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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끝나버린 가자미 경매를 구경한 여행자들이 찾는 곳은 항구 앞 활어 직판장. 조금 전 배에서 내린 참가자미 중 절반쯤은 이곳으로 온다. 참가자미를 선두로 도다리와 이시가리, 광어 등 비슷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빨간 함지박에 담겼다. 참가자미는 도다리에 비해 몸통이 날씬하고 주둥이가 심술 맞게 불쑥 튀어나왔다. 몸 색깔은 붉은 기가 살짝 돈다.
“아이고, 이 싱싱한 걸 쪼리 묵나! 아깝데이~.” 참가자미를 손질해주던 아줌마가 혀를 차며 잔소리다. 펄떡펄떡 살아있는 놈을 조린다니 상인 아줌마가 아까워하는 것이다. 어른 손바닥만 한 가자미가 도마 위에서 이리저리 용쓴다. 커다란 칼로 머리를 툭 치고 등과 배 부분의 지느러미를 손질하고는 구이용은 머리를 놔두고 조림용은 크게 토막 낸다. 무 툭툭 썰어 넣고 얼큰하게 양념해 조리거나 밀가루 살짝 입혀 기름에 지져 먹거나 미역국에 넣어 먹어도 맛나다.
꾸덕꾸덕 말린 가자미도 있다. 말린 것을 사다가 조려 먹고 튀겨 먹어도 좋다. 물론 뭐니 뭐니 해도 울산 사람들은 봄의 참가자미를 최고의 횟감으로 친다. 참가자미는 양식이 되지 않아 무조건 자연산이다. 등뼈만 추려내고 뼈째 썰어 먹으면 쫄깃하고 오도독 씹는 맛도 남다르다. 싱싱한 가자미회는 맛이 달다. 활어 직판장 인근에 초장집이 대거 몰려 있다. 직판장에서 횟감을 골라 회를 떠서 가져가면 상을 차려주고 매운탕을 끓여준다.
1년 365일 꺼지지 않는 산업단지의 거대한 불빛에도 가려지지 않는 울산의 매력을 찾아 나선다. 그 시작은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변 대숲이다. 태화강 전망대 아래에서 대나무 줄배를 타고 강을 건너 대숲으로 들어선다. 동시에 짙은 대나무 향기가 훅 끼친다. 신선한 댓잎의 향기가 정말 좋아 절로 크게 숨을 쉰다. 달고 시원한 그 향기는 아주 오랫동안 진하게 주위에 머물러 있었다.
간결하고 강건한 모습으로 숲을 이루고 있던 대나무 숲은 십리에 걸쳐 뻗었다. 강 건너에서 봤을 때 대숲은 마치 뭉게뭉게 피어오른 초록 구름처럼 보였다. 하늘을 가리듯 자란 대나무숲 속은 걷는 길 말고는 온통 초록이다. 단정하게 길을 낸 숲속에서 춤추듯 사뿐하게 걷다가 찌르릉 소리 내며 지나는 자전거 탄 청년과 인사를 나눴다. 숲 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바람은 먼 데서 들리는 파도와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불필요한 도시의 소음을 막아주었다.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평온함과 고요함, 안락함을 그곳에서 느꼈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그곳에서 나와 다시 줄배를 타고 전망대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태화강의 지난 아픈 역사를 알게 됐다.
성급한 산업화에 온통 상처투성이의 태화강이 되살아나 다시금 도시의 푸른 심장부를 지나 동해로 흘러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시가 품은 초록 숲의 아름다움에 취했다면 울산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장생포 앞바다로 떠나는 고래투어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이미 매진이란다. 아쉬움을 장생포 고래박물관과 생태체험관에 들러 달래고는 대왕암으로 간다.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지아비를 따라 나라를 지키는 ‘용’으로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이곳은 동해안에서 손꼽히는 절경으로도 유명하다. 입구에서 울기등대를 거쳐 곧바로 대왕암으로 가는 직선 코스가 짧고 편하긴 하지만 비경은 일산해변을 마주하고 걷는 A코스에 죄다 숨어 있다. 솔숲과 자갈밭, 바윗길을 쉴 새 없이 넘나들며 대왕암까지 가다 보면 순간순간 숨이 탁 막히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바람에 떠밀려 순식간에 밀려왔다 사라지는 해무, 은빛 모래 반짝이는 해변과 옛날 숭어 잡이를 할 때 망을 봤다는 절벽 ‘수루방’, 그리고 벼랑 끝 날 선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강태공까지 한 폭의 그림이다.
