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행,두타산,삼척의『두타문학』
강호삼(소설가)
두타頭陀는 산스크리트어로 걸식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불교의 수행방법의 한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삼척시 미로면에 같은 이름의 해발고도 1353미터의 산이 있다. 두타頭陀라는 그 산 이름이 정확히 어디서 유래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단군이 나라를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일 비가 내려 산천초목이 다 물에 잠겼는데 두타산의 정상頭만 섬陀처럼 남아 있어서 이후부터 두타頭陀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산 이름의 유래야 어떻게 되었건 삼척의 두타산頭陀山은 삼척을 대표하는 산이고 그 산 이름을 딴 것이 동인지 두타문학頭陀文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1969년 6월 24일, 김영준, 박종철, 정일남, 정연휘, 김익하, 최홍걸, 이종한, 함영범, 고성범, 김광용, 김경희, 박자운, 이희돈, 박운, 윤성우, 윤경희, 이란희 제씨가 모여 삼척문학회를 결성했다. 초대회장으로 김종욱씨를 선임하고 같은 해 8월, 삼척문학회 결성을 기념하는 제1회 동인시화전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시인 묵객이 풍류를 즐기던 죽서루竹西樓와 삼척시내 새마을다방에서 열렸다. 『두타문학』 동인들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오늘의 삼척시를 위한 문화의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1970년 4월에 동인지 『삼척시단』이 창간되었고 같은 해 10월, 『삼척시단』이 『삼척문학』으로 동인지 명을 바꾸면서 2집을 발간했다. 동인지 이름을 『두타문학』으로 바꾼 것은 1978년 12월 「삼척문학회」를 「두타문학회」로 개명하면서부터다. 이듬해 발간된 동인지 6집부터 동인지 명도 『두타문학』이 되었다.
『두타문학』은 이제 33집의 발간을 앞두고 있다. 명실공이 오늘의 삼척의 문화를 이끌어 온 동인지다. 어찌 삼척만이라고 할 것인가. 두타문학을 디딤돌로 당당하게 중앙문단으로 진출해 한국문학을 빛내고 있는 시인과 소설가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대충 생각나는 분들 만으로도 이성교(시), 정일남(시), 김익하(시), 정연휘(시), 박종화(시), 박문구(소설), 김영기(평론), 최인희(시), 김종욱(시), 김진광(시) 등이 있다.
퇴직 후 더욱 각별하게 지내게 된 입사동기 친구 하나가 삼척의 하장면 출신이다.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위직인 이사관까지 지냈다. ‘하장 촌놈치고 출세했다’고 놀리곤 했는데 이 친구의 입에서 우연찮게 『두타문학』 이야기를 들었다. ‘니가 어떻게 두타문학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향친구 중 한 사람이 시를 쓰는데 삼척의 『두타문학』 동인이라는 것이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정연휘 씨였다. 정연휘 씨는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줄곧 향리인 삼척에서만 삼척의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이다. 『두타문학』 동인지 창간 당시의 주간으로 산파 역할을 했으며 5대와 10대의 회장을 지냈다.
서라벌예대 출신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모두 중앙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었다면 중앙문단에서 마음껏 웅지를 펼칠 수 있겠지만 조용히 고향인 삼척으로 돌아와 고향의 문화를 가꾸어 왔다.
…… 이렇게 60년대 삼척의 현대문학은 동인지 활동과 ‘문학의 밤’과 ‘시화전’을 통한 내부의 의욕이 외부로 표출되는 습작문단 또는 동인지 문단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이렇게 부침한 ‘동인지’ 내지 ‘동인문학회’는 자원이 절대 빈곤한 척박한 땅에서 결코 장수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나름대로의 동인활동은 무너지고, 뿔뿔히 자기 길로 떠나갔다가, 1969년 6월 24일 삼척문학회가 결성되면서 많은 험로를 거처 지방문단을 형성하고 중앙문단의 영지影地에 돌을 던진다.
이 글은 『두타문학』 32집에 두타문학 40년을 뒤돌아보며 「삼척문학의 원류와 두타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정연휘 씨가 쓴 글이다. 소도시의 지역문화 태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아득한 세월이다. 그 아득한 세월 속에서도 누군가 묵묵히 그 지역의 문화와 문학을 가꾸어온 선각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두타문학회의 제250회 바다시낭송회에 초대를 받았다. 서울의 일정 때문에 현지에서 일박까지 해야 하는 여행길이 부담스러웠지만 썩 내켜하지 않는 친구(남기현)를 부추겨 삼척 행을 강행했다.
