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생거진천 전국백일장 수상작
[초등부 장원]
가을
김준혁[충북 진천 이월중학교 1학년]
먼 산언저리
가을과 춤추고 있는
단풍잎
엄마의 가을이
붉게 물들었다
깊게 패인 주름사이사이
세월의 계절이
바삐 지나가고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꽃피던 시절의 사진 한 장
서랍 속 깊숙이
어제 일처럼 그리운
그 따뜻했던 날들
이젠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엄마의 얼굴에도
따뜻한 햇살이
비추이길
[중등부 차상]
등대
이 수[충북 진천 진천중학교 3학년]
수평선 끝
고기잡이배들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불빛의 너울
달빛은 칠흑같은
밤바다에 내려와
길 잃은 바람을
조용히 감싸준다
긴 세월
해풍에 흔들려
나뭇가지 휘어진 해송처럼
늙어가는 등대지만
바람에 실려 오는
낯선 시간들을
불빛에 걸어놓고
어부들의 삶을
그물처럼 엮어준다.
외할아버지와 아이스크림
박가희[충북 진천 진천여자중학교 3학년]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여중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옛날 외가댁이 있다. 옛날이라고 해야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사셨던 곳이다. 지금은 외할머니께서 읍내에 있는 빌라로 이사 가시고 그 집은 비었지만 나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소중한 장소이다. 집 앞 잔디밭에서 썰매를 타고, 토끼풀을 꺾어서 반지를 만들기도 하고, 가을이면 밤나무를 긴 막대기로 치면 우수수 떨어지는 밤을 보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있다. 그 중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기억하면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어렸을 적 외가댁에 자주 놀러 갔었다. 내 또래가 없는 곳에 혼자 있으려니 심심할 때 쯤 되면 나는 외할아버지에게 보채기 시작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요 앞 친구 분들과 한 잔 하러 가실 때 나를 자주 데려가시곤 하였다. 할아버지가 친구 분들과 막걸리 한 잔 씩 드시며 이야기 나누시면 나는 그 옆에 앉아 어른들이 쥐어주시던 과자를 먹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다 또 지겨워져 집에 가자고 보채면 할아버지는 좋아하시는 막걸리도 뒤로 한 채 일어서셨다. 그리고 항상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봉지에 담아 나에게 쥐어 주시고 내 손을 잡고 집으로 오셨다. 할머니에게는 비밀이라며 동생들은 주지 말고 혼자 숨겨 놓았다가 먹으라며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마냥 좋아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스크림을 뜯어 집에 오는 길에 하나씩 먹고는 하였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는 길은 그저 나에게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었다.
항상 아들인 막내 손자보다도 더 첫째 손ㄴ를 더 최고라고 하시고 뭘 하시더라도 첫째 손녀부터 먼저 챙기셨던 할아버지. 나도 외가댁에 가면 항상 먼저 할아버지를 찾았었다. 이런 할아버지와 나를 보며 할머니와 엄마는 유별나다고 하시면서도 웃으셨다.
그런데 몇 해 전 사고로 할아버지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의식이 없고 호흡기까지 다신 할아버지의 모습에 왜 진작 더 잘해드리지 못 했나,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뵐걸…… 하는 후회를 했다. 할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나왔지만 혹시 할아버지께서 눈치 채실까 하는 생각에 애써 눈물을 누르며 할아버지의 마른 손을 잡고 빨리 일어나시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결국 할아버지는 끝내 일어나시지 못하고 눈을 감으시고 말았다.
지나간 추억들 중에는 언제 다시 꺼내 봐도 눈물 나는 추억이 있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게 바로 외할아버지인 것 같다. 그 눈물은 꼭 슬픔만이 아니라 소중한 어린 시절 추억에 있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눈물인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할아버지가 사주신 아이스크림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으로 내 가슴 속에 항상 남아있을 것이다.
[중등부 차하]
시간의 농부
장지수[충북 진천 이월중학교 3학년]
봄날의 농부처럼
꿈 한 알을 심고
가을을 꿈꾸며
밭이랑을 간다
아직 여리디 여린 풀포기
뜨거운 햇살 삼키고
세찬 빗방울 끌어안으며
오늘도 한 걸음 시간을 걷는다
한 땀 한 땀 모아 온
그 서툰 걸음마로 나는 자라고
그 때 그 농부처럼
내 바구니에 탱글한 붉은 열매 채우리니
오늘도 꿈 한 모금 들이키고
하루를 연다
꿈꾸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
신혜련[충북 진천 이월중학교 3학년]
얼마 전 후배 한 명이 나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꿈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 후배는 “누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 실업률이 높아지는 거야.”라고 말했다. 장난으로 던진 말 같았지만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가장 속상한 것은 내 자신을 가장 뜨겁게 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겠다는 나의 열정도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꿈을 가지고 있을 때의 그 풍만함과 하루 종일 굶고 있어도 느끼는 포만감 같은 것이 없어 공허하고 갈팡질팡 떠도는 기분이다.
