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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등반사 개요***
**1929년**
영국인 공사관 아처(C.H.Archer)는 페이시(E.R.Paccy), 일본인 야마나까(山中)와 인수봉을 등반한다.
이는 기록상 한국 최초의암벽등반으로 이들은 인수봉 정상에서 이미 이땅의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를 보았다고 말했다.
**1931년**
일본인 이야마와 이누마가 금강산 비로봉(1,638m)에서 처음으로 스키등산을 한다.
한편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중심으로 (조선인이합류) "조선산악회" 가 창립되고, <조선산악>을 창간한다.
**1935년*
양정고보 영어교사인 황욱이<월간중앙> 7월호에 기고한 "롴 크라이밍과 그지식" 은 암벽 등반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글일것이다. 황욱은 당시 일본의 입교(立敎) 대학 산악부 출신이다. 이듬해인 1936년 국내 최초의 여성지 <女性> 창간호에 이화여전 하이킹클럽과 경성체육학교 하이킹클럽이 소개된다. 한편 1월에는 일본의 경도제대 산악부가 극지법을 사용해 백두산(2,750m)을 동계에 초등하고 <백두산 원정보고서>를 펴냈다.
**1937년**
조선인으로 구성된 첫 산악회 "백령회(白嶺會)" 가 창립된다. 당시 엄흥섭, 김정태, 주형열 등 백령호의 회원들은 활발한 등반 활동을 하였다. 또한 "양정고보산악부" 가 학교 산악회로는 처음으로 창립한다. 황욱이 초대 지도교사를 맡았다. 양정고보산악부의 전신으로 30년대 초부터 "무레사네"(물에산에)" 라는 이름의 건실한 등산 모임이 있었다.
**1945년**
8.15해방 과 더불어 백렁회의 회원이 주축이되어 9월 15일 "한국산악회" 를 창립한다. 이는 사회단체로는 두번째로 정부에 등록된 단체이며 , 북한산 비봉에서 광복기념 등산회를 개최한다.
**1946년**
한국산악회는 최우선 사업으로 국토구명 학술조사를 대대적으로 전개키로 하고 , 2월 한라산을 시작으로 오대산과 태백산맥, 울릉도 와 독도 , 차령산맥 그리고 서해 고도와 다도해 등 1955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전 국토의 학술조사를 실시한다. 한국산악회는 최초로 지방지부(경남지부,경북지부) 를 설치한다. 한편 한국산악회는 9월 인왕산, 북한산에서 "제1차 암벽 등반(Rock Climbing) 강습회를 개최한다. 36명이 참가한 이강습회는 일반 산악인을 위한 최초의 등산교육으로 기록된다.
**1949년**
경희대산악부, 서울대산악부 등 대학산악부가 창립되기 시작한다.
**1957년**
경북학생산악연맹이 최초의 지방연맹체를 창립한다. 경북학생산악연맹은 학생의낭 기념 제1회 전국 60km 극복 등행대회를 개최하고(1959년), 최초루 종합 정기간행물 <산악> 을 발간하였다.(1961년)
**1962년**군사정권이 수립되면서 정부의 유사단체 통합령에 의해 대한산악연맹을 창립한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이 이루어진다. 경희대산악부가 다울라기리 2봉의 정찰 등반을 하였다. 정찰활동중 무명봉(6,700m)을 등정하고, 박철암 대장은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 탕사기> 란 제목으로 정찰보고서를 펴냈다.
**1967년**
대한산악연맹 산하 조직으로 서울특별시 산악연맹을 필두로 경기도, 전북, 경북, 제주, 충북, 충남, 산악연맹이 차례로 가입한다.
**1968년**
대한산악연맹이 "국토종주 3천리" 대장정을 시작한다. 최남단인 마라도에서 출발아여, 1972년 향로봉에서 끝났다. 이는 산악인에 의한 최초의 백두대가 종주로 기록되었다.
**1969년**한국산악회가 해외원정등반 훈련으로 설악산에서 동계훈련을 실시하던중 이희성 대장등 10명의 대원이 죽음의계곡에서 눈사태로 사망한다. 한편 최초의 산악잡지 <등산(지금의 "월간 山"의 전신)>이 5월에 창간한다. 6월에 또 하나의잡지 <산수>가 창간하였으나 불과 넉 달만에 문을 닫았다. 이해는 인수봉, 선인봉에서 무려 10개의 등반 루트가 개척되었다. 중앙관상대는 국내 최초로 관악산 정상에 기상 레이더를 설치하였다.
