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 14-24절
저주에서
다시 축복으로.
지난
시간은 죄의 결과로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모습을 모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저주
이다. 저주라고 하는 것은 축복과 상반되는 표현이다. 성경은
분명히 창세기 1장에서 세 가지 대상을 축복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첫째는 동물을 향한 축복이고, 두 번째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세 번째는 일곱 째 날을 축복하시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타락 이후에 그 축복의 대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모습이다. 14-15절에 보면 먼저 뱀이 저주를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여자는 저주를 받지 않았지만,
처벌을 받는 이야기가 등장 하는데(16), 그녀에게 내려진 벌은 어미가 되는데 그녀는 고통을
감수 해야만 했고, 결혼은 남편으로부터 지배당하는 갈등 속에서 놓이게 된다. 그리고 아담에게 내려진 처벌은 집의 가장으로써 그리고 공급자로써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책임은 땅의 저주로 인하여 땀을 흘려야만 하는 수고를 짊어진 것이다(17).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죄에 대한 궁극적인 처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19절에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것은 죄로 인하여 인간은 결국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22절에서
인간은 이제 스스로 독립 해야 하고, 스스로 선과 악이 무엇인가를 결정 해야 한다. 그리고 죄로 인하여 인간은 에덴에서 추방되고 만다.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에서
출발한 하나님과 인간의 이야기는 파라다이스에서 추방되는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23). 이 본문이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파기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파라다이스에서의 축복을 뒤집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고통의 삶을 끊임없이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단지 처벌로만 단죄하고 말았다면 성경은 여기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은혜라는 기회를 함께 제공해 주셨다. 20절에서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었다”. 그녀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 에게 까지 이어져 다시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눅 3장 26절은
아담에게 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