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뜻하는 에일, 두블
두블(Duvel)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 속에 즐기는 맥주이기도 하다. 벨기에 바깥의 사람들은 'duvel'을 보통 '듀벨'이라고 읽는다. 우아한 어감의 프랑스에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플랑드르 말로 악마를 뜻한다. 첫 번째 음절에 강세를 주면서 '두-블(DOO-vl)'이라고 읽어야 한다. 또 한가지는 색 때문에 라거로 착각한다. 7∼8 EBC로 필스너의 색과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블은 상면 발효 이스트로 만든 진짜 에일이다.
두블의 변신: 반세기에 걸친 제품 혁신
부르쉘 북쪽 브린동크에 있는 무르트가트 양조장은 1871년 설립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황금색 두블은 1970년에야 등장한다. 하지만 이미 두블은 1918년부터 다크 에일 버전으로 존재했다. 1930년대 이스트를 교체하는 큰 변화를 거치고 70년대 생산공정 자체를 완전히 바꿔서 황금색 에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두블의 변신 과정은 마케팅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특이한데, 신제품 개발에 가까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 브랜드를 계속 고집한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름에 집착했다기보다는 하나의 제품을 끊임없이 혁신하는 장인정신에 가깝지 않나 싶다.
1918년의 두블은 다크에일이었다. 당시 있었던 다크에일 가운데 1차 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빅토리 에일을 이름만 바꾼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무르트가트 집안과 교분이 있는 한 친구가 "이 맥주를 마실 때면 내 안에 악마가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 데서 착안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놓치기엔 너무 좋은 이름이었고 곧 빅토리 에일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물론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변한 것은 없었다.
두블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양차 대전 사이였다. 당시 수입된 스카치 에일은 벨기에에서 컬트 맥주로 인기가 좋았다. 스카치 에일에 대한 대응책으로 고심하던 알베르트 무르트가트는 에일 양조를 공부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고 귀국할 때 에딘버러에서 맥퀴언의 스카치 에일 몇 병을 가져왔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 맥퀴언 에일은 이스트가 살아있는 병속 발효 맥주(Bottle-conditioned beer)였다. 말할 것도 없이 이스트 분석을 위한 샘플이었다.
무르트가트는 전설적인 양조 과학자인 루벵 대학의 장 드 클레르크를 초빙했다. 클레르크는 맥퀴언의 이스트가 10∼20개의 스트레인(Strain)을 갖고 있는 멀티 스트레인 이스트임을 알아냈고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 개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분리한 스트레인 중 하나는 높은 온도에 강했는데, 이는 발효온도를 여름에 섭씨 30도까지 올릴 수 있음을 의미했다. (보통 에일 발효온도는 섭씨 25도까지 올라간다.) 또 다른 스트레인은 풀처럼 병 바닥에 착 달라붙었는데, 병속 발효에 이상적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두블에 사용되는 이스트 스트레인은 이 두가지로 좁혀졌다.
새로운 이스트를 사용해서 두블은 1930년대 재출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색이 짙은 다크 에일이었다. 이름의 유래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이때 만들어진 맥주를 처음으로 시음한 한 양조장 직원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건 맥주의 악마다."
영국과 함께 에일의 나라로 꼽히는 벨기에도 라거 열풍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무르트가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라거 양조와 소비는 가파르게 증가했고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좁아진 시장에서 무르트가르트는 덴마크의 투보르크를 병에 담아야 했다. (투보르크는 1970년 칼스버그와 합병했다.) 근대적인 보틀링(Bottling) 설비에 투자를 해야 했지만 여기서 번 돈으로 양조장 부지를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이 만든 맥주를 병에 담는 지경에 이르자 무슨 수를 내야만 했다. 결론은 자신만의 색이 옅은 페일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거 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은 거부했다.
황금색 두블의 탄생 : 라거에 대한 반격
장 드 클레르크의 도움으로 두블의 황금색 버전이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몰트당이 조금이라도 검게 변하지 않도록 담금과 발효 전 과정에 걸친 엄청나게 복잡한 체계가 마련되었다. 클레르크에 의해 설계된 제조 공정은 3차 발효를 거치면서 거의 모든 몰트당을 알코올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온 최종 산물은 알코올 함량 8.5%(abv)의 황금색 에일이었다. 두블은 양조 과학의 정교한 산물이었다.
