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서기관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 13:52)
‘서기관’은 우리나라 공무원의 직급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쿰란 종파에서는 성문서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훈련하였는데, 이들을 성경에서는 서기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훈련받은 서기관들은 옛 문서와 새 문서를 보관하고 출납하기도 하며 해석하기도 하고 삶에 적용하기도 했다. 서기관들은 백성들을 잘 가르치기 위하여 남달리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서기관의 활동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당시 서기관들은 성경 해석을 통해 ‘할라카’(Halakah, 할라카는 탈무드와 비슷한 시기에 유래되었고, 종교, 윤리, 민법, 형법 등을 다룬다)와 율법을 만드는 신학자들일 뿐만 아니라,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교사들이었다.
서기관들은 이 때문에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많은 특권과 사회적인 권세도 함께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들의 행위들을 옳게 혹은 곱게 보시지만은 않았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면서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했고, 또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자리의 상석에 앉게 하는 예우를 받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서기관들의 거들먹거리는 행위를 가증한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을 자주 말씀하셨다(참고, 막 12:38-40, 마 23:13).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비유라고도 하는 “새것과 옛 것을 자기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훈련된 일꾼으로 서기관처럼 쓰임 받을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천국의 서기관이라는 사역자의 직함은 오늘날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천국의 서기관이라고 하심은 당시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에 비유해서 호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말씀을 잘 풀어서 가르치는 사역자들 혹은 신학자들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천국에 대한 비유들을 베푸시고, “이제야 너희가 깨닫겠느냐?”고 물으시면서 천국의 서기관을 언급하시는 것으로 보아 본문 속의 이 천국 서기관은 복음의 사역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 자신을 지칭하시는 뉘앙스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주장이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그의 가르침이 이제까지의 서기관들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53절 이하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사람들은 상당히 놀라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모든 교사들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교사이시다.
그렇다면 본문 속의 ‘옛것’과 ‘새것’은 무엇인가? 물론 문자적으로는 그냥 옛것과 새것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옛것과 새것을 문자적으로만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추론컨대 그것은 구약과 신약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본문에 기록된 ‘옛것’과 ‘새것’은 반드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만은 볼 수가 없다. 표현상 불특정한 어떤 다른 가르침이나 교훈을 의미하는 것에도 ‘옛것’과 ‘새것’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집주인은 곳간 안에서 때에 맞춰 꺼내온다. 어두컴컴한 곳간 어디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 알지 못하는 집주인은 적당한 것을 꺼내오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여기서 ‘곳간’은 주로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곳간(보고)’이라는 단어로 쓰인 ‘데사우로스(θησαυρός)’는 주로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마 12:35에 말씀한다. 그래서 본문의 천국의 제자가 된 서기관은 그의 마음, 곧 그의 신앙과 지식 안에서 그 무엇을 꺼내온다고 해석해야 옳다. 특히 본문의 곳간은 진리가 축적되고 보관되어오는 장소이다. 이곳은 구약과 신약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격적이고 내적인 경험이 쌓인 보물창고인 셈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는 그 높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마치 그 깊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깊고 넓어지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당신의 아들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게 하신 사랑의 신비를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현세와 내세의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에게 있어 최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생각해야 할 주제가 될 것이다. 사람이 이 신비를 모두 알기 위하여 모든 정신력을 다 쏟아 집중한다 할지라도 어쩌면 그것은 단지 그의 정신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 뿐이며, 아무리 열심 있는 연구가라 할지라도 자기 앞에 펼쳐진 망망한 대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하나님 나라의 교사들로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가르침의 대상 범위는 유대라는 지정학적 땅덩이에 국한 된 사람들만이 아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온 세상의 끝까지이다. 또한 시간적으로도 그들의 시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구약시대 뿐 아니라, 신약의 제자들의 시간을 넘어 오고 또 오는 모든 세대에게 동일하게 이루어져야할 일이다. 그 시간의 종착역은 이 세상의 마지막 날, 모든 인류에게 삶의 커튼을 내리라고 분부하시는 시간까지인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우리가 일찍이 깨달을 수 없던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이 마음과 언어를 총동원해서 배워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전에 그리스도께서 알려 주시고자 하셨으나 믿음이 없어서 깨닫지 못했던 진리들을 그 나라에선 완전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하심과 그의 영광이 더욱 새롭게 나타나게 될 것이고, 신실한 집주인 예수 그리스도는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능숙하게 꺼내실 것이다. 그때에는 불완전한 지식과 불완전한 경험이나마 한 때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셨던 것을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