대왕암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남목, 주전해변, 정자항을 거쳐 강동해변까지 이어지는 드라이브도 괜찮다. 특히 주전해변에서 강동해변으로 이어지는 몽돌해변은 아름답기로 이름났다. 다만 강동해변의 몽돌은 꽤 많이 유실된 상태라 아쉽다. 주전해변 몽돌밭 위에 쪼그리고 앉아 살그머니 귀를 기울었더니 자글자글, 파도가 몽돌에 감기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언양에서는 울산이 품은 보물을 만났다. 울주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가 그것이다. 마치 동강 어라연의 축소판처럼 생긴 대곡천의 반구대에 암각화가 숨겨져 있다. 호젓한 숲길을 따라 약 600m 쯤 걸어 들어가면 강 건너 수직의 평평한 바위에 새겨진 그림이 나타난다. 거리가 있어 망원경으로 들여다봐야 하는데, 신석기 말부터 청동기 사이에 그려진 것들로 추정되는 300여 점의 그림들이 남아 있다. 고래와 거북이, 물고기, 가마우지 등의 바다동물과 사슴, 멧돼지, 호랑이, 여우, 늑대 등 동물 그림이 대부분이다. 암각화에는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 들어 있어 그 옛날에도 울산 바다에서 고래잡이 문화가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아쉬움은 인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에서 달랠 수 있다. 선사시대의 조각인 마름모, 중첩동그라미, 우렁무늬, 물결무늬 등 몬드리안이 울고 갈 만한 기하학적 무늬의 향연을 바로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반구대에 들르기 전 진입로 입구의 울산 암각화박물관에 들러보면 도움이 된다. 울산 봄 여행의 종점은 삼남면의 작괘천이다. 마치 술잔을 주렁주렁 걸어 놓은 듯해 이름 붙은 계곡인데 울산 시민들의 여름 피서지이기도 하다. 봄이면 1km가 넘는 진입로에 50년생 벚꽃이 터널을 이루는 것으로 가을이면 붉은 치맛자락 휘날리듯 아찔한 단풍의 향연으로 이름 높다.
2009년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검은색 단발머리에 새침한 이미지의 하재경에서 KBS의 ‘빅’, SBS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등에서 특유의 톡톡 튀는 이미지로 연기 내공을 쌓아온 배우 이민정. 한창 달콤한 신혼 생활에 푹 빠져 있어야 할 ‘새댁’ 이민정이 ‘돌싱녀’가 되어 안방장에 돌아왔다. 2월 27일 첫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에서 이혼 후 성공한 벤처 사업가가 되어 나타난 전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회사에 입사하는 여주인공 나애라 역을 맡았다. 2013년 8월 이병헌과 결혼한 지 7개월 만의 복귀작. 데뷔 후 처음 도전하는 이혼녀 캐릭터다.
최근 ‘앙큼한 돌싱녀’의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이민정은 여전히 상큼하고 발랄했다. 결혼이 주는 여유로움이 더해져 성숙한 아름다움까지 느껴졌다. 여기엔 평소 자기 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한 남편 이병헌의 영향도 있었다. 남편의 식단에 맞추다 보니 자신도 건강식을 즐기게 됐다는 것. 덕분에 군살도 빠지고 건강도 훨씬 좋아졌다고 소속사 관계자가 귀띔한다. 결혼 후에도 여전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이민정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실제로는 살이 아주 많이 빠지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젖살이 빠진 것 같은데. 이젠 젖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네요.(웃음) 이병헌 씨는 영화 촬영할 때는 몸 관리에 굉장히 철저하지만, 평소엔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요. 대신 식단은 꾸준히 챙기는 편이죠.”
이민정은 결혼으로 인해 감성이 한층 풍부해졌다고 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경험이 생기면서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를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젠 연기를 할 때 경험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어요. 아기를 낳은 여자들은 감정이 10배쯤 풍부해진다고 하잖아요. 저도 결혼 전 혼자였을 때보다는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이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결혼이 연기에 도움이 됐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결혼한 상황에서 이혼녀 캐릭터는 꽤나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결혼으로 캐릭터에 제약을 받을까 우려해 오히려 싱글 캐릭터를 선택하는 여느 기혼 여배우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다. 하지만 이민정은 캐릭터가 기혼이냐 미혼이냐 여부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로지 시놉시스와 대본만 보고 흥미를 느껴 이 작품을 선택했다.
