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21일, 일요일, Arequipa, Colonial House Inn (오늘의 경비 US $44: 숙박 50, 입장료 50, 점심 27, 식료품 5, 가이드 팁 20, 환율 US $1 = 3.50 sole) 어제 만난 한국인 정아 엄마와 아침 9시에 만나기로 해서 중앙광장으로 나갔다. 중앙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밴드도 나와서 무슨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어느 사람에게 물었더니 매주 일요일마다 하는 밴드 행진이란다. 특별한 이유 없이 정부에서 하는 행사란다. 정아 엄마와 5살 짜리 정아를 만나고 함께 한 10분 정도 걸어서 정아네 집으로 갔다. 정아네 집은 경비가 지키는 문을 통과해야 하는 고급 아파트 촌 안에 있었다. 프랑스인 남편은 출장 중이라 우리 부부와 정아네 두 식구 넷이서 양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정아 엄마는 한국에서 불문학을 공부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프랑스에 갔다 한다. 정아는 100% 한국 앤데 아주 귀엽게 생겼다. 이곳에 있는 독일인이 경영하는 비싼 학교에 다니는데 학생 대부분이 페루 애들이라 한다. 집에서는 프랑스어를 쓰고 학교에서는 스페인어를 쓰는데 한국어를 알아듣기는 하는데 말은 잘 못했다. 정아 엄마는 우리가 있는 동안 정아가 한국어를 하도록 시켰으나 억지로 한두 마디하고는 다시 프랑스어로 한다. 정아 엄마에게 우리 애들을 어릴 때 한국어를 못 가리킨 실수를 저질러서 지금은 애들에게 원망을 많이 듣고 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국인은 하나도 없다는 이곳에서 5세의 정아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더구나 정아 엄마와 남편은 프랑스어로 말해야 하는데 말이다. 정아는 배운지 얼마 안 되는 자전거 타는 것을 나에게 자랑하고 싶은지 나와 함께 나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집 앞길에서 정아가 자전거 타는 것을 한참 동안 봐주었다. 정아는 붙임성이 많아서 나와 금방 친해 졌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국말도 나에게 몇 마디 했다. 며칠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11시경 정아네 집을 나와서 페루에서 제일 오래됐다는 Santa Catalina 수녀원 구경을 갔다. 1580년에 세워졌고 1970년에 개방 될 때까지는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수녀원이었다. 조그만 마을만한 규모의 이 수녀원은 지금도 한구석에 25명의 수녀들이 살고 있고 나머지는 개방되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우리 부부와 영국인 부부와 영어를 하는 안내원과 한 시간 반 동안 수녀원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지난 4백여 년 동안 여러 번 지진피해를 받은 이 수녀원은 지진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살기 좋을 만한 곳이었다. 처음 300여 년 동안은 부자 집 딸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12-16세 때 1년간 살아본 다음에 수녀가 되기로 결정하면 18세에 들어온다. 일단 들어오면 죽어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들어올 때는 1,000 내지 2,000 금화를 내야한다. 그러면 수녀원 내에 조그만 집이 제공되고 친구나 자매와 같이 살기도 하는데 시중드는 종을 데리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인디안 출신의 수녀를 종으로 쓰기도 했다. 그 당시 페루의 상류층에서는 자식 중 하나는 신부나 수녀, 하나는 군인으로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 낸 돈의 액수에 따라서 주어지는 집의 크기도 달라지는데 수녀가 죽으면 그 집을 다른 수녀에게 팔거나 수녀원에 기증했다. 이러한 제도는 1800년대에 들어와서 교황의 명에 의해서 폐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벽에는 수녀들의 초상화가 많이 걸려 있었는데 죽은 후에 그려진 것이라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한 수녀의 초상화가 눈을 뜨고 있어서 안내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 수녀는 눈을 뜬 채로 죽었다 한다. 부엌에 들어가 보니 동물 실험용으로 많이 쓰이는 기니 픽을 (guinea pig) 가두어 뒀던 곳도 있었는데 식용이었다. 지금도 이 고장에는 기니 픽 구이 요리가 유명하다. 수녀들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서 옷도 만들고 자수도 놓고 빵도 구어서 팔았다. 하수도 시설이 특이했다. 이 수녀원은 벽이고 천장이고 이 고장에서 많이 나는 화산암으로 되어 있었는데 하수도 역시 화산암으로 되어 있었고 경사를 이용해서 물이 내려가게 만들어졌다. 그곳에 부엌의 구정물이나 변기에 담긴 대소변을 버려서 흘려내려 보냈다. 흘러서 어디로 가는지는 물어보질 못 했다. 화장실은 따로 없었던 것 같았다. 오늘 우리를 데리고 다닌 여자 안내원은 인디안 피가 많이 섞인 듯 보였는데 처음에는 영어가 서툰 것 같았는데 한참 다니다 보니까 수녀원 안내와 관계없는 대화도 잘 하고 영어가 유창했다. 영어를 어디서 배웠느냐 물으니 학교에서는 배운 건 별로 없고 대부분 안내원 노릇을 하면서 외국인들에게서 배웠다 한다. 수녀원에서 나와서 맛없는 점심을 사먹고 한국의 재래시장 같은 시장에 가서 저녁거리를 샀다. 생선찌개 거리를 불과 5 sole에 (1,700원) 샀다. 27 sole의 (약 만원) 점심 값에 비하면 엄청 싸다. 호텔에 돌아와서 부엌을 빌려서 생선찌개를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을 넣고 끓여서 먹으니 속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오늘 오전에 잠깐 구경한 이곳의 성당은 규모가 매우 컸다. 일요일 아침이라 미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조용히 들어가서 구경하고 나왔다. 옛날 성당을 지을 때는 제일 공헌한 사람들은 인디언들이었다 한다. 이들은 무상으로 1년에 일정 기간을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는데 도로공사나 정부건물 건축일보다 성당 건축일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다. 도로나 정부건물은 일이 끝나면 혜택을 받는 건 백인들뿐이었는데 성당은 인디언들도 사용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앙광장에 있는 성당에는 항상 인디언들이 많이 보인다. 여행지도 Arequipa 중앙광장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하는 일요일 행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대민 봉사용과 정부 과시용이란다 행진을 하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 모두 즐긴다 어린 소년 소녀들도 다양한 유니폼을 착용하고 참가한다 우연히 시내 길에서 만난 한국 교포 정아 모녀의 초대를 받아서 집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다 정아는 프랑스에서 자라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에 능하고 한국말은 조금밖에 못 한다 페루에서 제일 오래 된 Santa Catalina 수녀원을 찾았다 청색 벽이 눈을 끈다 옛날에 수녀들이 목욕을 했던 곳이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