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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씨가 점차적으로 확대되면서 같은 성씨라 하더라도 계통(系統)이 달라 그 근본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동족여부(同族與否)를 가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지게 된 것이 본관(本貫)이다. 여기서 관(貫)이란 본래 돈(錢)을 말하는데 다시 말하면 돈을 한줄에 꿰어 묶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친족(親族)은 서로 관련지어 있다는 뜻으로 "관전견지본(貫錢見之本)"이며, 그 후는 본적(本籍)이란 뜻으로 "본관 향적야(本貫鄕籍也)"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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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김해김씨(金海金氏)는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제12대손 김유신(庾信)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유신의 직계종파(直系宗派)는 고려의 목경(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그의 아우 익경(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관(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金克一 金馹孫 金大有)이다.
김유신은 가락국 마지막 왕인 양왕(讓王:仇衡)의 증손으로, 그의 조부는 신라의 장군이며 각간(角干)인 무력(武力)이고, 그의 부친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장인이며 당대의 이름난 장군인 서현(舒玄), 그의 어머니는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이다.
김해김씨는 신라와 고려시대를 통하여 많은 문무명신(文武名臣)을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에 속하며, 고려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 ·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提學)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하여 위세를 떨쳤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여 역대 정승 가운데도 숙종 때의 우항(宇杭) 한 사람뿐이다.
그러나 한말 이후 김해김씨는 으뜸가는 성씨 인구에 걸맞게 수없이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주요인물을 살펴보면, 삼현파의 파조(派祖)인 관은 고려 때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냈고, 그 5세손인 극일(克一)은 학자로 명망이 높았으며, 그의 차자(次子) 맹(孟)의 준손(駿孫) 기손(驥孫) 일손(馹孫) 등 세 아들은 모두 문장으로 이름이 나 ‘김씨삼주(金氏三珠)’라 하였다.
이 밖에 이조참판 시문가(詩文家) 현성(玄成), 사군파 파조(派祖) 익경(益卿), 예조판서 조( ), 고려의 좌시중(左侍中) 보(普), 조선시대의 무장(武將) 경서(景瑞) 완(完), 학자로는 자정(自貞) 덕승(德承), 화가로는 홍도(弘道) 양기(良驥) 부자 등이 있다.
[경주김씨] 김해김씨계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대보공(大甫公) 알지계(閼智系) 가운데서도 그 대종을 이루는 경주김씨(慶州金氏)는 파계가 복잡하지만, 대충 8∼9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파로는 은열공파(殷說公派) 태사공파(太師公派)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영분공파(永芬公派) 호장공파(戶長公派)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역대에 인물을 많이 배출하기는 은열공파와 태사공파로, 경주김씨가 조선시대에 배출한 6명의 정승과 3명의 왕비가 모두 이 두 파에서 나왔다.
<은열공파〉 파조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은 경순왕의 넷째 왕자로 전하며, 중시조는 고려의 장군 순응(順應)이다.
조선 전기의 좌찬성 균( )은 중시조의 12대가 되는데, 그의 후손에서만 정승 3명과 많은 판서급 인물이 배출되었다.
좌의정 명원(命元), 판서 남중(南重), 숙종계비 인원왕후(仁元王后)의 부친 주신(柱臣), 좌의정 사목(思穆), 판서 대제학 창희(昌熙), 고종 때의 유명한 총리대신 홍집(弘集) 등이 모두 순응의 후손이다.
〈태사공파〉 태사공 인관(仁琯)은 경순왕의 후손, 혹은 헌강왕의 7대손이라는 설이 있다.
그의 8대손 자수(自粹)는 좌상시(左常侍)로 있다가 고려가 망하자 자결로써 충절을 지켰고, 그의 8세손이며 조선시대의 황해도 관찰사인 홍욱(弘郁)의 자손에서 8명의 정승과 1명의 왕비가 나와 은열공파 명원의 자손과 더불어 경주김씨의 2대명문으로 꼽힌다.
영의정 흥경(興慶), 예조판서 이주( 柱), 6조의판서를 두루 지낸 노경(魯敬), 서예가 정희(正喜), 판서 노응(魯應), 좌의정 도희(道喜), 영조의 국구(國舅)이며 어영대장을 지낸 한고(漢考), 우의정 관주(觀柱)가 모두 홍욱의 후손이며, 또한 노론(老論)의 거두 유경(有慶)은 그의 종증손이 된다.