**1970년**
정부가 대한산악연맹의 협조를 얻어 전국 유명산에 인수산장, 권금성산장, 노고단산장 등 산장 및 대피소 35개를 건립한다.
**1971년**
대한한악연맹의 원정대가 최초로 8,000m봉인 로체샤르(8,400)에 도전한다. 등정은 실패했으나, 최수남은 한국인 최초로 8,000m 선을 넘어선 산악인이 됬다. 같은무렵 전국합동대가 마나슬루(8,163m)에 도전한다. 김기섭이 등반도중 추락사하므로 한국인 최초의 히말라야조난자로 기록된다. 한국한악회에서는 최초로 8명을 프랑스국립스키등산학교(ENSA)로 보내 40일간 교육을받는다. 이듬해에도 4명을 ENSA로 파견하였다. 북한산 인수봉에서는 정상에서 하강하던 클라이머들이 심한 강풍으로 로프가 서로 엉키게되어, 7명이 사망하였다.
**1972년**
김정섭이 마나슬루에 재도전하였으나 눈사태로 15명(대원5명 셰르파10명)이 사망한다. 이 사고는 세계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 1937년 낭가파르밧에서의 독일 팀 16명 사망에 이어 두번째의대형 사고로 기록되었다.
**1974년**
한국등산학교 (초대교장 권효섭)가 상설 등산학교로서는 처음으로 개교한다. 정규반, 암벽반, 동계반, 특별반으로 나누어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75년**
대한산악연맹은 에베레스트에 1차 정찰대 7명을 현지로 파견한다. 이들은 정찰활동중 크레킹 피크인 아릴랜드 피크(6,189m)의 주봉과 서봉을 전원 등정한다. 한국인의 히말라야 독립봉 등정은 이것이 처음이다. 구곡폭포(김재근) 설악산 형제폴(김효진)등이 초등한다. 빙벽등반에 새고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976년**
에코 클라이밍 클럽의유기수 등이 선인봉 남측 오버행 전 코스를 너트만을 사용하여 완등한다. 이로써국내 에서도 Clean Climbing)의 열풍이 일기 시작한다.
**1977년**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이 이루어진다. 김영도 대장이 읶는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는 한번의 실패를 딛고 , 고상돈과 펨바 노르부 셰르파가 9월15일 정상에 섰다. 이로서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국가가 되었다. 고상돈은 58번째 등정자가 되엇다 . 박상열과 앙 푸르바 셰르파는 8,7000m의 고도에서의 비박기록을 세웠고 이 최고 높이 비박은 세계기록은 한동안 깨지지 않았다. 한편 국내 최대의 빙폭인 토왕성 폭포의 상하단이 4박5일만에 크로니 산악회의 박영배, 송병빈 에의해 초등된다.
**1978년**
"자연보호헌장" 이 선포된다. 한국산악회 원정대(전병구 대장 외 5명)는 안나프르나 4봉(7,525m)을 등정하고, 유동옥은 최초의 7,000m급 등정자가 되었다. 한편 대한산악연맹은 중앙일보와 합동으로 북극탐험대(대장 김영도)를 조직, 최초로 북극권에 도전한다. 대 빙원을가로질러 북위 80도선에 도달하였다.
**1979년**
최초로 북아메리카주 최고봉 매킨리(6,194m)에 3개의 한국대(한국일보, 고령산악회, 고려대산악부)가 도전하여 모두 성공하지만, 선두의 한국일보대는 고상돈, 이일교가 하산시에 추락사한다. 또한 최초로 악우회가 유럽 알프스의 아이거(3,970m) 북벽에 도전하여 성공한다.
**1980년**
동국산악회의 마나슬루 원정대(대장 이인정)가 등정에 성공한다. 이는 단일 산악회가 8,000m급 봉을 등정한 첫 기록이다 요세미티에서는 이영식, 허정식 ,강구영의 3명이 하프돔을, 재미교포 산악인 주영이 가 엘캐피탄을 최초로등정한다.
**1981년**
서울문리대 OB 산악회가 최초로 남아메리카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 에 도전하여 등정에 성공하나, 1명이실종되었다. 악우회가 최초로 카라코람에 진출한다. 난이도 높은 바인타브락 2봉(6,960m) 에 도전하지만 1명이 추락사한다. 악우회는 2년후인 1983년에 재도전하여 유한규, 임덕용이 초등정의 위업을 이루어낸다.
