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뉴산그린산악회
 
 
 
카페 게시글
특별 산행신청 스크랩 (100대명산)변산8경을 찾아 내변산 능가산으로 가는 길(남여치-월명암-직소폭포-내소사)
청산 추천 0 조회 893 12.11.05 16:2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25

 

'변산8경을 하루에 다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부안지방의 민요에서 채록된 것으로 보이는 변산에 있는 여덟군데의 대표적인

절경을 말하는 변산8경을 찾아 2011년9월3일(토요일)에 빛고을 토요산악회와

같이 산행에 나섰다.

오늘 산행에는 유은3018산악회 홍정회장도 같이 참여해서 모처럼 친구랑 오봇이

즐기는 산행이 되어 즐거움은 두배가 되었다.

변산(邊山)하면 산이름으로 알지만 부안군 변산면이라는 이름으로 산(山)이름이 아니다.

지도 어디를 봐도 봉우리 이름은 있어도 산이름은 없는 것은 아마도 변산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옛이름은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 능가산(楞伽山) 등의 이름대신 변산반도국립공원이라는 한묶음에서 봉우리만 의상봉,

관음봉, 쌍선봉 등으로 표시된 듯하다.

 

 

변산8경은 1경 웅연조대(熊淵釣臺) : 줄포에서 시작하여 곰소 앞바다를 지나는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을 말한다.

               2경 직소폭포(直沼瀑布) : 내변산의 가장 중심지에 있는 직소폭포와 중심계곡의 선경을 보지 않고는 변산을

                                                  말하지 말라.

               3경 소사모종(蘇寺暮鐘) : 가인봉을 배경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선 내소사의 은은한 저녁종소리

               4경 월명무애(月明霧靄) : 월명암 법당 앞마당엣 둥실 떠오르는 밝은 달과 일출과 함께 새벽잠을 깬 온갖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봉우리마다 자욱한 안개와 구름이 춤을 추는 황홀한 비경속에 

                                                  봉우리들이 나씩 모습을 들어내는 비경은 한 폭의 산수화다.

               5경 서해낙조(西海落照) : 월명암 옆 낙조대에서 고군산열도의 점점이 늘어선 섬들과 위도의 덩어리 섬들을 앞에

                                                  두고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온 바다를 진홍빛으로 물들이며 조용히 자취를 감추는

                                                  석양의 장관

               6경 채석범주(彩石帆舟) : 대자연의 신비와 비밀을 간직한 채석강과 한가롭게 지나가는 고깃배의 모습

               7경 지포신경(止浦神景) : 지서리에서 쌍선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등성길을 타고 산중턱에 오르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발길을 멈추게 하며 휘감고 도는 수많은 봉우리들 사이로 서해의 조망이

                                                  그림처럼 펼쳐져 산속의 신선이 되어 별천지에 있는 느낌

               8경 개암고적(開巖古蹟) : 변산의 4대명찰중 하나인 개암사는 나라를 빼앗긴 백제 유군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한 본거지로 개암사 뒷편의 울금바위의 위용과 주류성의 자취는

                                                  그윽한 역사의 향기다.

 

그 아름다운 변산8경중 무려 5개를 한 눈에 다 볼수있는 코스가 남여치-내소사코스(B코스)다.

오늘 산행은 A코스 남여치-쌍선봉-낙조대-월명암-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세봉-내소사-주차장(12km)

                 B코스 남여치-쌍선봉-낙조대-월명암-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삼거리-내소사-주차장(10km)(

                 S코스 남여치-쌍선봉-낙조대-북재-망포대-신선봉-재백이고개-관음봉-세봉-내소사-주차장(15km)으로 

평상시보다 각 코스별로 5Km정도 짧아 산행후의 시간이 약2시간 가까이 남으므로 남은 시간에는 변산6경이 있는 격포항의

채석강을 둘러보기로 하여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산해진미(山海眞美)를 볼수 있는 최고 최적의 코스라 하겠다.

자~그럼 변산8경을 하나씩 하나씩 섭렵해보기로 한다. 

             

 

                     (09:16)변산반도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변산면과 하서면을 잇는 736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월명암입구 

                     표지석이 나온다. 이곳이 남여치매표소로 구한말 매국노 이완용이 전라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여(藍輿)를

                     타고 낙조대에 올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되어 지키는 이 한 사람없는 삭막한 사무소앞엔 나무바리게이트만 쳐져있으며

                     악천후시에만 출입을 통제하는 직원이 나온다 한다.

                     이곳 고개에는 승용차 대 여섯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지만 버스를 대기엔 상당히 비좁다.

                     그래서 원점회귀코스로는 안 맞고 개인출발시에는 승용차를 내소사주차장에 세워놓고 택시로 남여치로 와서

                     월명암거쳐 내소사로 가면 되겠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넘어오면 차량문제도 어렵고 내소사 일주문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내야하기에 남여치에서

                     직소폭포를 거쳐 내소사방향으로 가는것을 추천한다.