판도판서공파〉 경순왕의 후손 장유(將有)를 파조로 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며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일컬어지는 판서, 제학 정(淨)이다.
〈호장공파〉
대표적 인물은 고려 인종 때의 명신이며 사학자로서 《삼국사기》를 편찬한 부식(富軾)이다.
[안동김씨]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은열의 둘째 아들 숙승(叔承)을 시조로 하는 세칭 ‘구안동’과 고려 태사(太師) 선평(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안동’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이 두 ‘안동’은 조선시대에 정승 19명, 대제학 6명, 왕비 3명을 배출하였다.
[구안동김씨] 중시조는 고려 원종 때의 시중(侍中),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방경(方慶)이다. ‘구안동’은 방경의 아들과 손자대에 크게 중흥하여 아들 선( )은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 흔( )은 찬성사, 순(恂)은 삼사판사(三司判事), 윤(倫)은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 선의 아들 승용(承用)은 대제학, 승택(承澤)은 평장사, 영돈(永暾)은 유명한 무장(武將)이며, 영후(永煦)는 우정승을 지내 모두 명신, 충신으로 이름이 났었는데, 특히 영후의 후손이 조선 전기에 세력을 크게 떨쳐 사실상 ‘구안동’의 주축이 되었다. ‘구안동’의 세계(世系)는 방경의 현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어 그 중 15파만이 현존하고 있으며, 15파 중에도 영후의 손자들인 익달(益達)의 제학공파(提學公派), 사렴(士廉)의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사형(士衡)의 익원공파(翼元公派) 등 3파가 ‘구안동’ 인구의 60∼70 %를 차지하여 통칭 ‘제안익(提按翼) 3파’로 불린다. 이 밖에 군사공파(郡事公派:士陽),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九容),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九鼎)가 그에 버금한다. 좌의정을 지낸 사형의 익원공파에서는 좌의정 질( ), 영의정 수동(壽童), 이조판서 찬(瓚) 등이 나왔다. 그러나 이렇듯 세를 떨치던 ‘구안동’은 인조 때 영의정 자점(自點)이 역모죄로 처형되면서 꺾이게 되었다. ‘구안동’의 인물로는 이 밖에 임진왜란 때 순절한 원주목사 제갑(悌甲)과 그의 조카 시민(時敏), 시약(時若) 형제, 판서를 지낸 청백리 시양(時讓)과 그의 아들 이조판서 휘(徽), 숙종 때의 시인 득신(得臣:참판), 무장(武將)으로 영의정이 추증된 응하(應河)와 훈련대장 응해(應海) 형제, 훈련대장 중기(重器)가 있으며, 현대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정치가 백범(白凡) 구(九)가 있다.
[신안동김씨] 흔히 ‘신안동’을 가리켜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이라고 하여 큰 벼슬을 많이 내었다는 비유로 삼는데, ‘신안동’은 특히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으로 더 알려졌다. ‘신안동’의 시조 선평(宣平)은 신라 말 고창군(古昌郡:현 안동)의 성주로, 왕건이 고려를 개창할 무렵 고려에 귀부, 개국공신, 태광태사(太匡太師)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선평의 후손들은 극효(克孝)의 아들대에서 상용(尙容), 상헌(尙憲) 등이 정승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특히 좌의정 상헌의 후손이 세도가문으로서의 주류를 이루어 이들을 ‘장김(壯洞金氏)’이라고도 한다. 상헌의 후손에서 부자 영의정, 형제 영의정, 부자 대제학 등 12명의 정승과 3명의 왕비, 수십 명의 판서가 나왔고, 우의정 장헌의 형 상용의 후손에서도 정승, 판서 등이 많이 나왔다. 형제 영의정 수흥(壽興), 수항(壽恒)과 수항의 아들 영의정 창집의 후손에서 왕비 3명을 내었는데, 이들이 ‘신안동’을 세도가의 반석 위에 오르게 한 인물들이다. 조순(祖淳)의 딸이 순조비가 되면서 달순(達淳), 문순(文淳), 희순(羲淳), 유근( 根), 교근(敎根) 등 일족이 정승, 판서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이 후 이들 일문에서는 영의정 좌근(左根), 흥근(興根), 병학(炳學), 병국(炳國), 병시(炳始), 호위대장(扈衛大將) 조근(祖根:헌종의 장인), 판서 수근(洙根), 보근(輔根), 병기(炳冀), 병주(炳 ), 병덕(炳德), 병지(炳地), 병교(炳喬)등을 배출하였다. 이들 권문(權門)과는 대조적으로 ‘김삿갓’으로 유명한 병연(炳淵)도 ‘신안동’이며, 근대 인물로는 한말의 정치가 옥균(玉均), 독립운동가, 장군 좌진(佐鎭) 등이 있다.
