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내 나이에 괴로워 운 것은 그때가 처음… 그가 天上(천상)의 목소리를 잃다니"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배재철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병에 안 걸렸으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걸 모르고 살았을 거야'…"
"누구나 노력하면 일류가 된다, 하지만 일류가 되고서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감기처럼 여겨 병원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갑상선암으로 판명됐다. 수술 과정에서 성대(聲帶)의 신경이 끊어졌고 횡격막이 절단됐다. 오페라 가수는 더 이상 노래할 수가 없었다.
지난 주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는 이런 실화를 담았다. 당연히 시련을 극복하고 오페라 가수로 재기했으니 '영화'가 됐을 것이다. 이런 인간 드라마는 우정과 사랑이 곁에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목소리 잃은' 그에게 일본인 음악 프로듀서 와지마 도타로(51)씨가 그런 존재였다.
부산 시내의 한 호텔에서 와지마씨를 만났다. 그도 부산영화제에 초청됐다.
"2003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 '피오렌차 코소토' 공연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때 함께할 테너 가수를 찾다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배재철을 추천받았다. 그의 음반만 듣고는 강한 인상을 받진 못했다. 어차피 피오렌차 코소토를 위한 공연에 조연을 뽑는 것이니, '이 정도면 됐다'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리허설에서 노래를 직접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주인공이 코소토가 아니라 배재철로 바뀌었다."
- 부산 시내에서 만난 배재철과 와지마 도타로(오른쪽)씨. 와지마씨는“소중한 것을 지닌 사람을 소중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종호 기자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않으면 무엇이 진짜 맛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 집에는 1910년부터 녹음된 오페라 오픈테이프가 3000개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오페라를 들어온 것이다. 나는 성악가의 노래를 한번 듣는 순간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 배재철의 음악 실력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양대 음대를 나온 배재철은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음악 콩쿠르에서 몇 차례 수상 경력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독일로 옮겨 자르브뤼켄 극장의 전속 가수로 자리 잡았다. 그때는 '유망주' 단계였을 것이다.
―유럽에서 막 활동을 시작한 배재철은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그를 발굴한 셈인데, 무엇이 당신을 매료시켰나?
"음색(音色)과 기술적인 부분에서 최고였다. 무엇보다 그의 노래에는 삶의 정한(情恨)이 담겨있었다. 그때 그는 34세였다. 나보다 젊은 친구가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노래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배재철 노래를 들어본 몇몇 오페라 마니아는 당신처럼 '베스트'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미소라 히바리(일본의 엔카 가수)나 마리아 칼라스에 대해서도 '최하'로 평가한 비평가들이 있었다. 얼마 전 일본에는 '현대의 베토벤 스캔들'이 터졌다. 귀가 안 들리는 일본의 한 작곡가에 대해 비평가들이 그렇게 극찬했기 때문이다. 'NHK 스페셜' 프로그램에서도 특집으로 다뤘다. 하지만 베토벤 같다는 그의 작품이 사실은 돈을 주고 대리 작곡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비평가와 프로를 속이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순수한 아이와 아마추어를 속일 수는 없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인가?
"그 음악이 아름다운지 어떤지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진짜 음악'은 알지 못하고, 기술적 부분만 알고 고음이 얼마나 올라가는지를 따진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훈련이 돼야 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비평'과 '훈련'이 아니라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마음 자세다. 고흐 전시회에 가서 고흐 그림을 안 보고 그 밑에 붙어있는 해설만 보는 이도 있다. 나는 지금도 악보(樂譜)를 못 읽는다. 음악 프로듀서로서 악보를 못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마음으로 느낀다."
―음악에서 무엇을 추구하는가?
"내가 열 살 때 금전문제로 할아버지가 살해됐다. 이런 집안의 비극은 흔치 않을 것이다. 어두운 그림자가 어린 내 삶을 덮었던 셈이다. 그때 음악이 나를 위로했고 살려냈다. 나는 음악의 역할이 '구원'에 있다고 본다. 배재철의 공연을 기획하면서 관객들도 그의 노래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당신의 개인 취향에 맞으면 대중에게도 통할 것으로 믿나?
"아름다움은 자기 주관에 속한다. 하지만 내가 이 음악을 듣고 구원받았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가 무명(無名)이고 별로 영향력이 없는 아티스트라도 말이다."
- 영화 '더 테너'에 나오는 이세야 유스케와 유지태.
―첫 만남 뒤로 해마다 배재철의 일본 순회공연을 기획했다고 들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반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관객을 끌어모을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원로 여배우 세 명이 오페라를 해설하고 배재철씨가 노래하는 콘서트 형식으로 꾸몄다. 순회공연을 통해 그는 많은 일본팬을 갖게 됐다."
―만난 지 3년 만에 배재철씨가 갑상선암에 걸렸는데.
"그는 수술을 받고서 한 달 뒤쯤 복귀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게 수술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떤 모임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배재철의 가수 생활이 끝났다'는 말을 듣게 됐다."
당시 배재철은 휴대폰을 받지 않았다. 배재철이 전속으로 있는 독일 극단에 전화하자, 관계자가 주저하면서 '배재철씨가 병 걸린 걸 아느냐?'고 물었다. 그가 '노래를 못 부르게 된 건가?' 하고 반문하자,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했다. 그 뒤 몇 차례 시도 끝에 통화가 이뤄졌다.
