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포천 광덕산
포천의 대표 브랜드는? 아마도 이동막걸리 쯤 되지 않을까. 1957년부터 빚기 시작했다는 이동막걸리는 지역 특산품을 넘어 전국적인 스타 상품이 됐다. 경기도에 20여 개의 막걸리 공장이 있고 그 중 아홉 곳이 포천에 있을 정도로 양조산업이 번성해있다. 양조장 입지의 제1조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깨끗한 수질이다. 포천(抱川)은 이름처럼 ‘내를 안고 있는 도시’다. 한탄강, 임진강 같은 강줄기부터 영평천, 남대천 같은 계곡까지 풍부한 수자원이 군 전체를 적신다. 오늘 취재팀이 향한 곳은 포천 광덕산. 이동막걸리 맛의 비밀을 품고 있는 광덕, 백운계곡이 있는 곳이다.
◆한북정맥의 중심, 포천`화천`철원 3군의 경계=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한북정맥(漢北正脈)은 백두대간 다음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산줄기다. 남과 북을 잇는 반도의 동맥으로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시작해 강원도 금화, 포천 운악산을 거쳐 서울 도봉, 삼각산까지 산맥을 뻗치고 있다.
오늘 오를 광덕산은 경기도 서북부에 우뚝 서 화천 사내면, 철원 서면, 포천 이동면의 3군 경계를 아우르고 있다. 산세가 웅장하고 후덕하다 하여 ‘광덕산’(廣德山)이라고 불린다. 산에서 발원한 계곡은 한탄강과 북한강 수계의 분수령을 이룬다.
그동안 광덕산은 바로 이웃한 백운산의 유명세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에 한북정맥 종주코스가 인기를 끌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코스는 특히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높다. 수도권에 인접해 당일코스가 가능하고 주변에 막걸리, 갈비, 두부 등 웰빙요리가 푸짐하기 때문이다. 피로회복에 그만인 온천도 곳곳에 발달해 있다.
등산의 출발지 광덕고개는 광덕산과 백운산을 나누는 경계점. 오른쪽으로 오르면 단애(斷崖), 계곡으로 유명한 백운산,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생해봉-광덕산과 통한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가르는 이 고개는 경사가 급하고 코너링이 심하다. 이 고개의 다른 이름은 ‘카라멜고개’. 6`25전쟁 당시 이곳을 순시하던 미군장교가 운전병의 졸음을 깨우기 위해 계속 카라멜을 먹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벼랑길에서 채찍 대신 당근으로 병사를 달랬던 장교의 조바심이 느껴진다.
본격 등산이 시작되는 상해봉 밑자락까지는 한참을 걸어 올라야 한다. 광덕리 마을 한복판으로 길은 이어진다. 길가엔 아직 잔설이 두껍고 냇가에선 반쯤 녹아내린 얼음이 봄기운을 밀어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상해봉 오르면 경기, 강원의 명산들 한눈에=드디어 회목현 갈림길. 오른쪽은 복주, 대성산 길이고 왼쪽으로 오르면 오늘 목적지인 광덕산이 나온다. 길은 평탄하다. 원래 군사도로였던 데다 2003년 기상관측소를 세우면서 확장공사까지 끝냈기 때문.
급경사에 잘 뚫린 차로, 문제는 미끄럼이다. 비틀비틀 눈길을 한참을 걸어 상해봉에 도착했다. 상해봉은 광덕산에서 조망이 가장 뛰어나다. 잡목으로 사방이 가려진 정상을 대신해 사실상 주봉 구실을 하고 있다. 상해봉(上海峰)은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 전망바위에 오르면 한북정맥의 힘찬 능선과 경기, 강원의 주요 봉우리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남서쪽으로 회목봉과 복주산이 웅장하다. 어깨를 나란히 한 백운산, 국망봉도 카메라에 담는다. 이 일대엔 우리나라 100대명산 중 10여 곳이 밀집돼 있다. 이름난 봉우리들을 한 바퀴 도는 데만 한 달 이상 걸린다고 한다.
상해봉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되돌아 다시 광덕산으로 향한다. 산 밑에선 철원평야의 고즈넉한 풍경이 한가롭게 다가온다.
◆곳곳에 벙커, 참호```6`25 참상 서려=광덕산으로 가는 길, 군데군데 토치카, 벙커, 참호가 눈에 띄고 섬뜩한 지뢰매설 경고까지 붙었다. 가끔씩 삐삐선까지 밟힐라치면 온몸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60, 70년대에 이곳은 간첩들의 침투루트였고 6`25전쟁 때는 국군 6사단이 중공군과 맞서 싸운 격전지였다. 최근 ‘사창리 전적지’에서 6`25때 유해가 발굴됐다. 1951년 중공군 5차 대공세 때 산화한 국군의 유해다. 현장엔 수통과 버클, 반합, 탄피들이 같이 발견돼 그때의 처절한 흔적을 엿보게 한다. 당시 중공군은 본토 국공합작 때 활약하던 정예부대였고 숫자도 국군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저 벙커, 참호에서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이 최후를 맞았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 우리의 ‘산중유희’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어느덧 목적지 정상에 이르렀다. 돔형의 기상관측소 지붕이 우리를 맞는다. 이 관측소는 경기, 강원북부의 기상을 감시하고 휴전선 부근의 강수량 체크를 위해 2003년 건설됐다.
정상에서 인증 샷을 찍고 하산 길로 나선다. 길은 지루한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참나무 군락이 끝없이 펼쳐지는 숲속을 한 시간쯤 걸으면 박달봉이 나온다. 상해봉에 이은 광덕산 제2의 조망처다. 백운산에 흥룡봉이 있다면 광덕산에 박달봉이 있다. 이곳은 암릉이 일품이다. 큰골 쪽으로 암벽 능선이 이어지고 노송과 바위가 비경을 빚어낸다.
박달봉을 내려서면 이제부터는 본격 내리막길이다. 잔설에 산길은 미끄럽다. 가끔씩 비명소리(?)가 계곡의 정적을 깨운다.
경사가 완만해지고 물소리가 들려오면 백운계곡이 가까워진다는 신호다. 백운계곡 집단시설지구는 막걸리 잔치로 흥겹다. 막걸리 주산지인 이동면 중심부일 뿐 아니라 양조 원수(原水)로 쓰이는 광덕, 백운계곡이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곳 명물 이동갈비와 손두부를 안주 삼아 피로를 푼다.
상가 밑쪽으론 영평천이 흐른다. 백운계곡의 물줄기를 받아 강원도로 수계를 연결하고 있다. 계곡 물가엔 아직 얼음이 차다. 이제 곧 산들은 절기를 내주고 봄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봄철 광덕산은 야생화 촬영코스로 유명하다. ‘히어리’ ‘애기금강제비꽃’등 희귀식물이 자라고 ‘노랑미치광이풀’은 오직 이곳에서만 자생한다고 한다.
3월 중순쯤 광덕산에 올라 야생화에 ‘접사렌즈’를 들이대면 원색의 색감과 함께 약동하는 봄도 같이 ‘줌인’될 것이다.
◆교통=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김천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구리방면으로 진행. 남양주, 구리를 지나 퇴계원IC에서 의정부방향 43번 도로를 탄다. 포천방향 국도를 타고 일동면-이동면-광덕고개`백운계곡 쪽으로 오면 된다.
◆맛집=▷송씨네(031-535-4872)=포천 이동면 백운계곡 입구, 갈비. ▷명지원(031-536-9919)=포천 일동면, 갈비, 고기요리. ▷초가집 순두부 보리밥(031-533-0966)=포천 하현리, 두부 보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