[강릉김씨] 시조는 신라의 시중(侍中) ·명주군왕(溟州郡王) 주원(周元)이다. 인물로는 3대가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상기(上琦), 인존(仁存), 고(沽) 형제, 인존의 아들 영윤(永胤), 영관(永寬) 형제, 조선시대의 예조판서 첨경(添慶), 판서 시환(始換), 시형(始炯), 시위(始 ), 상성(尙星), 판윤 시영(始煐), 우참찬 노진(魯鎭), 영의정 상철(尙喆), 판서 화진(華鎭), 상중(尙重), 우참찬 계락(啓洛), 상집(尙集), 공신, 판서 기종(起宗), 서예가, 목사 행(行), 40여 년 간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반(泮) 등이 있는데, 반의 후손을 세칭 ‘강서김씨(江西金氏)’라고도 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강릉김씨(江陵金氏)를 빛낸 사람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시습(時習)이다.
[연안김씨] 고려 사문박사(四門博士) 섬한(暹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연안김씨(延安金氏)는 조선시대에 정승 6명, 대제학 1명, 왕비 1명, 문과급제자 163명을 냈다. 시조의 제5대손 도(濤)가 고려 밀직제학(密直提學), 그의 아들 자지(自知) ·여지(汝知) ·하(何)가 조선시대에 판서를 지냈고, 자지의 후손에서 영의정 전(詮) ·근사(謹思), 대제학 감(勘), 영의정 안로(安老), 선조의 국구 제남(悌男), 부자 영의정 익( ) 재찬(載瓚), 우의정 유연(有淵), 정란공신 판서 효성(孝誠) 등이 배출되었다.
[의성김씨] 경순왕의 아들이며 고려 태조의 외손인 석(錫)을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 용비(龍庇) ·용필(龍弼) ·용주(龍珠) 형제대에 이르러 세계가 갈린다. 용필계에서 대제학 ·학자 안국(安國), 참판, 학자 정국(正國) 형제가 나왔고, 용비계에서 부제학 성일(誠一), 대사헌 우옹(宇 ) 등이 배출되었다. 의성김씨(義城金氏)인 근세 인물로는 학자 흥락(興洛), 독립운동가, 유학자 창숙(昌淑) 등이 있다.
[선산김씨] 고려 공신 ·시중 선궁(宣弓)을 시조로 하고, 그의 아들 시중 봉술(奉述), 삼사우윤 봉문(奉文)의 대에서 세계가 갈라져 봉술계에서 고려 말의 절신(節臣) 제(濟) ·주(澍), 조선시대의 좌의정 응기(應箕), 동인(東人)의 영수 효원(孝元), 판서 이원(履元) ·세렴(世廉) 등이 나왔다. 봉문계에서는 거유(巨儒) 숙자(淑滋), 판서, 학자 종직(宗直) 등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에 문과 60명을 배출하였다.
[청풍김씨] 청풍김씨(淸風金氏)는 은열(殷說)의 맏아들 정구(正矩)의 10대손이며 고려 말의 문하시중 대유(大猷)를 시조로 하고 있다. 이 문중에서는 조선시대에 정승 8명, 대제학 3명, 왕비 2명을 냈다. 대표적 인물로는 성리학자, 대사성 식(湜), 영의정 육(堉), 판서 좌명(佐明), 현종의 국구 우명(佑明), 우의정 석주(錫胄), 정종 국구, 판서 시묵(時默), 판서 원식(元植), 경선(景善), 익문(益文), 우의정 구(構), 그의 아들 재로(在魯)와 손자 치인(致仁)의 부자 영의정, 좌의정 종수(鍾秀), 성리학자 종후(鍾厚), 대제학 유( ), 판서 취로(取魯), 좌의정 약로(若魯), 영의정 상로(尙魯), 판서 종정(鍾正), 동건(東健), 학성(學性) 등이 배출되어 이름을 떨쳤다.