"테너였던 그의 목소리에 거친 호흡과 탁음이 섞여있었다. 내 나이에 감동이 아니라 괴로워 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자 배재철씨가 '울지 마'라고 말했다. 본인이 더 울고 싶을 텐데 내가 울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의 발병 사실을 주위에 알려 후원금을 모아서 사흘 뒤 독일로 갔다."
―목소리를 잃은 성악가는 뭐라고 말하던가?
"그는 절망에 빠져있었다. 병원비에다 실직 상태가 됐으니 경제적 어려움도 심했다. 그러면서 '잇시키의 타입1'이라는 성대 기능 회복 수술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베를린 대학병원에 가면 받을 수 있다고 하는군.' '잇시키? 일본인 이름 같군.' 나는 일본에 연락해 이 수술법 창안자가 잇시키 노부히코 교토대 교수라는 걸 알았다. 나는 '일본에 와서 그분께 수술받는 게 어떤가' 하고 제의했다. 그때 잇시키 교수는 대학병원에서 나와 개인병원을 하고 있었다. 당시 77세였다."
―잇시키 교수가 직접 집도했나?
"연세가 많아 솔직히 염려했다. 배재철씨도 불안했을 것이다. 5시간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이 잘 됐다는 느낌이 있었나?
"수술만 받으면 평소처럼 목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 여전히 쉰 목소리가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석 달쯤 지나면 좋아질 거야'라고 했지만, 처음엔 실망이 컸다. 일본까지 데려와 수술시켰는데 말이다. 그가 퇴원해 독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했다. 넉 달쯤 지나 통화하는데 배재철씨가 바리톤 목소리로 콧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배재철씨와는 계약 관계 이상의 감정이 개입된 것 같다. 그가 목소리를 낼 수 없으면 더 이상 비즈니스는 성립할 수 없지 않은가?
"일류가 되면 거만해지는 법이다. 그는 아기처럼 순수했다. 일류는 누구나 노력하면 된다, 일류가 돼서 보통 사람처럼 순수하게 행동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가 없다. 그게 초일류(超一流)다. 내가 그와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정말 억울했을 것이다."
―배재철씨가 계속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은 본인의 열망이었나?
"그는 노래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까, 노래를 못 하면 죽는 것이다. 비록 기량은 예전만 못해도 더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모순되는 얘기다. 기량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더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나?
"일본에서 처음 진찰을 받고 돌아오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병에 걸려서 잘 됐어. 안 걸렸으면 난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몰랐을 거야.' 그는 울먹였는데 순간 열 살 때의 내가 구원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를 재기시키는 게 내 임무임을 깨달았다. 더 많은 관객이 그의 노래를 들으러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음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귀로써 안 들리니까."
―음악이 귀로 안 들리면?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들릴 뿐이다, 그림도 눈을 통해서 보일 뿐이다. 정작 감동시키는 힘은 다른 데 있다. 마음인지 영혼인지 모르나…."
그는 치료비를 지원하기 위해 '배재철 음반'을 제작했고, 수술이 있고서 2년 뒤 그를 재기의 무대에 세웠다. 배재철은 요즘 일본에서 콘서트와 리사이틀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성량은 수술 전보다 절반에 못 미치지만 그는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노래 이상의 무엇에 감동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더 테너' 영화에서 당신의 배역인 이세야 유스케씨는 '한·일 양국 정상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이 배재철씨의 목소리를 지켰다고 생각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지닌 사람을 주위 사람들이 소중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뿐이다. 이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떠나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과거에 비해 한·일 양국 관계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과거 일본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럴 수가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의 관점에서 떠나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한국 분이 일본 사람들 앞에서 '당신들을 용서할 수 없는 저희를 용서하세요'라고 했다. 전쟁 범죄자도 있었지만, 이들에 의해 전쟁에 동원돼 죽은 일본인들도 많았다. 한국인들도 이들을 위해 울어줄 수 있을까. 서로의 상처를 자기의 상처로 여기는 것이다."
―부인은 재일교포라고 들었다.
"나보다 18세 연하다. 노총각으로 버려질 줄 알았는데 뒤늦게 폐품이 회수된 것 아닌가. 한국인의 큰 사랑으로 재활용해주셨다."
Talk & 通 (총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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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분이네요. 훌륭한 인성을 지닌 이런분들의 기사를 접하고나면 훈훈한 느낌과 함께 힐링되는 기분입니다.건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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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예술이나 학문과 같이 공통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국적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류보편적 가치만 중요할 뿐이지요. 한국인이라던가 일본인이라던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최고를 추구하는데 서로 협력을 할 뿐 국적차별은 별의미가 없을 겁니다. 특히 일본인들에게는 재능있는 사람을 키워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장인정신의 계승이랄까요? 일례로 조훈현 기사도 대표적인 예이지요. 이와 반대로 목표가 없고 자질없는 사람들을 띄워주기위해서는 학맥, 금맥, 인맥이 요구될 겁니다. 여기 얘기가 멋지게 비치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이처럼 일본인들의 협조를 받은 한국인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한국도 능력있는 사람들을 키워주는 사회분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재능있는 사람을 키워주는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멋진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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