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안산김씨촌로공파종친회
 
 
 
카페 게시글
◈ 안산김씨 세계 스크랩 연성군 김정경 蓮城君金定卿 - 안산김씨
희망나라 추천 0 조회 131 12.04.04 06: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연성군 김정경  

蓮城君 金定卿

 

 

조선왕조 건국 초기 때 원종공신과 선무공신으로,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신라(新羅) 경순대왕(敬順大王)의 4왕자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아드님인 시조 김긍필(金兢弼)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김 위(金渭)이고, 조부는 김원상(金元祥)이며,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김성경(金星慶)이고, 어머니는 한국부인(韓國夫人) 평양조씨(平壤趙氏)이다.

 

배위(配位)는 화혜택주 왕씨(和惠宅主王氏)이다. 조선 태조를 도와 개국하는 데 협력하여, 개국공신 다음가는 포상 직위인 원종공신으로 책봉되어, 연성군(蓮城君)에 책봉되었다.

 

1400년 (정종 2년) 경진(庚辰), 한성부윤에 있을 때 제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진압하고, 좌명공신에 책봉되었다.

 

1410년 (태종 10년) 경인(庚寅), 명나라 황제 탄생일 때 성절사로 파견 다녀오기도 하였다. 

 

관직을 그만두고, 지금의 경기도 안산에서 '망해정'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가 1418년 (세종 원년) 무갑(戊甲), 향년 75세로 별세하였다고 한다.

 

묘소는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에 모셔졌다.

시호는 위정(威靖)이다.

 

 

연성군 김정경 원종공신 묘소

 

위정공은 부인을 세 번 맞이하였으니, 판서 신익지,  신양군 노영, 남평군 왕화의 딸이다. 5남 1녀를 낳았다. (부인 : 평산신씨, 교하노씨, 개성왕씨)

평산신씨와 교하노씨는 부장하였으며, 개성왕씨는 그 아래에 임좌로 장사 지냈다.

 

*** 부장(附葬) = 합장(合葬) ***

여러 사람의 시체를 한 무덤에 묻음. 또는 그런 장사. 흔히 남편과 아내를 한 무덤에 묻는 경우를 이른다. [비슷한 말] 부장2(附葬)ㆍ부폄ㆍ합부ㆍ합폄.

 

 

 

장명등

상석

오른쪽 문인석

왼쪽 문인석

 

 

 

 

=================================================================================================

 

 

연성군 처 화혜택주 왕씨 묘소

신 종

(神宗)

-양양공

(襄陽公)

왕서(王恕)

-시안공

(始安公)

왕인(王絪)

-서원후

(西原侯)

왕영(王瑛)

-익양후

(益陽侯)

왕분(王?)

- 순화후

(淳化侯)

왕유(王?)

-정원군

(定原君)

왕균(王鈞)

- 공양왕

(恭讓王)

 

 

 

 

 

 

 

-학성후

(鶴城侯)

왕향(王珦)

-남평군

(南平君)

왕화(王和)

-女 :

金定卿

 

 

 

 

 

-보성군

(寶城君)

왕희(王熙)

-경창대군

(慶昌大君)

왕유(王瑜)

-순성군

(順城君)

왕정(王珽)

 

 

 

 

 

연성군 처 화혜택주 왕씨 묘소 비석

연성군 처 화혜택주 왕씨 묘소 신비석

상석   향로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명등

오른쪽 문인석

왼쪽 문인석

연성군 처 화혜택주 묘소 후경

 

출처 : 신라김씨 집안 선영  http://blog.daum.net/shilla57/163

 

===================================================================================================

 

참고자료 추가등재 합니다. 

 

위정공 안산군(연성군) 김정경 묘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 57)

 

현천의 무덤을 완성하고 나서 평산신씨와 교하노씨는 부장하였으며,

개성왕씨는 그 아래에 임좌로 장사 지냈다.

 

  

  안산군(연성군) 부인 개성왕씨 화혜택주 묘

 

 * 옹주 및 택주 설명

 

조선시대 외명부(外命婦) 봉작(封爵)의 하나. 왕자군(王子君)과 종1품 종친의 처(妻)에게 이런 호칭을 붙였다. 군부인은 중국 당나라 때의 외명부제도에서 문무관 3품 이상의 모(母)와 처를 칭하던 데서 비롯되었다.

 

고려 공양왕 때에는 대군과 군의 처를 구별하지 않고 옹주라 하였으나, 조선 초기에 와서 대군의 처를 옹주, 군의 처를 택주(宅主)라 하여 서로를 구별하였다.