[금녕김씨] 금녕김씨(金寧金氏)의 시조는 은열(殷說)의 현손 봉기(鳳麒)의 넷째 아들 시흥(時興)이다. 고려시대에 평장사 향(珦), 병부상서 정병(挺丙) 및 판도판서 광저(光儲) 등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판서 익생(益生) ,윤달(潤達), 문기(文起), 좌찬성 인찬(仁贊), 한성판윤 종남(從南), 응수(應壽), 그리고 방어사 언공(彦恭) 등이 있다.
[순천김씨] 순천김씨(順天金氏)의 시조는 태봉국(泰封國)의 인가별감(仁駕別監) 총(摠)이며, 그 후손인 윤인(允仁) ·대영(臺泳)을 각각 중시조로 하는 두 파가 있다. 인물로는 조선시대의 좌의정 종서(宗瑞), 판서 종한(宗漢), 검교좌의정 승주(承 ), 영의정에 추증된 여물(汝物), 영의정 유( ), 학자이며 문학가(文學家)인 흥국(興國) 등이 있다.
[청도김씨]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8대손이며 고려의 평장사 지대(之岱)이다. 조선시대에 좌참찬 점(漸), 대사간 난상(鸞祥), 공신 희방(希邦), 학자 응하(應夏), 익동(翊東), 지리학자 정호(正浩) 등이 배출되었다.
[상산김씨] 상산김씨(商山金氏)를 상주김씨(尙州金氏)라고도 하며, 경순왕의 후손 수(需)를 시조로 하고 있다. ‘삼원수(三元帥)’ 득배(得培) ·득제(得齊) ·선치(先致) 3형제가 고려 때 이름을 떨쳤다. 조선시대에는 좌의정 귀영(貴榮), 대사헌 덕성(德誠), 판서 우석(禹錫), 연(演), 동필(東弼) 등이 배출되었다.
[언양김씨]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 선(鐥)이다. 고려 때 병부판사 취려(就礪), 검교시중(檢校侍中) 경직(敬直),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천일(千鎰) 등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풍산김씨] 풍산김씨(豊山金氏)의 시조는 고려시대의 문적(文迪)이다. 조선시대의 중추부동지사 양진(楊震), 우참찬 수현(壽賢), 문장가 응조(應祖), 봉조(奉祖), 학자 종휴(宗烋) 등이 배출되었다.
[서흥김씨] 서흥김씨(瑞興金氏)의 시조는 은열(殷說)의 후손 중랑장 보(寶)이다. 판서 중건(中乾), 학자 굉필(宏弼), 의병장 충수(忠守), 왕자사부(王子師傅) 건(鍵), 학자 대진(大振) ·하석(夏錫) ·경(硬) 등이 배출되었다.
[울산김씨] 경순왕의 아들 덕지(德摯)를 시조로 하고, 고려의 삼중대광 환(環)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울산김씨(蔚山金氏)가 많이 살고 있는 호남에서는 예로부터 조선 중종 때의 명유(名儒) 인후(麟厚) 집안을 4대 명족의 하나로 꼽고 있다. 학자 시서(時瑞), 정수(正洙)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병로(炳魯), 제2대 부통령 인촌(仁村) 성수(性洙)를 배출하였다.
[나주김씨] 나주김씨(羅州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손자 나주군(羅州君) 운발(雲發)이다. 고려시대의 대제학 대경(臺卿), 조선시대의 무신 정준(廷儁), 경석(景錫), 적(適), 충수(忠守) 등을 배출하였다.
[전주김씨] 전주김씨(全州金氏)의 시조는 신라의 예(芮)로 전한다. 대표적 인물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치원(致遠)이다.
[원주김씨] 원주김씨(原州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후손 거공(巨公)이다. 좌의정 응남(應南), 우의정 덕원(德遠)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부안김씨] 부안김씨(扶安金氏)는 경순왕의 장자 일(鎰)을 시조로, 고려시대의 이부상서 경수(景修)를 1세로 하고, 평장사 구(坵)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예안김씨] 예안김씨(禮安金氏)의 시조는 고려시대의 호장 상(尙)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역학자(曆學者) 판서 담(淡), 대사헌 늑( ) 등이 배출되었다.