                     우리 일행은 삭막한 남여치매표소앞을 지나 월명암이 있는 쌍선봉(459.1m)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코스는 남여치에서 쌍선봉거쳐 월명암- 자연보호헌장탑- 직소폭포-재백이고개-내소사코스로

               전체거리는 주차장까지 약 9.5km로 점심시간20분 정도 잡고 5시간정도 걸린다.

 

     비탈진 산길을 계속 올라가면 월명암 못가서 부터 녹음이 우거진 숲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야생화는 현호색이다.          

 

               (10:00)44분 걸려서 1.5km를 왔다. 그만큼 남여치에서 출발하여 월명암까지는 길이 가파르다.

              월명암 못가 있는 옹달샘...갈증으로 목이 타들어 죽기 일보직전이라면 몰라도 여기서 조금만 더가면 월명암이 나오기에

              그곳에 가서 물보시를 받는 것이 낫겠다..

              옛날에는 월명암에 오르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약수터였겠지만 지금은 관리부실과 고여있는 물로 인해 약수로서의

              용도보다는 산짐승들이 목을 축이는 곳이 되어버렸다.

 

 

               (10:05)쌍선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쌍선봉으로는 이정표의 화살표시가 없다.

               말그대로 사찰수행환경과 수목보호를 위하여 출입을 금한다는 월명암주지의 푯말이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수목훼손과 채취행위, 고성방가, 야영, 취사행위 등을 하지 않기를 여기서 선서하고 쌍선봉으로 들어간다.

 

    제7경인 지포신경(止浦神景)과 빗나간 제5경인 서해낙조(西海落照)

    쌍선봉에서 바라본 고사포해수욕장과 변산해수욕장..그리고 하섬(변산해수욕장앞의 하섬은 매달 음력1일과 15일에 간조때면

    각각3일정도 바닷길이 열린다. )

    어디가 수평선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바다는 곧 하늘이요 하늘은 곧 바다가 되고 만 쌍선봉에서 바라본

    서해바다의 짙푸른 색감과 변산반도의 뚜렷한 녹색색감이 그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월명암에서 직소폭포로 내려가는 길목에 낙조대가 있다하는데 그 어떤 표시도 없다.

    월명암 2대창주(創主)진묵대사(震默大師)가 즐겨올라 서해 낙조를 바라보며 도를 닦았다는 낙조대를 표시가 없어(아니면 못봤거나..)

    지나쳤음에 분명하다.

    쌍선봉의 헬기장은 지금 출입금지지만 이곳에서 보는 낙조와 일출..그리고 새벽안개사이로 솟아나는 봉우리들을 보는 것 또한

    낙조대와 더불어 서해낙조(西海落照)인 변산8경중의 하나가 될 듯 싶어 아쉽지만 쌍선봉낙조로 갈음한다.

    일출동해낙산 일몰서해월명이라 했거늘.....훗날을 기약하며..

 

    쌍선봉에서 보이는 마상봉과 새만금방조제. 그리고 위도섬..

    위도섬에는 아련한 아픈 기억이 있다.

    제주강정마을이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주민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 것 처럼 위도에도 2003년 부안방사성폐기물처리장 사업을

    둘러싸고 당시 부안군수 김종규가 사업을 밀어붙히자 예상치 못한 위도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급기야 폭력시위로 까지 번져서

    주민 200여명이 다치고 45명이 구속되는 불상사가 나고 말았다. 주민과 군과의 갈등도 갈등이지만 주민들간의 갈등도 심각할 지경에

    이르러 결국 2004년 주민투표에서 92%의 압도적 반대로 방폐장유치는 부결되고 말았다.

    주민간 또는 주민과 관청간의 갈등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위도 방폐장사건...지금은 그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었는지 궁금하다.

 

    쌍선봉에서 바라본 관음봉과 세봉너머로 곰소만이 보인다. 곰소만 너머는 고창의 선운산도립공원.

    곰소만은 젖갈과 천일염으로 유명한 곳으로 곰소젖갈 특산단지가 있다.

 

    월명암 산 능선뒤로 신선봉이 보이고 왼쪽은 곰소만.

 

    월명암 종각 기슭으로는 온통 노랑상사화밭이다.

    보름날 은은한 달빛아래 이 숲을 거닐면 상사화빛에 숲길이 온통 환해 질 것 처럼 보인다.

    이 처연하게 아름다운 상사화의 꽃말이 이룰수 없는 사랑이다..

    월명암에 전해오는 아궁이살인의 전설이 불현듯 꽃말과 더불어 상사화에 피어난다.

 

    배롱나무 사이로 보이는 월명암 범종각..