 

세종 때에는 종실 종1품의 적처(嫡妻)와 공신 정1품·종1품의 적처를 모군부인(某郡夫人)이라 칭하고 군부인의 앞에 읍호를 붙이도록 규정하였다 

 

--------------------------------------------------------------------------------

안산김씨 김긍필의 14세(13대손) 암, 을신,맹감,지,맹린,맹전,맹추,맹균,

맹일,맹강,맹유,맹철,맹혁,맹현에서 다음과 같이 1520년 전후로 분파되었습니다.  (윗어른 자제분의 과거급제 시기가 1510년대임, 근거 안김족보 1776년, 1989년)

 

 

        o 상호군파    휘 암    (의주,용천)   

           ** 휘(諱) :왕이나 제후 등이 생전에 쓰던 이름

        o 사직공파    휘 을신   (강진)         

        o 학생공파    휘 맹감   (강진,황주)  

        o 대제학공파 휘 지      (합천)         

        o 부정공파    휘 맹린   (포천1동)      

 

        o 사재정공파 휘 맹전   (안산)         

        o 첨정공파    휘 맹추   (한산)         

        o 참봉공파    휘 맹균   (황해)         

        o 직장공파    휘 맹일   (포천)          

        o 교감공파    휘 맹강   (천안)         

        o 첨중추공파 휘 맹유      ?             

        o 판서공파    휘 맹철   (괴산)          

        o 참판공파    휘 맹혁   (포천, 청산) 

        o 첨지중추부사공파   휘 맹현 (장단) 

            * 장단파 근거 : 안산김씨세보 세계표 사직공파(강진파) 1-2   1978년판 추정

 

연성군은 부인을 세번 맞이하였으니, 판서 신익지, 신양군 노영, 남평군 왕화의 딸이다. 5남 1녀를 낳았다.

 

별장 지는 신씨 소출이요, 상호군 관, 별장 척은 노씨 소출이요,

판중추 평호공 개와 안성위 한과 서령 안철산 처는 왕씨 소출이다.

 

소생 5남 1녀 {사위 안철산}  

 

지 (별장)

沚 (別將)

관 (상호군)

寬 (上護軍)

척 (별장)

滌 (別將)

개 (좌참찬)

漑 (左參贊)

한 (대호군)

澣 (大護軍)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의주파

 

 

강진파

 

 

합천파

 

 

포천, 안산,

 

 

 

 

천안파

 

 

 

괴산파

    *** 滌(척) : 씻을 척, 물 이름 조 ***

 

11세

(10대손)

12세

(11대손)

13세

(12대손)

14

(13대손)

분 파 내 용 (집성촌)

성경

정경

別將

(상호군)

 의주파

의주파, 용천파

 

진주목사

삼사우사

의정부사

자헌대부

 

좌명공신

연성군

(안산군)

이조전서

숭정대부

위정공

上護軍

을신

(사직)

 강진파

강진파

맹감

(학생)

 강진파

황해도 황주파

別將

(대제학)

 합천파

괴산파,합천파,산청파,만경파

左參贊

맹린

(부정)

 포천,

 안산,

 천안파

포천파, 양주파

맹전

(사재정)

   〃

안산파

맹추

(첨정)

   〃

한산파

맹균

(참봉)

   〃

황해도파

맹일

(직장)

   〃

포천파

맹강

(교감)

   〃

옥천파(청산파), 천안파

맹유

(첨중추)

   〃

  ?

大護軍

맹철

(판서)

 괴산파

 괴산파

맹혁

(참판)

 포천,

 청산파

 포천파, 청산파

주경

(판서)

이용

(별장)

判決事

맹현

(첨지중추부사)

 장단파

 장단파

 

분파의 정식 명칭은 14세 되시는 선조님의 벼슬로 족보에서 구분하고 있습니다. 

예) "상호군파", 다만 편의상 집성촌을 기준으로 "의주파" 로 호칭하기도 합니다. 

 

 

 

=========================================================

조선왕조실록의 좌명공신 교서 내용

=========================================================

태종 1권,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월 15일(을해) 2번째기사

이저·이거이 등에게 좌명 공신의 훈호를 내리는 교서

-------------------------------------------------------

좌명(佐命)한 공(功)을 기록하여 4등(等)으로 하고, 하교(下敎)하였다.

 

“지난날에 역신(逆臣) 박포(朴苞)가 해할 마음을 품고, 몰래 회안(懷安) 부자(父子)를 끼고 우리 골육을 해하기를 꾀하여, 마침내 군사를 들어 대궐로 향함에 이르러, 흉역(凶逆)을 자행하여 종사(宗社)의 안위(安危)가 순간(瞬間)에 있었는데, 상당후(上黨侯) 이저(李佇)·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이거이(李居易)·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李茂)·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조영무(趙英茂)·좌군 총제(左軍摠制) 이숙번(李叔蕃)·중군 총제(中軍摠制) 민무구(閔無咎)·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신극례(辛克禮)·여성군(驪城君) 민무질(閔無疾) 등 아홉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의(義)에 따르고 사기(事機)에 응하여 계책을 정해서, 화란(禍亂)을 평정하고 종사(宗社)를 편안히 하여, 충성을 다해 좌명(佐命)하였으니, 1등(等)으로 칭하(稱下)하고, 부(父)·모(母)·처(妻)는 3등(等)을 뛰어 봉증(封贈)하고, 직계 아들은 3등을 뛰어 음직(蔭職)을 주고, 직계 아들이 없으면, 조카와 사위를 2등을 뛰어 밭 1백 50결(結), 노비 13구(口), 백은(白銀) 50냥(兩), 표리(表裏)19) 1단(段), 구마(廐馬) 1필, 구사(丘史) 7명, 진배파령(眞拜把領) 10명을 주고, 처음 입사(入仕)하는 것을 허락한다.