[안산김씨] 안산김씨(安山金氏)의 시조는 은열(殷說)의 후손 긍필(肯弼)이다. 세 딸이 고려 현종비가 된 은부(殷傅), 조선시대의 이조판서(吏曹判書) 정경(定卿), 기묘명현(己卯名賢)인 필(珌) 등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영광김씨] 영광김씨(靈光金氏)의 시조는 은열의(殷說) 현손이며 고려시대의 평장사 심언(審言)이다. 대호군 천보(千寶), 병부상서 사순(思順), 병마절제사 해(該), 참판 필(珌) 등이 배출되었다.
[도강김씨] 도강김씨(道康金氏)의 시조는 은열(殷說)의 7대손이며, 고려시대의 시중 희조(希祖)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회련(懷鍊), 목사 약묵(若默), 의병장 후진(後進), 학자 급(汲), 만정(萬挺), 도원(道元) 등이 배출되었다.
[개성김씨] 개성김씨(開城金氏)의 시조는 의성김씨 시조 석(錫)의 7대손이며 고려시대 평장사인 용주(龍珠)이다. 평장사 준(晙), 의병장 황(滉), 유(濡), 지(漬) 형제, 화가 응환(應煥), 득신(得臣), 석신(碩臣) 등이 배출되었다.
[진주김씨] 진주김씨(晉州金氏)는 고려 문하시중 추(錘)를 시조로 하는 신라계와 유신(庾信)의 아들 삼광(三光)을 시조로 하는 김수로계로 나뉜다. 신라계에서는 고려시대 집현전학사 무진(茂珍), 김수로왕계에서는 조선 인조 때의 진무공신(振武功臣) 양언(良彦)이 알려져 있다.
[고령김씨] 고령김씨(高靈金氏)의 시조는 고려시대 문하평리(門下評理) ·익대공신(翊戴功臣)을 지낸 남득(南得)이다. 의병대장 ·병마절도사를 지낸 면(沔)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영동김씨] 영동김씨(永同金氏)의 시조는 고려의 전객서령(典客署令)으로 영산군(永山君)에 봉해진 영태(令胎)이다.
[공주김씨] 공주김씨(公州金氏)의 시조는 예조판서 의손(義孫)이다.
[덕수김씨] 덕수김씨(德水金氏)의 시조는 부사(府使) 이(泥)이다.
[청주김씨] 청주김씨(淸州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후손 정(錠)이다.
[삼척김씨] 삼척김씨(三陟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손자이며 고려의 좌승상 위옹(渭翁)이 다. 고려의 관찰사 복영(僕永), 사공(司空) 승련(承鍊) 시중을 지낸 인궤(仁軌) 의궤(義軌), 평장사 영(泳), 조선의 왕자사부 양보(良輔), 공신 기문(起文) 등이 배출되었다.
[함창김씨] 함창김씨(咸昌金氏)는 수로왕의 후예로서, 시조는 고려의 검교감찰어사 균(勻)과 세순(世珣)을 1세로 하는 파조(派祖)가 있다.
[수원김씨] 수원김씨(水原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증손이며 고려의 태자소보(太子少保)인 품언(稟言)이다.
[해평김씨] 해평김씨(海平金氏)의 시조는 고려의 시중 훤술(萱述)이다.
[영암김씨] 영암김씨(靈巖金氏)의 시조는 고려의 염찰사(廉察使) 숙(淑)이다. 고려의 평장사 세정(世貞), 첨의평리(僉議評理) 한빈(漢斌), 조선의 개국공신 호묵(浩默) 등이 배출되었다.
[희천김씨] 희천김씨(熙川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손자이며 고려의 대장군 우(佑)이다. 중시조 우(宇)가 온양에서 희천으로 개관(改貫)하였다.
[영천김씨] 영천김씨(永川金氏)의 시조는 경주김씨 시조 명종의 20대손 천응(天應)이다. 조선시대에 판서 을초(乙 ) 장미(長美)가 배출되었다.
[금산김씨] 금산김씨(錦山金氏)의 시조는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 정보(正寶)인데, 경주김씨에서 분적되었다. 찬성 성(晟), 추밀부사 신(侁), 병조판서 세유(世惟), 중추부지사 언태(彦兌) 등이 있다.
[영양김씨] 영양김씨(英陽金氏)의 시조는 고려의 전서(典書) 윤철(允轍)이다. 이 밖에 신라 때 귀화한 충(忠)을 원조(遠祖)로, 그의 후손 충황(忠晃)을 시조로 하는 일파가 있다.