바다시낭송회가 시작된 시간은 저녁 일곱시 경이었다. 100여 미터 떨어진 삼척해수욕장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원색의 비치파라솔이 외국에서 날라온 그림엽서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낭송회가 열린 장소는 삼척시가 특별히 예산을 들여 작은 규모의 야외 원형극장과 같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동해바다로 떨어지는 단애斷崖 끝에 무대가 있고 무대 앞에 둥글게 계단식으로 관중석을 배치했다. 관중석에서 가없이 넓게 펼쳐진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피서객들을 포함해서 모여든 시민들이 200여 명, 낭송회가 계속되는 동안 동해바다와 시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답고 환상적인 여름밤을 수놓았다. 어디선가 수로부인水路夫人의 가마 행렬이 나타날 것 같고, 손에 잡은 암소의 고삐를 놓은 노옹老雄이 천길 벼랑으로 올라가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탄광도시로만 알려진 삼척에, 삼척시민의 긍지를 전국적으로 드높이는 이토록 아름다운 밤을 연출해 내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게 했다.
바다시낭송회만도 250회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작년부터 문광부와 메이저 신문의 후원으로 각종 문학작품 낭송회가 전국적으로 열렸던 것을 생각하면 『두타문학』 동인들은 그 원조 중의 원조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에 『두타문학』 동인출신의 문인 몇 분을 필자의 임의대로 소개한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동인 모두를 소개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쉽다. 깊은 양해 있기를 바란다.
이성교(시) ‘해당화’
삼사월 긴긴 해를 오랜 멍이 들어/파아란 잎을 물에 띄우면/파아란 바다/부엉이들이 죽은 건너 마을엔/모두 흰죽 멀건히/쑤어 먹고 누웠는데/파도가 칠 때마다 또 한 이파리/파아란 꽃이 돋아나네/어디서 자꾸 처용의 혼을 부르는 소리/너무도 너무도 아픈 사랑이었길래/이리도 가슴 미어지는가
정일남(시) ‘가을 꽃’
가을꽃은 붉게 피지 말아라/소복한 미망인처럼 하얗게 피거라/가을꽃은 화사하게 피지 말아라/가냘프고 조촐하게 피거라/가을꽃은 뜨겁게 피지 말아라/기러기 날개에 묻은 서리 같이/싸늘하게 피거라/허영심을 잠재운 갈대여/가을이 풍화되어 가는 소리여(이하 3연 생략)/가을꽃 울지 말아라/독한 마음으로 내 눈에서 없어졌다가/다른 세상이 오면 소식처럼 오너라.
정연휘(시) ‘만추晩秋’
만추의 길을 가는데/노란 은행잎 일행이/내 앞서 걷고 있다/가을을 안은/노란 은행잎 일행이/내재한 겨울을 흘리며/까불까불 바람에 밀리어/골목길을 걷고 있다./내 살아 온 날들이/노란 은행잎에 실리어/잠시 동행하는 퇴근길./만추의 노을 피는 한때/저기 오는 추운 겨울
김형화(시) ‘공룡을 찾아서’
비가 추적거린다/상족암은 무릅까지 바다에 빠졌다./물밑에 잠긴 발자국/아구아나돈이 중생대로 걸어간다/비가 멎고 안개가 공룡의 멸종설처럼 몰려온다/안개 속에서 무적소리도 공룡에 닿지 못한다./백악기의 봄이다/활엽수가 새 잎을 틔우는 날/둥지 속, 속소그레한 공룡알 /껍질깨고 나올 날 꿈꾼다/다시 추적추적 내리는 비/봄날은 이렇게 꿈꾸듯 가나보다.
박종화(시) ‘꽃불’
처음이자 마지막인/연정으로 꽃불 피웠습니다./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하나/당신 그리워 마냥 불타 오릅니다./세월 끝에 모두 버려야 할/육신 미련없이 저만치/벗어 던지고 밤새운 열정으로/소리없이 달려와 품안습니다.
김진광(시) ‘시래기를 엮으며’
김장을 하고 남은/무청과 배춧잎을 모아/시래기를 엮는다./새끼대신 비닐 끈으로/아내는 아시고/서툰 솜씨로 웃음을 엮는다./옛날에 물에 적신 볏짚으로/어머니가 아시고/아버지가 가난을 엮어 놓으면/처마 끝 시래기 주변으로 /유난히도/몰아치는 눈보라/깊은 겨울 저녁에는 언제나/쌀 구경하기 어려운/시래기국죽/겨울이 오기 전에 한 해를/아내는 아시고, 서툰 솜씨로 엮는다./무청처럼 푸른 우리들의 이야기.
