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에 담긴 희망과 사랑을 그린 야구영화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고 과 10년, 감각적 영화 생태계가 오염시킨 인간성 말살, 불륜, 폭력 미화, 과도한 비주얼 사용, 진성성 파괴, 영상화성 남발, 자본주의 점령식 이데올로기 투쟁 등의 늪을 넘어 동시대의 이단적 영화 한 편이 소리 없는 함성을 토해내고 있다.
영화는 축구, 핸드볼, 야구, 농구, 복싱, 미식축구, 유도, 검도, 스키점프, 수중발레, 마라톤, 봅슬레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장르의 스포츠를 수용해 왔다. 그 순환 사이클 중 하나로 우리는 2011년 중견 강우석 감독의『글러브』를 선물처럼 접하고 있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흥행과 작품성에서 관객의 믿음과 인정을 받았다. 이제 강우석의 영화이다. 그의 『글러브』는 청각장애라는 난이도를 첨가했지만 오히려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1988년 『달콤한 신부들』로 데뷔하여 『투캅스』의 흥행성공 이후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인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공공의 적』,『이끼』에 이르는 영화연출 작업에서 보듯 성공적 영화연출가로 영화의 기본 속성을 간파, 완성도 높은 디테일로 관객몰이를 해왔다.
2011년을 온통 몰입하게 할 야구영화『글러브』는 형이상학적 철학이나, 영화적 기교를 우회한 순박한 영화이다. 오랜만에 강우석의 작품연보에서 하이틴과 청순의 이미지를 찾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치적 음모, 살인, 치정, 느끼함이 배제된 영화는 군더더기가 없다.
필 알덴 로빈슨 감독,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꿈의 구장』의 순박함이 오버랩 된다.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 김상남(정재영 연기)은 음주 폭행죄로 야구협회의 제명위기를 받자, 매니저(조진웅 연기)의 설득으로 청각장애 학교인 충주 성심학교의 야구부 임시코치를 맡는다.
타지에서 김상남의 좌충우돌과 자성의 계기는 종교적 수양의 기본과 궤를 같이한다. 영상문화의 교육적 기능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야구와 더불어 철학하기’의 결과는 ‘마음을 비우고 새 삶을 시작하기’이다. 한국을 떠나 2군이라도 외국으로 진출하는 것으로 결론 난다.
배리 레빈슨 감독의 『내추럴』, 이장호 감독의 『외인구단』에서의 가공할 연습과 동료애, 김현석 감독의 『YMCA 야구단』의 능청스런 내숭과 야구 알아가기, 이은 감독의 로맨틱 야구 러브스토리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과의 변별성과 중첩을 감독은 유념한다.
정재영의 연기력은 울림과 독기를 불어넣어주는 카리스마, 극기를 통한 홀로서기, 심리변화에서 분출된다. 그의 개성 있는 연기는 녹색 국민영화의 희망의 지표로 작용한다. 오버에 가까운 연기들로 시작되는 휴먼 드라마 『글러브』는 주인공 모두의 성취감을 보여준다.
고교야구 빅4는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배 이다. 이곳에서의 1승이 성심학교의 목표이다. 군산상고와의 친선시합은 참담한 자신들의 실력(30대 0)을 파악하는 보약이 되었고, 구보 귀교와 해변 체력훈련 등은 본격 야구부 강인함을 배양하는 계기가 된다.
4대 대회에 한번 이라도 가 본 사람, 모두 가본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야구장이 갖고 있는 오밀조밀한 맛과 뒤풀이, 야구선수들의 애환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런 모든 분위기에 장애인 야구부를 생각해 낸다는 자체가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모험을 감수한 것이다.
강우석 감독은 마음비우기로 『글러브』에서 자신의 수양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오바바 대통령의 ‘침묵 연설’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듯 『글러브』의 ‘침묵의 저편’의 감동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야구부원으로 투입된 하이틴 배우들의 연기도 풋풋하다.
영화의 밋밋함을 제거하는 작은 여울로 소리 없는 울림의 또 다른 주인공, 교감(강신일)과 수화통역 음악교사(유선)의 담백 연기는 삼각 축인 프로야구선수, 학교당국, 고교야구선수들 간의 의미 있는 소통의 진화과정과 정신적 극기/치유공간을 창출한다.
『글러브』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풍 영화가 동시대의 무분별한 테크닉 차용의 폐해를 치유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이다. 카메라가 스쳐간 시원한 그린 필드들은 현대인들의 정신적 방황과 혼돈을 치유해내는 영혼의 공간이며 교육 현장이 된다.
야구부와 부원들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간단명료한 시각적 지성의 담론 형성을 제기한 이 영화는 이미지 중심적 수사학이나 경계적 도덕률을 고수하지 않는다. 소중하게 연결되는 등장인물들 간의 희화적 갈등의 요소인 대사, 상황들을 통한 이해와 소통의 확대는 수확이다.
『글러브』는 주인공 모두가 승자인 감동의 국민영화이다. 수화 대사가 ‘소리가 있다면’으로 발화한 자막을 친 프린트 분도 코믹한 분위기를 창출한다. ‘성실한 패배는 아름답다’는 구도자적 결론을 도추해내는 강우석의 참신한 발상이 꽉 찬 영화의 미장센 보다 낫다.
화두는 간단하지만 깨우치기는 어렵다. 글러브에서 알파벳 G만 떼어내면 사랑인 것이다. 보편적 영상철학은 리더십을 능가하는 자기 극기에서 출발한다. 강우석 감독의 수행적 표현학은 건조하지만 튼실하고 이미지 늪에서 헤매지 않는다.
강우석의 영상미학은 이제 출발선에 있다. 자만심과 편견을 버리고 시골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장애 같은 자신의 편견을 버릴 때 사회와 우주가 보일 것이다. 사회적 구원과 우주적 염원의 구사는 감독의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이다.
감각의 하나를 소실하고 등장하는 영화 속 인물들은 예닮이나 미니 붓다 같은 소명을 받은 인물로 묘사된다. ‘예능교회’의 희망전도사 강우석의 스크린 설교는 방황하는 양떼들의 정신적 양식이 되기에 충분하다. 선(禪)한 감독의 내 안에 이는 선(善)한 바람은 이어질 것이다.