀한 둠벙 이었다. 둠벙의 생김새는 남과 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는데 둠벙 아래 너 마지기 논은 모내기를 할 때마다 드레질로 물을 퍼서 모내기 작업을 하고 또 심어진 논은 바닥이 마르지 않도록 종종 물을 대 줘야 한다.
햇볕이 내리 쬐이는 여름날이다. 엊그제 막 심은 논에 모들이 시들시들해지고 논바닥에 금이 가서 말라 죽는 것을 대비 이른 아침부터 드레질 을했다. 그 드레질이란 참 힘든 작업이었다.
드레질이란 둠벙 양쪽에서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물을 퍼 올리는 작업이다. 그 드레로 물을 퍼 올리는 작업은 서로가 호흡이 잘 맞아야만 한다. 서로의 힘의 균형이 잘 들어맞아야만 물을 잘 퍼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어린 시절부터 농촌에서 태어나 소작농을 하신 부모님들의 드레질 하는 모습을 보아 잘 알아서 요령 있게 드레질을 할 수가 있었지만, 그 무렵 나에게 이제 막 시집온 아내는 도시에서 살아왔던 처녀로서 드레질이란 정말 생소한 일이었다.
그 힘든 드레질을 한 두 시간하고 나면 뱃살이 움푹 들어가면서 배고픔을 느껴온다.
지금처럼 각종 퓨드가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간식은 보리로 만든 깨떡이었다 그 보릿가루를 비벼서 만든 단순한 깨떡이지만 그 시절엔 어찌 그리도 맛이 있었던지 우리말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했던가? 그때는 물질이 늘 부족한 시절이라 쌀농사를 애써 지으면서도 일부 부잣집을 제외하곤 대다수 농부들의 주식의 형편은 지금처럼 하얀 쌀밥을 먹기란 여간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일 년에 저마다 돌아오는 제삿날이나 생일날, 그리고 명절날이면 저 창고 깊숙이 넣어두고 아끼고 아껴둔 쌀로 밥을 하여 식구들에게 먹였으니 참 생각하면 서러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쌀이 정말 귀한 시절이었다. 정작 쌀밥을 먹어야 할 대다 수 농부들은 집이 가난했기에 어쩔 수 없었던 시절인지 모른다.
모든 경제의 척도가 쌀로 환산되었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아버지는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면 간간이 휘어진 허리 등에 쌀을 메고 읍내 장으로 나가신다. 난 어린 나이였지만 쌀을 등에 메고 나가시는 아버님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 힘겹고 일마저 고달팠던 시절에 늘 상 봐오면서 자라 왔기에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잊혀 지질 않는다. 난 나중에 크면 돈 모아서 집안을 좀 부자로 만들어 살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돈을 모아야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저축성이 강했던 게 오늘 나를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잘살게 되었던 게기가 아닌가 싶어진다.
둠벙의 물을 다 퍼 올리고 물이 다 없어지면 붕어, 피라미, 미꾸라지 등 각종 물고기가 팔딱거리며 날뛴다. 그 시절에는 요즘처럼 비료도 귀했고 특히 농약이 없었던 시절이라 둠벙에 물고기가 참 많았던 시절들이었으니 일은 힘들고 고달팠지만 그래도 넉넉한 인심이며 자연산 물고기를 맘껏 먹고 했으니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우리 어머님은 물고기 요리를 무척 잘하신다. 그중에서도 미꾸라지 추어탕을 잘 끓이셨으니 미끈하고 비릿한 맛을 없애기 위해 호박잎을 따다 미꾸라지를 담은 바구니에넣고 소금을 뿌려 후 두둑 씻은 다음 된장을 풀어 씨래기를 듬뿍 넣고 맵게 끓인 추어탕의 맛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쏘둠벙” 가는 길에는 여기저기 밭이 있는데, 밭두렁에는 커다란 이팝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고 찔레꽃이 해마다 모내기 철이면 피어있다. 이팝나무가 잘 피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나이 어린 시절에 보아도 그 커다란 이팝나무는 참 어릴 때 보아도 웅장하다. 오월이면 어찌나 이팝나무꽃이 화려하던지 보기에도 참 좋다 하얀 꽃잎들이 마치 쌀처럼 생겨 쌀밥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팝나무 군락을 한참 지나다 보면 논으로 가는 언저리에 찔레꽃들이 짙은 향기를 풍긴다. 또 그 곁에는 감나무에 노란 감꽃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찔레꽃이 채 피기 전 찔레순을 따서 먹으면 그 맛이 무척 달착지근하다. 또 지천에 서 있는 감나무에달린 감꽃을 길 다란 줄에다가 끼어놓고 한 개씩 야금야금 먹던 시절엔 어찌 그리도 먹을 간식거리가 없었던지 모든 것이 친환경으로 자연식 그대로였다.
