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 40분 드디어 리가에 도착했다. 버스가 시내로 접어들자 차들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극장 앞 공원에서 내려 공원 근처를 둘러보고 화장실도 갔다. 공원이 있는 곳은 예전에는 성곽 밖에 만들어 두었던 해자로 지금은 리가 시내를 동서로 흐르는 운하가 있다. 이 운하에는 유람선 투어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오벨리스크를 닮은 큰 탑과 마주쳤다. 지금은 보수 중이라 장막이 쳐져있어 탑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이탑은 '자유기념탑' 또는 '자유의 여신상'이라고도 한단다. 라트비아인들의 투쟁의 흔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1차 대전 종전 후 잠시 독립을 이루었던 1935년에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조성된 탑이라고 한다. 이 기념탑이 서 있는 곳은 예전에 러시아 개혁군주 표트르대제의 기마상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자유기념탑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운하(필체타스)위로 놓여있는 작은 다리를 지난다. 다리를 건너 조금 더 내려가면 라이마광장이 나온다. 이광장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다보면 시굴다의 투라이다 성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원통형 탑이 나왔다. 이탑을 화약탑이라고 한다. 지금은 전쟁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화약저장고로 시용되었다고 한다. 화약탑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내려가다보면 구시가지를 에워싸고 있던 성벽을 만나게된다. 성벽을 따라 가다 보면 아치형의 석문을 만나게되는데 이문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문 '스위덴 문'이라고 한다. 이름그대로 스웨덴이 라트비아를 지배하고 있던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라트비아를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문이라고 한다. 이 문의 위에는 사자얼굴이 암각되어 있다. 스웨덴문을 따라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길 양옆으로 늘어선 커피샵을 볼 수 있다. 길을 따라가며 나오는 중세의 고풍스런 집들은 나의 눈을 즐겁게하고 카메라셔트를 누르기에도 정신이 없다. 고풍스런 건물 속에 약간은 현대적인 건물을 만나는데 이건물이 라트비아의 국회의사당이라고 한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작은 광장이 나오고 그 곳에 삼형제 건물이 있었다. 탈린에는 세자매의 건물이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아름다운 아르누보 건물과 성베드로교회, 성요한교회, 리가돔,베르멘의 음악대에 나오는 동조각상 등이 있었다. 브레멘의 음악대 동물조각상에서는 서로 높은 곳에 있는 동물의 코를 만지겠다고 팔을 뻗어 코를 만지기도 했다. 성베드로 성당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그 주변을 이 곳 저곳 둘러 보았다.
라트비아국립오페라극장
리가 시가지 지도
신부 들러리들의 망중한
시민의 휴식처 공원의 모습
분수주위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자유의 여신상
리가를 대표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오랜 지배의 역사에 맞서 싸운
라트비아인들의 투쟁의 흔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1차 대전 종전 후 잠시 독립을 이루었던 1935년에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조성된
42미터 높이의 푸른색 석상은 라트비아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밀다(Milda)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칼리스 잘레라라는 조각가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여신상 발아래는 누군가가 헌화한 꽃다발을 사시사철 볼 수 있다.
이 꽃들은 2차 대전 전후 소련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중앙아시아로 유배를 당한
이들이나 구 소련시절 목숨을 잃은 정치범들을 기리기 위해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자유의 여신이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황금빛 별 3개는 라트비아 공화국을
대표하는 3개의 州 ‘쿠르메제’, ‘비제메’, ‘라트갈레’를 의미한다.
라트비아의 지역은 현재 ‘쿠르제메’, ‘비제메’. ‘젬갈레’, ‘라트갈레’ 등 4개이지만,
동상이 만들어질 당시 젬갈레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자유의 여신상 아래쪽으로는 1차 대전 중 라트비아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던 용사들의 활약상과 라트비아의 민족
서사시 ‘라츠플레시스’의 내용을 소재로 한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정면에는 ‘조국과 자유를 위하여’라는 뜻이 새겨진 글씨가 있다.
