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무리의 예언
난세가 영웅을 부르고 현자에 목말라 한다. 고려 희종 원년(1205), 날로 격심해 가는 몽골의 간섭과 약탈이 그 도를 넘었고, 그 고통은 실로 산 넘어 산이었다. 하지만 세월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위를 갓 지난 가을, 장산의 남쪽 마을은 가을 기운에 젖어들고 있었다.
이 마을을 병풍처럼 두른 동학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동산 위로 해가 솟고 있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에도 두 젊은 내외는 애틋한 사랑의 꿈을 꾸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 쪽으로 한 줄기 햇살이 굵게 비춰지며 해가 구르듯 이씨 부인의 품안으로 파고든다. 놀라 깬 이씨 부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옆에서 누워 자던 남편 김언필도 놀라 함께 일어난다.
“아니, 벌써 해가…… 그래, 당신은 자다 말고 무슨 일이오?”
“참말로 이상하네요, 오늘이 세 번짼데 같은 꿈을 꾸어서…”
“무슨 꿈을 꾸었기에 그리도 놀라시는 게요?”
“해괴하게도 이른 새벽에 해가 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해가 품안으로…그것 참 예사롭지 않구려,”
“벌써 사흘째나 같은 꿈이라서… .”
언필은 잠시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아마도 부인에게 삼신할머니가 훌륭한 아기를 주시려나 보오.”
“그럼, 태몽이라는 말씀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듯하오. 하늘이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신 듯해요.”
얼마 뒤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고 그로부터 열 달 후 해산에 이르렀다. 언필은 방안을 이리저리 오가며 들락거리며 안절부절. 그러기를 두어 시각이 지나자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집밖으로 퍼져 나왔다.
하루 종일 내리던 봄비에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뜨고 찬란한 햇살이 문틈 사이로 숨어들자 언필은 재바르게 사립문에 금줄을 걸고 빨간 고추를 매달았다. 벌써부터 동네 우물가 아낙들은 시끌벅적하다.
“김 훈장댁이 득남을 했대. 우리 마을에 경사야,”
분이 엄마도 맞장구를 쳤다.
“근데 말이야 아침에 아기를 낳았는데, 집 안팎이 온통 오색 무지개였다네.”
“뭐라고, 오색 무지개?…… .”
“그렇다면 우리 마을에 큰 인물이……”
“글쎄 말이야, 이건 분명 예삿일이 아니야,”
그 때 훈장네와 가까이 지내던 순이 엄마가 나서며,
“내 얼마 전에 들은 의흥 댁 이야긴데 아기를 가지기 전에 사흘 동안이나 해를 끌어안는 꿈을 꾸었다지 아마.”
“해를 끌어안는 꿈?…….”
“그렇다면?”
“아무래도 우리 마을에 훌륭한 인물이 태어난 게 틀림없어?”
이야기는 점심나절까지 이어졌다. 언필은 갓 태어난 아기 이름을, 해를 끌어안는 꿈을 꾸었다 하여 견명(見明)이라 하였다.
아기는 잘 자라 벌써 네 살, 어버이의 기대는 물론 이웃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큰 바위 얼굴로 자라났다. 연화봉으로 가는 길목을 지나노라면 일연의 탄생지로 추정되는 남천 대명 마을이 있다. 어딘가 있을 장소를 찾아 길손이 헤매었으나 세월 속에 묻힌 그림자를 찾을 길이 없었다.
잡힐 듯 따오기라 알 수가 없어,
그래도 닦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