    아궁이 살인이란 월명암을 창건한 부설거사와 부인 묘화, 아들 둥운과 딸 월명이 모두 월명암에서 성불했는데 어느날 월명과

    등운이 도를 닦고 있는날. 땔나무를 대주던 불목한이 월명의 미모에 반해서 계속 접근해 오자 오빠와 의논을 하니 오빠가 그렇게

    애타한다면 한 번 소원을 들어주라고 하고 그 한번의 소감을 월명에게 들으니'허공에 대고 장대를 휘두르는것 같다' 하고 그 후

    두번째 소감은 '진흙탕에서 장대를 휘젖는 것 같다'하고 세번째 소감은 '굳은 땅에서 장대가 부딪치는 것 같다'하니 오빠생각에

    시간이 갈수록 성적쾌감이 강해지면 도를 깨우치지 못하고 죽는다하여 불목한을 죽이기로 결단을 하고 불목한에게 아궁이에

    숯불을 지피게 한다음  월명이 불목한을 아궁이 안으로 밀어넣고 나오려고 하는 것을 등운이 못나오게 막아 살인을 저지른 다음

    '살인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법. 이제 우리가 제도받는 길은 깨치는 길 뿐이다. 지옥이냐 깨치느냐이 두길뿐이다'하며 도를 닦아

    성불한 도량으로 꽃말처럼 이룰수 없는 사랑 상사화가 지천에 피어있다.(아궁이살인사건의 출처: 조용헌교수의 사찰기행)

 

    (10:27)월명암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로 쌍선봉 정상 자락에 신라 신문왕11년(691년)에

    부설거사가 창건하였다.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중건하였고 1848년(헌종14년)에 성암화상(性庵和尙)

    이 크게 고쳐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한말에 의병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일본군과 싸울때인 1908년에 다시 불타버리자

    중고선사(中故禪師)가 어렵게 다시 절을 세웠다가 6.25전쟁직전 여순사태때 다시 불타버려 1954년 원경(圓鏡)스님이 군내 각 기관 

    의 협조를 얻어 지금과 같은 작은 규모의 암자를 다시 세웠고 그 후 현주지 종흥(宗興)스님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본당, 요사채,

    사성선당 등 현재의 월명사를 옛날 모습대로 만들었다 한다.

   

    창건자인 부설거사는 본명은 진광세(陳光世), 법명 부설(浮雪)이며 출생지는 신라의 경주 성내이다.

    20세가 되던 해에 불국사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찾아가 중생이 불법에 들어가는 길을 안내 받고 원정스님께 몸을 의지하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광세란 이름을 버리고 법명을 받으니 부설(浮雪)이란 호(號)로 비구가 되었다.

 

    그후 영희(靈熙),영조(露照)가 불도를 위한 동반자로 흠모 공경하여 따라다니다 (백제 의자왕 10년경) 김제군 성덕면 묘화리

    (지금의 妙羅里)에는 성은 구씨(仇氏)요, 이름은 무원(無駑)이라는 불교신자의 집에 묵게되는데 그를 본 무남독녀 벙어리 외동딸

    묘화(妙花)가 갑자기 말문이 트이고 스님과 자기가 삼생에 걸친 인연이 있는 천생배필이라며 결혼해 줄 것을 간청하여 혼인을 한

    후 등운(登雲),월명(月明)남매를 두고 신라 신문왕 12년(692년) 내외는 남매를 데리고 지난날 공부하였던 변산으로 들어가 월명암

    근처에 부설암을 지었다. 묘화부인을 위해서는 묘적암을 세웠으며, 아들 등운(登雲)을 위해 월명암 뒤에 등운사를, 딸 월명

    (月明)을 위하여는 지금의 월명암(月明庵)자리에 월명암을 지어 일가족이 모두 불도를 깨우쳐 널리 펼쳤는데 이때부터 변산에서

    불교가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만사 내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혼자 읽어보는 시로 부설거사의 팔죽시가 월명암에 남아있다.

    八 竹 詩 (팔죽시)

    此竹彼竹 化去竹  (차죽피죽 화거죽)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竹 浪打竹  (풍타지죽 랑타죽)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粥粥飯飯 生此竹  (죽죽반반 생차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粥粥飯飯 生此竹  (죽죽반반 생차죽)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是是非非 看彼竹  (시시비비 간피죽)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대로 보고

    賓客接待 家勢竹  (빈객접대 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 歲月竹  (시정매매 세월죽) 시정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萬事不如 吾心竹  (만사불여 오심죽)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然然然世 過然竹  (연연연세 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낸다.