‘라츠플레시스’는 헬멧 옆으로 큰 귀가 삐져나와 있는 영웅으로 십자군의 침략에
맞서 싸웠는데 곰의 귀를 가지고 있어서 그 귀에서 신비한 힘이 솟아났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시간 펼쳐지는 군인 교대식이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불행히도 자유의 여신상을 보수한다고 장막을 쳐두어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자유의 여신상'도는 '자유기념탑'의 모습
화약탑
1330년에는 모래탑으로 불리워졌으며, 16세기에는 화약저장고로 사용된 곳으로 1621년 스웨덴 점령당시 거의 파괴되었고 14세기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지하뿐이다.
1650년 그 탑은 다시 세워지고 벽은 6피트 두께가 되었다.
이 탑이 도시의 가장 주요한 도로인 Big Sand Road를 지킨 이래로
리가의 탑들 중 가장 중요한 탑이 되었으며 25.5m의 높이에 14.5m의 직경,
3m 두께의 벽, 그리고 작은 창문들이 뚫려 있다.
1938년 이곳은 전쟁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14세기에 도시를 이끌었던
샌드로드의 성채로써 시작되어 샌드타워의 이름으로 불려졌다.
화약탑은 1625년 스웨덴 침략의 승리로 새워졌고 25년 동안 잘 보존되어 왔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벽속 깊숙이 파묻혀 있던 9개의 탱크 알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구시가지에 남아 있는 성벽이 보인다
구시가지의 성벽은 13~16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에 주교의 성과 라보니아 기사단의 성을 지키는 요새였다.
라트비아 역시 수백년 동안 주변 국가들의 끊임없는 지배를 받았고
리가 구시가지 곳곳에는 외부세력의 지배와 거기에 맞서
싸우기 위한 투쟁의 흔적들이 잘 녹아 있다.
리가 구 시가지 역시 한 때는 육중한 성곽으로 둘러 싸인 성곽도시였으나
여러 전쟁과 침략으로 전부 파괴되었고 현재는
그 일부만이 구시가지 동편에 복원되어 있다.
스웨덴문
구시가지에 세워진 문
스웨덴 문은 성벽을 통과해 구시가지로 바로 들어갈 수있도록
1698년에 세워진 스웨덴 문은 새로 만들어진 문으로 위쪽에 사자 얼굴이 새겨져 있다.
1621년 당시 라트비아를 지배하던 스웨덴이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스웨덴 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문이 만들어진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스웨덴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고,
라트비아 전역은 제정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간다.
구시가의 왼편에 세워진 건축물로 가장 상징적인 장소이다.
‘스웨덴 문’을 통해 나가면 구시가지와 연결되면서 좁은 거리들이 많이 나오고
아기자기한 커피숍들이 많이 있다.
스웨덴문은 그런 역사적 사실 빼놓고는 사실 프랑스의 개선문이나 기타
기념 건축물로 보았을 때 크게 볼 게 있는 문은 아니지만,
스웨덴 문을 제대로 찾아야 리가 구시가지의 지리가 눈에 들어오며 본격적인
리가 구시가지 관광이 가능하다.
우리도 이 스웨덴 문으로 들어가 구시가지 투어를 하였다
스웨덴문을 통과하여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좁은 길 옆으로 카페(커피)들이 늘어서 있다.
라트비아 국회의사당건물
19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라트비아의 북쪽 지역인 비제메 지역 기사들의 회합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라트비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딕 양식이 주를 이루는 구시가지 다른 건물들과는 상당히 차별화된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구시가지 내 위치한 ‘오래된 건물’ 중에서는 가장 최신식 건물이며,
유일하게 라트비아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로도 유명하다
탈린의 '세자매. 건물과 비교되는 리가의 '삼형제'건물
오른쪽 제일 오래된 건물은 지붕 전면을 계단 모양으로 처리한
독일식 crow-stepped gable(박공)에 고딕 장식을 했다.