**1982년**
최초의 여성 원정대가 히말라야로 떠난다. 선경여자산악회는 람중히말(6,986m) 을 등정하고, 기형희, 윤형옥은 한국인 최초의 여성 등정자로 기록된다. 부산학생산악연맹은 지방 팀으로는 최초로 히말라야에 도전하여, 가네귀 4봉(일명 파빌봉, 7,102m0을 등정한다. 곧이어 대전 자일클럽은 고줌바캉(7,806m)에 도전, 김영한이 세계 초등정의 대기록을 수립한다. 한편 남선우는 푸모리(7,145m)를 동계에 등정하는데, 이는 우리의 첫 동계 등정이다.
**1983년**
포항향로산악회가 최초로 인도 캐시미르에 진출하여 눈(7,135m)을 등정한다. 허영호는 마나슬루를 대상으로 최초로 8,000m금 단독등정에 성공한다. 중앙대 양정합동대는 최초로 아마다블람(6,812m) 의 동계 초등정을 이루어낸다.
**1985년**
울산의합동대가 히말출리 북봉(7,371m)에 도전장을내어, 이재홍이 세계 초등정의 위업을 달성한다. 남극관측탐험대(대장 홍석하)의 허욱, 허정식,이찬영이 최오로 남극대륙의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5,642m)를 등정한다. 토왕성 빙폭에서는 전년도 이태식이 이루어낸 단독등반 성공에이어, 최초의 여성완등자(조희덕)가 나왔고, 대승폭빙폭을 윤대표, 정호진이 초등한다.
**1987년**
한국산악회의 합동대가 에베레스트를 동계에 도전하여 허영호와 셰르파 1명이 등정에 성공한다. 한편 광운공고 OB산악회가 고줌바캉(7,806m)을 동계 초등정하고 고교생 최미호(당시 17세) 는 최연소 등정 기록을 세웠다.
**1988년**
대한산악연맹의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와 로체(8,516m)를 동시에 등정한다. 최초의 8,000m 급 연속등정기록이고 총 10명의 대원이 등정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경남산악연맹의 원정대는 난이도 높은 고산 등반을 추구하자는 일념으로 누베 북서봉(7,745m) 응 동계에 초등정한다. 울산의 합동대는 다울라기리 6봉(7,268m), 구르자히말(7,193m), 구스퉁 북봉(6,529m) 을 연속 등정한다. 최초의 여성대가 매킨리 등정에 성공하고, 검악산악회는 최초로 뉴질랜드의 마운트 쿡(3,754m)을 등정한다. 한편 국내 최초의 인공암벽이 서울 사레바 지사에 설치되고 , 청악산우회가 설악산 소승폭 빙폭을 초등한다.
**1990년**
처음 파미르의 최고봉 코뮤니즘(7,495m)을 등정한다. 이인정 대장이 이끄는 합동대의 5명이 정상에 오른다. 이러 한국산악회에서는 1명이 코뮤니즘에 등정하고, 2명이 코르제네프스카야(7,105m)의 정상에 올랐다. 한편 전년도에 김운회, 조금석이 국사대폭을 초등한데이어, 김용기, 이상록이 토왕성 빙폭을 하루에 세번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1991년**
충북 서원대산악회가 최초로 동 파미르에 진출하여, 무즈타그아타(7,546m) 를 등정하고 , 대한산악연맹에서는 최초로 티베트로 진출하여 시샤팡마(8,046m)를 등정한다. 토왕성 빙폭에서는 여성(남난희, 이현옥)으로만 파티를 이루어 등반에 성공한다.
**1992년**
천산산맥의 국제 캠프에 참옇ㄴ 대구 경북, 광주전남,강릉대,대구,전주,수원,개인팀이 칸텡그리(7,010m)에 19명이 대거 등정하고, 이어서 2명이 포베다(7,439m)등정을 성공한다.
**1993년**
대한산악연맹의 여성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 재현옥,최오순,김순주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첫 한국여성이 되었다. 히말라얀클럽의 허영호는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종주하고 동국산악회의 뱍영석은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기록을 세운다. 검악산악회는 최초로 남미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3,441m)를 등정한다. 국내에서는 정승권이 토왕성 빙폭 단독 등반후 클라이밍 다운하는 기록을 세웠다.
**1994년**
경남산악연맹은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하여 박정헌이 정상에 오른다. 이로써 히말라야 거벽 등반의 성공을 이루었다. 한편 토왕성 빙폭에서는 강희윤이 37분만에 상,하단을 모두 완등한다.