 

    월명암 낙조대에서 득도를 한 진묵대사(1562~1633)는 조선 16대 왕인 인조대왕(11년) 때의 고승(高僧)으로 속명은 일옥(一玉)이고  

    진묵은 법호이다. 서산 대사와 쌍벽을 이룰 만큼 뛰어난 고승이지만 깊은 산중에서 은둔하고 지낸 까닭으로 크게 역사에서 알려지지 

    않은 전설상의 인물처럼 되어버렸다. 서산, 사명 대사가 임진왜란 당시에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하여 승병 

    을 모집하여 일본을 상대로 크나큰 업적을 이룬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가 주로 머문 사찰로는 변산 월명암(月明庵), 전주 원등사

    (遠燈寺), 대원사(大元寺) 등을 꼽을 수 있다. 

 

    부설거사는 인도의 유마거사(維摩居士), 중국의 방거사(龐居士)와 더불어 세계불교 3대거사라 한다.

    부설거사의 예언중 월명암에서 사성팔현(四聖八賢)과 십이법사(十二法士)가 나온다고 했는데 사성은 부설, 묘화, 등운, 월명등

    부설의 가족 4사람이고 팔현중 성암(誠菴), 행암(行菴), 학명(鶴鳴)스님의 삼현이 이미나왔고 앞으로 5현 십이법사가 더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월명암에는 수도하는 스님들이 많다고 한다.

 

    월명암 범종과 왼쪽으로 쌍선봉..범종사이로 보이는 의상봉

 

    사성선원..옛이름은 봉래선원으로 근대 고승이었던 용성(龍城), 행암(行庵), 소공(蕭空), 고암(古庵), 해안(海眼) 등이 참선 정진한

    도량으로 유명하다.

    월명암은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라고도 해서 저절로 번뇌가 끊어지고 머물렴 도가 저절로 깨운친다는 곳으로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더불어 호남의 3대영지라 불린다.

 

    제4경인 월명무애(月明霧靄). 월명암 대웅전앞마당에서 둥실 떠오르는 밝은 달을 쳐다보는 경치와 일출과 함께 새벽잠을 깬

    온갖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봉우리마다 자욱한 안개와 구름이 춤을 추는 황홀한 비경속으로 하나 둘씩 솟아나는 봉우리들의

    자태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군시설이 있는 의상봉옆 능선을 따라가다 절벽처럼 떨어지다 다시 솟구친 쇠뿔바위가 보인다.

 

               (10:35)명월암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직소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명월암 뒤쪽으로 보이는 봉우리 정상에 낙조대가 있다한다.

 

     월명암에서 400m내려오니 부러진 나무 하나가 길을 가로 막고 있다. 이곳에는 월명암에서 400m오고 직소폭포2.5km표지가 있는데

     그 우측으로 올라서는 길로 가면 낙조대가 나온다. 길이 희미하고 또 이정표도 없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글쓴이도 나중에서야 글을 쓰면서 그곳이 낙조대로 가는 길임을 알 수가 있었다. 쌍선봉삼거리에서 월명암으로 내려서지 않고

     망포대방향으로 가면 낙조대가 있다. S조를 타던 예사랑님 일행이 길을 잃고 직소폭포방향으로 내려서 월명암에 계시는 보살님께

     길을 묻고 있다. 그 보살님은 월명암을 우리랑 나서며 버섯이야기에 대한 친절한 이야기를 컴퓨터처럼 줄줄줄 해 주었다.

     덕분에 버섯에 대한 모르는 이야기도 알게 되어서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

 

    깔대기 무당버섯과 솔버섯..

 

    산 한가운데의 호수..직소저수지와 중계계곡(봉래구곡)으로 이어지는 계곡.

    직소폭포의 물이 흘러 선녀탕을 이루고 그 선녀탕물이 흘러 직소의 검푸른 물이 되며 그 아래 봉래구곡을 타고 흐른다.

   

    6.25동란때인 1952년 봄 남부군의 저자 이태가 전북도당 유격사령부 무선통신과 소속으로 순창회문산에 있을 때 국군 제11사단과

    2개 경찰전투연대가 회문산을 포위하자 사령부를 둘로 나눠 하나는 남덕유산으로 하나는 변산반도의 봉래산으로 탈출을 하는데 

    그 중 이태의 마음속의 연인 박민자(영화 남부군의 최진실分)가 소속된 병원부대가 이쪽 내변산 봉래구곡으로 들어가 산화한 곳이다.

   

    300여명의 빨치산의 원혼이 떠도는 곳..봉래구곡.

    이태(영화 남부군의 안성기分)와 박민자가 이별을 하며 써준 바이런의 시..

   

    그대는 나와 운명을 달리하는 까닭에,

    오직 내마음은 불타오르나 다만,

    그대 가슴엔 평화만이 있으라.

    눈 내리는 날, 섬진강가에서 민자를 보내며 -태가

                                                                         

  

    산전체는 보통산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반면 능가산은 전체가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미끄러지지는 않으나 자잘하게 잘 깨어져

    잘 못디뎌서 넘어지면 뾰족한 돌끝에 다칠수가 있다.