둠벙 위로 약 50여 미터 지점에 우리 논 서 마지기 논배미가 있는데 천수답이었다. 해마다 벼농사를 짓기 위해선 하늘에서 큰비가 와야 논에 이앙을 할 수가 있다. 비가 없는 가뭄이 든 해이면 지어야만 했다
어느 해였던가 봄부터 내린 잦은비는 정작 농사철인 유월이 되니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조금만 기다려 보자 하고 비가 오길 학수고대하고 기다렸으나 그 후로는 영영 비가 오질 않는다.
당시 그러잖아도 쌀이 소중한 시절이라 명색이 논으로 지어져 온 것을 밭으로 변하여 밭농사를 심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 끝에 농사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둠벙에 물을 퍼봏자고 하셨다. 일은 많이 힘들더라도 사람을 또 많이 붙여 이중으로 드레질 작업을 해서라도 모내기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침 일찍 논으로 나가 둠벙에 고여있는 물을 이중으로 드레질을 하기 시작하여 그 작업은 하루 내내 이루어졌다. 비가 귀한 시절이라 둠벙물은 금 새 바닥이 나기 일 수여서 작업이 수월 하질 않았다. 힘은 힘대로 들고 작업은 능률이 오르질 않았지만 우리는 하루 내 열심히 물질을 해서 가까스로 모내기를 할 수가 있었다
시들시들 말라가는 누런 모 포기에 물을 대어 파랗게 회복하게 한 일은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둠벙 푸고 고기 잡든 1석2조의 내 어린 순수한 추억이었다.
지금은 경지정리 한 뒤라, 둥벙은 아예 메워버렸다. 따라서 물꼬를 막고 둠벙 푸는 일은 없어졌고, 추어탕을 끓여 이웃 간에 맛있게 나눠 먹던 추억들은 이젠 찿아 볼래야 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저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뜸부기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내 귓전을 세미하게 울리며
유월의 햇살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진다. 못내 그립고 애절한 추억들이여!
2021. 6. 10 씀.
오월의 들판에서
2021.5.21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오월의 들녘은 온통 연초록 물결이다 오늘이 절기상으로 여덟 번째 맞이하는 소만(小滿)이다. 소만이라는 절기는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성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는 절기라고 한다.
계절의 여왕 오월은 그 어디를 가나 찬란한 연회장이다. 엊그제만 해도 마당 한 켠에선 빨간 앵두나무며 탐스러운 목련화, 함박꽃들이 아름다운 꽃봉우리를 맺으며 활짝 피어 내 안에 고운 향기로 가득 미소 마금고 서 있었는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라고 했던가 어느샌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이젠 빛바랜 담장 아래 담쟁이덩굴이 제철이라도 만난 듯 연한 가지를 내더니만 칭칭 잡나무들을 감고 단단한 부럭 담벼락에 못을 박으며 기어 올라간다. 그전에는 이웃집 간의 경계 울타리가 토담으로 있을 때는 담쟁이덩굴이 담장을 칭칭 감는 바람에 담이 무너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방지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시멘트 부럭이나 벽돌로 담을 설치하는 바람에 담쟁이덩굴은 이젠 별로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담쟁이 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도종환 시인이 썼던 담쟁이 시가 생각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렷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다 절망을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이하중략
휘황찬란했던 그 많던 꽃들은 어디로 가 버리고 그 자리엔 다시 오월의 고운 장미가 촘촘히 피어난다. 오늘따라 싱그러운 햇살을 받으며 장미 향이 너무 짙어 내 콧잔등을 더욱 감미롭게 한다.
