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페이지 읽는 데는 3일이면 되지만
3 페이지 읽으려면 100일 걸린다. ‘
-마크 트웨인-
오늘 BBC 라디오에서 들은 말입니다.
공부 좀 하는 제자들이 대학에 붙으면 무엇보다 독서를 하라고 추천합니다.
대학생활하면서 전공서적 외에 다른 분야의 책을 1년에 12권 읽으려고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지만 1년에 200권을 읽는다는 목표를 세우면 적어도 100권 이상은 읽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마크 트웨인이 이미 저보다 먼저 그 원리를 깨우치고 있었네요.
한 달에 1권씩 읽겠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멋진 것들을 다 하면서 책도 읽겠다는 계획이지요. 그런데 대학생활이 녹녹치 않기 때문에 더 중요하고 더 급한 일 때문에 독서는 매번 뒤로 미루어집니다. 그래서 1년에 12권 읽는 게 불가능합니다. ^^ 그러나 200권을 읽겠다는 건 열일 제쳐놓고 책을 보겠다는 마음이니 목표를 달성 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죠.
저는 요새 영어 공부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부끄러운 제 개인사지만 잠깐 말씀드리면 대학졸업하고 제대한 이후에는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안 원서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습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책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영어를 놓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영어 원서를 선택해 읽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 영어가 햄버거를 주문하는 수준에 불과하단걸 적나라하게 깨우쳤습니다. 외국인들이 절반을 차지하는 자리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한국말로 하다보니 동시통역사가 있어도 10% 정도도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제 영어실력은 고등학교 졸업이후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한가지 중대한 착각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의 경우 1년에 1000개 이상의 어휘를 익히지만 성인이 되고 나면 1년에 새로 익히는 어휘가 고작 20개 정도라고 합니다. 외국어가 아니라 모국어의 경우입니다. 성인들의 학습능력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언어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자기 분야에서의 학습을 보면 치매가 오기전까지도 꾸준하게 성장합니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에는 젊어서 업적을 완성하는 수학이나 물리학과 달리 나이든 학자들의 공헌도가 더 크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 습득에서의 아이와 어른의 이 확연한 차이는 왜일까요?
답은 궁금증에 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학습능력도 좋지만 일단 새로운 단어가 귀에 들어오고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모르는 어휘를 빼고 알아듣는 능력이 생깁니다. 경험과 눈치의 산물이지요. 그러니
그날 처음 들은 단어를 사전을 찾아보고 반복하는 과정이 없는 셈이죠.
지난 20년 동안 영어를 읽었던 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앞뒤 문맥으로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으니 같은 단어를 아무리 많이 봐도 저장고에 남지 않았던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한 건 왜 그렇게 오래 동안 머리에 남았는지를 생각하니 답이 나오더라구요. 어른이 되어서 하는 영어 공부는 시험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통을 우회하는 방법만 선택한 거지요.
대입을 눈앞에 두고는 누구나 고통을 각오하고 공부합니다. 새로운 단어를 정리하고 써보고 소리내어 읽어보고 자주 들여다보지요. 지난 20년 영어 책 읽기에서 빠진 부분이랍니다.
최근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서 따로 정리해서 포스트잇에 적어 어딘가 붙여 놓습니다. 또 원어민들 용 어휘집을 몇권 사다가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단어만 설렁설렁 읽을 때보다는 확실히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게 재미있습니다. 왜냐면 효율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대략 100개 이상의 새로운 단어를 익힐 수 있는 잠재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부는 즐겁지만 매순간 그러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공부가 즐겁다고 할 때의 그 즐거움이란 달콤한 초콜릿이라기보다는 헬스장에서 이를 악물고 마지막 카운트를 헤아리고 났을 때의 그런 즐거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한국을 교육강국 (educational super power)이라고 평가하는 서구인들이 한국 교육을 심층 관찰하는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는 거의 아동학대에 가까운 압력을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가한다며 고개를 흔듭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구 교육에 한국식의 고통과 압력을 다시 가해서 복고적으로 되돌리려고 합니다. 이런 추세가 바로 저의 ‘고통투입학습법’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고통을 투입한 학습의 효율성은 그렇지 않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중물 논술 세미나를 통해 선생님들이 어떤 성과 얻으신다면 그건 강사나 자료의 수준에 있다기보다도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이 투입하셔야 할 바로 그 고통 때문일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장황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론은 5월 세미나 안내입니다.
5월은 4회 진행합니다.
역시 부천여고 (목요일) 풍문여고 (금요일)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5월 세미나 주제는 ‘논술과 인간관’입니다.
인문학은 매우 다양하지만 인간에 대한 관심을 공유합니다.
경영이나 경제학마저 인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학은 인간에 대한 논쟁을 논술의 소재로 많이 다룹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인간관에 대한 논쟁을 다루지 않는 경우입니다.
상당수의 논제들이 인간관을 찾아내는 것이 대학의 기대에 부합하는 답안을 작성하는 지름길입니다. 특히 연세대 인문계 논술의 경우 지난 수년 동안 제시문들의 숨겨진 인간관을 찾아서 비교하여 기술하는 것이 대학이 기대하는 정답과 가까웠습니다.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참고 도서로 지정하고 진행합니다.
이 책을 만약에 하루 만에 다 읽으시겠다고 마음먹으신다면 아마도 성공하시겠지만 세미나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 읽겠다고 마음먹으신다면 마크트웨인의 저주에 걸릴지 모릅니다. ^^
꼭 읽으셔야 하는 건 아닙니다만 책 자체가 중요하기는 합니다.
합리적 인간관에 대한 실증적 반증들을 담고 있는 책으로 논술 문제를 출제하는 교수님들이라면 전공과 무관하게 가까이 하는 책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문제작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논술이 아니더라도 인문학의 기반이 되는 인간관에 대한 쟁점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뵙지 못하는 2주 동안 건강하시고 5월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태민 드림
마중물 논술 교사 세미나 5월 계획
풍문여고
5월 8일, 15일, 22일, 29일 (금요일)
시간: 7시 30분 ~10시 30분
장소: 정보관 2층 영어교과실
부천여고
5월 7일, 14일, 21일, 28일 (목요일)
시간: 7시 30분 ~ 10시 30분
장소: 도서관
회비: 80,000원 (한국시티은행 325-72443-260 오태민)
※회비는 회당 2만원입니다. 결석으로 과월된 회비를 감안하셔서 입금하시면 감사합니다. (출석 체크하여 일일이 환불해드리지 못함을 양지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