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사연.. 2.
지기 "知已“
김명화 (여, 50대), 중국 절강성 가흥시
나의 핸드폰 명단에는 이름 대신
지기로 된 번호가 두개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 전번이고 또 하나는 한국 전번인데
두 개 다 김봉숙 교장님이십니다.
할빈에 있을 때 언젠가 김봉숙 선생님이
감기몸살로 많이 아프셔서 전화를 했는데
안받아 집으로 달렸간 적이 있습니다.
내가 전화 몇 통이나 했는지 아는 가고
핸드폰을 보여드렸더니
(김봉숙) 뭐야? 내 이름 "지기"로 저장했어? 고마워!
이 늙은이를 지기라고 생각해줘서...
(김명숙) 네! 그래요 나 교장님을 많이많이 좋아해요.
그러니까 아프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늘, 항상, 그냥 이유 없이 즐겁게 기다리고
행복하게 뜨는 그 "지기" 전화번호 두 개는
이젠 영원히 울리지 않을 겁니다...
(김명화 독백) 인생길에서 지기는 정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땐 진심으로 같이 좋아해주고
서로 축복해주며 기뻐해주고 ~
외로울 땐 친구해주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위로해주고 힘이 되여주고~
공개하지 못할 비밀스러운 일은 지켜주며
서로 같이 고민하고 충고해주고 해결하는 ~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는 같이 가슴 아파해주는~
교장님과 나는 그런 친형제보다 더 소중한 사이였습니다.
항상 저의 뒷모습을 지켜보시고 있어서 힘이 되었고,
가까이에서나 멀리 한국에 계셔도
늘 마음이 따뜻함을 느낄 수가 있었고,
그리고 또 수시로 전화로 메시지로 충고해주시고
함께 미래를 담론하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교장님은 칠십 회갑 때 우수한 제자들도 많은데
나한테 사회를 보라고 전화를 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지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작년에는 아들집에 와서 손주를 보고 있는 나한테
놀러오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올 수 없다고
전화할 때마다 우셨는데...
나날이 발전해가는 이렇게 살기 좋은 시대에
퇴직금도 많이 나오고 또한 가정에서나
친구동료 제자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힘이 되어주고
도움도 주시는데 좀 더 사시다 가시지...
당신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김명화도
당신이 넘넘 보고 싶어서
오늘 밤에는 단필에 이 글을 썼습니다.
당신과 같이 보낸 26년이란 시간들이
감동의 기나긴 장편드라마처럼
고맙고 감사하게 나를 울립니다.
잘 살게요!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코로나 끝나면 언젠가 꼭 당신 보러 한국에 날아갈 거에요.
당신이 좋아하는 꽃 사들고...
▶ 편지사연 2.
택배아저씨 고맙습니다
박혜진,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 초중3
(택배기사) 네. 박혜진 씨 맞아요? 택배가 너무 커서
슈퍼에 자리가 없다구 받아 안주는데요.
집에 사람 있어요?
시운동회에서 열심히 달리는 운동원들을 위해
목이 터지게 응원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박혜진) 있을텐데. 올라가 보세요.
나는 시답지 않게 전화를 끊고 계속 충실한 관중이 되었다.
그런데 1분도 안 지나 또 전화왔다.
(택배 기사) 제가 문을 구멍나게 두드려도 문 여는 사람이 없는데
집에 진짜 사람 있어요?
아저씨 말에서는 짜증이 묻어났다.
나는 제일 빠른 속도로 가장 익숙한 엄마 번호를 눌렀다.
발을 동동 굴렀지만 엄마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번 중복해도 받지 않자 나는 다시 택배아저씨에게 전화했다.
(박혜진) 여보세요.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아요.
택배회사에 놓으면 저녁에 가서 가져갈게요.
무거운 택배를 도로 내려가기 싫었던지
택배아저씨는 이 구실 저 구실 막 주어댔다.
일순 나는 망연해졌다.
문득 내 머리에 복도의 화분이 생각났다.
2층 할머니가 기르는 것인데 할머니도 조선족이었다.
복도에서도 보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보지만
그냥 보고 지나가는 사이였다.
(박혜진) 아. 아저씨 아직 우리집 문앞에 있죠.
201에 가서 문 두드려봐요.
그집 할머니 우리아는 사이예요.
(택배기사) 알았어.
아저씨가 처벅처벅 층계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가슴은 노크소리를 따라 점점 더 재가 되어갔다.
드디어 할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박혜진) 휴~ 살았다!
나는 마치 친지나 만난듯 할머니와 얘기를 했다.
(박혜진) 할머니. 제가 403네 딸이예요. 죄송한데요.
택배를 먼저 받아줄 수 없나요. 저녁에 가서 가져갈게요.
생각밖으로 할머니 역시 시원하게 대답했다.
2층 할머니가 마치 나의 목숨을 구해준 것처럼 고마웠다.
(박혜진) 와--같은 만족이란 원래 이런 거구나.
저녁, 나는 택배를 끙차끙차 우리집으로 끌어 올라갔다.
그리곤 총각김치 한 접시를 들고...
그 후부터 나는 틈만 나면 복도에 나가
할머니가 기르는 꽃을 돌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