대자연의 섭리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해마다 이 맘때이면 말없이 내 곁에 찾아온 오만가지 꽃들이 오늘따라 내 안에 하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작년에 이어 오늘까지 이땅에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지구촌 수많은 사람들이 그
얼마나 죽어 나가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가 이런 때 이 고운 꽃들만큼 나를 위안 해 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지리산 자락에서 갑자기 쑥국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쑥국새는 오월이면 그 울음소리가 더 구성진 것 같다. 아마도 들녘에 모내기를 빨리하라는 저만의 신호 소리라도 되는가 그러잖아도 바쁜 농부들 맘을 더 바쁘게 하는가 싶다.
우리 사회가 애시당초 농경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를 거쳐 지금은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것이 자동화 사업으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내가 어린 시절 그러니까 70-80년 시대에만 해도 해마다 영농철 그가운데서도 모내기 철이라도 되면 지금처럼 경지정리가 안된 대부분의 논들은 손 으로 일일이 모내기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장을 쓰고 일을 했는데 그 우장이란 것이 짚으로 엮어서 만든 것으로, 비를 맞을수록 더 무거워진다. 그러나 비바람이라도 치는 날에는 또 ”우장“ 만한 게 없었으니 우선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가운데 여럿이 모여 모내는 일을 할 적이면 난 어른들 뒤에서 모 다발을 논으로 나르는 작업을 하곤 했는데,
그 시절 잊지 못할 한 가지 추억이 있다면 지금은 잘 보이지도 않지만 시커먼 거미리란 놈이 어찌 그리도 무섭고 얄밉던지 그 시절엔 오늘날처럼 비닐이란 물질이 없던 시절이라 물 장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냥 맨다리로 논에서 작업을 할라치면 어느샌가 살며시 다리에 달라붙어 아까운 피를 빨고 있는 그 거머리 그 어린 시절에 보는 그 거머리 얼마나 징그럽고 얄밉던지 그러잖아도 제대로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야윈 다리에 꼭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는 모습을 회상해보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얄밉다.
부잣집에 많은 논에 모내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날은 온 동네 잔칫날이 되기도 한다. 들녘 여기저기서 모내기하랴 보리타작하랴, 바쁜 시기라 온 들판에는 일하는 농부들로 꽉 메운다. 일을하다가 새참 때라도 되면 논두둑에 여기저기 빙 둘러앉아 막걸리 곁들어 술 한잔 꿀꺽하며 정겹게 밥을 먹곤 했다.
또 아직 모내기 준비가 덜 된 논에선 모내기를 위해 농부들의 구렁에 맞춰 쟁기질하는 누런 황소는 힘겹게 쟁기를 끌고 가는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제 세월은 잘도 흘러 내 나이 어느새 칠십을 훌쩍 넘어가니 오늘따라 새삼 세월의 무상함에 나도 모르게 저 멀리서 못내 아쉬움 한 가닥 그리움이다.
아! 지나간 내 젊은 시절들이여!
오월의 잎새들을 보면 내 맘까지 젊어진다. 헝클어진 지난겨울을 빗질하고 순하디순한 연초록 나뭇가지며 잎새들, 살랑살랑 흔들어 대는 따스한 바람결에 몸을 비비며 사뿐사뿐 움직이는 푸른 잎새들의 춤사위, 연두도 짙은 초록도 아닌 저 아름다운 자연을 그 누가 만들었을까?
세실 프린시스 알렉산더는 ‘모든 것이 지나간다’에서 일몰의 아름다움이 한밤중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지구의 대재앙인 신종
코로나19’ 감염병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하루빨리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것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내 가족 정겨운 친구들 함께 오순도순 애기 나누며 오월의 햇살 한 줌, 싱그러운 바람 한 다발 맘껏 마시고 싶다.
2021. 5. 2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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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더운 날씨에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