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신앙 (사 40:27-31)
이 시간에 “비상하는 신앙”이라는 제목입니다. 비행기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때는 비행기가 뜰 때와 착륙할 때라고 합니다. 조종사들은 마의 11분이라 하여 항공기 이륙 3분, 착륙 8분 전이 가장 위험하다고 합니다. 실제 항공 사고의 74%가 이 때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지상에서 이륙할 때 연료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고 합니다. 항력과 중력의 방해를 보다 강하게 받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현실에서 탈피하여 비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각각 망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지만 해방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상황은 더욱 어둡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 좌절하여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 소망을 불어넣었던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이사야입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도 독수리처럼 비상해야 하는데 우리를 세상에 묶어두려는 세상과 죄와 육신과 사탄의 방해가 너무나 강합니다.
우리 믿음이 어떻게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을까요?
1. 현실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27절을 보면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 떠나시고 버리신 것 같다.’ 그들은 현실만 바라보고 탄식했습니다.
모세도 호렙산 가시덤불 불꽃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시작하자마자 침체에 빠져버립니다. 강퍅한 바로왕도 그렇고, 자기 백성들의 불신도 그렇지만, 더 문제는 자기의 무능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출6:30)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자신에 너무 집착한 원인입니다.
심리학자 맥스웰 말프는 사람의 95%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환경의 악함과 자신의 부족이 비상치 못하는 원인이 되지 못합니다. 독일의 란게이이히바움이라는 사람이 천재 78명을 조사해보았더니 그중 83%가 육체적, 정신적, 가족관계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 잔다크, 미켈란젤로, 루터, 파스칼, 뉴튼, 루소, 괴테, 하이네, 바그너, 비스마르크, 릴케 등 모두 약점이 있었습니다. 시인 바이런은 기형아였고, 줄리어스 시저는 간질병 환자였고, 베토벤은 청각 장애자였고, 나폴레옹(155cm)은 키가 작았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눈이 안 좋았고, 모차르트는 폐병환자,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환자였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긍정적인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알고 비상합니다. 보이는 것을 문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되면 신이 나서 용기백배하다가 하는 일이 잘되지 않으면 힘을 잃어버립니다.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도 현실에 매이면 하늘로 비상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신해야 합니다.
28-29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알되 나와 관련하여 아시기 바랍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 그냥 능력자가 아니라 나의 능력자, 그냥 인도자가 아니라 나의 인도자, 이렇게 나와 관련시키면서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이 생겨납니다.
부흥사 무디의 간증입니다. “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믿음이 어느 날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뚝 떨어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온다.'는 말씀을 보고 지금까지 내가 성경을 덮어놓고 믿음을 위하여 기도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내가 성경을 공부하는 동안 내 믿음이 줄곧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낙심은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한 것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입니다.
최용우씨의 글에 이런 신앙 글이 있었습니다. “흐리멍텅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미지근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유야무야 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어리버리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해찰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마귀에게 속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뭉기적거리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하자. 근심걱정염려 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여기저기 한 눈 팔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야무지게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30-31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나오는 새 힘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다이나마이트처럼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처음 자동차를 생산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자동차 시승식을 위해 온 나라의 국민과 관료들은 물론 대통령까지 참석하여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서 시승식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출발한 차가 300m도 가지 못해 '퍽퍽' 하더니 시동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당황할 때 기술자들이 자동차를 점검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우리 믿음도 성령의 동력이 없으면 기름 떨어진 차와 같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등은 있으나 기름이 없다면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31절의 '앙망'이란 히브리어로 '카바'인데 ‘간절히 바라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함께 묶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상을 얼마나 갈망하면 생각 속에서 그 대상을 나와 묶겠습니까?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시42:1의 다윗의 고백처럼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중력과 죄악의 항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은 이길 수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갈망하세요. 하나님을 갈망하면 하나님도 은사도 선물도 좋은 것도 함께 받습니다.
13세기에 신학대전을 저술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평생 예수를 증거하는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노년의 아퀴나스가 성전의 십자가 상 아래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에 대해서 잘도 글을 썼구나,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그 말에 아퀴나스는 '나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나에게는 오직 당신뿐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에 황중선 집사님이 부대장으로 있을 때 그분은 매일 새벽기도 나와서 두 시간을 쿠르드족 영혼을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부대의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라크가 얼마나 위험한 곳입니까? 아직도 곳곳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그 분이 부대장으로 있었던 1년 반 동안 아무 사고가 없었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지 한 달 만에 쿠르드족의 폭탄테러가 바로 그 부대 앞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서 30명이 죽었고 5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어서 그 부대에 장교한 사람이 자살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기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정신분석학, 상담심리학에 더 공감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보다 정보의 기술의 통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의 영향력이 커가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무너지고 마는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지상에 속하여 죄악과 절망과 슬픔 가운데 헤매고 있습니까? 현실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실만 바라보는 것은 불신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와 관련하여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갈망하므로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독수리처럼 힘차게 하늘 높이 비상하는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