담금 과정(Mashing)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고전적인 인퓨전(infusion)이다. 프랑스와 벨기에산 2줄 여름보리로 만든 필스너 몰트를 사용한다. 호프는 싸즈와 스티리언 골딩을 쓰고 몰트액을 끓이는 동안 세 번 첨가한다. 쓴맛은 30 IBU이다. 1차 발효 전에 일정량의 포도당을 첨가함으로써 비중(Original Gravity)을 1056에서 1066으로 높인다. 포도당은 맥주의 알코올 함유량과 알코올 전환 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1차 발효(1st Fermentation) 일부는 원추형 발효조에서, 나머지는 17개의 개방형 발효조에서 한다. 각각 다른 이스트 스트레인을 사용한다. 개방형 발효조가 있는 방은 마치 과수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킨다. 공기는 분명한 배(Pears)의 아로마로 무겁다. 바로 두블의 상징인 풍부하고 향수 같은 포이레 윌리엄(Poire William)이다. 1차 발효는 4∼5일 밖에 안 걸린다. 원추형과 개방형에서 각각 발효된 맥주는 1차 발효 과정의 끝에서 혼합된다.
2차 발효(2nd Fermentation) 혼합된 맥주는 원추형 발효조에서 2차 발효되고, 냉각되고, 원심분리기에서 이스트를 제거한다. 그리고 저온 숙성은 이스트가 완전히 침전되고 응축되는 섭씨 -3도로 내려가기까지 3주간 진행한다.
3차 발효(3rd Fermentation) 맥주는 1차 발효에 쓰인 원래의 이스트 중 하나와 포도당과 함께 병에 담겨 섭씨 25도로 2주간 저장된다. 이것은 병 속에서의 3차 발효를 촉발한다. 또한 첨가된 포도당은 비중을 1073으로 높여준다. 그리고 찬 곳으로 옮겨져 섭씨 5도로 2∼3개월 보관된다.
포이레 윌리엄, 1년산 두블의 향기
제조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두블은 이스트가 살아있는 병속 발효 맥주이다. 이런 까닭에 만들자마자 바로 마시는 다른 맥주와 달리 일정기간 저장했다가 마셔야 한다. 벨기에의 훌륭한 카페 주인들은 손님들에게 내놓기 전에 최소 3개월 이상 두블을 저장해둔다. 병에 넣은지 불과 몇 주 밖에 안된 두블은 빵이 부풀어 오를 때 나는 이스트 냄새가 나고 깊은 맛이 덜하다. 그리고 헤드(Head)가 빨리 죽는다.
두블을 제대로 즐기려면 병에 넣은 지 `년 된 것을 마셔야 한다. 전형적인 두블의 맛과 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코로는 배를 떠올리게 하는 포이레 윌리엄을, 입으로는 향긋한 호프와 섬세한 과일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끝맛은 향수같은 아로마 호프의 맛이 지배적이다. 바디는 공단처럼 부드럽다. 반면 18개월된 것은 두블 고유의 과일 맛과 향이 약해지고 끝맛이 1년 된 것보다 덜 달다.
차게 마시는 에일, 두블
두블이 에일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벨기에 카페들은 라거처럼 취급한다. 손님들에게 차게 해서 대접하고 잔을 냉장고에 넣어 얼리기도 한다. 차게 마시면 두블은 훌륭한 갈증해소 음료이자 아페리티프 구실을 한다. 이처럼 차게 마실 수 있는 비밀은 무르트가트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라거링이라 말하는 저온 숙성에 있다.
그러나 두블은 에일이다. 제대로 즐기기 원한다면 두블은 자연 저장고 온도인 섭씨 11도로 마셔야 한다. 깊고 복잡미묘한 맛과 향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선요리. 닭이나 오리 같은 새 요리, 파스타와 향신료를 넣은 음식들과 완벽하게 어울린다. 이 경우 훌륭한 소화제 역할을 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조커, 악당, 유다... 악마의 친구들
두블은 그 원산지인 벨기에에서 많은 아류들을 갖고 있다. 두블과 경쟁하기 위해 나왔던 맥주들은 모두 악당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졌다. 동 플랑드르 지방의 Sloeber(익살꾼 또는 카드의 조커), 나무르 지방의 Deugniet(악당), 그리고 특징이 뚜렷한 Judas(유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오리지널의 자리를 빼앗지 못했다. 벨기에 골든 에일에 관한 한 두블은 최상의 맥주임에 틀림없다.
왼쪽부터 330ml, 1.5L, 3L
첫댓글 병에 붙은 라벨에는 6∼10도 사이에 마시고, 천천히 따루라고 적혔고, 병입 시기는 없고 유통기간만 있네요.
형아님 이런 자료 다 어디서 구하셨어요? 정말 유용한 정보 계속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Drinks Korea 라고 60페이지 정도 되는 월간 주류 전문잡지가 있어요. 앞 글에 적어 놨다고 다시 안썼는데.. ^^ 이 책에서 맥주부분만 올린겁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맥주인데... 글을 읽으니 좀더 새롭네요~~ 자료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라 하는 맥주입니다. 단가가 좀 쎄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