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며 더위를 잊기 위해 찾아가는 시원한 바닷가. 우리들에게는 여름철 대표적인 피서지로 여겨지는 곳이지만, 생물들에게 이곳은 사시사철 끊임없이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불고, 땅이 항상 메말라 있는 열악한 환경을 가진 곳이다. 특히 여름철에 내리쬐는 햇볕은 모래알을 뜨겁게 달구어 이곳에서는 어떤 생물도 살아갈 수 없을 듯해 보인다. 바닷가는 이처럼 소금기가 많고 건조하고 뜨거워, 동물에 비해 환경에 곧잘 적응하는 식물들조차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 바닷가에도 수많은 식물이 살고 있으며, 여름이 되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봄이 가고 초여름이 찾아오자마자 갯메꽃, 갯까치수염, 사수채송화, 벌노랑이, 갯완두, 갯방풍 등이 꽃을 활짝 피워 바닷가를 화려하게 수놓기 시작한다.
이 식물들은 어떻게 소금기 많고 수분은 적은 바닷가에서 살 수 있을까? 바닷가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이곳 식물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특별하게 적응해 왔다. 즉, 자신의 세포 속에 소금기가 많이 축적되어도 살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세포 속에 소금기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물을 쉽게 흡수 할 수도 있는데, 세포 안의 삼투압값이 높아서 세포 밖에서 물을 잘 받아들일 수 있다. 퉁퉁마디, 칠면초, 나문재, 방석나물, 수송나물 등이 이런 기능을 잘 보여주는 식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을 ‘염생식물(鹽生植物)’이라고 부른다.
염생식물들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먼저 계절에 따라 색깔을 달리한다. 산에 자라는 나무들이 가을에 보여주는 알록달록한 단풍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꼭 가을에만 일어나지 않는다. 나문재, 칠면초, 해홍나물, 수송나물 등 바닷가에 자라는 풀들은 여름에도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다음은 통통한 잎과 줄기를 가졌다는 특징이다. 땅채송화, 퉁퉁마디, 낚시돌풀, 번행초, 문주란, 선인장 등이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퉁퉁마디는 줄기 마디가 불룩불룩 튀어나와서 ‘퉁퉁마디’라는 우리말이름을 얻은 식물로서 잎이 비늘 모양으로 퇴화해 버린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들을 바닷가에 자라는 ‘다육식물(多肉植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육식물처럼 잎이 퉁퉁하기까지는 않더라도 많은 바닷가 식물들은 잎이 두꺼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식물로는 해국, 참골무꽃, 갯메꽃, 모래지치, 갯기름나물, 섬현삼, 돌가시나무 등이 있다. 또한, 바닷가에는 윤기가 나는 잎을 가진 식물들도 많은데 통보리사초, 갯메꽃, 갯까치수염, 갯방풍 등이 그것이다.
바닷가는 바람이 심한 곳이다. 따라서, 바닷가에 자라는 연약한 풀과 작은 나무들은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바닷가 식물을 관찰할 때, 이들 식물이 어떤 방법으로 바람에 견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순비기나무, 갯금불초, 갯메꽃, 갯방풍, 갯씀바귀, 모래지치, 통보리사초, 천일사초 등은 줄기와 잎을 모래땅에 묻는 방법으로 바람을 이겨낸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난 후에 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줄기와 잎의 일부를 모래에 파묻고 있었던 이들이 바람에 날아온 모래로 완전히 덮이기 때문이다. 갯메꽃은 땅 위에서는 보통의 줄기가 기어 자라고, 모래땅 속에서는 하얀 땅속줄기가 길게 뻗음으로써 바람에 끄덕도 하지 않는다. 갯완두는 잎 끝 부분에 덩굴손을 발달시켜 다른 물체를 단단히 붙잡는 방법을 택했다.
바닷가에 자라는 식물 중에는 이름이 재미있는 것이 많다. 이름에‘갯’자가 붙은 것이 많은데,‘갯’은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의미하는 ‘개’에서 온 것으로 갯마을, 갯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갯메꽃, 갯씀바귀 등 위에서 얘기한 것들 외에도 갯강아지풀, 갯개미자리, 갯개미취, 갯고들빼기, 갯괴불주머니, 갯금불초, 갯무, 갯잔디, 갯취, 갯활량나물 등 60여 종류나 된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염생식물 120여 종류 중에서 절반쯤에‘갯’자가 붙은 셈이다.
남해안, 동해안, 서해안에 자라는 바닷가 식물들은 각각 그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 남해안에는 겨울철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식물들이 여러 종류 자란다. 낚시돌풀, 문주란, 선인장, 암대극, 갯강활, 갯금불초 등은 제주도와 남해안 바닷가에서만 볼 수 있다. 동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염생식물로는 앵초과의 갯봄맞이를 꼽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동해바다에 자리 잡은 울릉도는 따뜻한 곳이 고향인 식물과 추운 곳을 고향으로 둔 식물이 함께 자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안선 대부분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이곳에도 바닷가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데 여름철에 볼 수 있는 섬기린초, 섬현삼 등은 이곳에만 자라는 것이어서 특별하다.
중부 지방 아래쪽의 어느 해안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식물들도 있는데, 갯기름나물, 갯까치수염, 갯메꽃, 갯방풍, 갯씀바귀, 갯완두, 갯잔디, 모래지치, 참골무꽃, 통보리사초, 퉁퉁마디, 해국, 해당화, 해란초 등이 그것이다. 갯기름나물, 갯메꽃, 참골무꽃, 통보리사초, 해당화 등은 더욱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바닷가 식물이다.
바닷가는 이용가치가 높기 때문에 훼손압력이 높은 곳이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숲을 이루는 깊은 산골짜기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개발 바람을 더욱 쉽게 탄다. 하지만 바닷가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독특한 환경에 적응해 온 염생식물들이 살고 있다. 이런 식물들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데 한 몫을 톡톡히 하는 것들이지만, 각종 해안개발 때문에 생육지 자체가 파괴되어 설 곳을 잃고 있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