[설성김씨] 설성김씨(雪城金氏)의 시조는 알지의 39대손이며 고려의 대제학 지선(芝宣)이다. 고려의 상장군 원(源), 장악원정(掌樂院正) 대수(大壽), 중추부지사 윤방(潤邦) 등이 배출되었다.
[용궁김씨] 용궁김씨(龍宮金氏)의 시조는 고려의 태자소보(太子少保) 존중(存中)이다.
[고성김씨] 고성김씨(固城金氏)의 시조는 소가야국왕 말로(末露)이다. 판서 윤길(贇吉), 선략장군(宣略將軍) 원량(原亮) 등을 배출하였다.
[수안김씨] 수안김씨(遂安金氏)는 알지의 36대손이며, 고려의 전법판서 선( )을 시조로, 후손 전리판서 위(爲)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우봉김씨] 우봉김씨(牛峰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손자 우봉군(牛峰君) 오(墺)]이다. 고려의 문하시중 항일(恒逸), 좌정승 관의(寬懿), 대제학 질( ), 조선의 판서 서덕(瑞德) 우서(禹瑞), 중추부지사 지남(指南) ·경문(慶門) 등을 배출하였다.
[광주김씨] 광주김씨(廣州金氏)는 경순왕의 7대손인 시조 녹광(祿光)이 고려 때 광주군에 봉해짐으로써 광주로 관적하였다. 고려의 찬성사(贊成事) 훤( ), 조선의 좌찬성 희증(希曾), 중추부지사 태허(太虛) 등을 배출하였다.
[강화김씨] 강화김씨(江華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7대손인 성(晟:天伯)이다. 상장군 성손(性孫), 어모장군(禦侮將軍) 시하(時夏) 등을 배출하였
다.
[진천김씨] 진천김씨(鎭川金氏)의 시조는 강릉김씨의 시조인 주원(周元)의 21대손 맹아(孟雅)이다.
[해풍김씨] 해풍김씨(海豊金氏)의 시조는 고려의 예부상서(禮部尙書) 숭선(崇善)이다. 문하평장사 대(岱), 조선시대의 훈련원정(訓鍊院正) 성(城) ·수(洙) ·상옥(相玉), 공조판서 영(煐), 병마절도사 혁(爀) ·일(鎰), 어영대장 건(鍵) 등을 배출하였다.
[영해김씨] 영해김씨(寧海金氏)의 시조는 ‘구안동’의 중시조 방경(方慶)의 6대손인 조선시대의 영해부사(寧海府使) 억민(億敏:億東)이다. 오위장(五衛將) 세봉(世鳳), 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 기영(基濚) 등을 배출하였다.
[안로김씨] 안로김씨(安老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후손이며 고려시대의 중윤(中尹) 지경(之敬)이다.
[춘양김씨] 춘양김씨(春陽金氏)의 시조는 고려시대의 첨의중찬(僉議中贊)이며 공신인 경산군(慶山君) 이(怡)이다.
[교하김씨] 시조는 고려 장군 교하군(交河君) 맹정(孟貞)인데, 나주(羅州)에서 분적하였다. 조선시대의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 성구(成九)의 아버지 경행(景行)을 파조(派祖)로 하는 일파가 있다.
[태원김씨] 태원김씨(太原金氏)의 시조는 중국 명나라의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태원백(太原伯)에 봉해진 학증(學曾)인데, 아들 평(坪)이 고려에 귀화하여 김해에 정착하였다.
[낙안김씨] 낙안김씨(樂安金氏)의 시조는 고려 감무(監務)로 낙안군에 봉해진 수징(粹澄)이며, 경주에서 분적되었다.
[무장김씨] 무장김씨(茂長金氏)의 시조는 수로왕의 후손 선(璇)이다.
[밀양김씨] 밀양김씨(密陽金氏)의 시조는 은열(殷說)의 12대손이며 고려시대의 사직(司直) 밀성군(密城君:밀성은 밀양의 옛 지명) 승조(承祖)이다.
[월성김씨] 월성김씨(月城金氏)의 시조는 은열공(殷說公)의 14대손이며 조선 세종 때의 군수 광우(光佑)이다.
[창원김씨] 창원김씨(昌原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17대손이며 고려시대의 태자첨사(太子詹事) 회원군(檜原君:회원은 창원의 옛 지명) 을진(乙珍)이다.
[파평김씨] 파평김씨(坡平金氏)의 시조는 고려시대 1등공신에 책록된 충간공(忠簡公) 장수(長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