 

              (11:28)파란 하늘색과 짙푸른 바다색을 닮은 닭의장풀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내려서면 자연보호헌장탑이 나온다.

              월명암을 출발하여 2km를 왔다.

 

 

    직소보까지 왔다..직소폭포에서 쏟아져 내려온 이 물줄기는 이 직소보에 모여 봉래구곡을 지나 부안호를 거쳐 바다로 간다.

 

     직소보는 둘레를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어 놓아 산책로로 잘 조성되어 있으며 보의 물속깊이는 그리 깊어보이지는 않는다.

 

    태풍 무이파때 쓰러진 나무가 등산로를 가로막기 일보직전이다.

 

    산자수명(山紫水明) 떠오르는 이름 그대로다.

    직소담 뒤로 보이는 암봉우리가 아마 낙조대가 있는 곳인 것 같다.

    저 위 조망이 터진곳에서 이곳 직소보를 보고 감탄한 것이 수십분전인것 같은데 벌써 직소보에 도착했다. 

    물결에 비치는 하늘과 봉우리가 마치 동화속 풍경같다. 여기서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내변산탐방지원센터(사자동주차장)쪽에서 젊은 청춘들의 데이트와 가족나들이가 토요일 오후가 되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많이들 들어온다..중무장한 우리들의 복장에 비해 청바지에 운동화차림으로 물 한 병 손에 들고 오는 것을 보니 우리들의

              행색이 참 낯설어 보인다.

              여기서 왼쪽으로 선녀탕을 둘러보고 나온뒤 다시 직진하여 직소폭포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선녀탕. 제3폭포라고도 한다.

    선녀와 나뭇꾼에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선녀탕이다..독탕 가족탕 자매탕 유아탕 등 각종 탕 들이 한군데 모여 있다.     

 

    선녀탕은 크게 둘로 나눠진다. 폭포가 떨어지는 독탕^^ 과 그 바로앞의 가족탕 그리고 지금 보는 곳인 자매탕..

    그리고 글쓴이가 있는 곳엔 유아탕이 있다.(이름 붙여준 탕은 정식명칭이 아님을 밝혀둔다.)

 

    선녀탕에서 선녀들이 목욕한 향기로운 물이 직소보로 흘러들어간다.

    물의 맑음이 잔잔한 쟁반위에 흐르는 옥계수같고 수달이라도 살 것 같다.

 

     제2경인 직소폭포(直沼瀑布)..

    장마철도 지나 갈수기에 접어들고 날씨 또한 무더위가 계속되어 출발때부터 혹시라도 물줄기가 가늘어 그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도 기우였다. 선년탕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범상치 않더니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높이가 30m에 이르고 담은 직경이 50m에 이른다 한다.

    변산에 와서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을 보지 않으면 변산을 말하지 말라 했는데 중계계곡(봉래구곡)은 언제나 볼까..

 

     분옥담. 직소폭포가 제1폭포라면 그 다음 두개의 폭포가 더 있는데 이것을 통칭 분옥담이라 한다.

     아마도 담이 두개로 나누어져 있어 붙혀진 이름같다. 인공의 미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 놓은 댐이다.

 

    (12:20)직소폭포를 지나 마땅히 점심먹을 곳을 찾던 중 숲이 우거진 마른계곡에서 막 점심 끝무렵인 A,B조 회원님들을 만났다.

    그러니 우리가 정확히 20여분 정도 뒤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리 느리지 않는 속도에다가 여기저기 들여다 보고 이야기 나누며

    그것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다 보니 6km오는데 20여분 차이가 나는 것이다.

    현미밥에 김치, 고둘빼기, 상추와 고추,오이 그리고 배춧잎에 집된장 그리고 후식으로 복수아와 산머루주..

    이정도면 임금님 수랏상 못지 않은 산중 진수성찬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산머루주를 큰 그릇으로 한 잔(소주잔3잔정도)을 원샷했더니

    기분이 근사해진다. 역시 술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한다.

    육신이 산속에 있으니 그 술은 보약이고 피톤치드향과 같이 마시니 엔돌핀마저 돋는다.

    숲길옆의 계곡은 물의 흐름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것이 여느산과 다름이 없다.  직소폭포와 재백이재의 중간에 있는 

    갈림길에서 만난 정아님과 연인님은 S코스를 타고 막 희미한 길을 뚫고 내려서 우연히 만나 반가움이 교차한다.

 

 

     (13:20)오늘 A B코스와 S코스가 합류하는 지점인 재백이 고개이다.

    월명암에서 갈라서 망포대와 신선봉 능선길을 따라 303봉까지 내려선 S코스 회원님들이 이곳에서 만나 A B코스와 함께 관음봉

    삼거리까지 간 후 관음봉 세봉을 거쳐 내소사주차장으로 도착한다.

    우리는 B코스이길레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로 내려간다.