김일두(시) ‘빈둥지’
수 십년 시간 속 고목이 된 목련나무/잎이 무성할 땐 새 소리도 요란했었다/앙상한 나뭇가지 위/보이지 않던 빈 둥지 하나/이제는 새소리 들리지 않고/두타산 계곡 타고 내리는 바람소리 뿐/이름조차 알 수 없는 한 마리 새마저도/정적을 가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그 빈둥지엔/초생달만이 들어앉아 깊은 잠에 들어 있다
서순우(시) ‘사직동 이야기’
언덕빼기 작은 마을/굴뚝마다 피어 오르던 학교 종소리/새들이 털고 간 눈꽃송이에/시누대 우거진 마당 한켠이 울었고/비바람 젖은 쪽마루 밑/겨우내 땔감으로 가득했지만/솜이불 목까지 끌어당긴/팽팽한 싸움 그칠 날이 없었다./키 큰 감나무 끝/밤새 만든 가오리연이/주전자 가득 출렁이던 막걸리에 취하면/앞산 그늘 빛에 꽁꽁 언 논밭 뛰놀던 우리/말린 감 껍질 길게 씹으며/편 가른 싸움놀이에 저녁이 지쳤다(이하생략)
강동수(시) ‘바다가 아프다’
암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흔들어 길을 나섰다./운전하는 옆 좌석에 한줌 가벼워진 어머니를 태워/해안도로를 달리는 오후/나는 자꾸 바다를 보시라고 재촉을 하고/어머니는 차 안으로 고개를 떨구신다/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저 푸른 바다를/사시던 언덕에서 날마다 보아오던 저 바다를/가슴에 한 번 더 담아드리고 싶은데/썰물처럼 빠져나간 마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어/어머니는 바다를 내려놓고 싶은 게다/먼저 바닷길을 따라간 자식 생각에/마음 속에서 지우려는가 보다/아침마다 수평선을 건너와/산등성이 작은 창문을 두드리던 바다 안개가/파도를 타고 넘어와 작별을 나누고 돌아선다/긴 해안선을 천천히 달려 돌아오는 길/돌아보니 바다가 하얗게 울고 있다/잠에서 깨어난/해안선 끝자락을 당겨 눈물을 닦고 있다.
정순란(시) ‘봄꽃에 물든 오후’
늦겨울 심술 시달려도/어김없이 꽃소식은/정라항 파도 소리와/봉황산 벚꽃 연주로 시작된다/봄의 무게에 힘겨운 벚꽃은 내 뜨거운 손을 잡고, 가끔/차가워진 등걸로 미안한 듯/봄보다 먼저 까르르 웃는다/사람이 풍경보다 아름다운 시간/꽃들은 파도 타듯 끊임없이 피고지고/벚꽃 터널로 흥얼거리며 나들이 나선다/봄꽃에 흠뻑 물든 오후/화려한 꽃들의 손짓을 견디지 못한 나는/봉황산을 오르며 오래도록 놓아주지 않는/너에게 전화를 건다/사랑이 첫눈에 반한 떨림이라면/꽃은 만지고 싶어서 결딜 수 없는 간절함이고/그리움은 하루 온종일 멀미같은 울렁거림이다 (이하생략)
두타문학 동인 48분 가운데 시인이 34명으로 이성교, 정일남, 정연휘, 이경국, 최홍걸, 김형화, 김진광, 서순우, 정순란, 김일두, 강동수, 김태수, 이창식, 박대용, 박선옥, 김소정, 이은옥, 김용섭, 이용대, 김영채, 김만섭, 김성일, 김규황, 이정숙, 윤종영, 박군자, 김귀녀, 이봉자, 박창수, 조성돈, 조의령, 박인용, 최영우, 하영미, 행담, 서성옥, 박금희 씨가 활발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다.
소설은 1980년 현대문학 지를 통해 문단에 나온 김익하 씨와 2007년 『예술세계』에 소설 ‘아름다운 얼굴’로 등단한 조관선 씨와 박문구 씨 세 분이다.
수필에는 김옥남, 김원우, 박종철, 김정남, 김원대, 이은순, 서상순, 이출남, 문상기, 송필남 씨 아홉 분이 있으며, 동시부분에 김영채 씨, 평론부분에는 강원일보 주필과 논설위원을 지낸 김영기 씨가 유일하다.
이렇듯 『두타문학』 동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중앙문단이 오히려 무색하다. 무색한 것이 아니라 ‘바다시낭송회’ 같은 것을 미루어 보면 『두타문학』 동인들이 오히려 중앙문단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두타문학』이 있어 오늘의 삼척문화는 더 없이 풍요롭다는 생각이다.
『계간문예』 2010 겨울호 NO.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