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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남프랑스 예술 기행 8일째, 앙티스의 외곽 레지던스 호텔을 베이스 캠프로 하고 오전 일찍 니스를 찾았다. 니스는 한 문장으로 말하면 '지중해의 수도같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남프랑스 리비에라의 중심이고, 휴양 + 예술 + 도시 문화가 완벽하게 섞인 곳이다. 바다도 있고, 올드타운도 있고, 대도시 편의시설도 있고, 분위기는 여전히 휴양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남프랑스는 니스를 기준으로 움직인다.”고 말할 정도다.
나와 아내는 일행과 함께 아침 9시 밴으로 앙티스에서 막히는 도로를 뚫고 50분여 달린 끝에 샤갈 국립미술관에 도착 했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샤갈 국립미술관 위치는 36 Avenue du Docteur Ménard, 06000 Nice, France다. 이 미술관은 니스 시내 언덕 위 시미에/Cimiez 지구에 위치하고 있다. 샤갈 미술관은 니스 구시가지나 해변에서는 다소 떨어진 언덕 위에 있어 걸어가기보다는 버스나 택시 이용이 편리하다. 그러나 나는 일정 내내 함께하는 밴을 타고 갔다.
나는 이미 지난해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마르크 샤갈 특별전 : BEYOND TIME( 2025년 5월 23일(금) ~ 9월 21일(일))을 관람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의 샤갈 특별전은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미공개 유화 7점을 포함해 유족 소장 작품 총 170여 점을 선보이며,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대규모 샤갈 특별전'이라고 선전을 했지만 니스의 샤갈 국립 미술관을 보니 초라함 그 자체였다.
나는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서 첫번째 궁금함이 생겼다. 왜 샤갈 국립 박물관이 니스에 있는 것일까? 이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검색을 해 보니 니스는 샤갈의 생애 마지막 안식처였다.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 태생의 유대계 화가로, 나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48년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후 남프랑스의 따뜻한 빛과 색채에 매료되어 니스 인근 방스(Vence)에 정착했고, 말년에는 니스 외곽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에서 살다가 1985년 97세로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샤갈의 무덤은 그의 미술관이 있는 니스가 아니라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 공동묘지에 있다. 생폴드방스는 샤갈이 사랑한 마을로, 그는 인생의 말년을 이곳에서 지냈고, 이곳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생폴드방스는 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20km 거리에 있는 중세 성곽 마을로, 샤갈은 1966년부터 198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니스에는 샤갈 국립미술관 (Musée National Marc Chagall)이 있다. 샤갈이 1966년 프랑스 국가에 직접 기증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1973년 앙드레 말로 문화장관 주도 하에 니스에 개관했다. 개관 당시 샤갈이 직접 참석했으며, 살아있는 화가를 위해 프랑스 국가가 미술관을 헌정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이 미술관의 핵심 소장품은 샤갈의 대표 연작인 〈성경의 메시지 (Biblical Message)〉 17점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아가서 등 성경 장면을 샤갈 특유의 몽환적이고 색채 풍부한 화풍으로 담아냈다. 그 외 유화, 수채화, 판화,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등 200여 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었다.
많은 샤갈 그림을 보아왔지만 이번 예술 기행에서 만난 그의 작품들은 나의 숨을 멋게 할 정도로 몰입감을 주었다.
건축가 앙드레 에르망(André Hermant)이 설계했으며, 샤갈 본인이 직접 건물 설계와 정원 조성에 참여한 미술관을 보며 입구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작품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 습작
Le plafond de l'Opéra de Paris (스케치/습작본) 이었다. 이 그림은 샤갈이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의 천장화를 위해 제작한 습작(에튀드)다. 실제 천장화의 구도와 색채 배치를 미리 그린 원형 구성안으로, 니스 샤갈 미술관 관람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이다.
1960년 당시 프랑스 문화장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는 샤갈에게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낡은 천장화 교체를 의뢰했다. 러시아 출신 유대계 화가에게 프랑스 최고의 문화 공간을 맡긴다는 점에서 당시 큰 논란이 있었지만, 말로는 샤갈을 강력히 지지했다고 한다. 샤갈은 2년에 걸친 작업 끝에 1964년 완성했다.
이 미술관에서 가장 핵심은 샤갈의 대표 연작인 〈성경의 메시지 (Biblical Message)〉 17점이 전시돼 있는 방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아가서 등 성경 장면을 샤갈 특유의 몽환적이고 색채 풍부한 화풍으로 담아내고 있다.