 

              관음봉삼거리로 오르는길은 짧지만 아주 강력했다.

              0.8K올라서는데 40분이 걸리다 하니 시간당 2.5KM에서 3KM를 가는 평상시 산행속도에 비해 엄청난 업힐코스임을 알수 있다.

              점심때 산머루주를 소주잔으로 세 잔정도를 원샷한 후라서 인지 이 깔딱고개를 넘어서면서 잠이 솟아지고 온몸의 힘이

              나른하게 빠져 무려 10번을 주저앉아 쉬면서 가야 했다. 쉴때마다 너럭바위라도 있으면 잠 한 숨자고 갔으면 참 좋겠단

              생각뿐이었지만 길자체가 뾰족뾰족 솟아난 안산암 덩어리라 어디 등 붙히고 누울 곳도 없다..

 

    (13:50)600M오는데 30분이 걸렸다. 마지막 전망바위로 올라서기에 진이 다 빠져 한참을 쉬었다 올라서야 했다.

 

     이 암릉의 이름은 전망바위라 한다. 관음봉삼거리 올라서기 전에 있는 전방바위에서바라보는 곰소만의 전경과 너머의 고창

     선운산도립공원의 경수산(444m)이다.

 

    우측으로 재백이 고개 277봉을 따라 산능성이를 내려서면 석포리 원암매표소가 나오는 편한 길을 놔두고 이 고행길을 나선 것은

    순전히 내소사때문이다. 원암에서 내소사 주차장까지는 약800여m만 걸어가면 될 정도로 지척에 있으므로 혹시라도 이 코스를

    타는 산악동호회원님들 중 힘들어 포기할 정도면 다시 재백이고개로 내려가 원암매표소로 하산하여 그곳에서 차가 기다리는

    내소사주차장으로 가면 된다.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까지의 내리막길 1.2km도 상당한 주의를 요하는 내리막길이다.

 

    세봉과 관음봉너머로 의상봉이 보인다. 이 산 전체는 변산반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봉우리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지만

    옛날의 이름은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 능가산(楞伽山)이라 불리웠다.

 

    관음봉의 암벽이 여기서 보니 숨이 탁 막힌다..그만큰 지금 체력이 떨어져 저 위로 지나고 있는 A,S코스 님들이 부러울 뿐이다.

 

    (14:03)관음봉삼거리..여기서 A, S조는 관음봉 세봉을 거쳐 내소사 주차장까지 가고 우리 B조는 그대로 내소사방향으로 하산한다.

    내소사까지는 1.2km로 약 50분걸린다고 되어있다.

 

    산중턱에서 바라본 내소사의 모습은 참 단아하게도 생겼다.

 

     (14:46)관음봉삼거리에서 하산하여 내소사입구 전나무숲길까지 내려왔다.

    관음봉삼거리에서 14:05분에 출발하여 1.2km오는데 안내도에는 50분이 걸린다고 되어있는데 10여분을 단축하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었다. 재백이고개에서 관음봉삼거리까지 잃어버린 10분을 여기서 만회하였다.

    내소사 천왕문으로 들어가는 오른쪽 벚꽃나무는 드라마 대장금 촬영장소 이기도 한다.

    천왕문을 가운데로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이 가을이면 빨강 노란색으로 물들어 가을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한다.

   

   내소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다. 사천왕상은 해인사의 탱화와 달리 나무조각으로 되어있다.

   우주의 네곳을 지키는 수호신인 동방지국천, 서방 광목천, 남방증장천, 북방다문천 등 사방의 천왕을 사천왕이라 한다.

 

    탁명종락우죽폭(鐸鳴鐘落又竹幅) 목탁소리 종소리 또한 죽비소리에

    봉비은산철벽외(鳳飛銀山鐵壁外) 봉황은 은살철벽을 넘어 날으네

    약인문아희소식(若人問我喜消息) 내게 기쁜 소식을 누가 묻는가

    회승당리만발공(會僧堂裡滿鉢供) 회승당안의 만발공양이라 하노라

    네기둥의 주련글귀는 해안당큰스님이 백양사에서 ?조린 오도송(悟道頌)이다.

 

    <생사가 여기 있는데 여기엔 생사가 없다.> 는 말로 유명한 내소사의 오늘이 있게한 해안스님은 1974년 74세로 입적한 내소사의

    조실스님이었다. 생전에 인간애가 넘쳐 제자와 신도들에게 더없이 자상했고 편지도 잘썼다고 한다. 해안은 이곳 격포 출생으로

    어려서 내소사에 와서 한학을 공부하던 중 목탁소리와 종소리가 좋아서 머리깎고 중이 되었다고 한다.

    한창 공부하던 시절 백양사의 조실 학명스님께서 "은산철벽을 뚫어라."라는 화두를 받고 용맹정진한 끝에 "철벽은 뚫을 수 없으니

    날아서 넘는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사천왕분을 지나면 오색연등이 불심으로 가득찬 사람이든 아니든 반긴다.

