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에 밟혀 땅 딱딱해지면 식물이 물과 양분 얻기 어렵죠
탐방 인원 제한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10월, 가족과 친구와 산을 찾기 좋은 계절이죠. 설악산이나 치악산 같은 높은 산에도 올라 단풍 구경도 하고 싶고, 공기 좋은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캠핑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나는 가을 산행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숙소 예약이나 교통편 예매가 아닙니다. 국립공원이나 휴양림의 홈페이지에서 방문 시간과 허용 인원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입장시기와 인원의 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숲을 방문하는 인원을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몰상식한 사람이 식물을 꺾거나 야생동물을 잡을까 봐서일까요?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걸으며 땅에 가하는 압력(답압·踏壓)이 숲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이 걸어 다니게 되면 그 무게가 땅에 상당한 압력을 가하고, 지형과 생태계를 바꾸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까지는 1950m로 알려졌던 한라산의 높이는 2000년 초반에 1947m로 측정됐어요. 당시 그 원인 중 하나로 사람들이 등산로를 벗어나 백록담 일대를 걸어 다니며 가한 답압의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죠.
답압은 흙과 흙 사이의 공간을 줄입니다. 이 공간이 충분할수록 흙 속에 공기와 물이 잘 통하게 되는데요. 답압으로 이 공간이 줄면 흙은 점점 더 압축돼 단단해진답니다. 토양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던 지렁이나 다양한 토양 미생물이 다닐 길이 막히지요. 그 결과 흙 속 영양분의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게 되면서 흙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도 약해진답니다. 잎을 적게 만들어내고 번식도 잘 못 하게 돼 맨땅이 드러나기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비가 올 때 나타난답니다. 비 역시 지표면에 닿으면서 압력을 가해요. 그런데 이미 사람의 답압으로 공간이 남지 않은 흙은 쿠션처럼 빗방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표면이 파이게 됩니다. 이걸 침식이라고 하는데, 침식이 주변까지 빠르고 큰 규모로 일어날 때 산사태와 같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비를 1차적으로 흡수할 낙엽층마저 부족해져 토양 침식이 더 빠르게 진행되고요. 흙 속에 물을 흡수할 공간이 없어졌으니 큰 비가 내리면 산 아래 마을이 홍수를 겪을 위험성도 생깁니다.
생태학자들은 답압에 대한 대책으로 흙을 갈아엎어 주거나, 등산로 포장 공사 등을 제안하고 있어요. 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생태계에 영향이 작은 해결책은 너무 많은 사람이 숲을 한꺼번에 방문하지 않는 겁니다. 자연이 회복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관람을 하면 괜찮으니까요. 그래서 국립공원 등이 하루 방문객을 제한하고 있는 겁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기 위한 작은 불편함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