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구조적 상징 – 여승>
여승 / 백석(1912~1995)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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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여인, 그의 삶의 역정을 역순으로 구성했다. 화자 개입은 절제되어 제1연에서 감성적 표현만 스며 있을 뿐.
*스님을 만남 - 금광에서 옥수수 장사 - 돈벌이 나간 남편의 무소식 – 딸의 죽음 – 스님이 됨
*객관적 사연 하나만으로도 일제 강점기 민족의 고난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명품 구조
*남편이 돈 벌러 나간 것을 유추할 수 있는 구절 : 섶벌(일벌) - 살아 있는 한 반드시 집으로 돌아옴
*단순 서사를 극한 서정으로 끌어올린 시적 묘미는 군데군데 가미된 표현의 눈부신 고명!
정점은 평생 고생의 흔적을 담은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그래도 지금은 “가지취의 내음새”가 나는 맑은 스님!
불교적 깊이가 담긴 표현 :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겨울보다 더 차가운 느낌의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결국 좋은 시는 <좋은 구조 + 강력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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