 

    해우소와 해우소안의 모습이지만 실제로 사용하지은 않고 체험용으로 만들어져 있다.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채는 조선시대부터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어온 승방으로 요사채와 더불어 도유형문화재 제125호 지정되어있다.

 

    봉래루 오른쪽에 있는 범종각은 1995년 철산주지스님이 건립했다한다.

    제3경인 소사모종(蘇寺暮鐘). 저녁이면 은은히 울려퍼지는 범종소리가 서해바다의 고깃배까지도 들렸을 것이다.

 

    단청을 하지 않아 더욱 고풍스러워보이는 내소사 봉래루..(구광루라고도 부르며 신도들의 교육장소로 사용된다.)

    이 봉래루를 밑으로 통과하여 계단을 올라서야 대웅전을 볼 수가 있는데 조선시대때 양반들이 말에서 내리지 않고 대웅보전까지

    와서 예불을 올리는 통에 그것을 막기위해 봉래루의 1층 마루를 낮추었다 한다. 

   

   벽안당(碧眼堂)은 회주실(會主室)로 쓰인다 한다.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보눌291호)..오방색(적,청,황,흑,백)으로 단청을 하지 않은 소지단청으로 오히려 더 고풍스럽다.

    백제 무왕34년(633)에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여기에 들어오는 분들은 모든일이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원력

    에 의해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으며 대웅보전은 조선 인조11년(1633년) 청민(靑旻)이 현재의 절을 고쳐지으며 

    지었다 한다.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으며 공예로 가치가 높은 꽃창살무늬 조각과

    독창적인 장식물 등이 유명하고 일반인들이 좀처럼 보기 힘든 내소사영산회괘불탱(來蘇寺靈山會掛佛幀)이 보관되어 있다.

    능가산이란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는 범어에서 나온 이름이다 한다.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좌우협시불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며 불상뒤쪽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白依觀音普薩)이 그려져 있다.

                   법당안의 단청에는 화공이 법당으로 들어가면서 단청을 끝낼때까지 누구도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 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화공이 안나오자 호기심많은 선우스님이 살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공은 없고 오색영롱한

                   새 한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단청을 입히다가 스님을 보더니 단청 한 곳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피를 토하고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관음조(觀音鳥)에 얽힌 전설이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랜세월 단청을 다시 입히지 않아 어느곳이 마무리 안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웅보전앞의 삼층석탑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나 신라 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높이는3.46m이다. 

 

 .

                     대웅전 왼쪽 뒤로 삼성각이 있다.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하여 범접하기가 힘들다.

                     조사당에는 내소사와 관련있는 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시는 곳으로 만허당 경화, 해안당 봉수, 관해당 인주

                     학명당 계종스님의 영정이 모셔있다한다.

 

           백의관음보살상의 온화한 미소와  대웅보전의 창살무늬는 손으로 나무를 깎아 꽃문양을 만든 것으로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와있어 이 절을 들르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나무의 결과 질감을 보이는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한 소지단청(素地丹靑)은 오색단청으로 휘두른 다른 절에 비해 소박함이

           느껴지나 오히려 더 고풍스러운 면도 있다. 이런 소지단청은 구봉산 천황사에서도 본 적이 있다.

        

    이 보종각에 있는 고려범종은 고려 고종9년(1222년)에 만들어져 청림사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원년(1850년)에 이곳 내소사로

    옮겨왔다 한다. 범종이 있는 아랫마당엔 일주문옆의 할머니 당산나무와 부부간이 할아버지 당산나무이다. 수령은 약1000년으로

    높이는 약20m 나무둘레는 7.5m이다.

 

    수령 약150년된 전나무 약 500그루가 500m정도 되는 일주문에서 내소사입구까지 길을 짙은 녹음을 드리운채 피톤치드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이 전나무숲길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다시 복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약150년전 입구가 너무 삭막하다하여 일주문에서

    사천황문까지 전나무를 심었으며 6.25전쟁때에도 절은 피해을 입었지만 이 숲길은 무사했다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과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걸어나오며 장성축령산의 전나무 숲속길의 여운이

    계속 감도는 것은 이 숲에서 나오는 특유의 향때문이다.

 

                   내소사 일주문옆으로는 700년된 할아버지 당사나무가 있어 내소사의 할머니 당산나무와 더불어 안팎에서 내소사를

                   지키고 있다 한다.

 

    (15:10)내소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세봉과 관음봉..

    주차장까지 하산시간이 15:30분인데 모두들 낙오없이 15:15분정도에 다 내려왔다.

    상서면에 있는 개암고적(開巖古蹟)과 채석강에 있는 채석범주(彩石帆舟), 줄포에서 시작하여 곰소앞바다까지의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인 웅연조대(熊淵釣臺)를 제외하고 변산5경을 다 봤다.