“헤어졌던 연인들이 다시 만나 새로운 감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도 많지만, 이혼한 부부가 다시 만난 후에는 또 어떤 색다른 재미가 있을까 궁금했어요. 헤어져 있던 기간 서로 많이 달려져 있을 테니까요. 이전에 출연했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와는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많이 다르기도 하고요.
이혼녀라고는 해도 사실상 현재는 미혼 상태이기도 하잖아요.(웃음) 이 드라마엔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니라 가족 이야기 나와요.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앙큼한 돌싱녀’에서 이민정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며 고군분투한다. 시쳇말로 제대로 망가졌다. 극 중에서 ‘짝’을 패러디한 맞선 프로그램 ‘짝꿍’에 나갔다가 남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혼자 도시락을 먹는 장면이나, 술에 잔뜩 취해서는 다른 손님과 시비가 붙어 경찰에 연행된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안기며 화제에 올랐다.
“초반에는 전개가 꽤나 스펙터클하죠. 때리고 부수고 내려치는 장면을 연기할 때 저도 모르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웃음) 저도 차분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데 말이죠. 한밤중에 비를 맞으며 길을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촬영하던 날 날씨가 영하 12도였어요. 비를 맞자마자 머리카락이 고드름처럼 얼어붙더라고요,”
극중 나애라의 전 남편 차정우 역은 주상욱이 맡았다. 차정우는 벤처 사업을 하겠다며 기술직 공무원을 그만둔 후 무수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사업가로 성공한다.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을 지닌 주상욱은 이 작품에서 사장으로 ‘승진 아닌 승진’을 했다. 이민정과 주상욱은 7년 전 드라마 ‘깍두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어 한결 편하게 연기하고 있다.
“주상욱 씨와는 예전에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었고, 막 연기를 시작했을 때 작품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어서 친해요. 성격도 무척 좋으시죠. ‘굿닥터’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제 결혼식에 와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런데 신부 대기실에서 자기 머리 손질이 잘됐나 하면서 거울을 보고 가시던데요. (웃음) 이렇게 작품으로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네요.”
‘앙큼한 돌싱녀’는 전작 ‘미스코리아’가 2014 소치동계올림픽 중계방송으로 1회 결방된 탓에 목요일에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SBS ‘별에서 온 그대’ 마지막 방송과 맞붙은 탓에 전국 시청률 5.4%(닐슨코리아)로 출발했다.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운 성적표다.
“지난해 출연했던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이 목요일에 방송을 시작했어요. 수목드라마인데도 수요일이 아닌 목요일에 방송을 시작하는 경험을 하기가 참 쉽지 않죠. 그런데 저는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예요. ‘별에서 온 그대’ 마지막 방송과 겹친 것보다 목요일에 방송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더 컸어요. 시청자들이 저희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속 이어서 봐주셔야 할 텐데 하고요.”
하지만 이민정의 걱정은 어쩌면 기우였을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야금야금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1회에 이어 같은 날 연속 방송된 2회는 시청률 6.4%로 소폭 올랐고, 3회에선 10.3%를 기록하며 단숨에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6회까지 시청률은 8~9% 수준. 이민정의 거침없는 활약과 재기발랄한 극 전개가 시청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있다.
이민정은 나애라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당부했다. 남편의 일이 안 풀릴 때는 이혼하더니, 뒤늦게 성공하자 다시 나타나서 그를 꼬시려는 캐릭터로 비칠까 우려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계속 본다면 그런 오해는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나애라가 남편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결혼은 결국 서로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 아닌가요? 극이 중반으로 가면서 나애라와 차정우 사이에 쌓인 오해가 풀려가는데, 그 과정이 무척 재미있게 펼쳐질 거예요.”
만약에 남편인 이병헌이 극 중 남편 차정우처럼 사업을 하겠다면서 연기활동을 은퇴하겠다고 한다면 이민정은 어떨까?
“나애라는 고깃집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했어요. 저였어도 남편을 돕지 않았을까요? 하하.”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힘들어요. 특히 제 옆자리 직장동료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자신감이 없어지고 우울감만 커져요.”
