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지정학'
1970년 오일쇼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 중동(사우디 페트로달러 밀약)
2000년 셰일오일 개발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 아시아 피봇
그리고 중동의 석유, 천연가스 생산과 수니파(쿠란의 경전 후계자를 따르는 사람들, 90% 종주국 사우디 아라비아), 시아파(무함마드의 친족, 이븐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 10% 종주국 이란 + 이라크, 바레인)의 주도권 싸움.
현재 전세계 하루 석유 소비량 - 1억배럴이 넘음.
전세계 석유 생산량 순위
2021년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 - 에너지 지정학의 불가피한 결과
대한민국
- 에너지 지정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 '중국, 일본' 그리고 에너지를 많이 생산하는 '미국, 러시아' 사이에 끼어있는 나라.
- 에너지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동의 지정학
중동의 정세, 세계 에너지 시장의 정치, 유전 탐구
- OPEC 카르텔
- OPEC +(OPEC + 러시아 등)
- 수니파(90%, 사우디 아라비아, 수나를 따르는 사람들),
시아파(10%, 이란, 이라크, 무함마드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
- 932년 무함마드 사후 후계를 둘러싼 갈등의 시작
- 쪽수가 많은 수니파 3대 칼리프 차지, 무함마드 혈족 이븐 알리가 절치부심 4대 칼리프 차지. 곧바로 이븐 알리 독살
- 시아파와 수니파 '카르발라 전투'
참고) 칼리프 - 이슬람 종교 최고지도자
- 시아파의 승리, 수니파는 이란과 이라크 산악지대로 쫒겨남.
- 이후 수니파는 이슬람의 주류가 되었고, 양 세력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됨.
- 이란은 시아파가 90~95%, 이라크는 70%(사담 후세인은 수니파), 바레인은 65~75%
- 분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시리아 수니파 75%, 하지만 소수인 시아파 '알 아사드 정권'이 장기통치를 하면서 갈등
아사드 정권에 반기를 든 시리아 반군은 모두 '수니파 무장조직(사우디의 지원)'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은 '시리아 지원'
-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지만, 소수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아파 탄압, 극심한 정치적 혼란.
- 걸프전으로 후세인 제거후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고, 수니파를 탄압하자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의해 탄압받던 수니파 무장세력과 연합해 만든 세력이 바로 'IS'
쿠르드족(수니파) - 쿠르드 자치정부 KRG
- 중동 유전지대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3500만명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움직임.
-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이 붙어있는 국경지대
- 이라크 원유생산의 30~40%를 차지하고 있는 KRG 자치정부(쿠르드 자치정부)
- KRG는 독립을 원하고 있지만 이라크는?
2017년 10월 뉴스
이란 혁명이후 중동의 혼란
-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 1925년 이란을 통치하던 팔레비 왕조, 석유채굴권을 영국에 넘기고 서방의 지원으로 왕권강화, 근대화 추진
- 이란 이슬람 세력들의 큰 반발. 1951년 석유국유화와 이슬람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메드 모사데크 정권을 잡음. 팔레비 왕조는 미국, 영국의 도움으로 군사 구테타를 일으켜 권력 재 장악. 이슬람 민족주의자 호메이니 시위주도, 팔레비정권 무너짐. 이후 반미, 미국의 이란 제제 시작.
- 당시 이라크를 통치하던 소수 수니파 정권(사담 후세인)은 1980년 시아파 이란 호메이니를 침공. 8년간 지속된 전쟁.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하는 등 적대적 관계였지만 이슬람 신정체제의 확산방지를 위해 사담 후세인 이라크를 군사지원. 유엔의 중재로 휴전협정.
- 때마침 중동 석유의 가격은 배럴당 20달러로 하락.
- 쿠웨이트, 사우디가 석유 생산량을 늘리면서 화가난 이라크는 이라크 국경지대의 석유를 채굴하는 쿠웨이트를 향해 자신의 석유를 도둑질하고 있다며.. 쿠웨이트를 침공, 유전지대를 접수하고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공표.
-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사우디가 위협을 느끼고, 사우디의 우방인 미국(부시 대통령)은 1991년 '사막의 폭풍작전' 2개월만에 후세인 항복.
- 이라크군은 쿠웨이트 철수하면서 유정에 불을 질렀고, 진화하는데 9개월 걸림. 유가는 17달러에서 30달러를 넘어섬.