**1995년**
경남산악연맹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에 성공한다. 조형규가 이끄는 이팀은 김영태, 박정헌이 세르파2명과 함께 남서벽으로 정상에 오른다. 경기북부연맹에서 최초로 힌두쿠시로 진출하여, 최고봉인 트리치미르 (7,708m) 등정에 성공하나, 등정자2명이 하산중에 실종되는 비극을 당한다. 김미선이 여성으로는 최초로 알프스의 그랑드조라스 북벽과 아이거 북벽을 오르고, 김점숙이 여성 최초의 토왕성 빙폭 단독 등반에 성공한다. 한편 이인정이 최초로 상설 산악박물관을 개관하고, 이듬해에는 상설 산악도서관도 개관하였다.
**1996년**
대한산악연맹이 중국등산협회와 합동으로 충모강리(7,048m)와 룽보강리(7,095m0의 세계 초등정을 달성한다.
**1997년**
성대산악부는 초오유(8,201m) 에 5명의 대원 전원이 등정한다. 성대산악부는 1991년 에도 가셔브룸 2봉(8,035m)에 4명의 대원 전원이 등정에 성공한바 있다.한국산악회는 가셔브룸 4봉(7,925m)의 서벽 중앙립으로 루트초등을 기록한다.
**1998년**
세계적인 거벽으로 알려진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의 최난관구간인 상단의 블랙타워를 최승철,김형진,신상만이 세계최초로 돌파하지만, 정상 설원에서 미끄러지며 추락사한다. 장애인 김홍빈이 아콩카구아와 매킨리를 등정하고, 12세의 김영식이 매킨리의 최연소 등정자가 되었다.
**1999년**
8,000m봉 4개를 등정한 대표적 여성 산악인 지현옥이 안나푸르나에서 하산중 추락사한다. 손정준이 5.14급에 등극한 최초의 산악인이 된다. 손정준은 설악산 적벽을 자유등반으로 완등하는 기록도 세운다.
**2000년**
엄홍길이 8,000m급 14봉을 모두 등정하여 , 세계에서 8번째 완등자가 되었다. 1988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의로 12년만에 이루어낸 쾌거다. K2에서는 3개 한국팀에서 총 14명이 등정한다. 대한 산악염맹과응 세계 7대륙 최고봉을 한해에 모두 등정하고, "새천년 7대륙의 정상" 이라는 등반기를 발표했다. 충북산악연맹과 울산산악연맹에서는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모두 등정한다. 김환구(45세)는 국내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되었다. 한편 손상원과 고미영이 5.14급 클라이머 대열에 합류한다. 고미영은 월드컵 여자부 랭킹 4위에 올라 세계적인 수준의 클라이머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에는 겨우 13세의 김대엽이 5.14급 클라이머 대열에 합류했다.
**2001년**
박영석이 8,000m급 14봉을 모두 등정하여, 세계에서9번째 완등자가 되었다. 1993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8년만네 이루어낸 대기록이다.
**2002년**
한해동안에 산행기,사진집,동화,시집2,시조집,등산이론집 등 산과 등산에 관련된 서적등이 총 37권이나 출판되어 산악문학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박영석은 7대륙의 최고봉 등정을 모두 끝냈고 엄홍길과 이인은 에베레스트를 두번째로 등정했다. 재미산악연맹에서는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미국 50개주의 최고봉을 모두 등정했다. 한국 도로공사산악회는 시샤팡마 남서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대구 경북핛ㅇ산악연맹은 동계 촐라체 남서릉을 세계 최초로 이산의 정상에서부터 스노우 보드로 활강했다. 재일본 조선인 등산협회 임원 31명이 대산련의 촟청으로 해방후 처음으로 방한, 한라산과 지리산을 올랐다.
**2003년**
전국체전에 전시종목으로 등산의 2개 종목(등반경기, 일반등산)이 채택되었다. 한왕용이 8,000m급 14봉을 세계 11번째로 완등했다. 1994년 초오유를 시작으로 10년만에 이루어낸 기록이다.
**2004년**
박영석 외 4명은 무지원, 도보 세계최단기록(44일)으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오은선이 국내여성 최초로 세계7대륙 최고봉을 모두등정했다. 한편 에베레스트는 1977년 고상돈 이래 27년간 총 47명(여자4명포함)이 등정하고 이중 1명은 3번씩, 2명은 2번씩 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