30대 중반, 한 직장 남성의 고백이다.
우울감이란 감정이다. 그러한 감정은 어느 날 뜬금없이 갑자기 찾아오는듯 싶지만, 그 감정에는 반드시 선행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곧 잘못된 생각이다. 무엇이 잘못된 생각인가.
이는 곧 ‘나만 불행하고 나만 운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자라나면 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따르고 우울증으로 번진다.
우울증을 비롯한 모든 병증의 치료법에는 본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증상 완화를 위한 대증치료이고 또 하나는 원인 해소를 위한 근본치료다. 둘 다 필요하다. 먼저 급한 불을 끈 다음,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 그래서 약도 필요하고 각종 요법도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근본치료, 즉 자기수양의 마음공부로 나아가야 한다.
마음공부란 착각과 무지로부터 헤어나는 과정이다. 잘못 아는 것이 착각이고, 아예 모르는 게 무지다. 착각과 무지가 내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면서 사람들과 다투고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절충보다는 공격과 고집이 앞서고 사는 게 힘들어진다.
모든 게 부담스럽다. 사람들도, 일도, 미래도.
맹자는 “마음공부의 방법은 별 게 없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것일 뿐(學文之道 無他求其放心而己矣)”이라고 말했다.
무지와 착각에서 벗어나면 흐트러진 마음이 잡힌다.
“그 우울감은 내 인생의 달동네를 거부해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내 인생의 달동네라뇨?”
“내 뜻대로 되는 세상이 해동네고, 그렇지 않은 세상이 달동네죠. 그냥 둘 다 존재하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해동네와 달동네가 있지요. 내 인생의 해동네만 좇고 달동네를 거부할 때, 세상과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는거죠.”
“그래서 직장동료와의 관계도 어려운가요?”
“그렇지요. 직장동료와의 문제는 곧 자기 자신의 문제예요. 내 인생의 달동네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나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고, 남들 역시 그렇게 보리라는 선입견이 타인들을 대하는 데 어렵게 하죠. 그건 자기만의 착각이죠. 내가 내 인생의 달동네를 사랑하면, 남이 어떻게 대하든, 심지어 비방하고 원망하며 나를 오해하더라도 개의치 않게 돼요.”
“그럼 어떻게 내 인생의 달동네를 받아들이죠?”
“내 인생의 달동네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거예요. 즉, ‘그럴 수 있다’라고 여기고 이를 감수하는 거예요. 그럼 확 달라져요. 세상이 부담스럽지 않고 사람들도 편하게 다가오지요.”
전시체제나 노예생활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느끼는 삶의 압박감은 그저 내 생각이 만들어낸 실체가 없는 악몽이기 쉽다. 눈을 뜬 채로 꿈을 꾸는 것. 단지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만으로 모든 괴로움에서 해방된다. 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열쇠는 ‘해동네이어야만 한다’라는 경직된 생각에서 ‘해동네도 좋지만, 달동네도 괜찮다’라는 유연한 사고로의 전환이다.
전자는 착각과 무지로부터 시작되는 강박 심리이고, 후자는 바짝 깨어 있는 유연한 사고다.
특정인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고 분노를 품은 40대 후반의 한 여성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요? 난 결코 용서하지 않아요. 내가 입은 모욕감을 잊을 수 없어요. 반드시 철저히 복수할 거예요.”
그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감정이 올라오는 대로만 살아간다면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이 없다. 이성적인 생각을 해야 사람다운 사람이다. 무엇이 이성적인가. 한 번 더 헤아려서 좋지 않은 감정을 극복할 줄 아는 것, 바로 달동네 인정에서 시작된다.
“나를 위해서 그를 용서하고, 나를 위해서 내 삶의 달동네를 사랑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래야 내가 평화로워지고, 그렇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진정한 복수니까요.”
내 마음의 평화는 내 생활의 즐거움과 내 삶의 행복을 위한 기초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내 인생의 책임이며, 사명이다.
달동네를 인정하면 사람과 현실에 대한 불만을 멈출 수 있게 되고 멋진 인격자로 변모한다.
5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상담을 요청했다.
“저와 친구가 부동산 투자를 했는데, 친구는 성공해서 20억 원을 벌었고 저는 거의 제자리예요. 화병이 나서 삶의 의욕을 잃을 정도예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뭔지 알겠어요.”