걸프전 결과 - 지하드
- 사우디에 불경한 미국 군인들이 집결하여 수니파 후세인을 제거하는 것을 본 '이슬람 근본주의자'세력들은 미국에 대한 성전 ' 지하드'를 준비.
- 2001년 9.11 테러.
- 2003년 사담 후세인 제거
수니파의 맏형 '사우디 아라비아'의 고민
- 서쪽지역은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등 모두 수니파가 절대 다수이고, 수니파 정권
- 문제는 동북쪽에는 시아파 70%인 이라크와 국경
페르시아 만 앞에는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버티고 있음.
북쪽에는 언제나 골치아픈 시리아(수니파가 다수지만 시아파인 아사드가 집권)
남동쪽 다리로 연결된 섬나라 바레인은 인구 65~75%가 시아파(현재 수니파가 집권 중)
남쪽 예맨은 시아파가 50%이고 이들 반군이 수니파 정권을 위협중
-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
사우디가 미국과 강력한 군사동맹을 맺고 이란 제재에 동참한 것, 페트로 달러에 동의한 것도 이 때문임.
2023년 중국 왕이의 중재로 사우디와 이란 화해
미국-이란 핵협상 타결
- 2015년 7월 이란 핵협상 타결은 사우디에게 큰 충격
- 1970년대 사우디와 이란의 석유 생산량은 380만 배럴/1day로 비슷했었음.
이란은 감산을 해서 산유국의 힘을 보여주자는 태도
사우디는 가격보다는 물량에 중점을 두면서 산유량을 늘리는 태도.
- 1976년 키신저 사우디 방문. 합의. 사우디는 미국에게 안정적 원유공급, 원유거래를 미국달러로 결제, 원유를 판매해 취득한 달러는 미국 국채에 재투자. 대신 미국은 사우디의 불안한 안보를 책임.
- 브레튼 우즈 협정파기 후 달러투매와 유가급등으로 추락하던 미국을 살린 결정적 합의였음.
- 이후 미국은 이란을 제재.
- 1980년 이후 사우디의 석유 생산량은 1천만 배럴, 이란의 생산량은 100만 배럴로 쪼그라 듬.
- 2015년 핵 협상이후 이란은 산유량을 늘려 제재 전 수준인 400만배럴까지 올렸지만 1천만배럴의 사우디를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
- 2014년 유가 폭락 사태
- 사우디가 생산량을 늘려 유가 하락 전쟁을 벌임. 이유는 이란과 아사드 정권을 도와주는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의도.
- 이렇게 중동에서 수니파아 시아파의 갈등은 생각보다 깊고 질김.
수니파(사우디), 시아파(이란) 사이에 낀 세계 최대 LNG 수출국
- 카타르...
- 사우디는 다른 수니파 국가들과 연합해 세계 최대 LNG 수출국 카타르에 제재를 가하는 중
2017년 사우디는 수니파 국가들을 규합하여 카타르와 단교조치
UAE, 바레인, 예멘, 이집트, 몰디브, 리비아, 요르단과 함께
이란 핵협상을 깨버린 트럼프의 지지와 함께
- 카타르 인구 31만명, 면적은 사우디의 0.5%에 불과한 작은 나라.
하지만 1995년 천연가스 시설을 현대화.... 1인당 국민소득 9만달러를 넘어섬.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
- 진주조개나 캐던 카타르가 중동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자 사우디는 움찔함.
- 2013년 카타르 하마드 국왕은 61세가 되던 해, 아들 타민에게 왕좌를 넘김. 다른 중동국가에서는 처음 있는 일.
타밈은 33세 젊은 국왕으로 영국유학의 경험을 살려 실용외교를 펼침.
무슬람 형제단, 이란, 심지어 이스라엘과도 경제교류를 함.
- 이유는 카타르와 이란이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방지, 이란의 고립을 위해서..
이스라엘 천연가스 대박
- 2009년, 2013년 이스라엘에서 잇따라 천연가스 유전이 발견.
- 중동에서 미국이 서서히 발을 빼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유전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
시리아 내전
- 가스관을 둘러싼 종파간의 분쟁
유가의 정치학 4차례 석유파동
- 1973년 중동전쟁, 이슬람 산유국들의 원유수출 금지조치.... 1차 오일 쇼크 2달러에서 12달러.
- 1978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 원유수출 중단... 2차 오일 쇼크 30달러... 소련-아프가니스탄 침공... 40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