 

예문 춘추관 학사(藝文春秋館學士) 이내(李來)는 의(義)를 따르고 사(私)를 잊어, 변(變)을 듣고서 제일 먼저 고(告)하여 충성을 다해 좌명(佐命)하였고, 의안공(義安公) 이화(李和)와 완산후(完山侯) 천우(天祐)는 변을 듣고 급히 달려 와서 화란(禍亂)을 구제하고 익대 좌명(翊戴佐命)하였으니, 2등으로 칭하하고, 부·모·처는 2등을 뛰어 봉증하고, 직계 아들은 2등을 뛰어 음직을 주고, 직계 아들이 없으면, 조카와 사위를 등수(等數)를 뛰어 밭 1백 결, 노비 10구, 백은 25냥, 표리 1단, 구마 1필, 구사 5명, 진배파령 8명을 주고, 처음 입사하는 것을 허락한다.

 

창녕백(昌寧伯) 성석린(成石璘)·완천군(完川君) 숙(淑)·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 이지란(李之蘭)·개성 유후(開城留後) 황거정(黃居正)·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 윤저(尹?)·김영렬(金英烈)·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윤곤(尹坤)·형조 전서(刑曹典書) 박은(朴?)·도승지 박석명(朴錫命)·상장군(上將軍) 마천목(馬天牧)·판전중시사(判殿中寺事) 조희민(趙希閔)·봉상경(奉常卿) 유기(柳沂) 등 12인은 정성과 힘을 다해서 여러 번 충성을 바치어 익대 좌명하였으니, 3등으로 칭하하고, 부·모·처는 1등을 뛰어 봉증하고, 직계 아들은 1 등을 뛰어 음직을 주고, 직계 아들이 없는 자는 조카와 사위를 음직을 주고, 밭 80결, 노비 8구, 2품 이상은 백은 25냥, 3품 이하는 은대(銀帶) 1요(腰), 표리 1단, 구마 1필, 구사 3명, 진배파령 6명을 주고 처음 입사하는 것을 허락한다.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조박(趙璞)·삼사 좌사(三司左使) 조온(趙溫)·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권근(權近)·삼사 우사(三司右使) 이직(李稷)·참지 삼군부사(參知三軍府事) 유양(柳亮)·중군 총제(中軍摠制) 조경(趙卿)·좌군 총제(左軍摠制) 김승주(金承?)·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서익(徐益)·전 동지총제(同知摠制) 홍서(洪恕)·병조 전서(兵曹典書) 윤자당(尹子當)·좌승지 이원(李原)·우승지 이승상(李升商)·한성 윤(漢城尹) 김정경(金鼎卿)·우부승지 서유(徐愈), 상장군(上將軍) 이종무(李從茂)·이응(李膺)·심귀령(沈龜齡), 대장군(大將軍) 연사종(延嗣宗)·한규(韓珪)·김우(金宇)·문빈(文彬), 전 중군 장군(中軍將軍) 윤목(尹穆) 등 22인은 정성을 바쳐 협찬(協贊)하고, 오래 조호(調護)를 부지런히 하여 익대 좌명하였고, 군자 소감(軍資少監) 송거신(宋居信)은 위태로움을 당해 환(患)을 구제하여 익대 좌명하였으니, 4등으로 칭하하고, 부·모·처를 봉증하고, 직계 아들은 음직을 주고, 밭 60결, 노비 6명, 2품 이상은 백은 25냥, 3품 이하는 은대 1요, 표리 1단, 구마 1필, 구사 1명, 진배파령 4명을 주고, 처음 입사하는 것을 허락하며, 아울러 모두 각(閣)을 세워 형상을 그리고, 비(碑)를 세워 공을 기록하며 적장(嫡長)이 대대로 승습(承襲)하여 녹(祿)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자손은 정안(政案)에 기록하기를 좌명(佐命) 몇 등 공신 아무개의 후손이라 하여, 비록 죄를 범하는 것이 있더라도 영세(永世)토록 용서하라.”

 

임금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한산(漢山) 서쪽에서 사냥하다가 성난 표범을 만나 말에서 떨어졌었다. 거신(居信)이 말을 달려 지나가니, 표범이 이를 쫓아갔으므로, 임금이 위태한 지경을 모면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좌명(佐命)의 열(列)에 참예시켰다. 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이거이(李居易) 등이 전(箋)을 올려 좌명 공신에게 상사(賞賜)한 물건을 사양하였다.

“신 등이 일찍이 무인년 정사(定社) 때에 주상 전하의 추장(推奬)하신 은혜를 입어 지나치게 상사(賞賜)를 받았사온데, 이제 또 전하께서 특별히 좌명 공신을 칭하하시어 의정부로 하여금 상사를 준비하게 하시었으니, 신 등은 감히 중첩(重疊)하여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책 193면

【분류】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 *농업-전제(田制) / *변란(變亂) / *신분(身分)

---------------------------------------------------------

[註 19]표리(表裏) : 안팎 옷감.☞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