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개나리’의 어원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봄이 온 것이다. ‘개나리’가 ‘개-’와 ‘나리’로 분석될 수 있을 단어라는
것쯤은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라는 동요를 부를 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개나리’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등장한다. 그 형태도 오늘날과 동일한 형태다.
" 개나릿 불휘 디허 즙을 므레 프러 머그며" <구급간이방(1489년)>
그러나 ‘개나리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어 왔기 때문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개나리’는 향약명이 나타나는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모두 한자를 빌어 쓴 차자표기 형태로 보인다.
犬伊那里根<향약구급방(1417년)> 犬乃里花<향약구급방(1417년)> 犬伊日<향약채취월령(1431년)>
‘犬伊那里(根)’, ‘犬乃里(花)’, ‘犬伊日’는 각각 ‘가히나리불휘’, ‘가히나리곶’, ‘가히날’을 표기한 것이다.
‘犬’과 ‘日’은 각각 한자의 훈으로 읽어서 ‘가히’와 ‘날’로,
‘伊’와 ‘那’와 ‘里’와 ‘乃’는 각각 음으로 읽어서 ‘ㅣ’, ‘나’, ‘리’, ‘나’로 해독된다.
그래서 앞의 두 개는 ‘가히나리’로, 그리고 맨 뒤의 것은 ‘나리’가 축약한 ‘가히날’로 해독할 수 있다.
‘犬伊’(‘伊’는 말음 첨기 표기), ‘犬’은 모두 동물의 하나인 ‘개’를, ‘那里’와 ‘乃里’는 각각 꽃 이름인 ‘나리’로
그리고 ‘日’은 마찬가지인 ‘나리’의 축약형인 ‘날’로 해독할 수 있다.
‘犬’을 ‘개’가 아닌 ‘가히’로 해독한 것은 15세기에 오늘날의 ‘개’는 그 형태가 ‘가히’였기 때문이다.
"각시 가온 가히 엇게옌 얌 여 앒 뒤헨 아 할미러니 <월인천강지곡(1447년)>
狗 가히라 <월인석보(1459년)>
세 罪器옛 막다히와 매와 얌과 일히와 가히와 방하와 매와 <월인석보(1459년)>
가히 구(狗), 큰가히 오(獒), 가히 견(犬) 더펄가히 (厖) <훈몽자회(1527년)> "
‘가히’가 ‘개’로 변화한 시기는 대개 16세기로 알려져 있다.
"쇼과 과 양과 돋과 개과 서 뎐염병을 고툐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1541년)>
개 견(犬), 개 구(狗) <신증유합(1576년)>
개며 게 니 러도 다 그리홀 거시온 며 사 애녀 <소학언해(1586년)>
尊 손의 앏 개 구짓디 아니며 <소학언해(1586년)> "
그러나 실제로 ‘가히’가 ‘개’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5세기이다.
그렇지만 ‘가히’와 ‘개’의 출현 환경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독립하여 쓰인 ‘가히’(犬)는 16세기에 가서야
‘개’로 변하지만 파생어로 쓰인 ‘가히’는 15세기에 이미 ‘개’로 변화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예문을 보면 그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집의 가히 삿기 나코 밥 어더 먹으라 나갓거 기와 그 개삿기 머규 흘 딕조 벌에며 개야미를 주 머기니 "
<번역소학(1517년)>
‘집의 개가 새끼를 낳고’의 뜻인 ‘집의 가히 삿기 나코’는 ‘가히’로 표기되면서, ‘개새끼’(강아지)의 뜻인 ‘개삿기’는
‘가히삿기’가 아닌 ‘개삿기’로 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5세기의 ‘가히나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15세기에 ‘개’(犬)의 뜻인 ‘가히’는 단독으로 쓰일
때에는 ‘가히’였지만, ‘가히+나리’의 파생 과정을 거치면 ‘개나리’로 변화하여 ‘개’가 ‘가히’로 쓰이던 시기에 ‘가히나리’는
이미 ‘개나리’로 변화하여 쓰이는 것이다.
15세기에 ‘가히나리’가 이미 ‘개나리’로 변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접두사인 ‘가히-’나 ‘개-’는 어기인 ‘나리’에 그 의미를 첨가하여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의 의미를 첨가시켜 준다.
따라서 ‘개나리’는 ‘질이 떨어지는 나리’를 말하는 셈이다. 어기인 ‘나리’는 오늘날의 ‘참나리’인 ‘백합’을 말하는 것이었다.
"들에 나리츨 헴라 엇더케 자며 입부지도 안코 방적도 안이되 <예수셩교젼셔(1887년)> "
‘참나리’의 꽃과 ‘개나리’의 꽃을 비교하여 본 사람이면 두 꽃이 색깔은 다르지만 그 모습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결국 ‘참나리’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꽃을 ‘개나리’라고 한 셈이다.
이 ‘개나리’는 ‘개리, 나리, 개너리’ 등의 다양한 표기가 보이지만, 오늘날에는 모두 ‘개나리’로 통일되었다.
"개너리곳(捲丹花) <역어유해(1690년)>
개리곳(辛夷花) <방언유석(1778년)>
나리 <한불자전(1880년)> "
아처럼 ‘참’과 ‘개’가 대립되어 사용되는 어휘가 제법 있어서 ‘참꽃’ 대 ‘개꽃’, ‘참두릅’대 ‘개두릅’, ‘참가죽’ 대 ‘개가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