“친구로부터 20억 원 중에 백만 원이라도 받았나요?”
“아뇨.”
“그렇다면 친구 돈 20억 원은 본인과 전혀 무관한 거예요. 내가 마음껏 쓸 수 있는 주머니 속의 백 원보다도 못한 게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부럽고 억울하고 제가 바보 같기도 하고요.”
“친구의 성공과 행복을 인정할 수는 없을까요?”
“인정하려니 참 배가 아프네요.”
“반대일 수 있어요. 인정하지 못해서 배가 아픈 거예요.”
친구가 많은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타인의 해동네를 부정하는 것이다. 부정은 필연적으로 다툼을 부르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한다.
해결책은 사랑! 해동네와 달동네를 모두 인정하는 마음이 사랑이다.
20대 중반의 여대생이 내게 물었다.
“아직도 엄마, 아빠는 저를 컨트롤하려고 해요. 전 그냥 가족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데도 자꾸 선생님과 상의하고, 선생님께 허락받으라고 하는데, 저는 이런 게 싫어요. 저도 어른이잖아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죠?”
“맞아요. ○○ 씨는 어른이에요.
그러면 어른이 뭘까요? 그냥 나이가 들면 어른인 게 아니라, 어른다워야 어른이 아닐까요? 부모님은 나이에 맞는 어른이기를 원하는 거죠. 그러나 ○○ 씨는 아직 아이 때 느꼈던 포근한 어머님 품속을 그리워해요. 그건 퇴행이죠. 부모님은 이제 나이에 걸맞은 어른이기를 희망하는 거예요.”
“어떻게 사는 게 어른이죠?”
“내 주장만 앞세우기 이전에 상대 주장을 들을 줄 아는 것, 이해받으려고만 하는 자세에서 이해해주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 비록 내 뜻대로 되지 않으나 남 탓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내가 중심을 가지는 게 어른이지요.”
단지 내 생각과 내 감정에 취해서 달동네의 순기능을 몰랐을 뿐, 이미 이 세상은 완전하다.
해동네만 좇고, 달동네를 부정하는 것은 하늘만 인정하고 땅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이때부터 모든 삶의 온갖 고뇌가 시작된다.
한 번쯤은 ‘내 생각은 불확실하며, 내 감정은 믿을 수 없다’는 명제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내 생각의 노예가 된 채로 내 감정만 내세우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품어보자. 어쩌면 내가 무지와 착각의 늪에 빠져 해동네만 좇고 달동네를 거부하며 세상과 다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깨어서 내 마음을 성찰하는 자가 수양인이다.
수양인은 남의 해동네와 나의 달동네에 관대하다. 그는 해동네도 달동네도 모두 내 인생이요, 보이지 않는 자산이라고 여긴다. 해동네가 다가오면 기쁨으로 맞이하고, 달동네가 찾아오면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힐링
누구에게나 성공과 성취, 행운이 펼쳐지는 해동네가 있고 이와 동시에 실패와 실수, 불행이 따르는 달동네가 있다. 행여 달동네가 없고 해동네만 펼쳐진다면 산만 있고 평원과 계곡이 없는 지형과 같은 법. 어찌 그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본래 해동네와 달동네는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달동네가 주는 순기능을 살펴서 친밀해진다면 그 달동네는 더는 달동네가 아니고 해동네다. 오직 인식의 문제일 뿐이었다. 마음공부를 통해 착각과 무지에서 탈출하여 달동네가 곧 해동네임을 아는 게 곧 깨달음이다.
내 인생의 전부를 수용할 수 있으니 내 마음은 지극히 평화로워진다.
해동네도 좋지만, 달동네도 괜찮다.
1. 달동네는 드러나지 않을 뿐,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2. 달동네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나를 강인하게 만들고 내 영혼을 성장시킨다.
3. 만일 해동네만 존재한다면 교만해지는 법. 고로 그것이 곧 달동네다.
4. 죽음은 달동네의 왕, 우리가 이미 받아들였으니 무엇을 거부하랴.
5. 실패 없이 성공도 없듯이 해동네는 달동네의 기반 위에서 존립한다.
6. 달동네의 부족함으로 인해 서로 의지하며 사랑할 수 있다.
7. 허기진 후의 식사가 꿀맛이듯이 달동네에 처해야 인생의 참맛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