꿈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용어로는 실현시키고 싶은 바람이나 이상 또는 공상적인 바람이라는 의미로 표기되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꿈은 막연한 동경이 아닌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윤택하게 만들며 발전하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꿈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꿈이 없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꿈이 없다는 것은 목표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목표가 없으므로 삶의 이유도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중학생 정도면 꿈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라는 주위 어른들의 말씀들을 자주 듣게 되었다. 맞다. 중학생 정도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 정도는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도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면 작문 정도이다. 어떻게 보면 작문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생각하기에 작문이라는 것은 머리 아프고, 귀찮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과정과 그 과정 후 내가 쓴 글자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갈 때 느끼는 그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수상 후 그 희열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작가나 카피라이터와 같은 문예가가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인 나는 고입준비로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다.
남들은 이런저런 재능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같다. 요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글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문예가도 전문 직업은 아닌지라 미래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한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불확실한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세상이 불공평하게만 느껴진다. 정말 혼란스럽기만 하다.
비록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꿈이 없다면 평생 행복해질 수 없다. 전현무 아나운서가 “꿈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꿈은 막연한 동경이 아닌 구체적 목표로 삼을 때 현실이 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모두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시험이 끝나면 여러 분야의 책들도 읽어보고, 고등학교 준비도 해가면서 구체적인 내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적어야겠다. 이것이 마지막 누구보다 가장 기쁘게 웃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쉽게 얻은 것보다 어렵고 힘들게 얻은 것이 더 값지다는 것을 알기에…… 미래의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항상 어릴 적의 순수함을 떠올리며 나는 꿈을 꾼다. 너무 오래 신어서 헤지고 낡아버린 운동화가 되어 이젠 버려야 할 때까지, 그리고 시들고 말라 비틀어져 떨어져 버렸지만 다시 싱그럽게 피어나는 꽃처럼 내 꿈은 버림받거나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믿기에.
삶과 죽음
성진혁[청주시 서경중학교 3학년]
나는 지금 중학교 3학년, 16살이다. 나는 건강한 편이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그 길을 가고 있다. ‘나는 밝은 미래를 향해 무지갯빛 꿈을 가지고 나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나는 그 동안 리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 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삶의 인식이 바뀌어졌다.
할아버지는 내가 4살 때 돌아가셨다. 그 때 나는 너무 어려서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늘 그랬듯, 친구들과 하굣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점 차량들이 정체되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하나 둘 씩 모여서 수근 대고 있었다. 나도 ‘재미있는’ 볼거리를 찾아 머리를 디밀었다. 순간 어느 중년 여성의 시신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사건의 정황은 다리 공사를 하던 장비가 무게의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때마침 지나가던 40대중반의 아주머니를 덮친 것이다. 사고 현장이라곤 접촉 하고만 보아왔던 나에게 사람의 시신이 널브러져 피가 흐르는 광경은 가히 충격적 이었다. 지나가던 아이,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함몰된 시신을 보고 놀라움과 함께 모두들 얼굴을 찡그렸다. 하찮은 곤충이나 동물의 시체도 징그러워 못 보는 나는 더 이상 바라 볼 엄두도 못했다.
아파트 10층 높이만 한 괴물이 쓰러지며 덤벼들 때 그 찰나의 순간, 아주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직 살날이 많아 남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며 착하고 성실히 살아왔을 텐데, 짧은 인생의 허망에 대해 얼마나 졸라고 원망스러웠을까?
아주머니 옆에 핏자국이 선명히 묻은 망가진 양산은 단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즐거운 오후가 무참히 짓밟힌 걸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그 때 그 순간 가족들은 이 사실을 느꼈을까? 하루 일과를 끝내고 보글거리는 찌개냄새로 반겨줄거라 기대하고 집에 왔지만 이제 이 세상에 없음을 알았을 때 얼마나 허망할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해주고 남은 가족이 아파해야 할 후회는 평생 비수로 남을 것이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극악의 확률로 우연히 가다죽음을 맞이하였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유서에 남기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어떻게 살아왔든 죽으면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멋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눅음은 인생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그렇다고 멋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눅음은 인생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이 세상에 왔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죽으면 ‘돌아간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숨 쉬며 살아가는 현실은 단지 육신이 잠시 왔다가 가는 곳일 뿐이다.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욕심 갖지 말고 남에게 베풀며 매 순간 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어느 날 갑자기 죽어도 그것을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인생이 짧았다며 불평할 일은 없을 거다.
이제 나는 학교를 오갈 때마다 그 아주머니가 숨져간 그 다리를 건너야한다. 그곳에는 아직 핏자국이 남아있다. 그 자국을 바라볼 때 마다 삶에 대하여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