맨 먼저 마주하는 작품이 〈이삭의 번제〉 Le Sacrifice d'Isaac (1960~1966)다.
샤갈의 〈성경의 메시지〉 연작 17점 중 하나로, 니스 샤갈 미술관의 핵심 소장품이다. 샤갈의 눈으로 읽는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 그 자체다.
성경 본문 — 창세기 22장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였다. "네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은 새벽에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떠났고, 제단을 쌓고 이삭을 묶어 칼을 들었을 때, 천사가 내려와 그를 막으며 말했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알았다."
자료를 빌어 이 작품을 읽어 본다.
화면 구성 — 요소별 해설
중앙 — 아브라함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칼을 높이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붉은색은 믿음의 열정과 번제의 불꽃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표정에는 고뇌와 순종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단 — 이삭 노란색으로 표현된 이삭이 눈을 감은 채 묶여 누워 있습니다. 노란색은 샤갈에게 순수함과 생명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생명의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상단 중앙 — 파란 천사 샤갈 특유의 짙은 파란색 천사가 날개를 펼치며 아브라함의 손을 향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개입, 즉 구원의 순간을 표현합니다. 파란색은 샤갈에게 신성(神性)과 영적 세계를 뜻하는 색입니다.
좌상단 — 흰 천사와 나무 좌측 상단에 흰 천사가 희미하게 보이고, 그 아래 짙은 초록의 나무가 있습니다. 번제 대신 바칠 숫양이 덤불에 걸려 있는 장면을 암시합니다.
우상단 — 십자가와 군중 오른쪽 상단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장면과 군중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샤갈 해석의 핵심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 예수의 십자가 수난으로 이어지는 구속사(救贖史)의 연결고리를 한 화면에 담은 것입니다. 유대인인 샤갈이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사랑의 서사로 바라본 독특한 신학적 시각입니다.
좌하단 — 아담과 하와 나무 아래 남녀가 보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로, 인류의 원죄와 그로 인한 희생 제물의 필요성을 암시합니다. 창세기의 시작과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한 화면에 연결한 것입니다.
이어서 샤갈의 〈성경의 메시지〉 연작 17점이 이어진다.
〈천지창조〉 La Création (1956~1958)
이 작품은 샤갈의 〈성경의 메시지〉 연작 중 창세기를 주제로 한 대표작이다.
〈모세의 십계명 수령〉 Moïse recevant les Tables de la Loi (1950~1952)
〈성경의 메시지〉 연작 중 출애굽기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야곱의 천사와 씨름〉 La Lutte de Jacob avec l'Ange (1960~1966)
〈성경의 메시지〉 연작 중 창세기 32장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미술관 전시장 마지막에는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이 있다.
주어진 시간 1시간 여 동안 샤갈 국립미술관 5개 공간을 진한 감동속에 감상했다. 샤갈 미술관은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돼 있다.
샤갈 국립미술관 전시 공간 — 공식 순서
1실 (메인 대전시실) —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주제로 한 대형 유화 12점. 〈이삭의 번제〉, 〈천지창조〉, 〈십계명 수령〉, 〈야곱의 씨름〉이 모두 여기에 있다.
2실 (육각형 소전시실) — 아가서를 주제로 한 5점 전시.
3실 — 기획전시 및 기타 작품 공간
콘서트홀(오디토리엄) — 샤갈이 직접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창
그 외 공간
야외에는 샤갈이 직접 제작한 모자이크 벽화가 연못 위에 설치되어 있고, 지중해식 올리브 나무 정원이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다.
전체 관람 시간은 1시간 내외로, 작품 설명을 꼼꼼히 읽으면 조금 더 걸린다. 규모는 작지만 밀도가 매우 높은 미술관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와 자료를 더 깊이 찾아보는 방식으로 니스의 샤갈 국립미술관을 감상했다.
