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갈 때가 1975년이었던가. 비행기가 LA를 거쳐 달라스 공항에 잠시 머물면서 사유를 설명하는데 10년 넘어 배운 영어가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시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타고 다시 항해하는데 식사시간에 주는 포크 나이프가 메이드인 코리아인 것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워싱턴DC 부근에서 세 명이 자취를 하는데 수도꼭지에서 온수가 나왔다. 세상에! 당시 우리는 연탄불에 대야를 올려놓고 물이 데워 세수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내 눈에 비친 미국은 천국이었다. 백화점에 진열되어있는 고급스러운 물품들,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뉴욕의 건물들, 어디 가나 질서정연한 사람들의 태도, 그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는 것이 없었다.
젊은 시절 한전에 근무하며 원자력발전소 계획과 건설 그리고 기술개발에 매진했는데 전력설비 건설은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맞추어 차질 없이 완료되어 대한민국이 산업대국으로 나가는 심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초등학교 시절인 50년대 후반 교과서에 ‘반공 방일’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자’ 라고 날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배웠는데,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싸우며 건설하자’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하고 온 나라가 동시에 일어나 시작하는 작업장 같은 분위기가 되었었다.
연평균 15% 이상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던 기간에는 온 나라가 건설현장이었고, 한 달 정도가 지나면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이 바뀌어버렸다. 얼마 전에는 원천기술 문제로 항상 길이 막히던 원전 수출이 중동에 있는 아랍에미레이트에서 물꼬를 텄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산업이 발달하고 모든 면에서 균형성장을 이루어 오히려 다른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살 정도로 성과를 내는 나라가 되었고 감히 미국과 또 전 유럽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으며 심지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우수한 교육 시스템, IT, 건강보험제도 등을 예를 들며 미국 국민들을 설득하는 자료로 쓰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한 나라인가.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던 5월을 맞이하여 고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젊을 때 현역에서 열심히 뛰고 이제는 은퇴한 처지에 있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그분에 대한 향수가 있다.
혁명 전에도 경제개발계획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고 고 박 대통령 때문에 억울하게 기본권을 빼앗기고 희생당했다는 분들에게는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지만 국가재건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천력, 그리고 온 국민을 따라오게 만드는 카리스마와 긴장감의 연출은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흥망은 항상 유동적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가 문제다. 50여년 만에 기적 같은 경제개발을 이루어 냈지만 지속적으로 비상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뒤쳐져버린다. 아시아 1등 국가였던 필리핀의 추락에 이어 목격했던 아르헨티나, 아일랜드의 굴욕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은 것이다.
국민소득이 2만 불 넘어섰다고 자만하지 말자. 깨지면 바로 침수되어버리는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는 인식을 하고 각 분야에서 우리가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열심을 내야한다. 목욕탕문화로 망했다는 로마의 교훈에서 배우듯 사치와 향락과 안일은 개인이나 국가에게 치명적인 독이다. 그리고 사회 약자 층들을 항상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자.
특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2만 명의 탈북자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고 따뜻한 우리 이웃으로 항상 배려하고 챙겨주자.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기업정신과 도전정신, 그리고 불타는 투지 때문에 2050년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어느 금융 전문회사의 연구결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겸손하게 열심을 다하면 부강한 대한민국을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