원래는 커다란 방 하나를 들이고 창고를 겸한 다락을 올린 형태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나중에 제과점으로 쓰면서 앞뒤로 증축을 했는데 1957년 P 사울리티스라는 건축가가 증축 부분을 없애고 원래 모습대로 복구했다는 표지석이 붙어 있다.
가운데 건물은 1646년 더치(네덜란드) 매너리즘 형식으로 지었고
그리스식 석조 현관은 1746년에 덧댔다고 돼 있다.
문 위 박공 아래에 쓰인 글귀는 '하느님께 영광을'이라는 뜻이다.
3틍 창문 옆으로 1646이라는 건물 지은 년도가 새겨져 있다
맨 왼쪽 바로크 집은 1600년대 말 제일 늦게 지은 만큼 좁은 땅에 올렸다.
삼형제 집은 문화재보호를 위한 국가 조사국과 라트비아 건축박물관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르누보형식의 아름다운 건물 -리가 구시가지에는 이런 아르누보 건물이 많이 있다
리가 돔
2011년 알베르트 대주교가 관저와 교구를 대표하는 대성당(카테드랄)으로 지은
리가에서 가장 유서 깊고 중요한 건축물이다.
초기 고딕 양식 성당을 여러 차례 고치고 늘려 지으면서
바로크 첨탑과 바실리카 양식이 섞여 있다.
리가 돔을 지금 모습으로 마지막 개축한 것이 1776년인데
그때 올린 91m 첨탑이 웅장합니다.
리가돔 첨탑 꼭대기에도 수탉이 올라앉아 있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파란 첨탑의 성당은 성 마리아 막달레나성당이다.
1260년 여성 전용 예배당으로 세운 리가 초기 성당이다.
여러차례 전쟁의 피해를 입으면서 17세기 스웨덴 치하 때 루터교회가 됐고
18세기엔 러시아 정교회였다가 1차대전 후 건국 독립한 뒤 다시 가톨릭 성당이 되었다.
성 마리아 막달레나는 악령에 시달리다 예수의 고침을 받은 뒤
열렬한 제자이자 추종자가 된 여자 성인이다.
유네스코가 1997년 구시가지 전체 '리가 역사지구'를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그 의의를 바닥에 새겨놓았다.
성베드로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세계적인 러시아 조각가 그레고리 포트츠키가 2011년 만든 '필립 할스먼' 기념물이다.
리가 태생 필립 할스먼(1906~1979)은 살바도르 달리의 콧수염 사진,
오드리 헵번의 점프샷을 비롯해 숱한 스타들 사진과 라이프 표지 사진들을 남긴
현대 인물사진 거장이다.
'행인이여! 멈춰서서 '치즈'를 말하라. 필립 할스먼이 당신을 찍고 있다'는
재미난 문구도 곁들여 있다.
세례 요한의 이름을 딴 성요한교회
1234년 도미니칸 수도원 겸 성당으로 출발해 1587년 루터교회가 됐다.
15세기 성당 시절 증축할 때 두 수도자가 죽어 성인이 되려고 돈을 기부한 뒤
성당 남쪽 벽에 만든 작은 공간 안에 스스로 갇힌 채 음식을 받아 먹으며 평생을 살았지만
교황청은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아 헛수고가 됐다고 한다.
뒷면 꼭대기에도 수탉 풍향계가 올라서 있다.
'브레멘의 음악대'에 나오는 네 마리의 동물 조각상
1990년 브레멘시가 리가시에 우정의 표시로 기증한 것이 '브레멘 음악대' 동상이다.
그림 형제가 1812년 지배 계급을 풍자하고 버림받은 하층 계급에게 용기를 주려고
쓴 동화가 '브레멘 음악대'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동물을 만질수록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고 한다.
난 키가 작아 발돋움을 해보아도 맨아래 당나귀 코까지도 닿지 않아 그냥 편한 자세로 당나귀 다리라도 만져보았다. 그래서 소원이 안 이루어 지려나 ㅋ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