    이제 변산6경인 채석범주로 간다....가는 길에 부안댐입구에 있는 변산온천에 들러 땀으로 젖은 온 몸을 씻어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는다.

 

   격포항. 조선시대 수군인 전라우수영관하의 격포진이 있던 곳.(삼성갤럭시S2촬영)

   2년전에 와 봤을 때만 해도 격포항 다기능어항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아주 말끔히 공사가 완료되어 전혀 다른 곳에 온 것 같다.

   맨우측엔 안보전시관으로 6.25때 쓰던 미군상륙함, 전투기, 수송기, 미사일 등 안보시설이 설치되어있다.

   산악회일행은 이곳 격포에서 푸짐한 회로 저녁 뒷풀이를 한다.

   그 상을 차리는 준비시간동안 채석강을 끼고 방파제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물결이야기란 조각가 김봉철의 작품도 있고 소형 풍력발전기도 돌아간다.(사진:홍정)

 

    제6경 채석범주(彩石帆舟).

    채석강의 지층은 선캄브리아대(지구탄생부터 생물이 출현한 5억4천만년까지 지구역사의 약86%를 차지하는시기)의 화강암과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이 아름다운 지형을 돌아 건너편으로 변산해수욕장까지가 채석강이다.

    중국 당나라때 시인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과 비슷하게 생겨 붙혀진 이름이라

    한다. 지금 보이는 해식동이 있는 절벽이 닭이봉으로 꼭대기에는 팔각정이 있어 위도와 칠산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한다.

    대명리조트를 끼고 또 돌아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나온다.(사진:홍정)

 

    석양을 바라보며 방파제의 끝에 있는 등대까지 걸어가는 방파제 아래는 낚시꾼들의 천국이다.(사진:홍정)

 

                  방파제 왼쪽은 빨간등대 오른쪽은 하얀등대다..(사진:홍정)

 

                  방파제길엔 좌우로 벤치가 있어 서해바다도 조망하고 격포항도 조망할 수 있다.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을 받으면서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없어 양산과 모자는 필수다.(사진:홍정)

 

                  테트라포트(일명 삼발이)하나의 무게는 5톤에서 100톤까지 이른다.

        최근 태풍 무이파가 상륙했을 때 흑산도 가거도항의 방파제의 절반가까이가 반파되면서 이 집채만한 삼발이가

        도로위까지 올라왔다.

        자연의 힘은 인간이 최고의 기술력으로 구축해 놓은 방파제까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사진:홍정)

  

    방파제 안의 물결은 잔잔하지만 이 방파제만 나가면 파도의 높이가 1~3m나 된다 하니 항구의 안전을 책임져 주는 방파제의 역할은

    달리 설명안해도 모두 알고있다.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시절의 부모품이나 어려울 때 가족의 품은 방파제와 같다.

    훌륭하게 자라 우리사회의 빛나는 이름으로 자랄때까지, 고통의 시기를 지나 다시 사회구성원의 한 자리를 지켜 나갈때까지 부모와  

    가정은 방파제처럼 거센 태풍으로 이는 파도로 부터 안전하게 우리의 자녀와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사진:홍정)

 

    왼쪽사진은 2007년 여름에 찍은 줄포앞바다에서부터 격포까지 오는 길중에 곰소만을 지나 모항해수욕장앞으로 조망되는

    서해바다를 찍은 것으로 변산8경중 제1경 웅연조대(熊淵釣臺)에 해당하는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울금바위를 배경으로 개암사 대웅전을 찍은 사진으로 제8경인 개암고적(開巖古蹟)이다. 

 

    오늘 남여치에서 출발하여 내소사로 이어지는 변산5경에 대한 이야기와 나머지 변산3경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쉼없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어 질 것이다.

    하지만 격포로 가는 해안도로를 수십번 다녀가면서도 내변산의 산길은 오늘이 처음이라 사전 준비를 충분히 했음에도

    낙조대를 놓친것은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진묵대사가 도를 닦은 낙조대의 모습은 가히 일출동해낙산 일몰서해월명이라 할 정도로 유명했거늘

    가까운 훗날 조망이 좋은 날을 택해 봉래구곡과 실상사터를 지나 월명암에 오르며 꼭 다시 찾기를 기약해본다.

 

 

 

 

simpro의 길(路) 이야기

simpro의 프로야구 이야기

simpro의 세상사는 이야기

 

 

  

  ↓ 재밌게 보셨다면 로그인이 필요없는 view on 꾹 눌러서 추천과 구독을 해 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꼭 눌러주세요^_^ 

>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12.11.05 16:29

    첫댓글 담 산행지 내변산의 모든것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읽어 보시고 산행을 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12.11.11 15:40

    수고 마니하셨읍니다. 감사 또 감사~~~~~~~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