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이다 -피히테-
사물마다 주성분이 있다.
인간은 화학적으로 볼 때 물과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을 주성분으로 삼는다.
그러나 인간을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볼 때 사랑이 주성분을 이룬다.
인간은 빵 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그리스도는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을 사랑으로 바꾸어도 좋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랑으로 사는 존재다.
우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을 갖는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형제지간의 사랑,
애인끼리의 사랑, 동포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 진리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미에 대한 사랑, 등등 다종다양한 사랑을 갖는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끼리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와 애인과 친구가 없을 때
우리는 인생을 살 용기와 힘이 안 생긴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도 없고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살 필요와 보람이 없다.
인생은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우리의 육체는 밥을 먹고 살지만 우리의 정신과 인격은 사랑을 먹고 산다.
밥은 육체의 양식은 될 수 있지만 정신의 양식 마음의 양식은 될 수 없다.
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정신적 양식이다.
소외감과 허무감과 고독감을 느끼면 사람의 마음과 인격은 심한 병이 든다.
정신의 영양 불량에 걸리고 만다.
사랑을 못 느끼기 때문에 그러한 정신적 질병을 갖는다.
인간의 주성분은 사랑이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사랑의 양식을 골고루 가질 때 건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
피히테의 말은 인생의 진리를 갈파했다.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요약
독일 철학자. 작센지방 라메나우 출생. 독일 관념론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장인(匠人)의 아들로 태어나 1780년부터 예나대학·라이프치히대학에서 신학·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저술한 《종교와 이신론(理神論)에 관한 아포리즘(1790)》에서는 B. 스피노자의 결정론의 영향을 받았다. 1790년 무렵 우연히 I. 칸트의 철학을 대하고 감명받아 쾨니히스베르크로 칸트를 방문, 1792년 칸트의 도움으로 《모든 계시의 비판 시도》를 출판하였다. 이것은 처음에 칸트의 저서로 알려졌으나, 칸트 자신의 정정으로 피히테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794년 예나대학에 초빙되어 《모든 지식학의 기초》 등 주요 저서를 발표하였다. 1798년 《철학잡지》에 친구 F.K. 포르베르크의 논문 서문으로 <신의 세계 지배에 대한 우리들 신앙의 근거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 신을 우주의 윤리질서로 정의하여, 무신론이라는 의혹을 받아 무신론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다음해 예나대학을 그만두었다. 그 뒤 베를린에 살면서 이른바 후기사상을 발전시켰는데, 예나시절 윤리에 중점을 두었던 데 비해 베를린 시절에는 종교적·민족적 경향이 깊어졌다. 1807∼1808년에는 나폴레옹 점령 아래 베를린에서 유명한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을 통하여 독일의 민족독립과 문화재건을 역설하였다. 1810∼1812년 새로 설립된 베를린대학 총장을 지냈으며, 1814년 부상병을 간호하던 아내에게서 티푸스가 감염되어 죽었다. 그는 실재(實在)와 관념이라는 칸트의 이원론을 자아중심의 일원론으로 통일하여 단일한 형이상학적 체계를 수립하려 하였다. 모든 근원에 자아의 절대적 활동을 내세워 윤리적 색채가 강한 지식학 체계를 세웠으며, 여기서 자아란 자유로운 행위를 통하여 단적으로 존재하는 주체로서 이러한 자아의 행위를 <사행(事行;Tathandlung)>이라 불렀다. 피히테는 실천적·능동적 자아에서 모든 이론적·실천적 근원성을 찾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능동적 자아의 절대화에 이르렀다. 즉 후기사상의 주요한 입각점이 자아에서 절대자로 옮겨진 것이다. 피히테의 철학은 칸트의 순수이성·실천이성과 결합하여 지식학 또는 칸트체계를 완성하려 한 것으로, 흔히 주관적 관념론·실천적 관념론으로 불린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