샤갈이 사랑한 남프랑스의 빛
샤갈은 "지중해의 빛이 내 색채를 해방시켰다"고 말할 만큼 남프랑스의 강렬한 햇빛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파리 시절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밝은 색채가 니스 정착 이후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를에서 고흐를 만난 감동이 잔상으로 남은 상태에서 샤갈의 그림들을 보며 남프랑스 예술기행은 더욱 감동으로 와 닿는다. <26.5.28 현담 이강렬 >
[샤갈 국립미술관 감상하기]
〈아브라함과 세 천사〉 Abraham et les trois anges (1954~1967)
〈성경의 메시지〉 연작 중 창세기 18장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성경 본문 — 창세기 18장 1~15절
무더운 한낮에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나무 곁에 앉아 있을 때, 세 사람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은 즉시 달려나가 엎드려 절하며 말합니다. "주님, 이 종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면 지나치지 마십시오." 그는 물을 가져다 발을 씻게 하고, 빵과 송아지 고기와 우유와 버터를 대접합니다. 천사들은 이 자리에서 사라(Sarah)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전합니다.
화면 구성 해설
중앙 — 세 천사 흰 날개를 가진 세 천사가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각각 흰색, 보라색,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의 상징으로도 해석됩니다. 실제로 이 장면은 기독교 미술사에서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상(圖像)입니다.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이콘과 같은 전통을 샤갈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좌측 — 아브라함 파란 옷을 입은 노인 아브라함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서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사라로 보이는 인물이 있습니다.
우상단 — 원형 장면 오른쪽 상단의 원 안에 천사들과 인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천사들이 소돔으로 떠나는 장면, 혹은 이삭의 탄생을 예고하는 후속 사건을 암시합니다.
상단 중앙 — 붉은 기마 인물 하늘을 나는 붉은 말과 기수는 샤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 하느님의 메신저 혹은 예언자적 존재를 상징합니다.
전체 색조 — 강렬한 붉은색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붉은색은 환대의 열기, 하느님 현존의 신성한 불꽃, 그리고 곧 이루어질 약속의 긴박감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샤갈에게 붉은색은 생명력과 신성한 사랑의 색입니다.
미술사적 의미
이 장면 〈마므레의 세 나그네〉 는 서양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특히 15세기 러시아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이콘이 같은 장면을 다루었는데, 유대계 러시아인 샤갈이 이 전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샤갈은 신학적 도상을 자신의 몽환적 색채 언어로 완전히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이 작품은 앞서 보신 작품들과 화풍이 상당히 다릅니다. 샤갈의 〈아가서〉 연작 중 한 점입니다.
〈아가서 IV〉 Le Cantique des Cantiques IV (1958)
2실 육각형 소전시실에 전시된 아가서 연작 5점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
앞서 보신 창세기·출애굽기 작품들과 전혀 다른 화풍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구체적 인물과 장면으로 묘사한 1실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반추상적입니다. 아가서의 내용 자체가 서사가 아니라 사랑의 감정과 관능적 언어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화면 구성 해설
전체 색조 — 타오르는 붉은색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강렬한 붉은색과 오렌지색은 아가서의 핵심 감정인 사랑의 열정과 욕망을 표현합니다. 샤갈은 아가서 연작에서 붉은색을 가장 과감하게 사용했습니다.
중앙 — 흰 대각선 화면을 가로지르는 흰 붓질은 두 연인 사이의 영적 연결, 혹은 사랑의 빛을 상징합니다. 구체적 형상 없이 순수한 색채와 선으로만 감정을 전달합니다.
여러 개의 원형들 크고 작은 원들이 화면 곳곳에 떠 있습니다. 태양, 달, 생명의 순환을 암시하며 아가서의 자연 이미지들, 즉 포도밭, 꽃, 하늘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좌측 — 작은 인물과 파란 물고기 희미하게 보이는 작은 연인의 형상과 파란 물고기가 붉은 바다 속에 떠 있습니다. 샤갈의 그림에서 물고기는 생명과 사랑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우하단 — 회색 지대 붉은 세계와 대비되는 회색 영역은 사랑 밖의 세계, 즉 냉담함이나 세속을 암시합니다. 오른쪽 끝의 파란 점들은 별이나 천상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아가서와 샤갈
샤갈은 아가서를 가장 사랑한 성경 구절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 나는 그의 것. 그는 백합화 사이에서 양 떼를 먹이네." (아가 2:16)
유대인 샤갈에게 아가서는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사랑, 나아가 인간 영혼과 신 사이의 합일을 노래하는 신성한 텍스트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가서를 그릴 때 구체적 형상 대신 색채 자체가 감정이 되는 반추상의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오늘 본 작품들의 흐름이 이제 완성됩니다. 창조와 율법의 엄숙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마지막에 사랑의 노래로 끝나는 것이 샤갈이 의도한 성경 메시지의 완결입니다.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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